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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트렌드] NFT(대체 불가능한 암호화폐) 바람 타고 블루오션 뛰어드는 미술계 

블록체인 입은 미술, 혁신인가 거품인가 

위·변조 불가능한 디지털 토큰 활용해 고유 가치 유지하고 공동소유까지
거품 논란 해소하려면 저작권 위반 등 불법거래 걸러낼 시스템 구축돼야


▎지난 3월 11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블록체인 기술인 NFT(대체불가능토큰)를 적용한 미국 작가 비플의 디지털 아트 작품 ‘매일: 처음의 5000일’. 크리스티 경매 사상 세 번째로 높은 가격인 한화 약 785억원에 낙찰됐다. / 사진:연합뉴스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들었던 19세기는 미술사에서도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당시 예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에서는 기존 고전주의를 답습한 신고전주의와 이러한 틀을 깨기 위한 비제도권 미술이 대립하고 있었다. 초창기 사실주의라고 불렸던 이 비제도권 미술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외면받았으나, 어쩐 일인지 미술계에서는 그 규모가 줄어들지 않고 성장하더니 오늘날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게 됐다. 이것이 유명 화가인 에두아르 마네로 대표되는 인상주의의 시작이었다.

제2의 인상주의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 미술 시장에서는 인상주의의 출현 이상으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작품이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 Fungible Tokens, NFT)’으로 발행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NFT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지만, 일부 참여자들은 이미 NFT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3월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이 NFT로 만든 ‘매일: 첫 5000일’이라는 작품이 6930만 달러(약 785억원)에 낙찰됐다. 이 낙찰가는 미술사를 통틀어 세 번째로 높은 가격(1위: 제프 쿤스 ‘토끼’ 약 9110만 달러, 2위: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가의 초상’ 약 9030만 달러)에 해당한다. 국내에서는 같은 달 미술품 공유경제 업체 피카프로젝트에서 주관한 경매를 통해 팝 아티스트 마리 킴의 NFT 적용 작품 ‘Missing and found’가 약 6억원에 낙찰됐다.

이외에도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NFT로 자신의 작품을 고가에 판매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의 연인이자 가수인 그라임스는 NFT로 만든 자신의 그림 10점을 580만 달러(약 65억원)에 팔았다. 트위터 창립자 잭 도시는 자신의 첫 트윗을 NFT로 만들어 290만 달러(약 32억원)에 판매했다.

디지털 작품 하나에 785억원, 미술시장 새 현상


▎NFT 미술품 거래 붐이 일면서 국내에서도 지난 3월 첫 NFT 작품 경매가 진행됐다. 피카프로젝트가 진행한 경매에서 팝 아티스트 마리 킴의 ‘미싱 앤 파운드’가 288이더리움(약 6억원)에 낙찰됐다. / 사진:피카프로젝트
기존 작품이 NFT로 재생산됐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높아지는 이유가 궁금할 수 있다. NFT의 사전적 정의는 ‘하나의 토큰을 다른 토큰으로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한 암호화폐’다. 암호화폐를 모르는 일반인 입장에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정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NFT가 탄생한 배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본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는 비트코인은 탈 중앙화된 P2P 금융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가 작성한 비트코인 백서에 이런 목적이 뚜렷하게 명시돼 있다. 토큰이 단순히 화폐로만 기능한다면 고유한 값을 따로 디지털화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블록체인 산업이 발전하면서 암호화폐가 탈 중앙 P2P 금융 외의 영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특히 스마트 콘트랙트의 도입으로 암호화폐 거래가 자동화되는 바람이 불면서 산업의 모든 분야에 토큰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암호화폐의 흥행과 거품이 동시에 형성된 시기가 2017년이었다.

최초의 NFT 서비스도 이 시기인 2017년에 등장했다. 이더리움 기반 블록체인 게임 ‘크립토키티’를 통해서였다. 최초의 블록체인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한 이 게임은 고양이를 키우는 게임이다. 다양한 고양이 캐릭터를 모으고 교배를 통해 희소성 있는 새끼를 키워서 시장에 판매할 수도 있다. 게임 특성상 대체가능 토큰이 도입될 수 없었다.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가진 고양이를 동일한 토큰으로 취급하면, 각 고양이의 가치가 같아지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크립토키티 개발사인 대퍼랩스(DapperLabs)는 당시 막 형성된 토큰 발행 표준 ERC-721을 적용해 증서 방식의 토큰을 발행했다.

각기 다른 디지털 자산임을 인정하는 NFT 방식이 도입되면서 크립토키티는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단순히 대체가능 토큰이 적용되기 어려운 희소성의 측면에서 NFT가 적용됐다. 그러나 일단 도구가 만들어지고 나면 그 뒤에 의미가 부여된다. 이후 NFT는 디지털상에서 소유권을 편리하게 인증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범위를 확대해나갔다.

특히 미술품 시장에서의 NFT 사용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NFT를 통해 소유권 문제뿐만 아니라 실물 작품에서 발생하는 위·변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의 소유권을 NFT로 쪼개서 판매할 수도 있다. 이 영역을 노리는 기업들도 이미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해외에서는 리서치 업체 델파이 디지털, 국내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피카프로젝트 이외에도 경매 서비스 기업 서울옥션블루가 NFT 서비스 추진을 선언했다. 서울옥션블루는 지난 3월 NFT 서비스는 아니지만, 신한은행과 협업해 디지털 자산 서비스 ‘소투(SOTWO)’를 출시하기도 했다. 소투에서는 실물 자산 지분을 디지털화해 소유권을 분할 판매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지털 인증 개념만 붙으면 NFT와 다름없는 서비스를 이미 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옥션블루 관계자에 따르면 3월 기준으로 소투 누적 판매액은 12억원이며, 고객 평균 수익률은 15.6%다.

NFT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나선 암호화폐와 관련 주식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크립토키티 개발사 대퍼랩스가 주도한 NFT 플랫폼 프로젝트 플로우(FLOW)는 0.1달러였던 ICO(암호화폐공개) 가격 대비 약 330배 오른 33달러 선(4월 11일 기준)에 거래되고 있다. 향후 플로우를 통해 NFT 작품뿐만 아니라 수집품, 게임 아이템 등이 거래될 전망이다. 또한 지난 3월에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타쿵 아트, 오리엔탈컬처, 쿠커뮤직 등이 NFT 관련 서비스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만으로 주가가 급등했다. 같은 달 미래에셋펀드서비스가 피어테크와 협력해 NFT 사업 확장을 합의하기도 했다.

단기간에 NFT 산업이 급상승하자 거품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NFT 정보 사이트 논펀지블닷컴(Nonfungible.com)에 따르면 4월 들어 NFT로 만든 작품의 평균 가격은 1400달러로 2월의 4300달러와 비교했을 때 70% 가량 하락했다. NFT 관련 암호화폐의 가격도 3월에 정점을 찍고 하락 추세에 접어드는 분위기다. 시장에서 성사되는 고가 NFT 작품의 상당수가 자전거래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한 국내 블록체인 업체 관계자는 “고가 NFT 작품을 매수하는 이가 몇몇으로 정해져 있어 자전거래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다”라며 “다만 중저가 NFT 예술품 및 수집품은 매수자가 다양하게 분포해 있어 자전거래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물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던 저작권 문제도


▎3월 초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NFT 미술 애호가들이 뱅크시의 판화 ‘멍청이’를 사들여 NFT로 전환하고 원본 그림을 불태워버리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멍청이’ NFT는 경매에서 실물 작품의 4배 가격에 팔렸다.
무엇보다 NFT가 실물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되레 실물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던 문제가 NFT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이를테면 NFT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저작권 문제다. 지난 1월 크립토 예술 집단인 BCA(Block Create Art)의 저작권 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BCA는 ‘크로스(Cross)’라는 NFT 거래 플랫폼에 올라온 작품 중 58건이 기존 작가들의 작품들을 무단 탈취한 것이라고 고발했다. BCA 측은 58건의 작품을 플랫폼에서 내려줄 것을 크로스에 요구했지만, 크로스 측은 탈 중앙화 플랫폼이라서 개인이 올린 작품을 삭제할 권리가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블록체인 기반의 탈 중앙NFT 서비스는 오히려 저작권 침해 문제에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NFT 예술품을 보증할 수 있는 새로운 기관을 만들고 자체 페널티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물 시장에서 작품을 중개하는 경매업체가 있는 것처럼, NFT 업계에도 작품 업로드 이전에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표절자나 저작권 위반자에게 페널티를 주는 방식으로 문제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 이는 NFT 바깥의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제도다. 각 블록체인 네트워크 참여자가 일정량의 암호화폐를 쌓아놓고, 특정 주체의 잘못이 발견되면 그 주체의 암호화폐를 삭감시키는 방식이다. 아직 명확한 법률이 마련되지 않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는 이러한 경제적 페널티를 주는 방법으로 시스템을 개선해나가고 있다.

반면 NFT 작품 시장이 단기간에 팽창한 것은 맞지만, 거품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지난해 기술주 중심의 증시 대약진이 단기간에 이뤄졌지만, 디지털 중심 사회로의 개편이라는 점에서 거품이라고 보긴 어려운 것처럼 NFT 작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NFT 작품 가격이 거품이라는 시선 역시 알고 보면 실물 시장과 특별히 다를 게 없다. 고가에 팔리는 NFT를 보면 디지털 예술계에서 다년간 경력을 쌓아왔거나 암호화폐 업계에서 오랜 기간 버텨온 작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도 아니라면 인플루언서들의 작품인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실물 시장처럼 희소성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고가에 팔린다는 얘기다. 비플의 NFT 작품이 6930만 달러라는 가격에 낙찰된 것도 그가 이미 10년 이상 디지털 작품을 그린 대형 아티스트라는 점이 한몫을 했다. 이처럼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NFT가 부차적 요소로 작용한다.

다만 일반인 관점에서는 미술품의 NFT화가 큰 기회일 수 있다. 해외에서는 NFT 시장에 일찍 진출한 일반인들이 성공을 거둔 사례가 최근 들어 계속 나오고 있다. 무명의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NFT를 이용해 생활고를 덜게 된 이들의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명성을 얻지 못한 무명 예술가들에게 NFT가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스폰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난 3월 BBC는 이를 주제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빚에 시달리다가 16개의 이미지를 NFT화해서 10만 캐나다 달러(약 9000만원)를 번 캐나다의 무명 예술가 앨러나 에징턴의 이야기다. 파산 상태나 다름없었지만 자신의 NFT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을 1만2497달러(약 1400만원)에 판다리우스 푸이아(독일)의 경험담도 있다. 모두 NFT 시장이 아니라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거품 속단 일러… 미술 대중화 시작으로 봐야

물론 아직 시장 참여자가 많지 않아 이러한 사례가 빈번하게 나오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도 아예 새로운 시장이라는 점에서 다른 시장 대비 신진 예술가들이 부각되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NFT로 작품 소유권을 투명하게 쪼개고 관리하면 일반 투자자의 참여 폭도 커지게 된다. 고흐의 작품을 혼자서 사려고 하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지만, 쪼개서 매수하면 훨씬 적은 돈으로 작품의 소유권을 얻을 수 있다. 아직 이와 같은 사례가 실제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만큼 미래에는 관련 서비스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업체 역시 이러한 신진 작가 발굴 및 투자층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NFT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서울옥션블루 측은 “디지털 자산 서비스 운영과 NFT 서비스 추진의 이유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있다”며 “앞으로 NFT가 예술 대중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 실물 시장보다 더 높은 유동성을 보이는 시장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19세기 비주류였던 인상주의 화가들이 본인의 낙선품을 새로운 공간에 전시하면서 활로를 찾았던 것처럼, 21세기에는 새로운 작가들이 NFT 공간에서 도약할 수 있을까. 아직 불확실성이 크지만, NFT 시장에는 그만큼의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미술품 시장의 진흥이 NFT를 통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 박상혁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seminomad@coindeskkorea.com

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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