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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취재] 오디오 시장의 화려한 부활 

걷고, 먹고, 자는 순간까지 함께하는 ‘듣는’ 책의 매력 

MZ세대부터 기성세대까지 선호, 소설·어학·잡지·웹툰 등 장르 불문
신직업 내레이터 관심 고조… 기초 튼튼해야 시장도 성장할 수 있어


▎작가 레일라씨가 최근 발간한 [어젯밤, 파리에서]의 오디오북을 녹음하고 있다. 그는 오디오북을 “할머니가 손주에게 읽어주는 동화책과 같다”고 말했다. / 사진:박남화
"Video killed the radio star”(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어요)

“In my mind and in my car”(내 마음속에서도, 내 차 안에서도)

“We can’t rewind we’ve gone too far”(너무 멀리 와버려 되돌릴 수 없죠)

영국 밴드 ‘버글스(The Buggles)’가 1979년에 발표한 ‘Video Killed The Radio Star’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영상매체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의 삶을 눈으로 보는 것에 익숙한 라이프스타일(life style)로 바꿔버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6만 명을 대상으로 2020 인터넷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년 대비 유튜브는 11%p, 넷플릭스는 9.6%p 증가했다. 또 전혀 보지 않는다고 대답한 비율은 2019년(18.8%)보다 2020년(7.3%)에 매우 감소했다. 현대인에게 영상이란 바쁘고 지친 삶 속에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소비재다.

김산호(18)군도 한때는 종일 유튜브만 보던 영상 중독자였다. 밥·공부·잠 외의 시간엔 알고리즘 추천 영상을 보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푼라디오(실시간 오디오 플랫폼)’를 접하게 되면서 듣는 행위에 빠졌다. 박지윤(31·여)씨는 아예 출퇴근길 생활이 달라졌다. 예전엔 책 한 권 읽기도 버거웠지만, 넷플릭스 대신 오디오북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번 달엔 벌써 4권째다. 그들은 눈으로 보는 영상보다 귀로 듣는 오디오가 덜 피곤할 뿐 아니라 다른 뭔가를 병행할 수 있으며 안정감도 느낀다고 말한다.

오디오 산업이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부분 중 하나는 동시 수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령 설거지를 하면서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보기는 힘들다. 눈을 화면에서 떼는 순간 결정적 장면을 놓치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디오는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에 알맞은 콘텐트인 셈이다.

편안함을 준다는 것도 오디오 콘텐트의 장점이다. 유튜브 인기 콘텐트인 ASMR(자율 감각 쾌감 반응)이 대표적이다. ASMR의 본뜻은 정신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소리다. 주로 불면증 치료, 공부 집중, 태교 명상과 같은 제목이 달린다. 댓글에는 영상 덕분에 휴식을 얻고 안정을 취했다는 내용이 많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와 허만섭 교양대학 부교수가 발표한 ‘코로나19 확산 후 소셜미디어(SNS) 이용과 무력감·외로움 체감에 관한 연구’에 참여한 대학생 박 모(23)씨는 “심한 날은 하루에 유튜브를 10시간 본 적도 있다. 눈이 나빠지는 느낌과 함께 두통·피로가 몰려온다. 이대로 가다간 우울증에 걸려버릴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와 달리 오디오는 음성만으로 전달한다. 다른 콘텐트에 비해 오랜 시간 집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용하기가 더 편하다고 느낀다. 이 같은 트렌드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점차 확산하고 있다. 라디오의 완벽한 대체재로 군림할 줄 알았던 영상의 ‘허점’을 파고들면서 오디오 콘텐트는 다시금 주류 산업으로 도약하려 한다. 소셜 미디어 업계 분석가인 제러마이아 오양(Jeremiah Owyang)은 오디오를 ‘골디락스(Goldilocks,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최적의 상태)’라고 표현하며 “문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비디오는 지나치다. 그래서 오디오가 딱 맞다”고 말했다.

상상력·공감력 증대, 언어학습도 가능


▎오디오북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는 플랫폼 3강.(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윌라, 스토리텔, 오디오클립.
오디오 시장의 대표적 콘텐트는 ‘클럽하우스’다. 네티즌들에게는 머스크 형(일론 머스크)과 용진이 형(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이용해서 주목받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각인돼 있다. 기존의 SNS와 달리 오디오로 소통하는 방식인데 지금까지 다운로드 수 1000만 회 이상, 이용자 수는 6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내 콘텐트로는 팟캐스트 플랫폼인 ‘팟빵’과 ‘스푼라디오’가 있다. 각각 30~40대와 10~20대를 주력 고객으로 고객별 맞춤형 콘텐트를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대면 서비스가 불가해지자 전시 분야도 비대면이 가능한 오디오 도슨트(docent,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방면으로 저변을 넓혀가는 오디오 콘텐트들 가운데 오디오북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2018년부터 30~40대를 중심으로 대중화를 이뤘고 이후 정부 지원 사업, 전문 플랫폼 등장, 기존 업계 확장·진출로 젊은 층까지 확보하며 급성장하고 있다.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는 2019년 33만 명에서 2020년 106만 명으로 가입자가 늘었고, 2월 벤처캐피털 UTC 인베스트먼트로부터 250억원 규모의 시리즈C 단독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보는’ 독서가 아닌 ‘듣는’ 독서의 매력은 무엇일까. 사용자들은 공통적으로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을 꼽는다. 음성 인식 기반의 무선 이어폰, 인공지능 스피커,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 등의 기술 혁신은 시간적·물리적으로 제약받던 기존 독서의 단점을 상쇄시켰다.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독서실태조사를 하면서 독서량을 조사한 적이 있다. 자신의 독서량이 충분한지에 대한 물음에 응답자의 58.1%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읽지 않는 이유로는 책 외의 다른 콘텐트 이용(29.1%), 시간 부족(27.7%) 등을 꼽았다. 하지만 오디오북을 이용하면 이런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집안일·운동·운전을 하면서도 이용하고, 출퇴근 때도 이동하면서 소비할 수 있다.

구매·보관도 간편하다. 앞서 언급한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휴대전화로 결제만 하면 따로 책장도 필요 없이 무한 독서를 할 수 있다.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사용하게 되면서 이용자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일례로 시각장애인의 경우, 점자로 된 도서에만 국한됐지만 오디오북은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됐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나 노년층도 작은 글자로 봐야 하는 불편함이 사라져 만족도가 크다. 최정훈(58)씨는 “작은 글씨 때문에 읽기가 힘들었는데 귀로 들으니 그런 점이 해결돼서 좋다”고 답했다. 윌라 고객의 연령대별 분포도를 살펴보면 50대 이상 회원은 가입자의 28%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출판진흥원)의 이상현 미래산업팀장은 “오디오북은 독서력 강화, 목소리를 통한 상상력·공감력 증대,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지 읽어주는 오디오북도 인기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KPIPA디지털북센터 교육과정 현장. 음향편집 기술을 배우기 위해 수업을 듣고(왼쪽) 녹음실에서 현장 체험도 한다. / 사진:박남화
사용자가 늘어난 만큼 오디오북 콘텐트도 도서에만 국한하지 않고 매거진·웹소설 등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밀리의 서재’는 2019년 1월 밀리 매거진 서비스를 시작으로 총 61개 잡지를 선보이고 있다. 미술·독서·스포츠와 같은 분야부터 IT·뉴스·경제 분야 그리고 대학생을 위한 취업 매거진까지 12가지 다양한 카테고리별 기사를 접할 수 있다. ‘윌라’의 경우 [빅이슈코리아], [이코노미스트] 등 8곳과 제휴를 맺었다. 2021년 1월 호로 소개된 [과학동아]는 6만4000명이 재생할 만큼 인기 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의 채널은 2019년 대비 3배 이상 늘어난 약 1500개가 개설됐으며 자사가 보유한 웹툰·웹소설을 오디오 드라마로 제작했다. 웹소설 [재혼황후]의 경우 실시간 방송 접속 참여자 수는 1800여 명, 댓글 약 4200개, 좋아요 28만 개가 달렸다.

오디오북의 성장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에서 지난해 하반기 제5차 정부육성지원 신(新)직업 14개를 발표했는데 문화예술 분야의 유망 직업으로 오디오북 내레이터가 선정됐다. 수요 시장이 커지자 오디오북 제작에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졌다. 유튜버 중에서도 책을 낭독하는 ‘북튜버’라는 단어가 따로 생길 정도로 많은 채널이 운영 중이다. [안나의 북튜브]를 운영하는 여성 조안나(필명)씨는 자신을 50대의 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고등학생 자녀에게 고전문학, 소설을 녹음해서 들려주다가 북튜버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밀리의 서재는 ‘내가 만든 오디오북’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가 직접 오디오북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내레이터는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관심 있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출판진흥원은 작년부터 디지털 출판·오디오북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열어 디지털북에 대한 이해부터 제작 기술, 낭독 실습까지 총 16개 과정을 가르친다. 더불어 KPIPA디지털북센터를 개소하여 오디오북 제작 이용자에 한해 녹음·편집실을 무료로 제공한다.

독서 인구 증가에 기여, 시장 전망 밝아


▎‘내가 만든 오디오북’ 서비스를 통해 누구나 오디오북 내레이터가 될 수 있다. / 사진:밀리의 서재 캡처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Grand View Research)의 2020년 산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267억 달러(약 29조원)로 추산된다. 퓨리서치센터가 조사한 미국 성인의 오디오북 이용률은 20%, 5가구 중 1가구가 오디오북을 듣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반해 한국 오디오북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시장 규모는 200억~300억원대에 그친다. 성인의 3.5%, 초·중·고학생은 18.7%가 오디오북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국민독서실태조사, 2019). 해외의 오디오북 시장과 비교하면 국내 시장은 갓 싹을 틔운 수준이어서 성장 전망이 밝다.

오디오북을 직접 제작하고 있는 작가 레일라(필명)씨는 “작가가 직접 읽어주길 원하는 수요층이 늘어나고 있다”며 “나 역시 독자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독자와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오디오북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화진 윌라 오디오북팀 부장은 “종이책·전자책의 매출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매출원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상태다. 윌라에서도 1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출판사가 나오면서 제휴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 종이책보다 제작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아직 수익구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은 오디오북 성장 속도를 더디게 하는 요소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오디오북 평균 제작 비용은 700만원, 종이책 비용까지 합하면 1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최저 가격(월 구독 서비스 9900원)으로 계산할 때, 열 권을 읽어도 한 권 가격이 1000원도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착한 가격’이 작가의 노동 가치마저 착하게 매겨지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현재처럼 구독형으로 이뤄진 수익구조의 투명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통 판매사가 제공하는 다운로드 횟수, 재생 시간 등으로 정산된 수익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한 작가는 상위권에 본인의 책이 랭크돼 있는데도 터무니없는 금액을 받았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출판진흥원 이상현 팀장은 “제작 비용은 AI 기술이나 정부의 지원 사업 등으로 낮춰갈 수 있지만 수익구조 보완을 위해서는 B2B 시장의 확대 지원, 오디오북 인지도 상승을 위한 홍보 등과 함께 출판 유통계의 노력이 절실하다”며 “아직 보완 요소가 많긴 하지만 오디오북의 등장으로 독서 인구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시장 전망은 밝다”고 말했다.

- 박남화 월간중앙 인턴기자 p.alice9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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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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