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문화화제] 윤여정·나문희·김혜자… 7080 여우(女優) 전성시대 

삶이 힘겨운 시대 인생 선배들 경험 필요하기에 

원로 배우들 고민은 중·장년 세대의 곧 닥쳐올 미래
기존 흥행공식 안 통하겠지만 활약 더 길어질 수도


▎재미교포 2세 정이삭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되살려 만든 영화 [미나리]에서 조연을 맡아 열연한 윤여정(오른쪽). / 사진:판씨네마
4월 25일(현지시간)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영화 [미나리]가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미국배우조합(SAG)상에 이어 영국 아카데미에서 윤여정이 37번째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추가하면서 [미나리]는 종합 105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있다(4월 19일 현재).

물론 함께 후보에 오른 경쟁작도 만만치 않다. [더 파더]는 작품·남우주연·여우조연상 등 3개 부문에서 맞붙는다. 치매노인을 연기한 앤서니 홉킨스는 [양들의 침묵] 이후 29년 만에 남우주연상에 도전한다. 올해 84세인 그가 수상에 성공하면 1982년 당시 76세로 [황금 연못]의 헨리 폰다가 세운 최고령 수상 기록을 다시 쓰게 된다. 윤여정과 일흔넷 동갑내기인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로서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통산 일곱 차례나 후보에 올랐지만 무관에 그쳤고, 이번에 여덟 번째 도전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 할머니와 미국 할머니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단 할리우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예능에서도 노익장이 돋보인다. 4월 2일 종영한 tvN 한옥 체험 예능 [윤스테이]의 외국인 출연자들은 자칭 ‘올드 레이디’ 윤여정의 매력에 푹 빠졌고, 발레를 소재로 한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는 “송강 때문에 봤다가 박인환에 입덕했다”는 시청자들이 수두룩하다. 2019년 JTBC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받은 김혜자나 2017년 영화 [아이 캔 스피크]로 더서울어워즈에서 첫 여우주연상을 받은 나문희처럼 ‘전성기’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배우들이 늘고 있다. 소위 7080 여배우들은 어떻게 시간이 갈수록 더 넓은 무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을까.

고생도 사서 하는 윤여정, 국민 배우로


▎2010년 제63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영화 [하녀] 출연·제작진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이정재·윤여정· 임상수 감독· 배우 전도연.
윤여정이 배우로서 가지는 가장 큰 강점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립 영화 [미나리]의 러브콜에 응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돈을 벌기는커녕 사비를 써가며 찍어야 하는 영화인데다 당시 건강도 좋지 않아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에서도 만류했지만 그는 “내 모험을 막지 말라”며 미국으로 떠났다. “내가 여기 정착해서 오는 드라마나 영화만 찍다 보면 지금 내 나이에 대한민국에서 어떤 감독도 나를 캐스팅해서 (새로운) 연출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매너리즘”이라는 이유에서다. 자연히 그의 연기는 ‘할머니’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는다. [미나리]에서 손자 데이비드(앨런 김)가 순자를 향해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쿠키도 만들고 나쁜 말도 안 하고 남자 팬티도 안 입는” 보통 할머니와는 거리가 멀다. 요리보다는 화투를 즐기고 다정한 인사보다는 욕설이 먼저 튀어나오고 체면과 격식일랑은 미나리꽝에 던져둔 모습이지만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마음의 빗장을 허문다. 모두가 심장이 아프다는 이유로 데이비드를 특별 취급하지만 할머니만은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기 때문.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만큼 “생생한 디테일이 마음에 들었다”는 그는 역시 가수 조영남과 결혼 후 미국 이민 생활 동안 보고 들은 ‘입으로 밤을 까주는’ 에피소드 등을 더해 보편성을 획득했다.

윤여정은 tvN [꽃보다 누나](2013~14)를 시작으로 예능 나들이가 잦아지면서 이미지 변신에도 성공했다. 나영석 PD가 예능인으로서 윤여정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것. [바람난 가족](2003)의 임상수 감독과 [죽여주는 여자] 등을 함께한 이재용 감독이 그에게서 욕망하는 여성을 이끌어낸 것과 반대로 나 PD는 ‘국민 엄마’와는 거리가 먼 그에게 앞치마를 입혀 [윤식당](2017)으로 밀어 넣었다. 해외에서 한식당을 만들고 전남 고택에서 한옥 스테이를 하는 등 낯선 환경에 처한 그가 어떻게 살아남는지 관찰 예능을 통해 공개한 것이다.

황혼 청춘 전면에 내세운 '디어 마이 프렌즈'


▎영화 [오! 문희]에서 치매를 앓는 어머니 ‘문희’ 역을 맡은 배우 나문희. / 사진:CGV아트하우스
이혼 후 “쌀독에 쌀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다”며 생계형 배우로서 밥벌이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노동에 임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줄 몰랐다”는 나 PD의 말처럼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윤식당]에서 손에 익지 않은 요리 레시피를 외우고 또 외우던 그는 [윤스테이]에서 손님 이름을 외우기 위해 애썼다. 막상 손님 앞에 서면 언제 긴장했냐는 듯 자연스레 영어로 농담을 건네고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면서 ‘오프라 윤프리’ ‘윤선생 영어교실’ 등 새롭게 얻게 된 별명도 여럿이다. 어느덧 익숙해진 루틴을 깨트리고자 회를 거듭할수록 더 어려운 임무가 부여됐지만 흔들리기는커녕 위기에 더욱 강한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과거 그를 향했던 비난의 화살은 더 큰 매력 포인트가 돼 돌아왔다. “인사를 안 한다” “인격 수양이 덜 돼 있다”며 TBC 전속 계약에 실패한 야만스러운 시절이 지나자,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 윤여정을 롱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혼녀는 TV에 나와선 안 된다”며 손가락질 받던 시절 아이들을 위해 단역부터 다시 시작하며 버틴 인고의 시간과 “이제 60이 넘었으니 좋아하는 감독, 작가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겠다”는 확고한 취향과 선구안이 한때 비호감 배우 1위였던 그를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만들어준 셈이다.

나영석 PD가 tvN 이적 후 처음 선보인 [꽃보다 할배](2013)와 [꽃보다 누나] 시리즈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황혼에 접어든 배우들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이 짐꾼 이서진과 함께 배낭여행을 떠나는 시니어 예능이 통하고, 윤여정·김자옥·김희애·이미연이 이승기와 세대 차이 없이 어우러질 수 있다면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도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순재·윤소정·송재호·김수미 주연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가 164만 관객을 동원한 이후 박근형·윤여정 주연의 황혼 로맨스를 다룬 [장수상회](2015) 등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영화도 하나둘 생겨났다.

“77세에 첫 여우주연상” 대기만성 아이콘 나문희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배우 김혜자는 갑자기 노인이 돼버린 25세 혜자(한지민)의 마음을 코믹하고도 절절하게 그려낸다. / 사진:JTBC
노희경 작가의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2016)는 ‘황혼 청춘’을 보다 전면에 내세웠다. 김혜자·고두심·나문희·윤여정·박원숙·김영옥 등을 주연, 고현정·조인성을 조연으로 배치하면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윤여정은 당시 인터뷰에서 “각자 다른 드라마에서 누군가의 엄마 역을 하느라 만나지 못했는데 한 작품에서 보니까 새삼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세월을 다 같이 살았나 싶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야말로 MBC [전원일기](1980~2002)를 방불케 하는 라인업으로 한데 모인 이들은 ‘시니어 어벤져스’다운 공력을 발휘했다. 뿔뿔이 흩어져 있을 땐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한 발짝 물러서야 했던 ‘부모’로 통칭됐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저마다 개성이 살아 숨 쉬는 ‘나’로 남아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도 윤여정은 가장 전형성을 비껴난 오충남 역을 맡았다. 고집불통 남편 덕에 속앓이깨나 한 문정아(나문희), 남편을 떠나 보내고 뒤늦게 홀로서기에 나선 조희자(김혜자), 하나 있는 딸(고현정)과 사사건건 다투는 장난희(고두심)와 달리 자수성가해 싱글 라이프를 만끽하는 신여성이다.


▎SBS 예능 프로그램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 역할을 맡았던 김수미. / 사진:SBS플러스
실상은 조카들이며 친척들에게 ATM 취급을 받으며 돈을 뜯기고 타인과 마음을 맞추는 법을 몰라 외로웠을지언정 눈앞에 펼쳐진 현재를 즐기는 삶. 비단 오충남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에서 본 적 없는 캐릭터들의 향연에 시청자들은 공감하고 또 탄복했다. 실제 삶에서 우러나온 그들의 연기엔 젊은 청춘남녀의 멜로드라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깊이와 농도가 배어 있었다.

[디어 마이 프렌즈]를 기점으로 이들의 필모그래피(작품 목록)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윤여정은 영화 [계춘할망](2016) [죽여주는 여자] 등으로 잇따라 타이틀 롤을 맡았고, 나문희는 첫 영화 주연작 [아이 캔 스피크](2017)로 첫 여우주연상까지 꿰찼다. 1970년대 스크린을 평정한 이후 파격 조연 행보를 이어오던 윤여정에게도, 1961년 MBC 성우극회 1기로 데뷔해 60년 가까이 대중 앞에 선 나문희에게도 낯선 광경이었다. 할머니도 얼마든지 주인공이 돼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특히 “남자 배우들보다 체격이 크다”는 이유로 배척되고 “배우로서 성공하기엔 부족한 얼굴”이라 자책했던 나문희에게는 ‘상전벽해’에 가까웠다.

나문희는 대기만성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문영남 작가의 KBS 1TV 일일연속극 <바람은 불어도>(1995~1996)에서 이북 사투리를 쓰는 변덕네 역으로 연기대상을 받기 전까지 30여 년을 무명 배우로 살았다. 이후 MBC 4부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1996)로 노희경 사단에 합류하고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5~2006)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이는 등 활동 폭을 넓혀 나갔다.

윤여정과 달리 그는 평범한 ‘엄마’ 역을 마다치 않았다. 2007년 [씨네21] 인터뷰에서 “나는 어머니가 참 좋다. 평소에도 그쪽으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며 “그냥 동네에 사는 좋은 엄마, 좋은 할머니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희경 작가에게 버스나 전철을 타고 재래시장과 목욕탕에 가볼 것을 당부했던 것처럼 그의 연기에선 자연스러운 ‘짠내’가 난다.

50대에 시작한 전성기는 70대에 꽃을 피웠다. 영화 [수상한 그녀](2014)로 866만 관객을 동원하더니 중국·일본·태국·베트남 등 9개국에서 리메이크됐다. 2017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아이 캔 스피크]로 청룡상·대종상·백상을 휩쓴 그는 “아직 카메라 앞에 서면 욕심이 나서 염치 불고하고 연기했다. 나이 77세에도 여우주연상을 탄 제가 있으니 후배들에게 좋은 희망이 될 것 같다. 여러분은 80세에도 대상을 타시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준비된 자에게는 반드시 때가 오기 마련’이라는 인생의 진리를 몸소 터득한 자만이 건넬 수 있는 덕담이다. 올해로 여든이 된 그는 아직도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발성과 감성을 가다듬는다.

‘국민 엄마’ 김혜자의 변신, ‘할미넴’ 김영옥의 일탈


▎KBS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인 [아침마당] 녹화를 마친 뒤 팬들에게 인사하는 배우 김영옥. / 사진:연합뉴스
나문희와 1941년생 동갑내기인 김혜자는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눈이 부시게]로 인생작을 새로 썼다. [디어 마이 프렌즈] 이후 치매 관련 작품은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JTBC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2011~2012)를 함께했던 김석윤 PD가 처음부터 김혜자를 염두에 두고 만든 드라마라 마음을 돌렸다.

갑자기 70대 노인이 돼버린 25세 아나운서 지망생 연기부터 사실은 모든 게 치매로 인한 환각이었다는 반전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김혜자는 보란듯이 해냈다. “잘 걷고 잘 숨 쉬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라며 갑자기 닥친 노인의 삶을 힘겹게 받아들이다가도 오빠 영수(손호준)나 준하(남주혁)와 함께 있을 때면 영락없는 25세 혜자(한지민)로 돌아가 다투고 설레며 널뛰는 감정을 선보였다.

1961년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선발된 그는 7년 뒤에야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스스로 “연기에 소질이 없다”며 결혼과 동시에 연기를 그만뒀지만 아이를 낳은 후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갈증에 연극판으로 돌아온 것.

1969년 MBC가 개국하며 스카우트된 그는 [전원일기]로 명실상부한 ‘국민 엄마’ 자리에 올랐다. MBC 드라마 [행복을 팝니다](1978~1979)부터 [모래성](1988)과 [겨울 안개](1989), KBS2 주말극 [엄마가 뿔났다](2008), JTBC [눈이 부시게]에 이르기까지 4차례에 걸쳐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니, 대한민국에서 엄마로서 그의 모습을 보지 않고 자란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27년간 CJ 제일제당 다시다의 광고 모델로 “그래 이 맛이야”를 외친 데 이어 양도 많고 맛도 좋아 ‘혜자스럽다’는 신조어를 얻은 GS25 편의점 도시락까지 엄마로서 그의 이미지는 문화 전반에서 차용됐다.

올해 84세인 김영옥은 ‘최고령 여배우’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활발히 활동 중이다. 1959년 춘천방송국 아나운서로 시작해 60년 CBS 성우, 61년 MBC 성우를 거쳐 배우로 안착한 그는 현재 방영 중인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를 비롯해 김은희 작가의 신작 [지리산]에도 출연 예정이다. MBC [커피 프린스 1호점](2007)부터 SBS [더 킹: 영원의 군주](2020)에 이르기까지 트렌디 드라마에도 종종 출연해 젊은 층에게도 친숙하다. 김영옥은 JTBC [힙합의 민족](2016)에서 ‘할미넴’으로 래퍼에 도전하고 TV조선 [미스터 트롯](2020) 우승자 임영웅에 대한 팬심을 숨기지 않는 등 누구보다 ‘젊게 사는’ 할머니다.

박원숙·김수미 이름 내건 예능으로 제2의 전성기


▎KBS의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 출연하는 박원숙·김영란·김청·혜은이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 사진:KBS
예능으로 눈을 돌려 인생 2막을 시작한 케이스도 있다. [디어마이 프렌즈]에서 막내뻘이었던 박원숙은 2017년 KBS 1TV [같이 삽시다]로 맏언니가 됐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슬픔을 딛고 남해 하우스에 정착한 싱글 라이프 선배로서 김영란·박준금·김혜정·문숙·혜은이·김청 등 후배 여배우들과 함께 모여 사는 [디어마이 프렌즈]의 실사판을 구축한 것.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지난해 KBS 2TV로 옮겨 시즌 2를 방영한 데 이어 올 2월 시즌 3을 론칭하는 등 장수 예능으로 자리 잡았다.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로 바뀐 프로그램명처럼 남다른 존재감도 인상적이다. 1970년 MBC 공채 2기로 데뷔 이후 ‘못된 시어머니’ 전문으로 활약해온 그는 각기 다른 사연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된 후배들을 따뜻하게 품으며 반전 매력을 선보인다.

1949년생으로 박원숙과 동갑이자 MBC 공채 3기 후배인 김수미도 요리 예능으로 새로운 대표작을 얻었다. [전원일기]의 일용 엄니와 영화 [마파도](2005)의 욕쟁이 할머니에 이어 tvN [수미네 반찬](2018~2021)으로 선생님이 됐다. 요리연구가이자 사업가인 백종원이 [집밥 백선생] 시즌 1~3(2015~2017)으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를 선보였다면, 김수미는 어머니의 손맛을 무기로 그리운 반찬을 살려냈다.

김수미는 SBS 플러스 [밥은 먹고 다니냐?](2019~2020)에서는 국밥집 회장님으로 변신해 연예인들의 고민 상담을 하더니 지난 2월에는 KBS 2TV [수미산장]으로 규모를 키웠다. 뜨끈한 밥심에 힘입어 “안 해도 될 이야기까지 하면서 마음을 털어놓게” 만드는 힘이 있다. 프로그램에서 만난 서효림을 며느리로 맞고 손녀를 위해 [김수미의 이유식의 품격]이라는 책까지 발간했으니 그의 손맛을 보고 자란 이들도 여럿일 터다.

향후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할 것이다. 1960~70년대 방송사 공채로 데뷔한 이들의 전성기가 더욱 길어질 수도 있고, 유튜브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막례 할머니나 밀라논나처럼 새로운 플랫폼에 맞는 스타가 탄생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흥행 공식을 반복하는 콘텐트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화녀]부터 윤여정을 연구한 리 아이작 정 감독이 캐릭터 해석을 전적으로 배우에게 맡긴 [미나리]나 극 중 이름도 김혜자로 붙일 만큼 배우를 출발점으로 삼은 [눈이 부시게]처럼 충분한 고민과 새로운 접근이 있어야 한단 얘기다. 이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고민은 현재 황혼 세대가 당면한 숙제이자 중·장년 세대에 곧 닥칠 미래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다 많은 간접 경험이 필요하고 다행히도 여전히 건재한 ‘인생 선배’들이 있다.

- 민경원 중앙일보 기자 storymin@joongang.co.kr

/images/sph164x220.jpg
202105호 (2021.04.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