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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특집] ‘바이든 전문가’ 유명환 전 외교 장관이 말하는 한·일 관계 복원 해법 

“악화된 관계 방치는 곤란, ‘제2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절실” 

■ 바이든 친절하고 겸손하지만 필요한 말은 솔직하게 하는 스타일
■ 한·일 관계 복원 문제, 국익 우선 생각하며 자주적으로 판단하라
■ 미·중 대치 더 악화될 경우 한국에 매우 어려운 상황 닥쳐올 수도
■ 임기 말 정부, 새 정책 발표·구상하기보다 아쉬웠던 점 보완해야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 개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유 전 장관 앞에 놓인 조형물은 1998년 4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 조셉 허드(중장) 미국 대표가 유명환 한국 대표에게 선물한 것으로, 한·미 동맹을 상징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기회가 될 때마다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맹 관계를 금전화했던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는 자못 다른 모습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 3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일을 앞두고는 “어떤 관계도 일본과 한국 간 관계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함께 힘을 모을 동맹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국내외 외교가에서 ‘바이든 전문가’로 통한다. 유 전 장관은 과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시절, 버락 오바마 정부와 한·미 정상회담을 10차례나 수행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의중을 읽어낼 만한 인물로 평가되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2008년 2월~2010년 9월)을 지낸 유 전 장관은 2007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는 주일 대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월간중앙이 6월 10일 서울 광화문 인근 유 전 장관의 개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한·일 관계 복원 방안을 물었다. 유 전 장관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미·일, 한·미 동맹을 축으로 하면서 동시에 한·미·일 3국간 긴밀한 협조를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 한·일 관계의 장기적인 악화는 큰 부담”이라며 “지속 가능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양국 국민 간 상호 존중과 이해를 증진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로 어떻게 지내시는지.

“사회 봉사 차원에서 서너 군데 공익단체의 좌장 역할을 맡아 일하고 있다. 1993년 한·일 양국 정상의 합의로 만들어진 ‘한일포럼’ 회장, ‘한일문화교류기금’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2017년에는 ‘한미동맹재단’을 설립하는 데 참여해 지금까지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 밖에도 ‘한반도평화만들기재단’, ‘아시아연구기금’, ‘이건희 한일교류재단’의 이사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은 성공적, 동맹 외연 확대 계기 마련”


▎2010년 7월 한·미 외교·국방부 장관 회담이 서울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태영 국방부 장관. / 사진:공동취재단
오바마 행정부 당시 한·미 정상회담을 여러 차례 수행했다. 그때 봤던 바이든 부통령은 어떤 인물이었나?

“2009년 1월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이 함께 취임했다. 그런데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에게 모든 정치적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바이든은 워싱턴 정가의 뉴스메이커라기보다 경험 많고 차분한 행정가의 인상이 강했다. 또 그는 오랫동안 미 상원의 지도적 위치에서 활동해 온 만큼 부통령의 역할보다 상원의 지도자 이미지가 더 크게 부각됐던 게 사실이다.”

바이든은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이라는 평가가 있다. 2013년 방한 당시 ‘미국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이 좋은 베팅이었던 적이 없었다’며 웃으며 말했던 게 대표적일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젊은 시절부터 불행으로 점철된 가족사를 경험했기에 항상 남에게 친절하고 겸손한 태도로 대하는 게 몸에 뱄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다. 2013년 방한 때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그런 발언을 한 것도 당시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후 ‘아시아 회귀 정책(Pivot to Asia)’을 표방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재균형(re-balancing) 방침은 공식적인 설명과는 달리 ‘대중국 봉쇄 정책’의 일환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 회귀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니 한국 같은 맹방(盟邦)이 중국에 줄 서지 말라’는 경고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나?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에서 대면 정상회담을 개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례적으로 공동성명에서는 한·미 양국이 앞으로 긴밀하게 협력해나가야 할 정책 방향을 분야별로 매우 소상하게 나열한 것도 특징적이라 하겠다. 한마디로 이번 정상회담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공동성명 내용이 잘 이행된다면 한·미 동맹은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로 발전되고, 그에 따라 경제·기술 동맹으로 외연이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일까?

“정치·안보·북핵 문제가 중요한 과제이겠지만, 장기적인 국익 관점에서 보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경제·기술 동맹’의 단계에 진입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반도체·배터리·의약품 등 미국의 주요 전략 품목 생산에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의 대기업들이 44조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 의향을 발표한 건 큰 성과라고 본다. 오늘날 국가 안보는 군사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상호 경제적인 이익을 보호하는 게 더 중요시되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안보의 개념이 포괄적으로 확대돼 자유민주주의의 확산 등 가치 동맹, 경제 동맹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쿄올림픽 한·일 정상회담은 최상의 시나리오”


▎2019년 서울에서 열린 제51회 한일경제인회의. 왼쪽부터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손경식 한국경영장총협회 회장,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김윤 한일경제협회 회장, 사사키 미키오 일한경제협회 회장,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 고가 노부유키 노무라 증권 회장. / 사진:연합뉴스
한·미 정상회담은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과 비교되고 있다. 햄버거(바이든-스가)와 크랩 케이크(문재인-바이든), 마스크(바이든-스가)와 노마스크(문재인-바이든)도 회자됐다. 여기에는 미국 측의 어떤 전략이 숨어 있을까?

“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하는 모습을 보면 각별히 신경을 썼다는 게 여러 군데에서 나타났다. 오찬 테이블 세팅도 (문 대통령이) 개인적인 친분을 느끼며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가깝게 배치한 것 같다. 메뉴 선택에서는 문 대통령의 개인적 취향도 고려했다고 하지만, 지금 워싱턴은 계절적으로 메릴랜드 ‘체사픽 베이’에서 잡히는 꽃게 살로 만든 ‘크랩 케이크’가 별미로 여겨지는 때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 장소에서도 문 대통령을 수행한 한국 기업인을 직접 거명하며 ‘생큐’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러한 의전적인 행동은 바이든 대통령의 개인적인 성격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보다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더욱 신경을 쓴 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속적으로 ‘한·일 양국은 관계를 복원하라’는 메시지를 낸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한·미·일 3국 간의 긴밀한 협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대아시아 안보 전략은 동서 냉전 기간을 포함해 전후 70여 년 이상 큰 어려움 없이 성공적으로 잘 운영됐다고 본다. 한반도 유사시 주한미군의 군사작전은 주일미군이 후방 보급기지의 역할을 담당하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2019년 한·일 간 무역분쟁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지소미아(GI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종료를 일본에 통보하기도 했지만, 미국이 적극 개입해 중지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앞으로 미·중 관계가 더 어려워질 경우 한·미·일 3국 간의 협력 필요성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군사·안보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무역통상·첨단기술 협력 분야에서 한·미·일 협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은 미국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측면에서 우리가 자주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양국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있다.

“지속 가능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국민 간의 상호 존중과 이해를 증진하는 게 병행돼야 한다.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인이나 외교관들 사이의 합의가 일반 국민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진정한 의미에서 관계 개선이 될 것이고, 또 그래야 오래갈 것이라고 본다. 1998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어업협정 파기 등 한·일 관계가 매우 악화됐으나,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일본 총리와 만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함으로써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웠다. 지금이야말로 ‘제2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7월 도쿄올림픽이 양국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까?

“개막식에 양국 정상이 나란히 참석하고, 그 기회에 별도의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양국 국민이 모두 올림픽 개막식을 주의 깊게 볼 것이기 때문에 양국 정상 간의 화해 제스처는 그대로 국민에게 전달될 것이다.”

“文 정부 외교 정책, 이념적 측면 작용한 건 아니었는지”


▎2008년 6월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에서 만나 환담을 나누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일본과의 관계는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한 측면이 크다.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이런 행태가 반복되지 않을까?

“과거 한·일 관계는 정치적·경제적으로, 지금보다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매우 밀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양국 모두 세대교체가 완전히 이뤄지면서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롭게 됐고, 양국 모두 신세대가 정치·경제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양국 관계에 위기가 찾아오면 과거처럼 자연적인 복원력은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악화된 한·일 관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국내 정치적 관점보다는 상호 전략적인 이해에 기초해서 정치적 자산을 투입함으로써 관계 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쿼드(QUAD) 가입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사실 쿼드를 처음 제안한 건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2016년 8월 케냐에서 개최된 ‘아프리카 개발 정상회의’에서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이 추진 중인 신실크로드 전략)에 대항하는 구상으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은 2018년 5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서 기존의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확대·개편하고 본격적으로 일본·호주·인도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인 쿼드 제도화 움직임과 관련해 일본도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용어 대신 ‘인도-태평양 구상’이라고 지칭함으로써 군사적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이를 감안해 바이든 행정부도 쿼드의 활동 범위를 비군사적인 분야의 협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쿼드 활동에 참여한다고 해서 중국이 한국만 떼어내서 보복 조치를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쿼드는 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다. 2020년 8월 31일 스티븐 비건 당시 미 국무부 부장관이 쿼드를 공식 국제기구로 만들 뜻을 밝힌 데 이어 한국·베트남·뉴질랜드 3개국을 더한 ‘쿼드 플러스’로 확대할 의도를 내비쳤다.

지난 4년 동안 문재인 정부의 외교에 대해 평가해달라.

“전직 외교부 장관으로서 후임 정부의 외교 정책을 평가하는 건 매우 고역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간 외교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경제적 현실보다는 이념적 측면이 더 많이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 외교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자유민주주의, 법의 지배, 인권, 시장경제 등의 가치관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로 나온 공동성명을 통해 이러한 의구심이 충분히 해소됐다고 평가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부분은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보다 조금 먼저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 관계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로 인해 한국에 과도한 방위비 분담을 요구했다. 지난 70여 년 동안 혈맹이라고 자랑해온 한·미 관계가 50억 달러라는 방위 공약 청구서로 변질되는 위험에 직면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당황하지 않고 대응 협상팀을 구성해 미국을 줄기차게 설득해나가면서 시간을 벌었고, 결국 바이든 행정부까지 끌어오면서 상호 원만한 합의점을 끌어낸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일 관계가 지속해서 악화돼 결국에는 경제 보복을 넘어 안보 문제까지 확대된 것은 앞으로 한국 외교에 여러 면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염려가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 자산의 압류조치, 위안부 합의에 대한 현 정부의 거부감 등으로 인해 한·일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지금의 상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한쪽만의 노력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이기에 한·일 양국 정상 간에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이 나서는 것보다 한·일 양국의 지식인들이 먼저 나서서 양국 관계 개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한·일 관계 개선 위해 양국 지식인이 나서라”


▎2009년 3월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가운데)과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무대신(오른쪽),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이 경주 불국사를 둘러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미국과의 동맹 강화 분위기 속에서 중국과는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야 할까?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국가이자 최대 투자 대상국으로 상호 경제 의존도가 높은 만큼 한국 경제에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경제적인 사실을 고려할 때 중국과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위상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훼손하면서까지 중국과의 관계를 강조할 수는 없는 게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균형외교를 통해 미국·중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해왔으나, 미·중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경우 매우 어려운 상황이 닥쳐올 수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 질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과 경제·기술 동맹 관계를 유지·강화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5·21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돌아보면 지난 30여 년간 중국의 굴기(屈起)로 인해 동북아시아에서 구한말과 같은 패권 경쟁이 재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이로 인해 최근 미·중 관계가 크게 악화됨으로써 한국은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7년 당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은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는 방공 무기인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면서 경제 보복을 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아직도 한·중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외교·안보 문제로 인한 갈등을 경제 보복으로 해결하는 중국의 태도는 많은 한국인에게 분노와 경각심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한·미 동맹 유지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 필요”


▎2010년 7월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담 기념 사진을 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았다. 임기 말에 접어든 정부는 어떻게 외교를 해야 하나?

“외교 정책은 ‘국내 정치의 연장’이라는 이야기처럼 양자 간의 상호 연관성은 클 수밖에 없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현 정부가 새로운 외교 정책을 구상하고 발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지금까지 전개한 외교 정책을 돌아보고 아쉬웠던 점을 보완하는 게 최선의 방안일 것이다. ‘그간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한 건 아니었는지’ 의구심도 있었으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미 정상회담으로 이 같은 우려는 잘 해소됐다고 본다. 그러나 소원해진 일본과의 관계는 외교적 부담으로 남아 있는 만큼 이를 개선할 방법이 모색되길 기대한다. 물론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는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종군 위안부 문제는 양국 지도자의 정치적 결심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역사 인식과 관련된 현안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일본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도쿄올림픽 개최에 지장을 받고 있다. 또 스가 총리는 10월 이전에 총선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이기에 외교보다는 국내 정치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본의) 정치적 결단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끝으로 한국 외교의 나아갈 길에 대해 말해달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우리 외교는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1세기 동안 한국이 겪어온 고난의 역사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청일전쟁·러일전쟁·중일전쟁·태평양전쟁 그리고 동족상잔의 6·25 전쟁을 겪는 동안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됐다. 이러한 역사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외세의 압력을 무력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언론의 자유, 법의 지배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함께 추구해온 한·미 동맹은 지난 70년 이상을 거치면서 그 효용성이 충분히 입증됐다고 본다. 그간 한·미 동맹이 우리를 뒷받침해줬기에 중국은 한국의 정체성과 주권을 존중해왔다고 생각한다. 한·일 관계에서도 미국이 줄곧 관심을 갖고 양국 간 선린 관계가 잘 유지되도록 노력해온 게 사실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한·일 간 국교 정상화 협상이 개시된 것도 미국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많은 사람이 한국전쟁이 종료된 1953년 체결된 한·미 동맹을 물이나 공기처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의 비석에는 ‘자유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한·미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선임기자 isshin@joongang.co.kr

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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