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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 산책] 김민환 장편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품격 높은 정신과 꿈은 왜 늘 패배하는가 

남도의 거물 운동가 봉강 정해룡의 행적을 소설로 재구성
한 인간의 존재론적 삶을 정신사적 서사문학 성취로 고양


▎김민환은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사회학자로서 한국언론학회 회장을 지냈다. 장편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에서 남도의 거물 운동가 봉강 정해룡의 행적을 소설로 재구성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김민환의 장편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를 읽기 시작했을 때 박경리의 대하소설[토지]가 끝나는 해방부터 시작된다는 데서 우리가 보기 힘든 해방 공간의 정황을 돌이켜볼 수 있겠다고 반가워했고, 형제간의 이념이 다른 모습에서 염상섭의 [삼대]에서 보인 세대 간 갈등 양상이 빚을 이념적 대립의 결과들일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 읽기가 진중하게 계속되면서 앞서 연상한 우리의 대표적인 장편문학과 다른 길을 ‘큰 새’가 날고 있음을 나는 깨달아갔다. 무엇보다 내가 예상한 소설적 허구가 아닌 실제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검색한 인터넷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봉강 정해룡의 [잠들지 않는 남도의 정신적 뿌리]([독립운동가 열전 ‘삶과 넋’] 49)를 읽을 수 있었다.

해방된 나라의 독립과 번영, 화해와 통합 꿈꾸다


▎보성군 회천면 봉강리 정해룡 선생 생가. / 사진:보성군청
그는 보성의 명문가 장손으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통신과정을 이수했고, 3000석 재산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면서 구휼과, 교육·문화의 민족 계몽 사업을 해온 지방의 대단한 유지였다. 언론학 교수로 지내고 정년 퇴직한 후 비로소 소년 시절부터 꿈꾼 작가로 데뷔한 김민환(76)은 이 거물 운동가의 행적을 조용히 뒤따르며 단아하고 진지한 그의 행적을 소설로 재구성하고 있다.


▎김민환의 장편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표지. / 사진:문예중앙
작가가 면밀하게 조사하면서 문학적 인간형으로 재현한 주인공은 양반의 체통과 품위를 새롭게 높이면서 주변 인물들에 두루 관대하고,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면서 심각해진 갖가지 착잡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싸안아 포용 정신으로 개혁을 실천한다. 그는 빈곤과 무지에 몰린 지역민들이 새 나라 국민으로 성가(成家)하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격려하면서, 단독 정부 구성을 추구하는 이승만·김일성과는 달리 남북 화해와 민족 통일을 추구하는 여운형을 지지하며 해방된 우리 사회의 독립과 번영, 화해와 통합을 꿈꾼다. 그의 가문이 교훈으로 지켜온 ‘삼의(三宜: 나를 감추기, 선영 모시기, 자손 교육)’를 삶의 도리로 삼고 노비를 해방하고 토지를 소작농에게 분배하며 지역의 갖가지 혼란을 수습하고 요구와 주장을 타협하여 온건한 개혁을 위해 헌신한다.

그의 품격과 바람과는 달리, 그럼에도 그의 생애는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동경제대 출신 동생은 월북하고, 그들은 여순 반란 사태로 고역을 겪어야 했고, 아내는 조현병을 앓고, 제3의 노선을 표방한 그는 총선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4·19에 이어 5·16으로 낙망하고, 아우 때문에 고문을 당하고, 그의 정치 참여는 실패하고, 재혼한 아내는 서울로 별가하고, 아들과 조카들은 연좌제로 취업을 하지 못하며, 그의 재산은 한없이 졸아든다. 나라도 남과 북으로 갈리고 내란과 전쟁으로 더는 회복하기 힘든 파탄으로 몰려가고 만다.

작가가 이 같은 몰락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가면서 끊임없이 묻는 것은 덕과 인으로 사람들에 후하고 관용과 화합으로 세상을 품으며 나라와 민족을 하나로 모으려는 품격 높은 정신과 꿈이 왜 늘 패배하고 현실은 더 참담해야 하는가라는 역설에 대해서다. 여기에서 그가 이를 수 있는 것은 “남북을 분단한 시대의 실패”였고 “미국과 소련이 분단을 택한 그 순간에 패배가 예비되었다”는 결론에서 예감되는 남북한의 전쟁과 분단의 고착화였다.

남도의 높은 정신과 뜻깊은 의지인 정해룡이 피할 수 없이 당해야 했던 실패는 그러므로 그 개인의 탓일 수 없이 그의 올바른 예측이 피할 수 없이 만나 겪어야 했던 나라와 시대의 실패였다는 것이 당초 사회과학자였던 작가의 진단이다. 이 작품이 제작된 오늘날의 우리가 분단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고 풍요하다고 여겨도 좋을 시대를 누리고 있는 행운은 지난 세대의 우리 선배들이 지불한 고통과 고난의 대가 덕분일지도 모른다. “순리를 따른 것이 거스른 것이 되기도 하고, 거스른 것이 순리가 되기도 한다”고 작가가 깨닫는 역설의 뒷면목을 우리가 여기서 다시 성찰해야 할 이유다.

개인사적 이력으로 좁아질 소재를 문학작품으로 발전시켜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김민환이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작품에서 ‘전기’로 졸아들 한 인간의 존재론적 삶을 정신사적 서사문학의 한 성취로 고양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작가는 매우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는 주제를, 그리고 개인사적 이력으로 좁아질 소재를, 그래서 논픽션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을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론적 운명으로 확대하고 기록으로서의 문자를 문학작품으로 비약 발전시키는 데 매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가령 ‘이녁’이란 지금은 잊힌 어휘로 사랑을 고백하는 은근한 수법, 해룡의 모친 윤씨가 사용하는 우리 고급한 전통적 화법은 우리 언어미의 부활을 촉구하는 예술적 품위의 표현이다. 작품 속 견화가 펼치는 남도 창의 어기찬 소리와 돌쇠를 두들겨주는 택견 기술은 우리 전통 문화의 면모를 보여주며, 특히 대가의 인척 관계와 나이를 적는 작가의 버릇은 우리 전래의 가족 구조 면모를 알려주는 심층 심리구조를 드러낸다.

사소하게 보이는 이 수법들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국적 시니피앙과는 또 다른 ‘낯설게 하기’로 우리의 논픽션적 시선을 문학적 전망의 형식으로 재현하면서 ‘전기’로 졸아들 한 인간의 존재론적 삶을 정신사적 서사문학의 한 성취로 고양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57세 이른 나이로 자신의 꿈을 사려야 했던 역사 속 한 인물을 보성이란 남도의 지역적 한계를 넘어 격동과 혼란을 치르며 한 시대를 겪어온 한반도의 민족사로 확대하고, 정신과 꿈의 아름다운 인간적 추구에 패배를 강요하며, 그의 삶과 꿈에 고난을 강제하는 세계의 고통과 보편의 인간 운명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포용하는 이상주의자의 끊임없는 추구는 그렇게 이 세상에 용인될 수 없는 소망인가. 이 작품은 이 세계의 그 시대적 억압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 글 김병익 (문학평론가, 문학과 지성사 상임고문) / 사진 박종근 비주얼에디터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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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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