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5)] 자본주의 사회의 기호품, 술과 담배 

혁신을 거듭하는 ‘사탄의 유혹’ 

남유럽의 포도주·북유럽의 맥주 문화… 종교와 시대에 따라 금주법도
담배 대량생산은 신생국가 미국의 경제 기반… 금연이 새 비즈니스로


▎1874년 독일 화가 안젤름 포이어바흐의 작품 ‘플라톤의 심포지엄.’ 고대 그리스의 포도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술과 담배는 자연스러운 짝을 이룬다. 술 한 잔 걸치고 나면 담배 생각이 절로 나고, 담배로 목이 칼칼해지면 술이 다시 생각나는 시너지 효과가 대단하다. 금연에 성공하려면 술자리를 피하고, 금주하려면 담배도 포기하라고 권한다. 물론 담배는 술뿐만 아니라 커피나 차와 같은 음료와도 잘 어울린다. 술, 커피, 차, 담배 등을 기호품이라 부르는 이유는 영양 공급 기능보다 다양한 맛과 향기, 분위기와 기분을 느끼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기호품 가운데 술과 담배는 강한 중독성으로 묶인다. 실제 정신의학에서는 심한 의존과 금단 증상이 나타나는 술과 담배를 마약과 같은 범주로 분류하기도 한다. 술과 담배에 익숙해지면 일상의 한 부분이 되기 쉽다. 한번 애용하다 보면 몹시 벗어나기 어려운 습관이 된다. “담배를 끊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다. 담배와 술은 대량생산과 소비를 통해 성장하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만개할 수 있는 적절한 조건을 구비한 셈이다. 일단 소비자가 되면 대부분 장기간에 걸쳐 충성 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기호품 -즐기고(嗜) 좋아하는(好) 물건(品)- 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담배와 술의 소비는 전형적인 문화 현상이다. 생존하기 위해 인간의 신체에 영양을 공급하는 주식이나 고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물론 곡식이나 육류 등 전통적 식량에 속하는 분야에서도 다양한 요리를 통해 문화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술과 담배는 요리보다도 더 큰 차별성을 만들어냈고, 찬성과 반대의 사회적 대립을 초래했다. 21세기 초 주류와 담배 산업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흡연과 음주의 전성시대는 저물어 가는 모습이다.

포도주 마시는 프랑스, 맥주 즐기는 영국

술은 인류 문명과 맥을 함께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예를 들어 포도주에 대한 고고학적 흔적은 이란 지역에서 기원전 5400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이 수렵·채집 단계에서 농경문화로 진화하면서 이미 술이 등장한다. 이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고대 기록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종교의식에서 포도주를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화려한 문명인 바빌로니아는 포도주와 맥주가 사이좋게 공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곡식을 재료로 사용해 만든 빵과 맥주는 바빌로니아 문명의 상징이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고대 도시 바빌론에서는 맥주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사업이 번창해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으로 투자하는 동업의 대상이었다는 자료도 있다.

고대 이집트 또한 맥주와 포도주를 동시에 즐기는 사회였다. 두 종류의 술은 약간 다른 용도로 사용됐다. 종교와 관련된 의식에서는 포도주를 주로 활용했다면 보통 사람들은 일상에서 맥주를 더 자주 소비했다. 포도주는 곡식으로 만든 맥주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생산된다. 포도나무를 키워 과실을 얻는 과정도 더 길고, 술로 제조하는 방식도 한결 복잡하다. 신에게 바치는 술이니 필사적인 노력과 정성이 담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포도주는 고대 그리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문명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현대 사회에서 학회 모임을 지칭하는 ‘심포지엄’이라는 단어는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는 연회라는 뜻이다. 심포지엄을 직역한다면 ‘술을 함께 마시는 잔치’를 의미한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한자리에 모여 아폴로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포도주를 마셨다. 당시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발언을 하지 않고 술만 마시는 행위는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리스에서는 나이에 따라 음주법도 다르게 적용됐다. 예를 들어 18세 미만의 청소년은 술 마실 권리가 없었다. 또 마흔을 넘은 성인들만 취할 정도로 술 마실 권리를 가졌다. 음주와 종교를 결부함으로써 절도 있는 행동을 요구하면서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점차 주법을 익힐 수 있도록 사회적인 장치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술의 개방성 측면에서 세계 최고


▎1923년 스위스 화가 프랑수아 루이 자크의 작품 ‘술집에 있는 프리부르 농민들.’ 북유럽의 맥주 문화가 표현됐다. / 사진:위키피디아
지중해를 지배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은 포도주를 유럽의 정체성에 뿌리내리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다. 포도주는 원래 그리스·로마의 다신 종교와 결합했지만, 이후 기독교에서 예수의 피를 상징함으로써 종교의식에 필수적이며 신성시되는 술로 부상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포도주는 지중해를 오가는 배에 실리는 활발한 무역 상품이었다. 초기에는 암포라(amphora)라고 불리는 항아리에 담아 교역 대상이 됐고, 2세기부터는 나무통에 넣어 사고파는 상품이었다. 그리스·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에서는 포도주를 주로 마시는 남부와 맥주 중심의 북부가 갈리게 됐다. 포도나무는 지중해 지역의 기후에서는 잘 자라지만 북유럽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세가 되면 포도주를 마시는 프랑스와 맥주를 즐기는 영국이라는 술의 정체성이 확고하게 만들어진다.

전 세계에 자본주의가 발달한 21세기에도 술의 지도를 그려보면 명확한 문화적 경계들이 눈에 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중해 문명을 계승한 데다 가톨릭 문화의 삼각 중심지인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은 여전히 포도주 세계의 핵심이다. 반면 독일과 체코, 네덜란드와 벨기에, 영국과 아일랜드는 지금도 맥주의 본고장이다. 맥주 문화는 그리스·로마 문명과 대립하면서 성장한 게르만계 민족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나 폴란드, 스칸디나비아 지역은 보드카를 애호하는 곳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보드카는 향이 거의 없는 편이라 알코올 중독자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술 가운데 하나다. 스코틀랜드는 위스키로 특화하여 스카치(Scotch)가 위스키와 동의어가 되었을 정도다. 프랑스는 포도주뿐만 아니라 증류주 부문에서도 코냑(Cognac)과 아르마냐크(Armagnac)로 고급 주류의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인들이 세계에 진출하면서 유럽의 술도 영역을 넓혀갔다. 지중해와 비슷한 온화한 기후의 지역에는 어김없이 포도 재배와 포도주 생산이 증가했다. 남아프리카와 호주, 캘리포니아 등은 대표적인 포도주 생산 지역으로 부상했다. 유럽인들이 열대 지역에 진출하면서 사탕수수를 활용한 럼(Rum)주나 진(Gin)도 개발됐다. 영국과 독일계 이민이 많았던 미국에서는 맥주와 위스키가 유행하는 편이다.

동아시아 또한 전통적 술의 소비가 지배하는 지역이다. 중국은 독한 백주를 주로 마시며, 일본은 쌀로 빚은 ‘사케’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소주라는 술을 개발해 대량 소비하는 특수한 경우다. 애주가가 많은 한국은 술의 개방성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로 보인다. 국산 전통주나 막걸리는 물론, 소주라는 근대 민족 술도 마시고 세계 각지에서 수입한 다양한 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위스키와 보드카, 포도주와 맥주가 넘쳐나는 한국은 술의 국제 경연장이다.

자국에서 생산하는 술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한국도 프랑스를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프랑스는 포도 종류가 아니라 생산 지역별로 포도주를 구분한다. 미국이나 호주 등 신대륙의 포도주가 품종(샤르도네, 시라즈,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등)을 중심으로 생산된다면, 구대륙 유럽은 지역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의 포도주는 보르도나 부르고뉴, 샴페인 등 생산 지역의 기후와 문화를 포함한 특수 상품이다. 프랑스 북부 지역은 포도 재배가 어렵기에 사과나 배로 술을 만든다. 사과로 만든 술은 시드르(cidre), 배로 만든 술은 푸아레(poiré)라 부른다. 시드르는 영어 사이다의 어원이다. 실제 사과주는 알코올 농도가 5도 정도로 약한 편이며 톡 쏘는 가스가 있어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이다. 노르망디나 브르타뉴 지역에서 대량 소비하며 프랑스 빈대떡이라 할 수 있는 크레프와 함께 먹는다.

프랑스는 아페리티프라 불리는 식전 술과 디제스티프라는 식후 술도 개발했다. 식사 전에는 식욕을 돋기 위해 술을 마시고, 식사를 마친 뒤에는 소화를 위해 또 다른 술을 마시는 것이다. 본격적인 식사는 당연히 포도주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다양한 술을 마시는 프랑스 특유의 식사에서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음주 권장한 프랑스 vs 금주령 미국


▎1869년 스코틀랜드 화가 어스킨 니콜의 작품 ‘추위를 피하는 한 모금의 술.’ 스코틀랜드는 위스키의 명소다. / 사진:위키피디아
러시아나 동유럽에 선두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프랑스는 아주 오랜 기간 세계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였다. 1961년 15세 이상 프랑스 사람은 1년에 평균 26ℓ의 알코올을 소비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알코올 농도 5도의 맥주로 환산하면 520ℓ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프랑스는 당시 아기 우유에도 술을 조금 섞어 주는 일이 드물지 않았고, 젖을 뗀 어린이에게 뱃속의 벌레를 없앤다며 독주를 주기도 했다. 1950년대 브르타뉴 지방에서는 80%가 넘는 아이들이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사과주를 마신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다. 교육부가 학교 급식에서 14세 미만 학생들에게 술을 주는 것을 금지한 것은 1956년이다. 그 시대 프랑스 사회가 술에 대해 얼마나 관대했는지는 1959년이 돼서야 음주운전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됐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법 제정 이전에는 사고가 나더라도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운전자의 책임을 경감해주는 요인이었다. 1960년대 최고치를 기록한 프랑스의 술 소비는 이후 계속 감소해 21세기 현재 절반 정도로 줄었다.

중세 시기 가톨릭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음주에 관한 입장은 이런 점에서 흥미롭다. 13세기 그는 술에 취해서는 곤란하지만 몇 가지 경우에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술을 마시면서 그렇게 독한 술인지 몰랐을 경우, 그리고 자신이 술에 그토록 약한지 몰랐을 경우를 예외로 인정해 주었다.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는 술에 대해 가톨릭보다 훨씬 엄격한 입장을 가졌다. 술의 소비는 방탕과 타락을 의미했고 인간을 악의 세계로 이끄는 유혹으로 규정했다. 개신교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청교도는 미국 사회의 뿌리를 형성하면서 미국의 음식문화는 요리에 이어 술의 영역에서도 프랑스와 대립하는 모델로 떠올랐다.

미국은 헌법을 통해 술의 생산과 유통을 금지한 적이 있다. 이슬람은 명확한 금기사항들이 적시된 종교지만 미국처럼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민주 국가가 금주령을 결정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19세기 미국 사회에서는 금주를 권장하는 종교 및 사회 운동이 활발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자 금주 운동은 결정적 계기를 맞았다. 미국에서 맥주 제조업은 주로 독일계 이민자들의 사업이었는데, 독일과 전쟁을 벌이게 되면서 양조산업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또 소득세법이 통과되면서 술에 의존하던 연방의 세입도 대안을 마련하게 됐다. 금주를 시행하기 위한 정서적, 재정적 조건이 무르익은 셈이다.

전쟁이 끝나면서 1919년 제정된 연방 수정헌법 18조는 술의 제조와 유통을 금지했다. 하지만 소비가 불법화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부자들은 미리 술을 잔뜩 사들여 쟁여 놓고 마실 수 있었다. 또 불법 제조와 유통이 범죄조직과 결부되면서 마피아가 부상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 과실주나 교회에서 사용하는 술에 대한 느슨한 규정으로 포도 재배와 포도주 산업이 급격하게 부상하는 결과도 낳았다. 금주령은 결국 해제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아이러니였다. 독일계 맥주 업계를 일시적으로 탄압하면서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의 성장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극단적 금주령은 사라졌으나 미국 사회의 청교도적 전통은 여전히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을 비난하는 시각은 일반적이며 지금도 많은 지역에서 주말에는 술을 구매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타주는 식당에서의 주류 판매도 금지돼 있을 정도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A.A, Alcoholics Anonymous) 운동도 미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산했다.

미국 독립운동의 주요 지도자는 담배 농장주


▎18세기 중국의 아편 흡연을 묘사한 작품. 아편과 담배는 근대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다. / 사진:위키피디아
구대륙에서 술이 문명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면 담배는 15세기 콜럼버스 이후에 지구촌 곳곳에 확산해 나갔다. 물론 아메리카대륙의 인디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담배를 즐겨왔다. 그들에게 담배는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었고, 신의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여러 부족이 모여 동시에 담뱃대에 불을 붙여 피우는 평화의 칼루메트(calumet)는 흡연의 신성함과 화합의 기능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식이다.

유럽 사람들은 처음에는 흡연을 야만인들의 습관으로 치부했지만, 새로운 행위에 호기심을 느끼는 애호가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연기를 들여 마셨다가 내뿜는 행위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일이다. 동물은 절대 그런 해괴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자연적, 혹은 생물학적 요소가 전혀 없는 순수하게 즐기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문화를 추구하는 행위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세계의 새로운 습관을 구세계에 전파하는 데 기여한 1등 공신은 상인들이다.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탐험가부터 19세기 사이비 의사들까지 담배는 인간이 아는 거의 모든 병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선전됐다. 특히 놀라운 점은 18세기 유럽에서 담배 관장(灌腸)이 유행했다는 사실이다. 맥이 빠진 사람에게 원기를 불어넣기 위해 풀무를 이용해 항문에 담배 연기를 삽입하는 충격적인 치료법도 등장했다. 결과적으로 별 효과가 없다 보니 영국인들 표현 중에 허풍이나 거짓말로 사람을 속인다고 할 때 “항문에 연기를 넣는다”(to blow smoke up one’s ass)는 말이 생겨났다.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공급과 수요의 역사적 시너지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담배도 예외가 아니다. 유럽에서 담배에 대한 다양한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에 아메리카의 담배 생산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인들이 정착한 버지니아에서는 담배 재배와 수출이 주요 산업으로 부상했다. 유럽에서 점점 담배 수요가 늘어나면서 아메리카의 담배 농사는 버지니아 지역에서 이웃 메릴랜드, 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등지로 확산했다.

담배 농사가 활황을 맞으면서 큰 농장을 중심으로 대량생산 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흑인 노예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서양 경제 체제에서 담배는 카리브 해의 사탕수수에 이어 아프리카의 노예를 빨아들이는 역할을 담당했다. 북아메리카 영국의 식민지에는 대규모 농장주들이 신대륙의 귀족으로 성장했고, 담배를 수출할 때 영국 국왕에게 바치는 세금에 점점 불만을 품게 됐다. 미국의 독립전쟁이 보스턴에서 차의 수입에 대한 관세 문제로 발발했음은 잘 알려진 바다. 그러나 독립전쟁을 장기적으로 지속하면서 영국과 대립할 수 있었던 신생국가 미국의 경제적 기반은 담배에 있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등, 독립운동의 주요 지도자가 버지니아의 담배 농장주였다는 사실에서 이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독립전쟁에서 1780~1781년의 기간을 ‘담배 전쟁’ 시기라고 부르는 이유도 영국이 신대륙의 독립 세력들이 가진 재정적 기반을 파괴하기 위해 미국의 담배를 불태워버리는 전략을 폈기 때문이다.

피우고, 코로 마시고, 씹는 담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방으로 카멜 담배를 보내자는 광고. / 사진:위키피디아
흡연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우리에게 담배는 연기를 피워서 들이마시는 대상이다. 하지만 담배를 사용하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무척 다양했고,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표식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유럽의 귀족이나 부호들은 담배를 코로 마시기를 즐겼다. 요즘 영화에서 보면 코카인 가루를 코로 흡입하는 방식과 같다. 연기가 없고 직접 몸 안으로 침투하기 때문에 성질 급한 사람들에게 잘 어울렸을 것이다.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이런 담배를 넣어 다니던 보석 박힌 호화로운 담뱃갑들을 감상할 수 있다.

유럽의 귀족은 여유롭게 담뱃갑을 꺼내 자랑하며 작은 은 스푼으로 담뱃가루를 살짝 꺼내 코로 마시는 취미를 즐길 수 있었다. 토끼 발처럼 생긴 도구로 수염이나 입가에 묻은 담뱃가루를 살살 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나라 미국에서는 기호품인 담배 따위에 팔과 손을 희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껌처럼 ‘씹는 담배’가 유행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인들은 19세기 내내 담배를 씹으며 민족 정체성을 드러냈다. 민주적 미국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프랑스의 알렉시스 드 토크빌을 비롯해 많은 유럽 사람들은 미국인들의 담배 씹는 습관을 경멸했다. 짙은 색 침이 계속 흘러서 수염이나 옷을 더럽혔고, 아무 곳에나 침을 뱉는 습관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타구(唾具)라는 침을 뱉는 그릇이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성공적으로 겨냥하지는 못했다.

물론 미국에서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시가(Cigar)라고 불리는 엽권련(葉卷煙)을 피웠다. 시가는 다루기가 담뱃가루보다 간단했고 연기에서 나오는 향기가 고급스러웠지만, 한 번에 피우기에는 부담되는 양이었다. 게다가 수제 제조 과정 때문에 대량생산이 쉽지 않았다. 담배의 대중 시대를 연 것은 지권련(紙卷煙)이다. 지권련은 유럽에서 먼저 유행했고 시가레트(cigarettes)라는 단어 또한 프랑스 말이지만, 대중적 유행은 1880년대 미국에서 대량생산되면서 시작됐다.

미국의 제임스 본색(James Bonsack)이 발명한 지권련 제조 기계는 수십만 개피의 담배를 균질적으로 쏟아냈다. 미국 담배회사들의 지권련 생산량은 1885년 900만개에서 2년 뒤 6000만 개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권련과 함께 일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성냥이었다. 매번 손쉽게 담배에 불을 붙이는 장치인 성냥은 필수품이 됐고 성냥갑은 휴대용 광고 매체로 등장하면서 현대 사회의 광고 시대를 열었다. 미국은 지권련을 통해 세계시장을 연기로 가득 채웠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수많은 미국인이 담배에 중독됐다. 정부는 담배를 총알만큼 중요한 군인들의 보급품으로 생각했고 YMCA나 구세군, 적십자 등의 기관은 후방에서 담배를 모아 전선으로 보내는 일을 담당했다. “연기를 피워 독일 황제를 몰아내자/ 우리 병사들이 담뱃불을 붙일 때/ 독일 병사들은 생명줄이 끊기네”라고 외치면서 흡연을 장려했다. 전쟁 기간에 미국의 1인당 평균 지권련 소비량은 134개에서 310개로 대폭 늘어났다.

전쟁이 끝난 뒤 1920년대가 되자 담배 산업은 새 시대의 주인공인 여성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마치 담배를 피우는 것이 남녀평등의 지름길이라도 되는 듯 부추겼다. 1923년 지권련 흡연자 가운데 여성은 6% 정도에 불과했지만 1929년에는 두 배인 12%로 늘어났다. 같은 시기 지권련은 엽권련과 씹는 담배 등을 제치고 담배 그 자체를 대표하는 지위에 올랐다.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의 담배, 대량 소비의 평등 시대에 알맞은 담배로 지권련이 권좌를 차지한 셈이다.

“합법적 마약, 사탄의 쌍둥이”

자본주의의 본고장 미국 사회의 아이러니는 술과 담배에서 모두 드러난다. 한편에서는 엄청난 소비 시장을 발전시키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금주와 금연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전반기에 술과 담배를 사탄의 쌍둥이라고 여기는 종교적 운동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제1차 대전 이후 헌법 수정을 통한 금주령이 술에 대한 철퇴를 내리쳤다면 1964년 미국 정부의 [흡연과 건강] 보고서는 담배의 악영향에 대한 종합 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담배가 호흡기 질환은 물론 폐암을 비롯해 후두암, 구강암, 식도암, 위궤양 등 다양한 질병을 초래하는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반세기의 흐름은 몇 가지 특징으로 구분된다. 우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범사회적으로 금연을 추구한다. 초기에 필터 담배와 같은 담배 산업의 피해를 줄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움직임을 막을 수는 없었다. 흡연이 가능한 장소는 점차 축소됐고 흡연자는 ‘거리 두기의 대상’으로 격리됐다. 반면 금연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산업이 새로운 비즈니스로 부상했다. 담배 성분 가운데 니코틴이 중독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파악해 금연 과정에서 니코틴만을 공급하는 패치나 껌 등이 유행하게 된 것이다. 연기 없이 니코틴만을 공급하는 전자 담배 또한 금연의 한 종류라며 출시됐다.

선진국에서 금연이 일반화되자 담배 산업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활발한 광고를 하면서 시장을 침투하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인구 대국들은 여전히 거대한 담배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경제 발전의 결과로 담배 소비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 개도국의 담배 수요가 선진국의 감소를 충당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술과 담배가 합법적 마약으로 일단 대중적으로 확산한 뒤 지금은 후퇴하는 단계에 돌입했다면, 일부 불법 마약은 최근 합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기호품으로서의(recreational) 마리화나 재배와 생산, 유통, 소비 등을 상당수 선진국에서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 사회는 또 최근 많은 사람이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Opioid) 스캔들로 생명을 잃었다. 의사들이 처방하는 중독성이 강한 약품의 남용이 대중의 생명을 위협하게 된 사례다. 건강을 위협하는 사탄의 유혹은 시대를 막론하고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셈이다. 끊임없는 혁신이라는 자본주의의 법칙을 확인시켜주면서 말이다.

※ 조홍식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202105호 (2021.04.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