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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옛 사람들은 公과 私를 어떻게 구별했을까 

한자에 숨은 동양 문화·철학 코드 

핵심 한자 자형에 담긴 '오래된 지혜' 탐구
어원 밝힌 [갑골문 고급 자전] 번역 출간도


한자의 세계가 흥미롭다. 예컨대 공(公)과 사(私) 같은 다소 추상적인 의미를 가진 글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을까? 개인의 삶이든 국가의 운영이든 대개 공과 사가 분명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가 적지 않은데, 문자의 연원을 통해 옛사람들의 지혜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경성대 중문과 하영삼 교수에 따르면, 처음에는 둥근 원을 그려 인간의 사사로움을 나타냈다고 한다. 원을 그리기 전에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었는데, 원을 그려 경계가 나누어지면서 내외의 구분, 나와 남의 차별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둥근 원이 글자로 발전한 최초의 모습이 ‘厶’였다. 여기에 곡물을 뜻하는 ‘禾’가 더해지면서 오늘날 우리가 쓰는 ‘私’가 되었다고 한다.

사사로움의 반대말인 공정함을 뜻하는 ‘公’도 ‘厶’에서 파생되었다. ‘公’은 사사로움의 ‘厶’ 위에 ‘여덟 팔(八)’을 덮어씌운 모양이다. 사사로움을 나누어 없애는 의미가 ‘公’에 담겼다고 한다. 이런 문자의 역사는 2000년 이상이나 오래되었는데 요즘 세태를 보면 우리는 여전히 공과 사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공과 사를 포함해 모두 24개의 한자를 통해 한자 문명권의 오래된 문화적 연원을 추적하고 있다. 공과 사처럼 철학적 의미를 담은 한자의 유래를 고찰하면서 동시에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진실이나 진리라는 표현에 사용되는 ‘참 진(眞)’자는 ‘동양식 진리의 출발’이란 제목 아래 설명되는데, 가장 오래된 문자로 알려진 갑골문의 ‘정(貞)’자와의 관계를 통해 그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또 문화나 문명이란 표현에 사용되는 ‘글 문(文)’의 경우, ‘음성중심주의와 문자중심주의’라는 제목 아래 설명하면서 서양과 동양문명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이 밖에 ‘화(和)’ ‘예(禮)’ ‘유(儒)’ ‘중(中)’ ‘미(美)’ ‘선(善)’ ‘도(道)’ ‘학(學)’ ‘성(聖)’ ‘정(情)’ ‘치(恥)’ 등 한자 문명권의 핵심 단어들이 잇따라 소개된다.

저자는 “고도의 철학적인 개념을 하나의 구체적 이미지로 그려 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닌데, 3000년 전의 한자는 이를 상상 이상으로 멋지게 창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한자의 자형에 담긴 동양 문명의 오래된 배경과 특징을 일찍부터 탐구해왔다. 1980년대 후반 대만 정치대학에 유학해 석·박사 학위를 받으며 키운 관심은 2008년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을 맡으며 구체화됐다. 지난해부터 각종 책을 내고 있는데 이 책은 이 연구소의 ‘한자 총서’ 첫 번째 책으로 기획됐다. 당초 월간중앙에 2년간 연재한 내용을 수정·보완해 2020년 말 책으로 출간했다. 저자의 장기 과제인 ‘한자 문화학’을 정립해 나가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대만의 저명한 갑골문 학자 허진웅(許進雄) 전 대만대 교수의 저작을 연구소의 역점 사업으로 번역해 내고 있다. 갑골문을 통해 주요 한자의 연원을 밝힌 [유래를 품은 한자](전 7권)와 [갑골문 고급 자전] 등을 하영삼·김화영 두 교수가 번역 출간했다. [갑골문 고급 자전]은 허진웅 교수가 평생 천착해온 갑골문과 한자 어원 및 한자 문화 해석을 집대성한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한자를 일종의 문화적 부호로 보면서 고고학·인류학 등과 연결해 해석하는 허진웅 교수의 작업은 하영삼 소장의 선구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영국의 저명한 동양학자 제임스 레게가 영역한 사서삼경 등을 모두 한자 총서의 하나로 번역해낼 예정이라고 한다. 1차로 [제임스 레게의 맹자 역주](전 3권)가 최근 번역돼 나왔다.

- 배영대 학술전문기자 balance@joongang.co.kr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월간중앙과 중앙SUNDAY에 모두 공급합니다.

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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