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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방] 홍사건 대전한빛고 이사장의 소명(召命) 

우공(愚公)의 심정으로 학교 일궈, 육영보국(育英報國) 큰 빛 밝히다 

창학(創學) 20년 만에 대학 진학률 상위권 안착하며 명문학교로 성장
교사의 열정과 학생의 믿음 바탕으로 ‘지덕체’ 갖춘 인재양성 산실로


▎홍사건 대전한빛고 이사장은 재단 지원이 끊겨 부실했던 학교를 인수해 20년 만에 대전지역 명문 학교로 탈바꿈시켰다. 기업에서 쌓은 경영 노하우에 교직원과 학생들의 노력이 더해져 얻은 성과다.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안영IC를 빠져나와 자동차로 5분가량 달리면 멀리 산 중턱에 커다란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대형 태극기를 단단히 붙들고 있는 35m 길이의 깃대 두께도 상당하다. 초록의 수목 사이에서 쉬지 않고 펄럭이는 태극기의 기세는 늠름하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무슨 시설인지 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한적한 숲속에 있는 연수원을 방불케도 한다. 산자락을 올라 입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체가 드러난다. 대전의 신흥 명문으로 자리잡은 대전한빛고등학교다.

교문을 들어서자 운동장 안전펜스에 내걸린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2021학년도 입시 성과를 알리는 내용이다. 서울대 4명을 비롯해 서울과 지역 거점 국립대 등 전국 주요 대학에 143명이 진학했다. 대전 지역의 일반 사립고등학교 중에는 최고의 성적이다. 주요 대학 진학 성과는 최근 4년간 일취월장하고 있다. 3학년 전체 학생의 절반 넘는 학생들이 주요 대학 진학에 성공했으니, 한 학년에 채 2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규모를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대학 진학 실적이 학교 평가의 절대 잣대가 될 순 없겠지만, 선배들의 약진은 후배들에게 큰 자부심과 의욕을 불어넣는다. 운동장에서 만난 2학년 남녀 학생들은 “대전 시내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도 우리 학교를 부러워한다”고 자랑을 숨기지 않았다.

대전한빛고의 전신은 1989년에 설립된 성복고등학교다. 학교 재단이 교육사업 투자에 인색해 발전 없이 정체돼 있었다. 대전 외곽에 있어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 밖이었다. 2000년 홍사건(70) 이사장이 학교를 인수하면서 제2의 개교를 맞이했다. 홍 이사장은 1977년에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사관학교’라고 불렸던 제일제당에서 중견 간부로, 삼성테크윈에서 임원을 지냈다. 전도유망한 기업인이었던 그는 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교육자의 삶을 살기 위한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교육자가 되고 싶어서 대학교 때 교직을 이수했어요. 기업에 입사하면서 꿈에서 멀어졌지만, 언젠가 꼭 이루겠다는 열망이 늘 있었습니다.”

7년의 준비를 거쳐 대전시 중구 안영동의 성복고등학교를 인수했다. ‘큰 빛’이라는 뜻의 대전한빛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그가 학교를 인수했을 당시만 해도 낡은 건물이 황량한 벌판과 민둥산에 둘러싸여 삭막했다.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급선무였다.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주변 부지를 구입해 체육관과, 급식시설, 도서관, 기숙사를 잇달아 지었다. 충남 서산에서 100년 된 소나무 100그루를 옮겨와 교정 곳곳에 심었다. 평소 교육에 대한 생각과 뜻을 같이하는 이정균 내과 원장 등으로부터 기증을 받았다. 나무 아래에 기증자의 이름과 짧은 헌사를 적은 기념패를 남겼다. 나무와 함께 커갈 학교의 역사에 기증자들의 소중한 도움이 밑거름이 됐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안진호 교장은 “커다란 나무를 한그루씩 실은 화물차가 줄지어 드나들고, 학교를 고치는 공사가 몇 년 동안 계속됐다”고 떠올렸다.

교정이 초록으로 물드니 학생 정서 안정


▎대전한빛고등학교의 자연환경은 사시사철 다채롭다. 홍사건 이사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직접 심은 나무가 20년의 세월을 거쳐 우뚝한 수목으로 성장했다. / 사진:대전한빛고
홍 이사장도 자택이 있는 서울에서 대전을 하루가 멀다하고 오가며 학교 가꾸기에 전념했다. 자택 정원에 있던 흑송(黑松)도 학교 본관 앞 화단에 옮겨 심었다. 직접 꽃나무 모종을 사다 심고, 좋은 나무가 나오면 사비를 털어 사왔다. 뒷산에는 편백나무 3000그루를 심어 둘레길을 꾸몄다. 홍 이사장이 취임한 뒤 지금까지 심은 나무와 화초가 어림잡아 60만 그루. 대전한빛고가 자랑하는 숲으로 우거진 교정은 그렇게 모습을 갖춰갔다.

20년이 지나니 묘목이 제법 자라 울창한 숲을 이뤘다. 교정에서 맨땅을 보기 힘들 정도다. 학교에 들어서면 마치 수목원에 온 듯한 청량감이 온 교정에 넘쳐난다. 학교 뒷산은 중부지방의 명산인 대둔산 줄기와 이어진다. 산책길을 걷다 보면 편백의 은은한 향이 코끝에 맴돌고, 대나무 잎사귀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시원한 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힌다. 색색의 꽃나무를 배경 삼아 친구와의 추억을 박제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도심 학교에선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곳에선 유별날 것 없는 일상의 풍경이다.

초록 교정(校庭)의 효과일까. 자연환경이 바뀌자 학생들의 성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식물의 위로]를 쓴 정원관리 전문가 박원순에 따르면 사람은 식물을 키우면서 정서적 안정과 교감을 얻는다고 한다. 식물의 초록색이 심리적 안정과 집중력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은 각종 연구를 통해 실증된 정설이기도 하다. 실제 기자가 학교에서 마주친 학생들의 표정은 유난히 티 없이 맑았다. 낯선 외지인을 경계하는 기색 없이 먼저 허리 굽혀 인사를 건넨다. 대전 시내에 있는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교사는 “시내 학교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 학생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는 게 뚜렷하게 보인다”고 했다. ‘자연 속에서 인격이 완성된다’는 홍 이사장의 믿음이 적중한 것이다.

홍 이사장은 “지식은 책에서 배우고 지혜는 자연에서 배운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며 함께 지혜를 나누는 열린 캠퍼스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까지 전교생이 매주 월요일마다 학교 둘레길을 산책하는 워킹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스승과 제자, 친구들끼리 자연 속에서 깊은 유대감을 맺도록 하는 대전한빛고만의 특화 교육과정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02년에는 푸른 숲 가꾸기 시범학교로 지정됐다.

교정 곳곳에 자기주도 학습을 하게끔 유도하는 환경적 토대가 마련돼 있다는 것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건물마다 실내와 실외를 구분하는 벽이 많지 않다. 본관 1층 곳곳에는 나무 데크로 된 개방된 공간에 벤치와 의자, 소파, 테이블 등을 배치했다. 누구나 이곳에서 쉬거나 탁 트인 공간에서 독서와 공부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 굳이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인재원 앞 열린 필로티 공간에 책장을 비치해 수백권의 책을 언제든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춤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위한 연습실 앞에는 나무로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통유리로 된 폴딩도어만 열면 그 자체로 작은 공연장이 되도록 했다.

교육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환경만으로는 일류가 될 수 없다. 실력과 열정을 겸비한 스승이야말로 교육 대계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홍 이사장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홍 이사장은 자신의 교육 신념과 굴지의 대기업에서 익힌 조직관리 경험을 접목해 인재 영입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고 했다. 성복고 시절을 겪으며 침체돼 있던 기존 교사들에게는 교육과정 수립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도록 독려함으로써 자존감과 열정 회복을 도왔다. 열정 있는 젊은 교사들을 영입해 활력을 더했다.

최고 인재 키우는 원동력은 열정적인 스승


▎대전한빛고 1학년 학생들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다. 1, 2학년 때 전교생이 필수로 태권도를 수련함으로써 심신을 단련한다.
홍 이사장은 교사 영입에 있어서 실력과 열정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 이따금 주변에서 채용 청탁이 들어왔지만,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작은 오해도 사지 않으려고 선발하려는 교사와 물 한 모금도 같이 안 마셨다”고 했다. 자신이 세운 기준을 어기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순간 그가 일구려던 명문 학교의 꿈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되새겼다.

10여 년 동안 채용한 교사 30여 명은 대부분 30세 이하였다. 현재 재직 중인 50여 명의 교사 중 상당수가 30~40대다. 일반적으로 다른 학교에서 50대 교사가 맡는 부장을 이 학교에선 40대 교사들이 맡는다. 젊은 교사들에게 홍 이사장이 요구한 것은 스스로 좋은 학교를 만들어간다는 개척가 정신과 열정이었다.

교사들도 홍 이사장의 기대에 적극적으로 부응했다. 교사들 스스로 학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대전한빛고만의 특화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간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에도 자발적으로 보충수업을 하는데, 학생들의 수준에 맞춘 세심한 배려다.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학교 안에서 학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라고 했다. ‘사교육 없는 학교’가 홍 이사장이 지향하는 대전한빛고의 모습이다.

학습부진학생 책임지도제를 통해 기초학력이 부진한 학생들은 10명 안팎의 소그룹으로 묶어 기본기를 다지도록 교사가 멘토가 되어준다. 각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지식을 얻는 ‘한빛지식콘서트’를 통해 교사들도 배움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만난 2학년생 신성군은 “선생님들이 진짜 열정적”이라고 했다. 주현태 군은 “학생들을 위해 노력하시는 게 보이니 미안해서라도 선생님의 뜻을 좇아갈 수밖에 없다”며 “예의상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그렇다”고 말했다.

스승에 대한 학생의 믿음과 존경은 다시금 교사에게 새로운 열정과 책임감을 불어넣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여느 학교에서 교사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것 중 하나가 교육 사무 분담 문제다. 가급적 편안한 생활을 안주하고 싶은 욕구가 충돌해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갈등이 생기면 학생들에게 피해가 전가되곤 한다. 그런데 대전한빛고에선 사무 분장을 두고 교사들의 갈등이 없다. 서로의 역할을 나누고 필요한 협조를 하는 데 있어서 학생을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이나영 교사는 “전 교직원이 이렇게 헌신적인 학교도 드물다. 어떻게 하면 우리 학교를 더 키우고,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진학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고 협력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홍 이사장과 교직원, 학생들의 열정이 선순환이 될 수 있는 건 노력한 만큼 결실이 있다는 것을 공동의 체험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제2의 개교를 선언한 지 5년째인 2005년에 졸업생 전원이 대학 진학에 성공했다. 2년 뒤에는 대전시 교육청으로부터 평준화 학교로 지정됐다. 비로소 다른 일반 고교들과 같은 출발선 앞에 서게 된 셈이었다. 같은 조건에서 학생들을 받을 수 있으니 이들을 인재로 키우는 건 오로지 대전한빛고 교직원들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평준화 학교로 지정된 지 2년 만인 2009년 처음으로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했다.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자율학습과 방과 후 수업 등으로 이룬 쾌거여서 더욱 값졌다. 그 뒤론 명문대 합격자가 줄줄이 배출됐다. 2018년 입시에서는 대전의 명문으로 꼽히는 주요 일반고들을 능가하는 진학 성적을 올리더니 주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비율이 절반을 넘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불과 10여 년 만에 대전지역 중학생과 학부모들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

매년 주요 대학 진학생 비율 절반 넘어


▎매년 5월 20일 성년의 날에 치러지는 전통 성년례는 대전한빛고의 전통 행사다. 2019년 5월 20일 고3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5년 말에는 기숙사 ‘인재원(人才院)’을 세웠다. 인재원은 대전한빛고의 인재양성 프로그램의 핵심 기지다. 지상 5층에 36개의 생활실과 12개의 학습실을 갖췄다. 최대 117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샤워실, 세탁실, 상담실 등 부대시설을 두고 학생들이 24시간 생활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인재원은 단순히 통학 거리가 먼 학생들을 수용하는 공간이 아닌 ‘기숙학교(boarding school)’를 지향한다. 인재원만의 특화된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학년별 전담 교사가 멘토가 되어 인재원 학생들의 성적을 분석해 진학·진로를 지도한다. 진로 탐색을 위한 캠프와 특강도 수시로 진행한다. 학생들을 소그룹으로 묶어 토론 활동과 스터디그룹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고,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한 전용 자습실 등 환경을 갖췄다. 이 때문에 인재원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인재원에 들어가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건 떼놓은 당상’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학교의 위상이 치솟는 모습을 지켜본 홍 이사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그의 경영 감각이 기업으로 치자면 부실기업을 건실한 강소기업으로 키워낸 셈이다. 홍 이사장과 제2의 개교 작업을 함께 해온 안진호 교장은 “교육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 없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학교를 개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홍 이사장은 학교를 자주 찾지 않는다고 한다. 교직원들이 스스로 할 일을 만들어내고 추진하도록 자율성을 최대한 지켜준다. 뒷산 둘레길 정상에 마련한 작은 정자인 세심정(洗心亭)에서 교직원들과 차담을 나누기를 좋아한다.

다양한 교과 외 활동으로 지덕체 역량 극대화


▎홍사건 대전한빛고 이사장과 여자 축구부 선수들이 밝은 표정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그의 공식 집무실은 본관과 떨어져 있지만, 그는 본관 중앙 현관 옆에 마련한 작은 접견실을 더 자주 이용한다. 접견실은 학부모나 외부 인사들이 방문했을 때 학교를 소개하거나, 교사들이 모여 토의하는 용도로 쓰인다. 한쪽에 놓인 작은 책상과 의자가 홍 이사장의 공간이다. 이곳에 둔 사무용 가구와 집기들도 자택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리더십을 ‘소프트 디테일’이라고 함축한다.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그의 리더십 비결이란 얘기다. 함께 교정을 걸으면서 마주친 교직원과 학생들은 그를 어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물론 조직을 이끄는 힘은 부드러움만으로 발휘되지 않는다. 그는 “정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원포인트로 지적하지만, 대개는 스스로 고치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한때 그는 학생, 교직원들과 거리감을 좁히려고 편안한 캐주얼 복장으로 다닌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랬더니 교직원들의 복장도 자유분방해지더란다. 청바지, 등산용 재킷 등 제각각이 되니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다시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그러자 교직원들의 복장도 달라졌다고 한다. 일일이 지적하지 않아도 스스로 모범을 보여 바꾸도록 하는 것, 말 그대로 소프트 리더십의 힘이다.

진학 실적으로 학교의 위상이 높아진 건 홍 이사장에게 있어 분명 기쁘고 보람된 일이다. 그러나 홍 이사장에게 학력 신장은 그가 꿈꾼 교육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학교는 교양과 건전한 인격을 고루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곳, 명실상부한 전인교육(全人敎育)의 산실이 돼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바른 심성으로 참된 도리를 추구하며, 시대를 앞서가는 창의적 인재를 육성한다’는 건학이념은 다양한 교과 외 활동을 통해 구현된다. 1, 2학년 학생들은 매주 한 시간씩 태권도를 배우고 에코힐링워킹을 실천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지덕체(智德體) 역량이 극대화한다. 관악부를 만들어 학생들이 한 가지 악기를 다룰 수 있도록 했다. 건축 동아리 ‘세움’은 2018년 충남대 건축공학과와 건설공학교육과가 주관한 제9회 미래의 건축공학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3년 연속 입상의 저력을 뽐냈다. 매년 성년의 날에는 전통예법에 따른 ‘성년례’ 행사를 열어 학생들에게 책임감과 효의식을 고취한다. 대전한빛고의 성년례 행사는 각종 매스컴에 소개될 정도로 대표적인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100여 개의 동아리를 통해 학생 1인당 평균 3개의 동아리 활동을 자율적으로 하며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융합 역량을 습득한다.

“교육은 이문 안 남기는 사업… 성직자의 자세 필요”


▎홍사건 대전한빛고 이사장은 ‘성직자와 같은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교육자의 최고 덕목으로 삼고, 지혜와 지식을 두루 갖춘 인재 육성을 추구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지금은 정상적인 교과 운영이 어려워졌지만, 시대 변화의 흐름을 대전한빛고 교사들은 재빨리 간파해냈다. 2020년에는 온라인 스튜디오를 교내에 만들었다. 웹 기반 교육을 위한 인터넷 학습망을 구축해 모든 수업에서 100% 쌍방향 온라인 수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교사는 교실에서 실시간 영상 수업으로 학생들과 만난다. 교실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학생들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수업에 집중하는 효과가 있다.

사재(私財)를 털어 번듯한 학교를 일궜고 오랜 꿈을 실현했지만, 아쉬움은 있다고 했다. 다른 학교에선 볼 수 없는 대전한빛고만의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도 사립학교에 대한 여러 규제의 벽이 높아 뜻을 100% 이룰 수 없어서다. 교사·학생 선발권, 교육과정 편성·운영권은 학교 운영 자유의 영역에 속하지만, 현실은 교육 당국의 통제에 따라야 하는 처지다. 규제와 통제 속에서 저마다의 건학이념을 구현해야 할 사립학교가 자율성과 특수성을 잃은 채 공립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일부 사립학교의 폐단을 침소봉대해 사학 규제의 명분으로 삼기도 한다.

홍 이사장은 “최소한의 공적 규제를 통해 공공성은 유지하되,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게 다양한 교육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어림잡아 수십억 원의 사재를 학교 정상화에 쏟아부은 그에게 이사장이란 직책은 “물질적 이익 없이 사명감이 요구되는 자리”일 뿐이다. 학교란 이문을 남기는 ‘사업’이 아니다. “성직자에 준하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그는 스승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가톨릭 신자인 홍 이사장의 세례명은 돈 보스코다. 성 요한 보스코(Don Giovanni Bosco, 1815~1888)는 이탈리아 출신 사제로 청소년 교육에 관심을 갖고 살레시오수도회를 세웠다. 사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聖人)으로 추대됐다. 홍 이사장의 집무실에는 돈 보스코에 관한 책과 초상화가 걸려 있다. 청소년 교육에 헌신한 보스코 성인은 그가 뒤따라야 할 지향점이자 롤모델이다. 교육 헌신, 육영보국(育英報國)의 꿈은 그저 자아실현의 수단이 아니라 인생을 건 소명(召命)인 것이다.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知天命)’는 50세에 건학의 첫 삽을 뜬 지 어느덧 20년. 중년의 사내는 머리 희끗한 노년에 접어들었고, 그가 심은 묘목들은 사람 키를 훌쩍 넘게 자랐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지금도 학교에 올 때마다 구석구석 다니며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곤 한다. 4월 29일 홍 이사장과 함께 학교를 돌아보고 나니 스마트폰 만보기 앱은 어느새 1만2000걸음을 넘겼다. “봉사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이라는 홍 이사장의 모습에서 태산을 옮긴 우공(愚公)의 우직함이 엿보였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대전=김성태 기자

202106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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