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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 리포트] 한·미 정상회담 이후의 과제 

우려 씻은 ‘171분’의 교훈, 일구이언(一口二言)은 금물 

안보에서 경제로 확장한 한·미 동맹 확인한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
북한의 반발과 북·중 간 밀착은 변수 될 것… 관계 재설정 필요해


▎5월 21일 백악관에서 단독 회담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마스크를 벗은 채 오찬을 겸하는 장면이 이색적이다. / 사진:연합뉴스
5·21 한·미 정상회담은 문 대통령이 했던 과거 어느 정상회담보다 화끈한 결과를 가져왔다. 사석에서 안보 전공자인 필자에게도 문 대통령이 어떻게 그렇게 확 변했는지 이유를 궁금해하는 주변 인사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마도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워싱턴보다 평양과 베이징에 경도됐다는 세간의 인식을 한 번에 불식시킨 1만7000자의 공동성명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문 대통령은 5월 20일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이번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이 재임 중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이든의 초청으로 9월 중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워싱턴에서 개최한다는 보도가 있으나 5·21 정상회담과 달리 한·미·일 삼각 동맹의 복원이 목적이라서 차원이 다르다. 한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와 싫든 좋든 4년간 동고동락해야 한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로 한·미 관계가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에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했다.

청와대는 4년간의 왜곡과 파열음을 극복하기 위해 역대 어느 정상회담보다도 신경이 쓰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함께 미국 행정부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교체됐기 때문에 현안 조율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백신, 북핵 및 동맹 회복은 물론 반도체와 배터리 등 경제협력을 비롯해 한·미 간에 주고받을 현안이 적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류 동맹으로 격하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깊었던 한·미 동맹의 강화(revamp)는 워싱턴 입장에서 시급한 과제였다. 결국 회담 시간을 훌쩍 넘겨 참모로부터 “예정시간이 지났다”는 쪽지가 들어왔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 대통령과의 대화를 즐겼다고 언급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기에 앞서 지난 4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우선 미·일 정상회담은 한 시간 내외의 햄버거 미팅이었지만, 이번 회담은 171분간이나 진행됐고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가 오찬 메뉴로 올라왔다. 한·미와 미·일 정상회담의 외견상 가장 큰 차이는 노마스크였다. 2회 백신 접종자는 마스크를 벗는다는 규정에 따라 한·미 정상은 훨씬 부드러운 여건에서 만났다.

마스크 벗은 한·미 정상의 만남 외형은 성공적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9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 참석차 미국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래도 회담 안건은 세심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4월 미·일 정상회담은 조정해야 할 안건이 별로 많지 않았다. 이미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일본은 동북아 미국 외교의 초석(conerstone)으로서 전략적 모호성 전술로 중국을 고려해야 하는 한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도쿄는 전통적인 미·일 동맹 관점에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찰떡 공조를 유지해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골프광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도금된 금장 퍼터를 선물하고 골프장 벙커에서 미끄러지며 스킨십을 해왔다. 스가 총리가 도쿄에서 출발하기 전에 이미 사전 조정이라는 일본어 용어인 ‘네마와시(根回し)’에서 현안이 대부분 정리됐다. 다만 일본 입장에서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먼저 방미(訪美)해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상징성이 중요했다.

하지만 한·미 정상 간에는 논의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았다. 동북아의 린치핀(linchpin)인 한국은 전통적으로 동맹 내지 혈맹 관계이지만, 그동안 백악관에서 볼 때 모호한 입장을 가진 현안이 너무 많았다. 워싱턴은 한국의 ‘중국 눈치 보기’가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시절 부통령 자격으로 방한했던 바이든은 한국의 친중정책 가속화에 대해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돌직구를 날린 바 있다. 세월이 흐르고 중국의 국력이 빠른 속도로 강해지면서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말에 경도된 서울은 워싱턴 입장에서 리셋(reset)이 필요한 실정이었다. 미국은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中國夢) 실현에 관심이 높은 한국에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적극적인 딜(positive deal)’을 했다. 회담의 대차대조 분석을 안보와 비(非)안보 분야로 구분해서 살펴보자.

우선 안보 분야는 한국의 숙원이었던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 중량을 제한했던 미사일지침을 종료함으로써 42년 만에 미사일 주권을 확보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이 실전 배치되고 ICBM 및 SLBM과 같은 첨단 무기가 속속 선을 보이는 상황에서 이미 이명박 정부 때부터 ‘사거리 800㎞’의 한국산 미사일 규제가 의미를 잃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동북아에서 중국의 군사력 팽창을 억지하는 수단으로 한국의 미사일은 활용 가치가 있다.

20세기 냉전 시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무기 개발이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미사일지침은 미·중 충돌시대인 21세기에는 의미가 퇴색했다. 미사일지침을 종료하기로 한 건 ‘한국은 자주국방, 미국은 중국 견제’라는 키워드가 접점을 찾은 결과다. 미국은 동맹 관계를 바로잡고(repair), 상호 이익을 증진하도록 재창조(reinvent)해야 한다는 기조로 한·미 정상회담을 세심하게 기획했다. 김영환 전 의원의 지적대로 청와대에 탁현민이 있다면 백악관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오바마 행정부(2009~2017)의 부통령 시절부터 손발을 맞춰온 ‘그때 그 사람들’이 포진했다. 외교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이들은 바이든의 의중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바이든이 던진 음수사원(飮水思源)의 메시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사일지침이 개정됨에 따라 고체연료 사용 우주발사체 개발이 자유로워질 전망이다. 사진은 2017년 8월 24일 시험 발사된 사거리 800㎞, 탄두 중량 500㎏인 현무-2C 탄도미사일.
워싱턴은 한·미 간에 혈맹 관계를 강화하는 각종 행사를 통해 트럼프와는 품격이 다른 바이든 시대의 한·미 동맹을 상징적으로 과시했다. 외형적으로는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경제적으로는 투자 유치를 통해 명분과 실리를 모두 확보하는 노련한 외교를 선보였다. 36년간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전 세계 지도자를 만나본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의 두 가지 무기인 겸손과 국력의 절묘한 조합을 선보였다. 노병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무릎을 꿇어 문 대통령 역시 자연스럽게 같은 자세를 취하도록 정교하게 기획했다. 즉석에서 노병을 둘러싸고 한·미 정상이 양옆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은 한·미 동맹의 뿌리를 극적으로 상징해 언론 1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문 대통령은 6·25 전쟁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에 참석했다. 그동안 미국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전사자 추모의 벽은 있지만, 한국전쟁 전사자 추모의 벽은 없었다. 70년 전 김일성의 남침으로 희생된 미군 전사자는 3만6574명이다. 미국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린 94세 노병에 대한 명예훈장 수여식에 문 대통령을 초청한 것은 음수사원(飮水思源)의 메시지였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라는 사자성어는 오늘날 한국의 번영은 미국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의 한·미 동맹은 국내에서 연합훈련장을 찾지 못해 미국 모하비 사막까지 거론되는 지경이다. 함께 야전 훈련을 하지 않는 동맹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적어도 동맹은 적을 바라보는 시각이 동일해야 한다.

인도, 일본 및 호주 등과 함께하는 쿼드(QUAD) 참가를 둘러싼 정부의 애매한 입장은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지속됐다.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쿼드 참여와 대만해협에 관한 미국 입장 지지를 한국에 제시했다. 청와대 입장에서 백악관의 반중 전선 동참 요구는 모두 수용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미국과 주고받기 차원에서 간접적인 대중 포위망인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문장을 수용했다. 다만 쿼드는 당연히 접수 불가사항이었다. 미국은 두 가지 사안 모두, 아니면 차선으로 쿼드 참여 카드의 한국 수용을 요청했다. 하지만 한국은 B급 주제인 대만해협의 안정을 선택했다. 즉 한·미 간 거래가 A급이 아닌 B급 수준으로 이뤄진 셈이다. 당연히 한국의 A급 요청 안건인 백신 스와프도 이뤄지지 않았다.

세간에서 궁금해하는 문 대통령의 변심(?)은 북한 문제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복원을 통한 신속한 미·북 간 대화 재개는 문 대통령의 강력한 희망사항이었다. 문 대통령은 4월 [뉴욕타임스]와의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변죽만 올리고 성과 없이 끝났다며 미·북 간에 신속한 협상(kick-start) 협상을 주문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긴급 성명을 내며 발끈했다. 한·미 간 북핵 협상에 대한 시각차를 반영한 해프닝이었다. 한·미 정상회담 성명에서 문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대로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및 하노이 회담의 문구가 포함됐다.

文 임기 내 북·미 고위급 대화 개최될지 미지수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1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국전쟁 참전용사 명예훈장 수여식에서 참전용사 곁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청와대는 우선 임기 종료 전, 최소한 10월 중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판문점 도보다리의 스포트라이트를 되살려서 남북관계 발전을 자신의 대표 치적으로 내세우고자 한다. 하지만 하노이 노딜 이후 평양의 돌변으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미국을 통해 김정은의 틈새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평창올림픽 전후에는 능력 있는 중개자 입장에서 이제는 아예 일방 당사자에게서 패싱당하는 상황이다. 부동산 거래로 비유하면 복비까지 물어내야 할 판이다.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이지만 잘못하면 뺨이 세 대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과연 문 대통령의 희망대로 남은 임기 내에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북·미 간 고위급 대화가 개최될지는 미지수다. 북한 인권 개선 및 표현의 자유 등이 공동성명에 미국의 요구로 포함됨으로써 대화와 협상의 기조는 유지하지만, 비핵화의 원칙을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결정한 것은 “한반도의 완전한(total)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기회는 북한과 외교적으로 관여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이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북한이 실제로 관여(engagement)를 하고자 하는지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다”며 “공은 북한 코트에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은 부통령으로서 2012년 2·29 미·북 간 윤달 합의서가 잉크도 마르기 전에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을 지켜봤다. 트럼프는 최근 김정은과 자신이 잘 지냈다고 주장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트위터로 미·북 정상회담이 리얼리티 쇼처럼 개최되는 시나리오는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트럼프처럼 김정은 위원장과 미사여구로 포장된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바이든은 한국의 요구대로 대북특사에 성김 대사를 임명하고 대화를 제안했지만 ‘환상은 없다’며 선(先)비핵화 원칙을 강조했다. 특히 대만의 존재감이 워싱턴 외교가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민주당 크리스토퍼 쿤스 의원 등 3명이 6월 6일 군용기에 75만 명분의 백신을 싣고 타이베이 공항에 도착해 차이잉원 총통을 만나는 등 워싱턴의 관심은 온통 대만 일색이어서 과연 북한과의 회담이 조기에 개최될지 미지수다. 미·중 갈등이 증폭될수록 대만의 주가는 역설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평양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안보 문제에서 과거와 다른 특이한 진전은 한·미 정상회담 발표문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의 유지를 언급했다. 당연히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는 표현이었다.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인 한·중 관계를 고려할 때 대만 문제는 한국에는 민감한 부분이었지만, 워싱턴으로서는 최우선 과제였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면계약이나 미국의 압력이 있었느냐는 미국 기자의 첫 질문에 바이든은 문 대통령을 향해 굿럭(good luck!)이라고 언급했다. 한국의 44조원 투자보다도 대만에 대한 한국의 입장 변화가 미국 언론에는 더 큰 관심사항이었다.

한·미, 이념 동맹에서 경제 동맹으로 진화는 성과


▎6월 6일 미 공군 C-17 글로브마스터3 수송기가 미 연방 상원의원 3명과 대만에 제공하는 코로나19 백신을 싣고 대만 타이베이 101빌딩을 지나고 있다. / 사진:자유시보 캡처
안보 문제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한국의 쿼드 참여 논의가 정상회담에서 공론화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대만 문제에서 미국에 양보했지만, 중국을 고려해 미국의 핵심 요청 사항인 쿼드 참여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한·미 간에 백신 스와프가 이뤄지지 못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정상회담에서의 주고받기는 양과 질적인 면에서 균형추가 맞아야 한다. 서울에서 내놓은 카드에 쿼드가 없으니 워싱턴에서 제시한 문안에도 백신 스와프가 있을 수 없다. 정상회담은 화려한 리본으로 포장한 선물상자를 교환하는 의전행사다. 선물상자의 국익 무게가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거래는 용이하지 않다. 아무리 동맹 관계지만 21세기 국제정치는 바로 그런 것이다. 신흥 강국이 기존 강국을 위협해 충돌이 발생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사례는 그레이엄 엘리슨 하버드대 교수에 의해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으로 명명돼 21세기 미·중 간의 갈등을 상징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쿼드 참여에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해왔고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의 쿼드 참여에 의미 있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정의용 장관을 비롯한 외교 책임자들은 미국으로부터 쿼드 참여의 요청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미국은 한국이 쿼드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핵심이익에서 교환이 불가함에 따라 백신 스와프는 없었고 미군과의 연합훈련 명목으로 55만 명분의 백신만 제공했다. 모더나 등 미국산 원료를 활용해 한국 공장에서 백신을 생산한다는 계획은 단기적 과제라기보다 중기적인 협력 사업이다. 특히 시기와 물량 등 구체적인 사안은 향후 비즈니스 측면에서 검토될 수밖에 없다. 백신 물량의 확보는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이번 회담의 성패를 좌우하는 분야였다. 한·미 간에 백신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확고한 안보적인 토대가 마련돼야 ‘백신 스와프’, ‘백신 글로벌 허브’ 등이 가능하다. 하지만 안보적인 토대가 확고하지 못함에 따라 ‘백신 생산 협력’이라는 포괄적인 내용에 그쳤다. 요약하면 전통적인 동맹 회복에 외형은 갖췄지만, 내용은 보완할 부분이 적지 않다. 핵심 이익의 교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2021년 한·미 관계의 현주소다. 첫술에 배부르기는 어려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실용적인 의제들인 경제 문제에서는 미국의 투자 요청이 수용됐다. 정상회담 현장에서는 역시 경제가 중요한 국력이라는 사실을 참석자 모두가 느낄 수 있다.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의 재편과 같은 경제 이슈는 향후 한국경제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한국 기업인들은 44조원의 대미 투자를 약속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기립 요청을 받으며 ‘Thanks’라는 말을 세 번이나 들었다. 양국 간 반도체 투자와 첨단기술 협력, 공급망 협력 강화 약속은 매우 값진 성과이며 한·미 동맹이 안보를 넘어 경제 동맹으로 나아가는 로드맵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싹쓸이하고 있는 원전 수출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했다. 러시아는 12개국에서 29기의 원전 건설을 수주했다. 국내 탈원전 정책의 재검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설계 등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과 손을 잡는다면 해외 원전 수출경쟁력을 높일 것이다.

이제 문 대통령 앞에는 새로운 과제가 놓였다. 우선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은 북한의 반발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한·미 정상회담 9일 만에 국제문제평론가 김명철 명의로 된 ‘무엇을 노린 미사일지침 종료인가’라는 글을 통해 한·미미사일지침 종료 발표에 대해 미국의 고의적인 적대행위라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에 대해서는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지침 종료 사실을 전한다고 설레발을 치면서 지역 나라들 조준경 안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밀었다”면서 “일을 저질러놓고는 죄의식에 싸여 이쪽저쪽의 반응이 어떠한지 촉각을 세우고 엿보고 있는 그 비루한 꼴이 실로 역겹다”고 비난했다. 다만 정부는 외무성이나 김여정의 담화가 아니라 평론가로 명패를 단 만큼 북한이 수위를 조절했다고 위안으로 삼고 있다. 청와대와 통일부는 다시 한번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을 기획하고 있다.

한·미 동맹 강화에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북한의 반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 도중 대북특별대표에 성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오른쪽)을 임명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다른 변수는 북·중 간의 밀착이다. 한·미 정상회담 5일 만에 베이징에서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이용남 주중 북한 대사의 전격 회동 뉴스가 발표됐다. 외교부 청사나 북한 대사관이 아닌 댜오위타이(釣魚台) 국빈관에서 만찬회동이 이뤄졌고 노마스크인 두 사람은 팔꿈치를 맞대고 기념촬영을 함으로써 워싱턴의 노마스크 한·미 정상회담 사진과 동급 장면을 연출하는 데 주력했다. 왕 부장은 “중국은 부임 직전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이용남 대사의 업무 추진에 모든 편리를 온 힘을 다해 제공하겠다”면서 “북·중은 산과 물이 이어진 우호적인 이웃으로 양국의 전통 우의는 진귀하고 보배로운 재산”이라고 강조했다. 왕이의 발언이 끝나자 이용호 대사는 “최근 북·중 우호 관계는 양국 최고지도자의 깊은 관심과 지도 아래 새로운 수준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강화·발전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동북아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을 적나라하게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2016년 5월 27일 오바마 전 대통령이 히로시마에서 원폭 추모비에 헌화하자 5일 만인 6월 1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이 북한 리수용 위원장을 면담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으로 미·일이 밀착한다고 판단한 중국은 즉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북한을 불러내서 혈맹을 과시했다. 5년 만에 워싱턴과 베이징이 한·미 대 북·중의 대립 구도를 다시 선보였다. 중국은 북·중 밀착과 동시에 대만 언급을 놓고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는 정중동의 양상을 보임으로써 한국은 대중국 외교를 슬기롭게 풀어나가야 하는 과제가 부상했다.

우회전 방향지시등 켰으면 확실하게 우측 주행해야

8월 한·미 연합훈련 재개 역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문 대통령은 회담 직후 “미국은 동맹 차원에서 한국군 55만 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직접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군과 미군은 자주 접촉하고 있다”며 “모두의 안녕을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백신 지원 발표를 두고 “주한미군에 이어 한국군까지 백신 접종을 완료하게 되면 더는 연합훈련을 연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정의용 장관은 바이든 정부가 한국군 55만 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해주는 것과 한·미 연합훈련 재개는 관련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문재인 정부는 근본적으로는 연합훈련에 강력히 반발하는 북한을 의식했으면서도 군대 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연합훈련 축소 및 연기 이유로 내세워왔다.

정의용 장관은 5월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한국 정부가 코로나를 이유로 한·미 연합훈련을 하지 않으려 하니 백신을 공급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고 “우리 군에 대한 백신 공급이 한·미 연합훈련을 위해서 공급했다는 것은 그 취지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미국이 한국군에 지원하기로 약속한 코로나19 백신 55만 명분은 연합훈련 재개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은 “백신 공급과 별도로 한·미 연합훈련의 시기, 규모, 방식은 군 당국 간 협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문 대통령은 5월 26일 5당 대표 오찬 간담회에서 8월로 예상되는 하반기 한·미 연합훈련에 관해 “코로나19로 대규모 군사훈련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해 올해 실시 여부도 불확실해진 상황이다.

5·21 정상회담 선언문은 역대 정상회담 발표문 중 가장 길다. 소논문 수준으로 주제도 매우 다양하고 과거, 현재 및 미래 시점의 과제를 담았다. 심지어 제1기 풀브라이트 장학생들의 상대국 방문이 60주년을 맞이했다는 내용까지 담았다. 문재인 정부에게 한·미 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지도하는 수준이었다. 과거에 당연했던 가치까지 동상이몽의 해석이 횡행함에 따라 미국 입장에서 장문의 문서를 공식 기록으로 남겨 한국의 이탈을 방지하겠다는 계산이 깔렸다고 볼 수 있다. 공동선언의 마지막 중간 제목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포괄적 협력’이었다. 5G·6G, 수소 에너지 및 항공우주협력을 위한 아르테미스 협정(Artemis Accord) 등 미래 기술분야 개발 협력 등 다양한 의제를 포함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20만 명,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200만 명 등 양국 간 활발한 인적 교류를 강조했다.

향후 청와대는 중국 및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워싱턴과 공유했던 원칙들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아야 한다. 우회전 방향지시등을 켰으면 확실히 우측으로 주행해야 한다. 일구이언(一口二言)은 매우 신중히 해야 한다. 스가 일본 총리에 이어 두 번째 백악관 대면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팬데믹 시대에도 한·미 동맹이 중요한 동북아의 린치핀(linchpin)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가치동맹으로 진화한 한·미 관계는 밑그림은 그렸지만 넘어야 할 언덕은 적지 않다. 특히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와 출범 124일째인 바이든 행정부 간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핵심 의제 순위도 일치하지 않는다. 요약하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한·미 정상회담은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여전히 해결이 필요한 과제는 산적해 있다.

-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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