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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이준석 현상’] 정치권 변화 추동하는 2030세대 ‘이대남’의 격정토로 

“경륜 들먹이는 ‘꼰대’는 싫어… 정치판도 확 바뀌어야” 

집값 상승, 취업 문제,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기성정치 비판으로 나타나
정권 심판 의미 강하지만 보수정당 지지로 계속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과 내로남불에 분노한 청년 7명이 입을 열었다. 왼쪽부터 김민석(20세), 양은건(26세), 박준일(20세), 한상현(22세), 양준우(27세), 김부겸(20세), 노재승(37세)
2030세대의 거센 분노가 정치권을 강타했다. 일자리, 집값 상승, 여성할당제 등 2030세대와 밀접한 현안에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기성 체제에 마치 투표로 집단행동을 하듯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여의도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이준석 현상’의 기저에는 최근 정치권 최대 화두로 떠오른 2030세대의 분노가 있다. 이들의 분노는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이미 감지됐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일반 청년들이 야당인 국민의힘 선거 유세차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정부에 비판을 퍼부은 것이다. 스무 살 재수생부터 입대를 앞둔 26세, 취업 시장에 뛰어든 27세, 결혼을 앞둔 37세 예비신랑 등 직업과 배경이 다양한 청년 7명이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과 불만을 월간중앙에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이들 7명이 이구동성으로 토로한 것은 이른바 ‘조국 사태’에서 정점에 달했던 우리 사회의 ‘불공정’ 문제였다. 대학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편입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부겸씨(20)는 “우리 세대들은 그래도 아직은 개천에서 용 나려면 학력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대학 입학 과정은 어땠나. 아버지가 잘나가는 서울대 교수 조국이 아니었다면 의학전문대학원 합격이 가능했을까. 왜 조국 때문에 우리 부모가 나에게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어야 하느냐?”며 억울해했다.

“내가 가져가야 할 몫, 왜 정치권력이 빼앗나?”


▎집값 상승, 취업 문제, 불공정 등 현실에 대한 분노로 정당의 당원이 아닌 청년들이 선거 유세차에 올랐다. 이들은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며 변화를 요구했다. 사진은 지난 4월 유세차에 오른 청년들과 당시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 사진:연합뉴스
학사장교(ROTC)를 마치고 전역했다는 양준우씨(27)는 얼마 전 기업체 최종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취준생인 그는 지난해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태’가 분노하게 만든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취업하려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공부를 한다. 그런데 단순히 대통령이 ‘정규직 시켜주는 게 좋겠다’고 한 그 발언 때문에 인국공 비정규직이 수월하게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나? 정해진 룰에 따라 열심히 노력했는데 보상을 받기는커녕 내가 가져가야 할 정당한 몫을 정치권력이 빼앗는다는 것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불공정한 사례가 특정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누구나 당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 시스템이 붕괴됐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상현씨(22)는 “우리 세대는 자라면서 늘 경쟁에 익숙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경쟁에서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출발하도록 경쟁의 룰을 제대로 지켜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부는 자기 마음대로 규칙과 룰을 바꿔버렸다”고 비판했다.

‘불공정’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 붙은 꼬리표는 ‘내로남불’이다.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재보궐 이후 정치지형 변화에 대한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2030세대에게 떠오르는 민주당의 이미지는 ‘내로남불’과 ‘성추행/성추문’이 많았다. ‘양심·신뢰·정직·사과’ 등 도덕적 가치만큼은 보수정당보다 우위를 차지한다고 주장했던 민주당으로서는 충격일 수밖에 없다.

김민석씨(20)는 “보수정당이 집권했을 때는 사소한 범죄만 터져도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도덕, 양심 운운하면서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의 대형 범죄에 대해서는 사과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는다. 이런 행태는 내로남불이란 말로도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김부겸씨도 덧붙였다. “고민정·남인순 민주당 의원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표현했다. ‘정말 저렇게까지 해서 자기편을 옹호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는 이미 남녀평등 이뤄졌다”


▎양준우씨(왼쪽)와 노재승씨(오른쪽)가 6월 2일 합정역에서 만나 2030세대의 남녀 평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20대 남성(이대남)들은 문재인 정부의 양성평등 정책을 여성 우대 정책이라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월간중앙과 만난 이대남들에게서도 그런 분위기가 역력했다. 양준우씨의 생각을 들어보자. “기존 어머니 세대는 사회적·문화적·경제적 불평등이 있었다. 그 시대의 여성은 분명히 사회적 약자였다. 하지만 2008년 호주제 폐지 이후 제도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어떤 차별도 없다. 제가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모두 귀한 아이들로 키워졌다. 여자라서 희생해야 한다거나 여자라서 변호사, 과학자를 하면 안 된다는 차별도 없었다. 문화적·사회적·제도적 차별 없이 성장한 세대가 지금의 우리 20대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이미 우리 세대는 양성평등이 이뤄졌다. 기성세대가 우려하는 사회적·문화적 약자로서의 여성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들은 여성할당제, 청년할당제에 반대했다. 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양은건씨(26)는 “사기업까지 수치상으로 남녀의 비율을 맞추라는 것은 사회주의 아닌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부가 주인도 아닌 사기업에 여성 임원의 비율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다. 여성들의 능력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으면 그 기업은 망하란 소리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재승씨(37)는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취업사관학교 프로그램을 언급하면서 “가산점 항목을 보면 특허보유자 1점, 국가유공자 0.5점, 장애인 0.5점인데, 여성은 3점을 준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20대 남녀는 동일한 조건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평등한 사회가 됐는데도 여성을 우대하는 것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논리다.

2030세대는 ‘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집값, 재건축·재개발, 자산 취득은 이들 세대의 미래와 직결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년 2월 결혼 예정인 노재승씨는 커피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작은 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이지만 최근 들어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다고 했다. “부동산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마련한다는 뜻)해서 집을 샀던 친구와 제가 지금 너무 큰 차이가 나더라. 몇 년 동안 부동산을 열심히 쫓아다녔던 친구들이 지금은 스무장씩(20억원) 벌었다고 하니 답답하다. 직장인 친구들이 부동산 투자에 빠져 있을 때도 저는 그동안 사업해서 모아둔 돈도 있고 해서 ‘서울에 내 집 정도는 마련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이번에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정말 어렵게 수도권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도시공학·설계에 관심이 많다는 재수생 김민석씨는 정부의 재건축·재개발 정책이 너무 규제 위주라며 비판했다. “가장 화나는 것이 재건축과 집값 문제다. 사람들이 서울로, 강남으로 몰리는데 남는 땅이 없다면 재개발과 재건축을 통해 세대수를 늘려야 하는 게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도 맞다. 그런데 정부는 이게 죄다 투기꾼 때문이라며 재건축을 못하게 막아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받는다.”

가상화폐 열풍과 관련해서도 뼈 있는 말이 나왔다. 김부겸씨는 “지금 돈을 은행에 예금하는 사람은 바보 소리를 듣는다.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투자할 곳이 없게 됐는데 가상화폐 같은 투자처에 길을 터주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무조건 막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2030세대의 이 같은 분노는 올해 들어 최근 정부 실책에 공동 책임이 있는 여당보다 야당에 기대어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모습으로 표출됐다. 양은건씨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강타한 ‘이준석 돌풍’에 대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제부터 변혁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양준우씨는 “지금 우리 사회는 능력주의와 경쟁 시스템이 무너진 상태인데, 이를 회복하겠다는 젊은 인물을 기대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노재승씨도 “문재인 정부가 실정을 거듭하면서 오래전부터 야당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있었고 그 옆에 키 플레이어로 이준석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치학자들은 ‘이준석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몇몇 인사는 2030세대가 집단행동이나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정치 효능감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배웠기 때문에 이번 이준석 현상이 가능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광화문과 주요 거점 도시에서 촛불을 들었던 경험이 있는 2030세대는 자신들이 움직이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다른 세대에 비해 더 강하다는 것이다. 김민전 경희대학교 교수는 “기본적으로 2030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정치 효능감이 강하다. 이 모습은 민주화를 이룩한 586세대와 유사한 면이다. 다만 지금 2030세대는 지금 정권의 주축을 이루는 586들을 향해 집단 의사표시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30세대의 정치효능감, 정권 심판으로 이어져


▎양은건씨(왼쪽)와 한상현씨(오른쪽)는 ‘이준석 돌풍’이 정치권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586세대라는 김부겸씨도 이 같은 해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김씨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역사 인식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는 여권 정치인들의 시선이 너무 안일하고 편협하다. 자신들의 내로남불에 관해서는 제대로 해명도 하지 않으면서 ‘너희가 몰라서 그래’라는 태도를 고집하는 것을 보고 ‘꼰대’ 같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와 동갑인 김민석씨도 “중·고등학교 역사책에서는 민주화를 이뤄낸 그들이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의 가려진 이면을 살펴봤더니 비리, 성폭행 등이 보였다. 결국 그들이나 우리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꼬집었다.

다만 2030세대의 정치 효능감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쪽으로 변화하기보다는 네거티브에 가깝다. 정권 심판적 성향이 강하다는 의미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 실장은 “서울·부산 재보궐선거부터 투표의 효능감이 네거티브로 바뀌었다”며 “세상을 바꾸겠다는 게 포지티브 효능감이라면 지금은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네거티브 효능감이 우세하다”고 분석했다.

이런 해석을 두고 양준우씨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 세대가 부양해야 할 인구가 폭증하는데 지금 이 정권은 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써서 국민 소득을 보전해주겠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한민국은 5년짜리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한상현씨도 맞장구를 쳤다. “기본소득이니 뭐니 하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미래를 뺏어 쓰는 것이다. 현 정부에서 국가채무가 150조가 넘었다는데 결국 나중에 그 많은 돈을 갚아야 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 세대”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현재 2030세대의 정권 심판적 경향에 대한 반대급부를 국민의힘 같은 보수정당이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시선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보수·진보를 떠나 어느 쪽이 야당인지가 중요하다”며 “기본적으로 2030세대는 보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야당에 기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과거 20대들도 현존하는 권력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 때는 반노, 이명박 정부에서는 반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반박, 문재인 정부는 반문이다. 이것은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설명이 안 된다. 2030세대는 현존하는 권력의 피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세대”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현재 2030세대의 국민의힘 지지는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월간중앙과 만난 2030세대는 현재 집권세력에 대한 반대급부로 보수정당을 지지하지만 자신들의 눈에도 현재 보수정당의 한계가 보인다고 했다. 얼마 전 국민의힘 당원 활동을 시작했다는 한상현씨는 “국민의힘에서 중진의원이라고 하시는 분들은 제발 ‘경륜’ 이야기 좀 그만하셨으면 좋겠다. 그분들이 말하는 경륜이나 경력이라는 게 다 패배한 경험이다. 예를 들어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민주당에 180석을 내줬다. 일반 사기업이었으면 회사에서 잘리고 다시는 복귀를 못할 만한 일”이라고 직격했다.

보수에 기대했던 마음, 실망하면 언제든 돌릴 수도


▎(왼쪽부터) 박준일씨, 김부겸씨, 김민석씨. 이들은 5월 29일 송파구에서 만나 부모세대인 586세대를 향해 ‘꼰대’라고 지칭하며 내로남불적 태도를 비판했다.
양준우씨는 현 보수정당을 한마디로 ‘꼰대’라고 정리했다. 양씨는 “보수의 핵심 가치가 자유주의인데, 경제 영역에서는 기업의 자유를 증진해야 한다고 하면서 사회적·문화적으로 가면 ‘야, 이거는 우리의 도덕관과 맞지 않아. 역사와 전통과는 맞지 않아’라고 말한다. 자유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꽉 막힌 꼰대로 바뀌면서 전통을 이야기한다”고 꼬집었다. 노재승씨는 국민의힘 새 지도부에 시대변화에 따른 공감 능력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힘은 동물권보호단체·환경단체·여성단체·미혼모단체·장애인단체 등 시대 변화를 반영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의견에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수정당을 향한 2030세대의 성향은 ‘비판적 지지’라고 할 만하다. 이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 지지를 철회하고 언제라도 반대쪽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의미다. 양은건씨는 “국민의힘에 또다시 구태 세력이 등장하거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언제든지 생각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2030세대의 집단행동은 ‘쉽게 그치지 않을’ 바람인 것은 분명하다. 바람이 한번 불기 시작하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4·7 재보궐선거와 6·11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 글·사진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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