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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취재] 공기업 마포구시설관리공단의 ‘수상한’ 계약 내막 

유령회사로 의심되는 업체에 연매출 500억원짜리 마트 운영권 넘겨 

공단, 규정 고친 뒤 이사장 지인 회사와 사전담합 의혹 받아
취재 시작되자 이사장·공단·지인 등 관련자들 함구로 일관

지방공기업인 서울 마포구시설관리공단(이사장 이춘기)이 기존 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는 대신 이사장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와 사전담합을 통한 계약을 추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사장은 지인 회사(마트)와 계약하기 위해 규정까지 고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이 회사는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와 다를 바 없었다. 지역 정치권은 이 유령회사가 높은 임대료 등을 부담하기 위해 마트 제품의 가격을 올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마포구시설관리공단이 경보유통과 사전담합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4월 10일 기자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마포구시설관리공단(이하 공단)을 찾았다. 얼마 전 공단은 이곳에 입주해 있는 업체인 ‘다농산업’에게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새로이 ‘경보유통’과 마트 운영권 계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공단과 경보유통 간의 사전담합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임대 상인들이 공단을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공단 주변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분주히 현수막을 달고 있는 현장도 목격됐다. 기자가 다가가자 그중 한 명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공단 직원이세요?”

그는 공단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다농산업 측 사람이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현수막을 걸 때 공단 직원이 지켜보다가 우리가 철수하면 현수막을 철거합니다. 얼마 전에도 철거해서 지금 다시 설치하고 있습니다. 공단 직원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다 위에서 시키니까 그렇게 하는 거겠죠.”

새 이사장 취임한 뒤 기존 업체에 계약 해지 통보


▎마포구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한 다농산업은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에 들어갔다.
공단은 마포구가 전액 출자해 설립한 마포구청 산하 지방공기업이다. 농수산물시장·관내공영주차장·주민편익시설·염리생활체육관 등 마포구에서 위탁받은 시설물을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하는 일을 주목적으로 한다. 공단은 성산동 본사 2층에 있으며, 1층에는 마포농수산물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위치한 다농마트는 연매출 500억원 규모로 마포구 최대 식자재 마트다. 지역 주민들이 지역의 1등 식자재 마트라고 꼽을 정도다.

2019년 9월 9일 이춘기 이사장이 공단의 제6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 이사장이 취임한 후 운영관리규정을 개정해 다농마트 매장을 전대(轉貸)받아 운영하는 다농산업과의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하고, 이 이사장의 지인이 설립한 경보유통과 계약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의혹이 불거지자 이 이사장은 2020년 10월 23일 마포구의회 구정 질문에서 “특정 업체가 18년 동안 독점적으로 운영하면서 비판이 많았고, 매너리즘에 빠져 시설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비위생적이고 불친절하다는 구민들의 민원도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복수의 취재원에 따르면 공단은 2020년 3월 2일 이사회를 소집해 마포농수산물시장 운영관리규정을 개정했다. 월간중앙이 확보한 개정안에 따르면 제8조 제3항 중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를 “최초의 임대차 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 기간이 10년을 초과한 경우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임대차 계약 만료일에 본 임대차 계약은 해지된다”로 바꿨다. 즉 기존 규정에 ‘10년을 초과한 경우’라는 단서를 추가한 것이다. 다농산업은 2002년 4월부터 현재(4월 16일 기준)에 이르기까지 19년 동안 마포농수산물시장에서 다농마트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규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됐다. 첫째, 공단에서 운영관리규정을 개정할 경우 공단 홈페이지에 바뀐 규정을 올려야 한다. 시장 상인들이 바뀐 규정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4월 19일 기준) 공단 홈페이지에는 2019년 1월 3일 자 운영관리규정 발령 전문이 가장 최근 규정 개정안으로 올라와 있을 뿐 2020년 3월 2일자 규정 개정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의혹은 또 있다. 운영관리규정이 개정되고 한 달여 후인 2020년 2월, 공단 사무실이 있는 건물 2층에 농업법인 클로버농축산업이 입주했다. 대표이사는 조모씨, 사내이사는 장 모씨다. 이들 중 장씨는 2020년 6월 16일 새로운 법인을 설립했다. 바로 경보유통이다. 이에 앞서 3월 26일 공단은 다농산업에 ‘임대차 관계의 종료에 따른 최고장(催告狀)’을 통보했다. 다농산업은 2002년 4월부터 2020년 4월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계약을 갱신해왔는데 난데없이 최고장이 날아든 것이다. 다농산업 측은 그 사정을 알기 위해 이 이사장에게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 뒤 공단은 2020년 8월 31일 공개입찰 방식으로 마트 운영권에 대한 입찰 공고를 냈다. 여기에 경보유통이 뛰어들어 최고가를 써내 입찰을 따냈다. 지역 정치권 및 시민단체에서는 유통 경험 등을 검증할 수 있는 제한입찰을 하지 않은 공단의 결정이 의아하다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공단은 공개입찰이야말로 가장 투명한 입찰 방식이라는 입장이다.

자본금 1000만원 업체가 보증금 83억9134만원 약속?


▎월간중앙이 입수한 2020년 3월 2일 자 운영관리규정 개정안. 아직 마포구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 사진:이경주
경보유통이 대규모 마트를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느냐를 놓고도 논란이 많다. 경보유통은 월 임대료 4억1956만원, 임대보증금 83억9134만원을 입찰 금액으로 제시했다. 이는 기존 다농산업의 월 임대료 7473만원보다 5배나 높다. 임대보증금은 무려 22배가 높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2020년 6월 설립된 경보유통의 자본금은 1000만원이다.

이 문제는 서울 마포구의회 구정 질문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3월 8일 마포구의회 제247회 제2차 본회의에서 행정건설위원회 소속 강명숙 국민의힘 마포구의원은 “경보유통은 누가 봐도 마트 매장 낙찰을 받기 위해 설립된 회사”라며 “연매출 500억원이 넘는 대형마트의 입찰에 자본금 1000만원인 회사가 낙찰받은 것은 그 자체로 구민들에게 부끄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조영덕 마포구의회 의장 역시 “자본금 1000만원짜리 회사가 500억원 연매출을 내는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지도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은 공단 책임”이라고 밝혔다. 지역 정치권은 경보유통이 높은 임대료 등을 부담하기 위해 마트 제품의 가격을 올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또 다른 의혹은 공단과 경보유통이 사전담합을 했을 가능성이다. 경보유통은 공단이 입찰을 공고하기 두 달여 전 설립됐다. 이와 관련해 4월 6일 강 의원은 월간중앙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보유통의 장모 대표는 이 이사장의 지인이다. 장 대표는 공단과 같은 층에 사무실을 낸 클로버농축산업의 이사이기도 하다. 클로버농축산업의 조모 대표도 이 이사장의 지인이다. 구정 질문을 할 때 이 이사장에게 ‘지인이냐’고 물었는데, ‘맞다’고 인정했다.”

2021년 3월 8일 마포구의회 회의록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강명숙(이하 강)_ “클로버농축산업 대표하고는 지금 어떤 관계입니까? 지금 이사장님께서 추천해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춘기(이하 이)_ “예, 그렇습니다. 제가 취임하고 얼마 안 됐을 무렵에 인사차 들렀습니다. (…) 그때 (조모 대표가) 동대문에 있는 사무실을 옮겨야 하는데, 회원들이 회비 등을 안내서 걱정이라고 얘기를 하기에 마침 공단 건물에 비어 있는 사무실이 생각이 났습니다. (…) 그렇게 제가 권유해서 (클로버농축산업이 공단 건물 2층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강_ “그러면 측근이시고, 보니까 형님 동생 하는 그런 사이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이_ “그렇지는 않습니다.”

강_ “그냥 아는 사이입니까?”

이_ “살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지인의 한 분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강_ “경보유통의 장모 대표하고는 알고 지내는 사이 맞습니까?”

이_ “사무실이 가까이 있고 해서 오가면서 인사하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그전에는 몰랐습니다.”

경보유통이 페이퍼컴퍼니라는 점도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경보유통은 주소를 서울 송파구 삼전동 빌라에서 2020년 8월 은평구 신사동 아파트를 거쳐, 같은 해 10월 공단 건물 1층으로 옮겼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보유통의 사무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이사장도 구정 질문에서 이 점을 인정했다.

“이사장이 지인에게 마트 운영권 주려고 무리수 뒀다”


▎마포구시설관리공단과 같은 층에 입주해 있는 클로버농축산업은 이춘기 이사장의 지인이 설립한 업체다. / 사진:이경주
이_ “경보유통 사무실은 공단 농수산물시장 1층으로 등기상 돼 있습니다.”

강_ “경보유통 사무실이 지금 1층에 있습니까. 없지 않습니까?”

이_ “그렇습니다.”

강_ “주소만 옮겨놓으면, 유령회사 아닙니까?”

이_ “그건 제가….”

즉 공단은 유령회사로 의심되는 업체에 500억원 연매출의 마트 운영을 맡긴 것이다. 공단과 경보유통 간의 관계를 오랫동안 살펴온 이경주 마포시민사회연대 회장은 “공단이 경보유통과 계약할 때는 재무구조, 유통 유경험 등을 철저하게 심사했어야 한다. 이 이사장이 친구에게 (마트 운영권을) 주려고 운영 규정까지 바꿔가며 일을 진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농산업은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2년마다 계약을 연장해오던 공단이 사전 논의 없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다농산업은 공단에 마트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마트에서 재직 중인 직원은 60여 명, 협력업체 임직원 및 파견 직원은 150여 명, 매장 내 푸드코트 11개 업체 소속 직원은 30여 명으로 총 250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이춘기 이사장을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설치하는 다농산업 직원들.
소송이 언제 끝날지는 예상하기 힘들다. 즉 다농산업에서 경보유통으로 명도가 이전되지 않은 만큼 경보유통이 아직 마트 입점은 하지 않은 상태다. 사정이 이런데도 경보유통이 공단과의 1차 계약서를 바탕으로, 한 축산 업체와 계약금 1억원 규모의 전대 계약을 맺으려 했다가 축산 업체에게 들통난 사건이 발생했다. 축산 업체가 해약을 요구하자 경보유통은 즉각 축산 업체에 계약금을 돌려주었다. 공단 측은 경보유통의 전대 행위가 규정 위반 소지가 크다고 판단, 재발 방지 차원에서 계도 조치했다.

하지만 강 의원은 “공단의 조치는 솜방망이 처분에 불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는 “경보유통의 전대 행위와 관련해 (마포구청에) 특별감사를 요청해놨다”고 말했다.

이경주 회장은 관련 의혹들과 자료를 모은 뒤 검찰에 이 이사장을 고발했다. 사건은 마포경찰서로 이첩됐으며, 이 회장은 고발인 조사를 마쳤다. 이 회장은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이 이사장은 관련 의혹들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며 “다농마트는 지역 최저가 마트다. 이런 업체를 공단 운영 규정까지 바꿔가면서 내쫓는다는 건 ‘업체 죽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월간중앙은 수차례 이 이사장과 전화통화를 시도하며 그의 휴대폰에 여러 차례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끝내 이 이사장으로부터 어떤 응답도 들을 수 없었다. 월간중앙은 공단 측에 ‘경보유통이 높은 임대료와 보증금을 납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근거’ 등을 묻는 질의서를 전달했지만, 역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월간중앙의 취재 요청에 장모 경보유통 대표는 “나는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 글·사진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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