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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미국의 민주주의 연대에 맞서는 시진핑의 외교정책 

중국의 일대일로, 햇볕대로인가 부채함정인가 

중화경제권 구축으로 미국의 포위망에 대항, 경제·군사 외에 소프트파워까지 영향
개발도상국·저개발국이 중국 경제에 예속되는 부작용 우려… ‘중국 경계론’ 커져


▎2019년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환영 행사에서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국립박물관에는 명(明)나라 때 환관 출신에서 제독이 된 정화(鄭和·1371~1433년)가 세운 비석이 전시돼 있다. 중국어, 타밀어(현지어), 페르시아어(당시 국제어) 등 3개 국어로 새겨진 이 비석은 정화가 1407년 9월 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하기 위해 대선단을 이끌고 스리랑카를 방문했을 때 세웠던 것이다. 스리랑카는 ‘인도양의 진주’라고 불리는 섬나라다. 국토 면적 6만5610㎢, 인구 2148만 명인 스리랑카는 에너지 수송로이자 해상 교통로인 인도양의 관문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특히 스리랑카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해상 실크로드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다. 정화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28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선단 수백 척을 이끌고 믈라카 해협과 인도양을 거쳐 페르시아와 아프리카까지 바닷길을 개척했다. 정화의 원정대가 중동, 서남아시아, 동아프리카로 가는 새로운 해상 무역로를 확보함으로써 당시 명나라는 남중국해에서 동아프리카에 이르는 해상 실크로드를 지배했다. 중국 정부와 시진핑 국가 주석은 정화의 원정대가 바닷길을 뚫었듯이 21세기판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스리랑카, 일대일로의 성공 사례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일대(一帶·One Belt)는 ‘육상 실크로드 경제지대’(Silk Road Economic Belt)를 말한다. 중국 서북지역에서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대륙과 유럽을 관통하는 육상 무역통로를 구축하는 것이다. 한(漢)나라 무제가 개척한 동서 교역로인 실크로드를 부활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로(一路·One Road)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21st Century Maritime Silk Road)를 말한다. 중국의 동·남 연해 지역에서 동남아, 인도양, 중동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바닷길을 의미한다. 정화의 해상 실크로드를 복원하는 것이다.

시 주석은 그동안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을 실현시키겠다는 야심을 보여왔다. 중국몽은 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중국이 명실공히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이 돼야 한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 관계를 강화한다면, 거대한 중화경제권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시 주석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세계 유일 초강국인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키우려는 의도를 보여왔다. 실제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및 중동의 일부 국가들은 중국과의 반미 연대에 합류했다.

스리랑카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국가다. 스리랑카는 2010년 중국으로부터 15억 달러에 달하는 차관을 제공받아 남부의 함반토타항을 건설했지만, 적자가 쌓이자 결국 부채 11억 달러를 탕감받는 조건으로 2017년 11월 중국 국유기업인 자오상쥐에 이 항구의 운영권을 99년간 넘겨주었다. 중국은 함반토타가 민간 선박이 이용하는 상업항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인도는 유사시 해군기지로 전환될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중국이 함반토타항을 개발한 이유는 인도의 발밑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스리랑카의 정치 가문 출신인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과 형인 마힌다라자팍사 총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특히 2005~2015년 대통령이었던 마힌다 총리는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왔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고 인도·일본·호주가 참여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에 맞서 스리랑카를 공세적으로 활용할 의도까지 보이고 있다. 실제로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장관)은 4월 25일 스리랑카를 방문해 고타바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어떤 대국은 패거리를 짓고 지역 패권을 추구해 인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서 “역외 대국이 남아시아 지역에서 군사 동맹을 규합하고 패권주의를 행하는 것을 공동으로 막아야 한다”고 미국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스리랑카는 어떠한 역외 대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어떠한 국가와도 동맹을 맺지 않을 것”이라면서 “스리랑카는 영원히 중국의 진실한 친구”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중국의 외교사령탑인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지난해 10월 코로나19로 경제난에 빠진 스리랑카를 방문해 6억 위안(약 1027억 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당시 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협력을 비롯해 우호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정부와 시 주석은 미국 정부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 복원,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앞세워 자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더욱 확대·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시 주석은 4월 20일 하이난다오 보아오시에서 열린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인 보아오포럼(BFA) 연차총회 개막 연설에서 각국에 일대일로 공동 건설을 위한 긴밀한 파트너십 구축을 제안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보아오포럼에는 이번 연차총회에서 ‘세계 대변화: 글로벌 거버넌스 강화, 일대일로 협력 추진’이라는 주제로 60여 개국에서 전·현직 국가수반과 장관, 정·관·재계 인사와 전문가 6000여 명이 화상 또는 직접 참석했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는 어느 한쪽의 발전을 추구하는 길이 아니며, 상생과 희망을 전달하는 햇볕대로”라면서 “관심 있는 모든 국가가 일대일로에 참여할 수 있고, 함께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이런 연설은 바이든 대통령의 반중(反中) 연합 전선 구축 전략을 겨냥한 것이다.

시 주석이 일대일로 전략을 바이든 대통령의 반중 전략에 대한 돌파구로 내세운 것은 지금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140개국, 31개 국제기구와 총 205건에 이르는 협력문서에 서명했다. 특히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중반 기준으로 일대일로와 연계해 추진하는 철도, 항만, 고속도로, 원전, 5G 등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가 2600개가 넘고 금액으로 치면 3조7000억 달러(약 4200조 원)에 달한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된 셈이다. 중국 정부는 또 일대일로를 통해서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와 군사 분야 및 문화 등 소프트파워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보여왔다.

미국의 적 이란은 중국의 친구


▎2021년 3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오른쪽)과 만나 ‘25년간 전략적 관계’를 맺는 장기 협정을 체결했다. / 사진:신화통신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확대·강화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란과의 협력을 들 수 있다. 중국 정부는 3월 27일 이란 정부와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서명한 이 협정에 따르면 중국은 향후 25년간 이란에서 할인된 가격에 원유와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대신, 금융·에너지·항만·철도·5G 등에 4000억 달러(약 446조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화리밍 전 이란 주재 중국 대사는 “이 협정에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물론 경제, 문화, 석유·가스·원자력, 보건의료, 군사 분야 등에서 양국이 폭넓게 협력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전체 원유 수요량의 75%를 외국에서 도입한다.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는 중국 경제는 물론 국가 안보에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 맹주이자 대표적인 반미국가로 중동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란으로부터 비밀리에 원유를 대량 수입하는 등 관계 강화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이란은 중동지역 교두보인 동시에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지정학적 카드’라고 말할 수 있다. 일각에선 중국이 앞으로 투자시설 보호를 명분으로 이란에 자국군 주둔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중국은 2019년 12월 27일부터 나흘간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 인근 오만 해와 인도양 북부에서 러시아, 이란과 합동 해상 훈련을 사상 처음 실시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 정부는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구도인 우루무치에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시가바트를 지나 이란 수도 테헤란에 이르는 고속철도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차이나 스탠더드’의 함정


▎2020년 7월 필리핀 동중국해 해역에서 미국, 호주, 일본 해군이 합동 훈련을 진행했다. / 사진:미 해군 페이스북
중국 정부는 아프리카 진출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케냐 라무섬에 있는 항구를 오는 6월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교통건설(CCCC)이 50억 달러를 투자한 이 항구는 케냐, 에티오피아, 우간다, 남수단을 연결하는 교통망 건설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중국이 라무섬 항구를 다시 교역항으로 사용하게 되는 건 600여 년 만이다. 중국의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정화는 1418년 함대를 이끌고 케냐 남동부 말린디의 한 마을에 도착한 이후 4차례에 걸쳐 아프리카 해안을 원정했다고 한다. 케냐 항만청은 중국교통건설이 라무항에 정박 시설 세 개를 건설했다면서 이 시설들이 컨테이너 선박과 유조선 등의 허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중국 기업들이 아프리카 각국의 항구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면서 이들 항구는 중국의 아프리카 교역에 관문 역할 뿐만 아니라 중국군의 진출에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기업들이 투자하고 있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항구들은 46곳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2017년 아프리카 동부 지부티에 사상 처음으로 해외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아프리카는 각종 천연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해 성장 잠재력이 상당히 높지만, 인프라와 자본 부족 등으로 제대로 발전을 못 해왔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아프리카의 최대 무역 파트너로 부상했으며, 경제력을 무기로 아프리카에 공세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아프리카 각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중국의 진출을 환영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코로나19로 재정 상황이 악화된 아프리카 각국에 대한 채무를 면제하고 코로나19 백신 공급을 약속하는 등 구애 작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 46개국과 일대일로 협약을 체결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게다가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는 석유에서 광물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석유를 수입하는 데 집중해왔으나 이제는 코발트, 구리, 희귀광물 등을 아프리카에서 들여오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월 초 코발트가 풍부하게 생산되는 콩고민주공화국(DRC)을 방문해 채무 면제를 약속하고, 일대일로 전략에 따른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전기차·스마트폰·노트북 등의 배터리 소재인 코발트의 세계 최대 생산지다. 중국은 매년 코발트 9만5000t을 수입하는 세계 최대의 코발트 수입국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국제사회는 대부분 중국의 일대일로를 ‘부채함정’이라고 비판해왔다는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복구를 위해 추진했던 ‘마셜 플랜’과는 성격이 다르다. 당시 미국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유럽 국가의 재건을 돕고자 조건 없이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중국은 자국 국유(국영)은행을 통해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에 자본을 빌려주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특히 중국은 이들 국가와 차관 계약을 맺으면서 철저하게 ‘차이나 스탠더드’를 적용하고 있다. 차이나 스탠더드는 중국산 기자재를 쓰고, 건설 공사는 중국 업체가 맡으며, 운영도 중국 기업이 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투명성 확보와 부패 방지 방안 마련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는 선진국이나 국제금융기구 등으로부터 차관을 빌리기 어렵던 개도국과 저개발국들은 중국의 달콤한 유혹(차관)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개도국과 저개발국들은 중국이 제공한 자금으로 야심 차게 인프라 구축을 시작했지만,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빚만 늘어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인프라 사업을 통한 경제발전을 기대했지만, 중국이 제공한 자금을 중국이 다시 가져가고 자신들에게는 부채만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 차관이 일종의 ‘독(毒)’이 된 셈이다. 독일 싱크탱크인 킬 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대일로 참여국들의 중국에 대한 부채는 무려 3800억 달러(약 424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미국 워싱턴 소재 컨설팅 업체인 RWR는 2013년 이후 중국의 금융 기관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출한 금액은 4610억 달러라고 추정했다.

빚을 땅으로 받는 ‘채무 제국주의’


▎2020년 12월 중국은 호주 와인에 규제를 가했다. 외교적으로 호주는 중국과 반대편에 서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4월 27일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과 무함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화상회담을 갖고 “중국 정부의 ‘부채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블링컨 장관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며 “어떤 국가가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 그들 자신의 노동자를 데려올지, 투자 대상국의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할지 등을 엄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라며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 “잠비아가 지난해 국가부도를 내는 등 중국의 차관을 받은 많은 국가가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링컨 장관의 이런 발언은 아프리카 각국이 중국의 투자 때문에 빚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잠비아의 대외부채 120억 달러 가운데 중국에서 빌린 자금은 34억 달러였다. 잠비아는 지난해 11월 국제채권단에 부채상환 연기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하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잠비아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첫 부도 국가가 됐다.

중국의 일대일로 때문에 부채함정에 빠진 국가들 가운데 가장 최근 사례는 동유럽의 소국 몬테네그로를 들 수 있다. 몬테네그로 정부는 2014년 아드리아해와 세르비아 사이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중국의 수출입은행으로부터 건설비용의 85%인 10억 달러를 빌렸다. 중국도로 교량회사가 건설을 맡았지만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몬테네그로 정부는 또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5400만 유로를 빌렸다. 인구 62만여 명에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기준 49억 달러밖에 되지 않는 가난한 나라인 몬테네그로는 7월까지 채무 10억 달러를 갚지 못하고 디폴트를 선언할 경우, 담보로 잡혀 있는 국토 가운데 일부를 중국에 넘겨야 한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중국이 스리랑카나 파키스탄의 사례처럼 항구를 장기 임대할 가능성이 있으며, 중국이 유럽 중심부와 가까운 발칸반도 서부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이 거액을 빌려준 파키스탄, 탄자니아, 앙골라, 케냐, 에티오피아, 몰디브, 라오스 같은 국가들은 디폴트를 선언한 잠비아나 국가 부도 직전 상태인 몬테네그로처럼 일대일로의 부채함정에 빠져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일대일로에 참여한 국가들은 대부분 경제력이 좋지 못한 국가들이어서 천연자원 수출에만 의존하거나 제조업과 서비스업 기반이 약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중국에 대한 부채를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대부분 중국이 일대일로 참여국들의 경제발전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막대한 빚을 지게 만들고 자국의 이득만 챙기고 있다면서 중국을 ‘채무 제국주의’(Debt Imperialism)라고 비판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일대일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파키스탄과 미얀마에서 국민의 반중(反中) 정서가 고조되고 있다. 최근 파키스탄에서는 중국 대사를 노린 것으로 추정되는 테러 공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대일로 사업을 적극 지지해온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반발한 국민은 중국 공장에 불을 지르고 쿠데타 반대 시위에서 오성홍기와 시진핑 주석의 사진을 불태우기도 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반격

미국을 비롯해 서방국가들은 중국의 일대일로 확대·강화 전략을 견제하기 위한 방안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쿼드의 일원인 호주 정부는 4월 21일 빅토리아 주 정부가 2018년과 2019년 중국과 체결한 일대일로 업무협약(MOU) 2건을 파기했다. 머리스 페인 호주 외무장관은 “중국과의 일대일로 협약은 호주의 외교 정책과 맞지 않고 외교 관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호주 정부가 자국의 주 정부가 외국과 체결한 협약을 파기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호주 정부는 또 2015년 중국 기업과 체결한 다윈항 장기 임대 계약에 대해서도 재검토에 착수했다.

미국과 EU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서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 계획을 추진할 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 26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이 주도하는 인프라 계획을 제안했다”면서 “민주주의 국가들이 모여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지역들을 지원하는(일대일로와) 유사한 이니셔티브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제안은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의제에 오른다.

한편에서는 유럽연합(EU)도 인도와 함께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서는 대규모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EU와 인도는 5월 8일 화상 정상회의에서 제3국에 에너지와 교통망 건설, 5G 통신망 구축, 금융 지원 등을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중국이 앞으로 인프라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 분명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106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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