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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대 HK+ 한자문명연구사업단·월간중앙 공동기획 | ‘한자어 진검승부’(5)] 신체(身體)-마음을 듣는 몸 

마음 가는 궤도를 몸이 이탈하지 않도록 해야 

동양에선 둘을 분리하기보다 하나의 개념 안에서 조화·질서에 주목
노자 “자신을 천하만큼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천하 맡길 수 있다”


▎페르난도 보테로 작 ‘브래지어 차는 여자’(1976), 캔버스에 그린 유채화다.
올해도 눈부시게 찬란했던 봄꽃들의 잔치가 끝난 자리를, 어김없이 싱그럽고 빛나는 연초록빛이 채우고 있다. 자연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눈으로 직접 보며 감상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행여 놓칠까 봐 눈에 담기 바쁜 계절이다.

올봄은 더더욱 그렇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바뀐 일상이 새로운 일상이 될 만큼 시간이 흘렀다. 이 시간과 공간에 갇힌 듯 조심스레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 자신과 내 주변을 둘러싼 주변과 자연을 돌아볼 기회가 이전보다는 많아졌다. 내 몸을 타자(他者)와 분리하고, 가족과 사회를 분리해 거리를 두면서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시간 동안에 우리는 내 몸 작은 소리에 더 집중하게 됐다.

인간의 몸은 작은 우주라고 한다. 실제로 우주를 이루는 물질과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크게 다르지 않고, 우주와 인간의 DNA 구조가 흡사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지만 살아가다 보면 인간의 몸이 우주만큼이나 신비롭게 여겨질 때가 많다. 미지의 공간이던 우주의 비밀이 과학의 힘으로 하나씩 밝혀지는 것처럼, 인체의 신비도 언젠가 선명하게 밝혀질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실체, 곧 몸이 곧 인간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인간일까? 마음이 몸을 움직이는 걸까? 아니면 몸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까? 언어로 세상에 대한 인식을 담아 표현할 수 있는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 몸의 각 부분을 이르는 이름에서도 몸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인간 몸의 여러 부분을 가리키는 말을 신체어(身體語)라고 하는데, 신체어는 그 실체가 고정된 기초 어휘 부류에 속하면서 외래어의 유입에도 쉽게 잘 바뀌지 않는 견고한 어휘장을 구성하고 있다. 신체어는 그만큼 우리의 일상과 의식 속에서 기본적이고 중요한 어휘이며, 이러한 신체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인간은 먼저 자신의 신체를 인식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세상을 변별하고 판단하고 인지한다. 따라서 인간의 신체는 인간의 인지 활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신체어에는 팔·다리·머리 등 신체 외부를 지칭하는 어휘와 심장·간·폐 등 신체 내부를 지칭하는 어휘가 있다.


▎身의 금문 자형. / 사진:조정아
몸을 뜻하는 한자로 身(몸 신)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신체(身體)나 인체(人體)라고 하거나 육체(肉體)나 육신(肉身)이라는 한자어도 쓴다. 한자 身의 금문(金文)에서는 임신해서 배가 불룩한 모습을 그렸다. 이때 뱃속에 그려진 점은 잉태된 생명의 상징으로 아직 구체적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임을 표현한 것이다. 이후 아이의 머리가 형성되면 巳, 두 팔까지 생기면 子가 된다.

이처럼 身은 ‘임신하다’가 원래 뜻이며, 나아가 머리 아래부터 발 위까지의 ‘신체’를 지칭하게 됐다. 중국 후한 시대 허신이 쓴 가장 오래된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도 “身, 躬也. 象人之形”이라고 해 한자 身이 사람의 모습, 즉 몸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이후 身은 ‘사물의 주체나 자기 자신’을 뜻하게 됐고, ‘자신이 몸소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身으로 구성된 한자들은 모두 몸과 관련된 의미를 가진다. 身은 새 생명의 잉태이자 우리의 몸이자 우리 자신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때 身은 단순히 외형적인 실재로서 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존재 자체를 뜻한다. 즉 외형적인 실재를 지칭하는 영어의 body와 한자 身은 완전히 동일한 개념으로 보기 어렵다.

身과 함께 ‘신체’라는 한자어를 이루는 한자 體(체)는 뼈를 뜻하는 한자 骨(골)과 풍만하다는 뜻의 한자 豊(풍)으로 구성돼 튼튼하고 풍만한 뼈를 갖춘 몸을 형상화했다. 반면, 육체나 육신이라는 한자어에 쓰이는 肉(육)은 살결이 갖춰진 고깃덩어리를 그린 한자로 고기나 과실의 과육 등을 뜻한다. 인간의 몸을 지칭하면서 이 한자를 사용한 것은 인간의 몸이 살로 이뤄졌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즉 體와 肉은 뼈와 살로 이뤄진 인간의 몸을 분명히 표현한 한자로 외형적인 실재로서의 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의학을 집대성한 허준의 [동의보감]의 첫머리 내경편의 총목(總目)을 살펴보면 신형(身形)·정(精)·기(氣)·신(神)으로 시작한다. 이어 피(血)·꿈(夢)·목소리(聲音)·언어(言語)·진액(津液)·담음(痰飮)이 나오고, 오장육부(五臟六腑)가 하나씩 나열돼 있다. 그런데 예상했던 목차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몸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신형(身形)에 뒤이어 정(精)·기(氣)·신(神)과 같은 정신적인 것과 관련된 한자가 등장하고, 심지어 꿈이나 목소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즉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몸은 외형적 실재와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물론 몸이라는 개념 안에 마음마저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몸과 마음을 구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체계적으로 둘을 구분하기보다 하나의 개념 안에서 둘의 조화와 질서에 주목하는 것이 동양적인 몸의 개념이다.

인간의 몸을 물질로 본 서양, 정신까지 포함한 동양


▎[동의보감언해] 내경편의 신형장부도. /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우리는 종종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마음이 앞선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와 같은 말을 한다. 이러한 표현에 깔린 전제는 몸은 물질적인 것으로, 마음은 정신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동양 의학과 근대 서양 의학은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보느냐, 구분하느냐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서양 의학은 인간의 몸을 물질로 규정하고 질병의 증상과 치료에 주목한 반면, 동양 의학은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의 몸도 조화와 균형을 강조해 깨진 조화와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성향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해부도(解剖圖)와 허준의 신형장부도(身刑臟腑圖)에서도 잘 드러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인체를 면밀히 관찰한 후 정확하게 비례를 따져 사실적인 표현으로 해부도를 완성했지만, 허준의 신형장부도는 정확한 모양이나 크기·위치보다는 기혈의 순환이나 몸의 균형을 더 중시하여 장부도를 그렸다.

우리의 몸 내부에 있는 심장이나 간·폐와 같은 기관들은 팔이나 다리처럼 그 존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고, 내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장기라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볼 수 없는 낯선 것들로 ‘나’라는 존재가 이뤄져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또 일반적인 경우라면 평생 눈으로 한 번도 볼 수 없는 내부기관의 기능과 영향관계에 따라 내 생명이 좌우된다는 사실도….

우리의 몸은 오장육부로 이뤄져 있다. 오장이라고 할 때 ‘장(臟)’은 몸속에 감추어진 내장을 뜻한다. 육부라고 할 때 ‘부(腑)’도 우리 몸 속의 기관을 이르는 말로 소화·흡수·배설기관에 해당한다. 오장에는 간장(肝臟)·심장(心臟)·비장(脾臟)·폐장(肺臟)·신장(腎臟)이 있고, 육부에는 담부(膽腑)·위부(胃腑)·소장부(小腸腑)·대장부(大腸腑)·방광부(膀胱腑)·삼초부(三焦腑)가 있다.

오장육부는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고 있다. 오장은 음에 해당하고, 육부는 양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오장은 정기(精氣)·신기(神氣)·혈기(血氣)·혼백(魂魄)을 간직하고 있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하게 하는 원천이 되는 반면, 육부는 음식물을 소화하고 진액을 돌게 하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몸속 기관을 ‘장’과 ‘부’로 나누는 것은 서양 의학에서 소화계·호흡계·순환계 등으로 나눠 보는 것과 대비된다.

오장과 육부는 삼초를 빼고는 각각 짝을 이루는데, 폐장과 대장, 심장과 소장, 간장과 담부(쓸개), 비장과 위부, 신장과 방광이 짝이 된다. 오장육부는 서로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균형을 통한 몸의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한다. 또 오장은 얼굴에 있는 일곱 개의 감각기관과 연결돼 있다. 코는 폐에, 눈은 간에, 혀는 심장에, 입은 비장에, 귀는 신장에 속한 기관이다.


▎心의 갑골문. / 사진:조정아
심장은 뇌와 함께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며, 목숨을 상징하고 마음이나 중심부를 상징한다. 갑골문에서 심장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그렸다. 고대 중국인들은 ‘생각하다’는 뜻의 한자 思와 想이 보여주듯이 사람의 생각이 머리가 아닌 심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心이라는 한자를 사용했다. 그래서 ‘忠·恕·情’과 같이 心으로 구성된 한자들은 대부분 사상·감정이나 심리 활동과 관련돼 있으며, 그 때문에 사람의 성품도 마음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현대어 ‘마음’의 옛 형태인 ‘?/? 도 ‘심장’의 의미와 ‘마음’의 의미를 두 가지 모두 가지고 있다가 근대에 와서 마음만 의미하는 것으로 의미 범위가 축소됐다.

1527년 최세진이 어린아이에게 한자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를 비롯한 16세기 문헌에서 ‘心은 ‘념통 심’이라고 한다. 즉 중세 국어 시기 ‘념통’이 오늘날 심장의 의미로 쓰였으나 근대에 들어오면서 한자어 ‘심장’이 널리 쓰이면서 사람의 심장은 ‘심장’을 쓰게 되고, ‘염통’은 동물의 심장을 가리키게 됐다. 이는 원래 위(胃)를 가리키던 고유어 ‘양’이 근대에 들어와 한자어 ‘위’가 ‘사람의 위장’을 의미하는데 많이 쓰이자, ‘양’은 ‘소의 위’만 의미하게 된 것과 비슷하다.

뜨거운 생명이자 마음, 심장 心臟


▎이집트의 제19왕조 테베 후네펠의 [사자의 서].
마음이 심장에 위치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인간이 살아있는 한 심장 박동을 계속 유지하고 사망하면 심장 박동이 정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심장과 거의 동일시하는 것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영어 heart 독일어 Herz 프랑스어 coeur 등이 모두 ‘마음과 감정, 영혼’이라는 추상적인 개념과 ‘심장’이라는 실재 모두를 의미한다.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현세의 죄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때 심장의 무게를 다는 의식이 행해진다고 생각했다. 심장의 무게를 다는 의식은 영혼, 즉 카(Ka)가 사후 세계로 가기 위해 받는 최후의 재판이다. 큰 저울의 한쪽에 죽은 자의 심장을 올려놓고, 다른 쪽에는 정의와 지혜의 여신의 깃털을 올려놓아,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울 경우는 이승에서 많은 죄를 지었다고 판단해 괴물 암무트가 심장을 먹어버렸다. 심장을 잃으면 죽은 자의 영혼은 영원히 사후세계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돈다고 이집트인들은 믿었다. 반면에 심장과 깃털의 무게가 일치하면 죽은 자의 영혼(카)은 다시 육체와 만나 부활한다고 믿었다.

폐는 우리 몸에서 호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공기의 들숨과 날숨을 통해 산소를 얻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폐는 가슴 흉곽 안에 들어 있는 가장 큰 기관으로 심장을 중간에 두고 양쪽에 있다. 한자 肺에서 고기 육(肉)이 의미부이고, 슬갑 불(巿)이 소리부로 ‘허파’를 뜻하는데, 슬갑(膝甲)처럼 넓적하게 퍼진 모양의 장기라는 뜻을 담았다.

현대어에서는 심장·간장·위장·비장·신장 등과 다르게 끝에 장부를 뜻하는 ‘장’을 잘 붙이지 않고, 1음절 ‘폐’로 말하거나 ‘폐부(肺腑)’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폐부를 찌르다’라는 표현도 쓴다. ‘폐’를 ‘허파’라고도 하고, 실없이 행동하거나 지나치게 웃는 사람에게 ‘허파에 바람 들다’라고 한다. 폐가 들숨을 쉬면, 즉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마치 그처럼 사람이 공중에 떠 있는 듯 실없는 행동을 하거나 지나치게 기분이 들떠 보이는 사람에게 쓴다.

‘부아가 나다’의 부아는 폐 肺


▎조선시대 어린이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 / 사진:국립한글박물관
[훈몽자회] 같은 한자 학습서나 [역어유해] 같은 외국어 학습서에서 ‘肺子 부하’나 ‘肺 부화 폐’로 나타난다. 이때 ‘부하/부화’는 ‘부아가 나다/돋다’는 표현의 ‘부아’로 흔적이 남아 있다. 노엽고 분한 마음이 들 때 부아가 난다거나 돋는다고 한다. 아마도 화가 나거나 분한 마음으로 씩씩거릴 때 들숨이 쉬어지고, 그때 폐로 공기가 들어가 가슴이 불룩해지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생겨난 것이다.

심장·간장·위장 등은 많이들 알고 있지만 비장은 정확히 어떤 기관을 이르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전에서는 ‘지라’나 ‘만하’와 같은 말이라고 하지만, 그 말들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비장을 뜻하는 한자 脾는 의미부인 고기 육(肉)과 소리부인 낮을 비(卑)가 결합한 글자다. 그래서 한자 脾에는 위(胃)의 아래(卑)에서 위가 음식물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기(肉)라는 뜻이 담겨 있다. 비장은 위 근처에 있는데 정확히는 가로막과 왼쪽 신장 사이에 있다.

비장은 옛 문헌에서 ‘말하’나 ‘만하/만화’로 나타나는데, 이는 현대어 ‘만하’로 남아 있다. 그러나 15~16세기에는 사람과 동물에 함께 썼던 ‘만하’가 이제는 동물에 국한돼 쓰이고, 사람에게는 비장을 사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비장이나 만하나 지라라는 이름은 생소할 수 있지만, ‘비위가 상하다’는 표현은 종종 사용한다. 비위(脾胃)는 비장과 위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인데, 어떤 것을 하고 싶은 기분이나 생각, 음식이나 냄새를 잘 삭여내는 능력, 불쾌함을 견디는 힘 등을 표현할 때 쓴다.

한의학에서는 비장이 위장과 짝을 이뤄 소화에 관여한다고 본다. 위장이 음식물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라면, 비장은 실제적인 소화를 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 의학에서 비장은 소화와 무관한 장기다. 비장에 해당하는 영어 spleen은 비장이 힘과 감정이 깃든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불안’과 ‘우울’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간을 나타내는 한자 肝(간)은 고기 육(肉)이 의미부이고, 방패 간(干)이 소리부로 ‘생명을 유지하는 근간’이라는 뜻이 담겼다. 이후 ‘속마음’의 비유로도 쓰였다. 영어로는 liver에 해당하는데, 어원적으로 live와 관련된다. 예전에는 간이 생명의 필수요소인 피를 만드는 조혈기관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삶 자체와 관련지어 생각했다. 중세시대에는 간이 사랑과 열정의 상징인 심장과 경쟁하기도 했다. 그리스어로는 hēpar라고 하는데, 어간 hēpa-가 아직도 간염 hepatitis 간암 hepatoma 등의 단어에 이용되고 있다. 그래서 간에 관련된 약 이름에 ‘헤파’가 많이 들어간다.

동서양에서 간은 생명력을 상징한다. 인간을 위해 제우스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도 코카서스 산에 묶여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이 다시 회복되는 끔찍한 형벌을 받으며,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됐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토끼의 간’ 이야기에서도 자라의 꼬임에 빠져 용왕의 제물이 될 뻔한 토끼가 육지에 간을 두고 왔다는 거짓말로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벗어난다. 나중에 ‘수궁가’나 [토끼전]으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원래 인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원래 인도 설화는 악어 부부가 원숭이의 간을 탐내는 내용이고, 중국 설화는 자라 부부나 규룡(虯龍) 부부가 원숭이의 간혹은 심장을 노린다는 내용이다.

생명력과 재생의 상징, 간장 肝臟


구약성경 중 토비트서에서도 물고기의 쓸개·염통·간이 효험이 좋은 약으로 등장한다. 물고기의 염통과 간을 태워 연기를 피웠더니 마귀나 악령에 시달리던 사람에게 평온이 찾아왔고, 눈이 먼 사람의 눈에 물고기의 쓸개를 바르자 시력을 되찾는다. 이렇게 간을 생명력과 재생의 상징으로 본 것은 동서양이 동일하며, 동물의 간을 먹는 것은 그 동물과 관련된 신의 힘을 얻기 위함도 있었다.

간은 사람의 성격이나 감정을 관장하는 ‘영혼’을 품고 있는 것으로 인식돼 끈기와 의지, 상상력과 깊이 관련돼 있다. 따라서 간이 좋으면 ‘담대(膽大)하다’는 말처럼 매사에 적극적이고 겁 없이 일할 수 있지만, 반대로 간에 문제가 있으면 지구력이 없고, 사소한 일에 동요하기 쉬우며, 우유부단하고 신경질적이 된다고 한다.

간이 관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꽤 있는데, 자주 쓰는 표현이 ‘간도 쓸개도 없다’,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등이다. 이러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간과 쓸개가 크기상 차이는 있지만 위치상 아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줏대 없이 왔다갔다하는 것을 표현하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성어 역시 간과 쓸개를 서로에게 보일 정도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하게 사귀는 사이라는 의미다.

‘애간장을 녹이다. 애간장을 태우다’라고 할 때 ‘애간장’도 ‘애’와 ‘간장’이 결합한 말이다. ‘애’는 ‘애가 타다, 애를 쓰다’로도 쓰는데, 이때 ‘애’는 ‘초조한 마음’이나 ‘수고로운 마음’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나 중세국어 시기 ‘애’는 ‘애 腸 [천자문], 애 간 肝 [유합]’에서처럼 ‘창자’의 뜻이나 ‘간’의 뜻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창자’나 장(腸), 간(肝)과의 유의 경쟁에서 밀려나 이러한 의미는 사라지고 오늘날은 관용표현으로만 남아있다.

한자 腎은 의미부인 고기 육(肉)이 아래에 있고, 소리부인 굳을 견(臤)이 위에 있는 글자로 신장을 표현한다. 신장은 우리말로는 ‘콩팥’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몸에는 주먹만한 크기의 강낭콩처럼 생긴 신장이 양쪽에 있다. 신장은 노폐물을 걸러 배출하는 체내 항상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하거나 호르몬을 생산하고 활성화하는 내분비 기능까지 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중국어나 일본어에서도 신장을 표현할 때 ‘腎’을 쓰지만, 중국어의 경우는 ‘腰子’를 쓰기도 한다. 한자 ‘腰’는 허리나 중요한 곳을 뜻하는 글자이지만, 신장을 뜻하는 말로도 쓴다. 한국어에서는 기관의 모양에서 유래한 고유어 ‘콩팥’을 많이 사용했으나, 요즘은 공식적인 용어로 신장을 더 선호한다.

몸이 좋아하면, 마음이 가는 길 만들어져

영어에서 신장은 kidney이지만 고어에서는 reins라고도 했다. 특히 이때의 reins는 ‘감정·애정이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kidney의 기원은 알 수 없으나 기관의 모양과 관련해 고대영어 cwið ‘자궁·창자’와 ey ‘알’의 복합어로 추정된다. 강낭콩을 뜻하는 ‘Kidney-bean’는 콩의 모양 때문에 1540년대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희브리어 ‘ הָילְכִּ kilyâh’는 배설기관인 신장뿐 아니라 인간의 내적인 마음, 영혼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그래서 희브리인들은 감정의 근원이 콩팥에 있다고 생각했다.

앞서 몸과 마음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오장육부에 대해 이야기도 했지만, 여전히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실체가 분명한 오장에도 인간의 감정과 인식이 반영된 걸 보면,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좋아하면 울리는’이라는 천계영 작가의 웹툰을 보면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반경 10m 이내에 있으면 알람이 울리는 앱이 나온다. 이 ‘좋알람’ 앱의 원리에 대해 개발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좋아한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가 아닐까?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 싶고, 목소리를 듣고 싶고, 손을 잡아보고 싶어서….”

과학적 원리로는 부족한 설명일 수 있지만, 좋아한다는 행위를 몸의 문제로 봤다는 점이 왠지 모르게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규정하기 힘든 마음보다는 측정 가능한 몸의 반응으로 사랑이라는 마음을 정의했다는 게 신선하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면 마음이 따라 움직인다. 몸과 마음은 뗄 수 없는 오랜 단짝이니까.

노자는 [도덕경]에서 “자신을 천하만큼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고, 자기를 천하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 천하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몸을 이루는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든 눈에 보이지 않든, 크든 작든 어느 하나 귀하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마음이 가는 궤도를 몸이 이탈하지 않도록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펴야겠다. 때로는 몸이 이끄는 대로, 새로운 궤도를 찾을 수 있도록 마음을 쉬게 해야겠다. 우리 몸속 우주가 순행할 수 있도록!

- 조정아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연구교수 cja6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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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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