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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직격인터뷰] 진중권이 바라본 ‘이준석 현상’ 

“이준석은 한국판 ‘트럼프’, 중도흡수·외연확장 실패할 수도” 

법적·형식적 공정 무너진 사회에서 2030세대는 실력·능력주의 요구
도로 ‘구제 불능 국민의힘’ 안 되려면 공동체주의 지향하는 보수 돼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준석 현상’이 실력·능력주의에 편승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아울러 ‘이준석 현상’에 내포된 여성을 향한 분노를 우려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기세’. 2030세대의 분노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준석 돌풍’을 만들어냈다. 사회 변화를 향한 갈망과 ‘보수도 바뀔 때가 됐다’는 당심과 민심의 결합이 ‘이준석 현상’으로 확대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변화를 추동하는 이들의 거센 바람이 보수 혁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1야당의 대표 정치인으로 부상한 ‘이준석’에게 관심이 쏟아지는 이유다. 2030세대의 강력한 지원에다 변화를 기대하는 야당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에 혁신을 밀고 나갈 원동력은 확보한 듯 보인다. 그다음 스텝은 방향성이다. 2030세대와 ‘이준석 현상’이 동일하게 가리키는 방향은 실력·능력주의를 바탕으로 한 ‘공정한 경쟁’이다. 이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보수 혁신이라는 당심과 민심의 기대에도 부합할 수 있을까.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5월 28일 월간중앙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준석 현상과 보수 혁신을 예의 ‘공정’이라는 단어로 풀어냈다. 진 전 교수는 여성을 향한 적개심을 내포한 이들의 성향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한편, 돈을 추구하는 ‘강남의 욕망’에 동조하는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도 걱정했다. 현재는 “정치인 이준석이 한국판 트럼피즘을 선보이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준석 현상에 기대했던 젊은 세대가 더욱 좌절할 가능성을 점쳤다. 그는 도리어 ‘이준석 현상’과 반대로 가는 보수의 혁신을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여성할당제 유지, 약자 보호, 패자를 감싸는 공동체주의적 보수로 해석된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공정’이란 단어가 사회를 휩쓴다.

“조국 사태 이후로 공정이 무너졌다. 국민에게 민주당의 이미지로 ‘내로남불’이 먼저 떠오른 것은 이 정권에서 법적·형식적 공정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2019년 조국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부터 지금까지 2년 가까이 우리 사회는 ‘공정 국면’이었다. 이런 가운데 법적·형식적 공정을 대변한 듯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결국 사퇴했다. 공정 국면을 벗어나지도, 누구 하나 해결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실력주의·기득권에 대한 반발이 ‘이준석 현상’ 만들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2030세대가 요구하는 실력·능력주의 공정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할당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 토론회에서 발제하는 진 전 교수의 모습. / 사진:연합뉴스
2030세대가 요구하는 ‘공정’이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공정 국면에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능력주의, 실력주의,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등의 성향이 굉장히 강해졌다. 예를 들어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비정규직 전환 사태, 평창동계올림픽 사태 때 전조 증상이 보였다. 최근에는 고려대의 서울·세종 캠퍼스 사이에 논란이 생겼다. 젊은이들은 결과의 평등, 결과를 교정하는 방식으로의 공정을 원하지 않는다.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 집착한다.”

메리토크라시는 출신·가문이 아닌 실력·실적으로 지위가 결정된다는 의미로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처음으로 사용했다. 대개 실력주의·업적주의·능력주의로 해석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2030세대는 노력 없는 보상이자 권력의 독단적 결정이라고 분노했다. 이들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추진에도 반대했다. 남북 화합이라는 정치적 명분으로 경기 출전을 위해 노력한 남측 선수들의 기회를 빼앗지 말라는 취지였다. 지난 4월에는 고려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임원으로 세종캠퍼스 학생 A씨가 임명된 이후, 온라인에서 A씨 신상 정보가 퍼지고 세종캠퍼스를 비하하는 발언이 나와 논란이 됐다. 이러한 사례로 2030세대는 성적, 학벌, 시험, 자격 요건 등 수치화, 계량화할 수 있는 실력과 능력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2030세대의 이 같은 요구가 ‘이준석 현상’을 만들었다고 보는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명백하게 잘못된 현상이다. 백래시(backlash)이자 실력주의·능력주의에 편승하는 것이다. 백래시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의 젊은 층이 결국 좌절했다. 사회 구조 안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위로 올라가지 못하니 그 분노를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여겼던 여자에게 대리 투사하고 있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포기한 상황에서 심리적 위안만 찾고 있다. 굳어진 사회 문제로 좌절한 미국 백인들이 이민자에게 퍼붓는 분노와 같은 성격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 좌절한 남자들이 여성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준석 현상’은 백래시의 전형적인 예다.”

백래시는 사회적·정치적 변화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발을 가리키는 용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가 동명의 책에서 1980년대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미국 사회의 전방위적 공격을 다루며 처음 썼다. 진 교수는 ‘이준석 현상’의 핵심이 젠더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현상’에 여성을 향한 적개심이 포함돼 있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할당제 문제가 결정적이다. 여성·청년·지역 할당제가 사회 전체의 공정을 위한 것인데, ‘이준석 돌풍’을 지지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할당제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전도된 의식을 갖고 있다. 할당제를 없애는 정책을 펼치게 되면 불공정이 심화할 수밖에 없고 젊은 사람들은 더욱 좌절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백래시가 더욱 심해지면서 지금보다 더 안티페미니즘이 강화될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우려스럽다.”

이준석 후보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기치 아래 청년·지역·여성 할당제 폐지를 주장했다. 2030세대의 대다수 남성이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는 모양새다. 19~34세 청년 657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18.6%만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응답했다. 여성의 74.6%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국제기관에서 발표한 대한민국의 성 격차는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성격차지수(GGI)는 153개국 중 108위로 하위권이다.

능력을 배제한 여성할당제는 과도한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남녀 문제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윈윈 게임이다. 할당제도 남성할당제, 여성할당제가 존재하고 그것으로 혜택을 받는 남자들이 많다. 몇몇 국가 고시에서는 여성의 성적이 더 높게 나온다. 특히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서도 성격차가 해소되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4.4% 상승한다고 예측했다. 성 불균형을 해소해야 국가 전체의 퍼포먼스가 증가한다는 의미다.”

‘이준석 현상’이 실력주의·능력주의에 편승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실력주의와 능력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은 보수·진보 모두가 경계해야 하는 위험한 현상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공동체주의 보수주의자인데, 메리토크라시를 경계한다. 메리토크라시라는 건 가진 자들의 이데올로기다. 실력과 능력은 순수하게 개인만의 노력으로 발현되는 게 아니라 가족, 환경, 가문, 축적된 부 등의 영향을 받는다. ‘내 실력이 아니라 부모의 실력’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시작이 불평등한 상황에서 게임의 규칙만 형식적으로 평등하게 하자고 한다면 이것은 공정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그 경쟁을 통해서 승자는 항상 소수 몇 사람이 독점하고 다수가 루저로 전락한다. ‘이준석 현상’에 포함된 실력주의·능력주의는 극히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해법일 수 있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진 전 교수는 ‘이준석 현상’의 위험성을 재차 강조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 사람들이 다 강남에 사는 게 아닌데, 강남의 욕망에 동의한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이 지금 이준석에게 동의하는데, 이준석은 하버드대학교를 나왔고 집안도 괜찮다. 출신도 TK(대구·경북)로 그 덕에 특혜를 받은 것이다. 선택받은 소수계층의 이데올로기를 힘없는 많은 대다수 젊은이가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상황이다.”

“2030세대는 쉽게 변해....마음 언제 바뀔지 몰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준석 현상’은 한국판 트럼피즘(Trumpism)이라며 중도 흡수와 외연 확장에 보수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진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지난 6월 부산에서 만난 청년과 포즈를 취한 모습. / 사진:연합뉴스
‘이준석’이라는 보수 깃발 아래 2030세대와 60대의 세대갈등 봉합이라는 긍정적 영향도 있는 것 아닌가.

“간신히 붙어 있는 정도다. 봉합이 아니다. 2030세대가 쉽게 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른다. 이번 국민의힘 경선 과정을 보면 호남에 대한 지역 할당도, 청년 할당도 없었다. 이게 공정한 게임인가. 그런데 이준석은 할당제를 폐지하겠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할당제를 하지 않는 당에서 무엇을 바꾸겠다는 것인가.”

6·11 국민의힘 전당대회 경선 룰과 관련한 비판이 당 안팎에서 나왔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청년과 호남을 철저히 배제해 개혁과 혁신에 역행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장 출신인 유 의원은 “당원 여론조사 조사대상 인원 1000명 가운데 호남지역에 배정된 인원은 0.8%로 8명에 불과하다”며 “아무리 지역별 당원 비례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1000명 중 8명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했다. 아울러 당원 여론조사 비중을 ‘40대 이하(27.4%)’, ‘50대(30.6%)’, ‘60대 이상(42%)’ 세 그룹으로 나눴다. 사실상 청년 몫을 고려하지 않은 세대 구분이라서 논란이 가중됐다.

이준석을 향한 2030세대의 지지는 확고해 보인다.

“이런 현상이 심화될수록 20대 남녀 갈등의 골이 깊어질 뿐만 아니라 세대 간 갈등도 심화될 것이다. 2030세대 남성이 역차별을 당한다는데, 이런 주장은 데이터로 입증이 안 된다. 모든 데이터는 차별받는 여성의 사회 구조를 입증하는데, 그들만 역차별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 완전히 잘못된 해법이 나오고 그 해법을 이준석이 제시하고 있다. 2030세대 남성의 그릇된 욕망을 잘못된 방식으로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치적 이득을 보는 사람은 이준석이지만 국민의힘에는 결정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이준석 현상’의 한계는.

“지금처럼 이준석 혼자서 조명받고 개인플레이를 하면 앞으로 중도층 흡수와 외연 확장은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젊은 세대가 지지하고 윗세대가 동의하고 공감한다면 당 지지율이 급격하게 올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준석은 비전과 철학이 없어서 트럼피즘 (2016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열광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미국은 지난해까지 트럼피즘이 횡행하면서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으로 묘사하거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주장 등 미국 정치계에서 수준 이하라고 평가받던 사안이 백인 보수층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을 하는 것이다. 지금 이준석 현상은 대한민국판 미니 트럼피즘이다. 이 현상이 오래갈 수 있을까? 보수가 기껏 변화한 모습이 그 정도라고 하면 저만 해도 타도 투쟁을 할 것이다. 이것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이준석은 보수를 다운그레이드하는 데 그칠 것”


이준석 현상이 보수 혁신에 부정적이란 뜻인가.

“혁신, 변화는 보수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인데 지금 상황은 다운그레이드다. 옛날보다 더 나쁜 쪽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고 그가 주장한 ‘실력주의’로 간다면 국민의힘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그의 주장은 전통적인 ‘시장만능주의 보수’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기 때문이다. 변화를 바랐던 중도층도 결국 ‘국민의힘은 구제 불능’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수 없이 민주당을 선택할 수도 있다.”

보수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공정한 경쟁까지는 오케이. 다만 탈락한 사람, 실패한 사람까지 보듬어야 한다. 이 정도가 보수에서 할 수 있는 충분한 대답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보수의 여러 인물이 하고 있다. 최근의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보수를 내세웠고, 박형준 부산시장도 공동체 회복을 이야기한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신(新) 정강·정책은 오히려 진보 쪽에 가깝다.”

진 전 교수는 여기에 더해서 메리토크라시의 발전적 승화를 제안했다. 동일한 출발선에 설 기회를 주는 사회, 투명한 과정, 패자를 보듬는 체제를 갖춰나가며 실력·능력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cho.kyuhee@joongang.co.kr

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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