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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와 목민관 대담]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김헌영 강원대 총장이 말하는 ‘강원도의 힘’ 

최문순: “미래 SOC는 비용 대비 편익이 낮은 곳에 투자해야”
김헌영: “미지의 땅 DMZ와 자연환경… 4차 산업혁명에 더 각광” 

■ “불공정·불평등·빈부격차 해소가 국민이 바라는 시대정신”
■ “강원도는 원래 외국인 활동의 주 무대이자 혁신의 고장”
■ “통일 초석 놓는 남북 공동과제 수행 강원대학교가 주도”


▎최문순(왼쪽) 강원도지사와 김헌영 강원대 총장이 6월 7일 춘천시 강원도청 앞에 설치된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 옆에서 만났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한 강원도가 근세 이전에 한반도의 주요 플레이어로 활약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진이 2005년에 펴낸 [우리 역사문화의 갈래를 찾아서- 태백문화권]에는 강원도의 화려했던 시절이 이렇게 기록된다.

“한반도 동부에 위치한 태백은 남북을 연결하는 통로였으며, 영남과 관북(함경북도)을 서울로 이어주는 중심에 놓여 있다. 전통시대 이래로 생활권·문화권은 물길·산길 등의 교통로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911년 철원을 수도로 하는 태봉을 세운 궁예는 918년 왕건을 추대한 측근세력에 의해 숙청되고 말았다. 신라에 저항하면서 독자적 역사문화를 유지해왔던 태백문화권의 정치세력은 이후 역사의 주도권을 한강 하류에 자리한 정치세력에게 넘기고 오랜 침체에 빠져들었다.”

실로 한반도 주요 물줄기는 강원도에서 시작된다. 한강의 발원지는 태백산 검룡소, 낙동강의 발원지도 태백산의 황지연못이다. 개항기 강원도는 러시아에서 오는 신문명의 통로였고, 태백~원산 라인은 영국이 원산에 국내 1호 골프장을 조성할 정도로 외국인이 붐비던 무대였다. 이런 강원도가 일제 강점기 자원 수탈에 시달리더니 한국전쟁 이후에는 분단지역으로 굳어지면서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최근 강원도에 ‘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북한 지도부가 참관하고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강원도를 세계에 알리는 세기의 이벤트였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강원도가 통합과 번영의 상징으로 거듭났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강원도 홍천군 일대 120만㎡ 규모 부지에 한국과 중국의 문화를 테마로 한 관광단지인 한중문화타운 사업이 추진되면서 국내외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 왜곡 논란을 빚은 한국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전격 종영되면서 동북공정 등에 대한 반중(反中) 정서가 고조되던 와중에 한중문화타운도 덩달아 도마에 올랐다. 지난 3월 하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을 철회해주세요’란 제목으로 글이 올랐다. 4월 28일 마감된 이 청원에 67만 명이 넘는 이가 동의하는 등 여론의 뭇매가 쏟아지면서 이 사업은 결국 백지화 수순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강원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2등은 시끄럽다’던 어느 광고 카피처럼 변방에 자리한 강원도가 이런 희열과 진통을 거쳐 글로벌 지자체로 도약하는 걸까? 6월 7일 강원도청에서 진행된 최문순 지사와 김헌영 강원대 총장의 대담은 장차 발현될 ‘강원도의 힘’을 가늠해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겨냥한 한중문화타운 조성 사업이 ‘차이나타운’ 역풍에 휘말려 좌초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최문순 강원도지사_ (한중문화타운 조성 관련) 비판 여론은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바로 혐오, 증오 같은 정서들인데 이들로 인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의혹들이 마구 분출됐다. 마치 완충지대가 사라지고 진영으로 대치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까지 몰고 갈 사안이 아닌데도 말이다. 양극단으로 나뉜 한국 사회가 분쟁과 갈등을 조율할 힘을 상실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원도는 관광과 수출로 먹고사는 지역


김헌영 강원대 총장_ 사실 한국과 중국은 지리적 근접성과 더불어 역사·사회·문화 등 많은 영역을 공유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슈와 변수가 지속해서 돌출될 수밖에 없다.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대(對) 중국 정책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최 지사_ (한중문화타운 문제에) 어떻게 답할 게 별로 없더라.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비판이 쏟아지니까. 거기에다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욕을 많이 얻어먹는 것밖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더라. 한중문화타운은 잘못 알려진 것처럼 중국에 땅을 팔아 중국인 집단거주시설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테마를 주제로 한 ‘관광단지 조성’ 사업일 뿐이다. 그 사업은 강원도가 하는 사업도 아니다. 코오롱글로벌이라는 민간기업이 자기 자본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일 뿐이다. 강원도는 사업 관련 인허가를 진행하고, 부동산 투자이민제 등 법에 정해진 대로 외국자본에 혜택을 주는 정도이다. 강원도는 관광과 수출로 먹고사는 지역이고, 그런 점에서 중국은 무시할 수 없는 거대 시장인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외국 자본을 유치하지 못해 발을 구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분위기가 일순간 바뀐 것이다.

이런 일들은 그냥 벌어지진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과 별개의 근원적 불만 요소가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최 지사_ 내 생각에는 빈부격차라는 기저질환이 저변에 있는 것 같다. 불공정, 불평등, 빈부격차로 인해 양극단으로 쪼개진 한국 사회에 가짜뉴스가 침투하면서 혐오 정서가 불시에 분출하는 것 같다. (한중문화타운 반대를 불러온) 반중 정서나 최근의 반(反)페미니즘은 과거에 못 보던 현상이다. 빈부격차라는 기저질환이 혐오 정서로 외화됐다는 게 내 나름의 해석이다.

김 총장_ 큰 흐름에서는 문화 교류, 사람 교류를 늘리고 혐오 감정을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정보의 불충분으로 인해 발생하는 막연한 불신이 지방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또 외국인과 다른 국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서 투명한 정보 제공, 지역사회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최 지사는 지난 6월 3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최 지사_ 서울·부산 보선에서 우리 당이 회초리를 맞고서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서울, 부산뿐만 아니고 내가 있는 강원도 또한 민심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국회의원 숫자는 여당이 많을지 모르지만, 민심은 야당에 가 있다. 이는 전국적 현상이다. 그런데도 당은 그 심각성을 잘 못 느끼고 있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현장에 있는 정치인이다. 해법에 능한 사람도 결국 현장을 아는 정치인이다. 그리고 불공정, 빈부격차는 변방으로 갈수록 피해가 커진다. 바꿔야 한다는 절실함의 강도도 더 세다. 변방에 있는 사람은 멀리서 (중앙 정치를) 보니까 시야도 크고 넓다. 한번 변화를 일으키면 엄청난 반향을 가져올 수 있다. 지금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정책을 보면, 폄훼하는 거 같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판을 바꿀 의지가 박약한 ‘좁쌀 정책’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그들은 복지정책을 통해 빈부격차를 어떻게 해보려 한다. 무슨 ‘기본XX’, ‘무상XX’ 시리즈가 전부다. 그런 복지나 수당, 지원금으로는 빈부격차, 불공정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돈과 권력의 집중을 불러오는 신자유주의 구조를 바꾸고, 대한민국이 청년의 취직을 정부와 기업이 책임지는 고용 중심 국가로 가야 한다. 그러자면 크게 판을 뒤집어야 하고, 나라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제 슬로건이 ‘대한민국 완판남(대한민국의 판을 완전히 바꿀 남자)’인 것도 그런 배경을 갖고 있다. 나는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니까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당락과 관계없이 내가 할 얘기는 해야겠다는 결심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지역 사이에서도 2차 불균형 심화”


지역과 교육 격차 해소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는 이가 김 총장이라고 하겠다. 대한민국은 지역균형발전을 얘기하면서도 중앙집중, 중앙중심주의가 더 심화하고 있다.

김 총장_ 정부는 지역균형 뉴딜을 한국판 뉴딜의 핵심이자 국가균형발전의 중심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대학 행정을 하다 보면 정부가 생각하는 균형발전의 콘셉트가 뭔지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끼리 경쟁하는 걸 지역균형발전이라고 보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인구와 재정 규모가 큰 지자체들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이는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에 2차 불균형을 안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지역균형발전은 낙후된 지역일수록 기초 체력을 더 보강해주는 게 최우선이어야 한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을 예로 들어보자. 춘천·포항·나주·청주가 경합을 벌여 청주가 낙점을 받았다. 원주가 10년 이상 공을 들인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도 뒤늦게 뛰어든 대구와 오송으로 결론이 났다. 이런 식으로 도세(道勢)가 약한 강원도가 거듭 밀리면서 강원도에는 국가 주도의 대단위 핵심 연구 사업이 하나도 없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최 지사_ 김 총장 말대로 강원도는 대한민국 인구의 3%만 산다는 이유로 이른바 ‘강원도 디스카운트’라는 불이익을 받는다. 중앙정부는 국고 지원금을 주거나 국책 사업을 추진할 때 지자체가 대기업과 협업하는 걸 선호한다. 반면 지자체가 중소기업과 컨소시엄을 만들면 정부는 잘될까 의심부터 한다. 행여 사업이 제대로 안 돼서 책임을 지게 될까 봐 결정을 미루기도 하더라. 우리나라가 이렇다. 대기업은 일하기 편하고 중소기업은 홀대를 받는 나라다. 그러다 보니 승자독식·약육강식·무한경쟁에 내몰린다. 이 와중에 강원도는 여기저기에 다 빼앗기는 신세에 불과하다. 주요 국가 의사결정에서 늘 소외되는 곳이 강원도다. 우리도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이런 풍조는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에 들어가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관철된 뒤로 더 악화했다.

대학 입장에서도 차기 정부에 주문할 게 많을 것 같은데.

김 총장_ 먼저 대학 입시제도를 들고 싶다. 어떤 정부든 입시제도에 가급적 손을 대지 말아줬으면 한다. 주어진 틀 속에서 수정 보완만 해도 된다. 이미 잘못된 형태로 주어진 제도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잘 활용하는 게 좋겠다. 문제가 있다고 일거에 뒤집어 없애버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런 데서 오는 비용이 기존 제도를 유지하는 비용보다 클 때가 있다. 둘째로는 앞으로 지역사회와 대학은 따로 갈 수 없는 운명으로 수렴된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강원도의 경우 양자 간 관계 재설정이 더 시급하다.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신사업, 전략 산업을 발굴할 때 행정을 집행하는 지자체와 인적자원의 보고인 대학이 2인3각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획 단계부터 양쪽이 머리를 맞대고 사업 모델이 완성되면 운영을 과감하게 대학에 일임하는 방식을 권하고 싶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자체의 특정 부서 업무와 권한이 통째로 대학에 이월될 수도 있다. 강원 삼척 인구는 6만9000여 명이다. 이 중 강원대 삼척 및 도계 캠퍼스 학생 수가 5900여 명이다. 교수만 270명에 달한다. 강원도나 삼척시의 리더가 이들 인력을 잘 활용하면 지역사회 발전을 충분히 도모할 수 있다. 삼척시의 사업 입안과 확정, 추진 과정에 대학이 참여한다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자체와 대학의 예산·조직·업무 구조가 그에 걸맞은 방향으로 재조정돼야 한다.

한국의 대통령이 대부분 불행해지는 이유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 입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인재가 풍부한 지역 소재 대학을 행정에 적극 투입, 활용하는 방안이 지역사회 발전 차원에서 검토될 수 있을까?

최 지사_ 전향적인 제안이기는 한데 기본 토양이 갖춰져야 가능한 일이다. 강원도청, 강원대 모두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지원받는다. 내려오는 예산별로 용도와 항목이 마치 칸막이처럼 나뉘어 있어 수평으로 벽을 허물고 통폐합해서 새로이 활용할 수 있는 재량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새 아이디어가 있어 강원도와 강원대가 손잡고 사업을 하고 싶어도 중앙정부의 예산 지침에 묶여 운신의 폭이 좁다는 말이다. 강원도청 내부에서조차 예산을 통합해 집행하기가 여의치 않은 것처럼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지침과 규제에 얽매이다 보니 지역 실정에 맞는 자율적이고 역동적인 행정을 펴는 데 애로가 많다. 한국은 나라 전체가 국가주의, 전체주의, 통합주의 영향권에 들어 있다. 예산 분배 구조를 뜯어고쳐 지자체와 대학에 뭉텅이로 돈을 줘야 한다. 지출하면 절대 안 되는 조건을 붙여서 그 외 지출에는 탄력적으로 활용하는 길을 여는 일종의 네거티브 시스템을 도입했으면 한다.

수도권은 점점 비대해지고 지역은 그에 비례해 오그라드는 형국이다. 인구가 적은 지역은 갈수록 정책적 배려에서 멀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최 지사_ 그렇다. 국가 정책 집행 과정을 보면 대부분의 투자에서 수도권이 우선시된다. 국가 대계를 생각한다면 지금과는 정반대로 가야 한다. 예비타당성조사는 경제성을 따져 사업의 시행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의 하나다. 사회간접자본의 경우 경제성을 따질 게 아니다. 오히려 경제성이 낮게 나오는 곳에 깔아야 한다. 이미 서울 등 수도권은 도로·철도·항만·공항 등 모든 인프라가 우월한 까닭에 사람이 몰려든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이는 다른 지역을 희생시킨 결과다. 장구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선진국들은 우리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미국·독일·프랑스 모두 국가 제도를 분권 지향적으로 설계했다. 히틀러식 중앙집권주의 폐해를 경험한 독일은 헌법에 중앙집권주의는 반(反)독일적이라는 정신을 담고 있다. 프랑스 역시 헌법 1조에 지방분권화를 명문화하고 있고, 미국은 연방제 국가다. 이들 국가가 분권을 강조하는 건 빈부·문화·지역·교육 등 주요 분야별 격차가 중앙집권구조에서 온다는 경계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돼 있는데,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분권도 안 돼 있고 소수의 인원이 예산과 정책을 좌우하는 중앙집중형 권력국가일 뿐이다. 형식상의 민주주의는 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구현되지 않는다. 한국의 대통령이 대부분 불행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의 능력은 유한한데 권력이 집중되다 보니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고 매번 안 좋은 결말로 치달았다.


▎강원도 철원군 소이산에서 바라본 철원평야가 수확 철을 맞아 황금 들판을 이루고 있다. 강원도는 철원이 통일 한국의 수도가 되리라 기대한다. / 사진:연합뉴스
김 총장_ 전쟁 이후 휴전선이 가로놓인 강원도는 철원부터 고성까지 5개 군이 비무장지대(DMZ)와 맞닿아 있다. 한반도 안보와 통일을 준비하는 데 있어 강원도가 엄청난 비용을 떠안고 있다. 천혜의 자연·관광 자원을 자랑하는 강원도는 한반도의 허파이자 도시 생활에 찌든 시민에게 힐링 공간이기도 하다. 강원도의 관광 상품도 산업화와 결부될 때 훨씬 더 친환경적 면모를 돋울 수 있다. 강원도가 낙후된 상태로 머문다면 관광산업도 발전하기 어렵다. 세련되고 쾌적한 환경이 더해질 때 찾아오는 관광객도 증가한다.

최 지사_ 공감한다. 중앙에 집중된 권력과 희소 자원을 분산할 때 풀릴 문제들이다. 권력 분산, 돈 분산, 문화 분산을 해야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헌법 가치도 구현할 수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한계에 직면해 있다.

김 총장_ 교육자로서 지역 교육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온라인 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글로벌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학생마다 아바타 한 명씩 두고 메타버스에서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기술과 체계를 실습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새로이 등장하는 학문 분야에 투자하는 여력에서 지역 소재 대학은 현저히 달리게 마련이다. 강원대생 1인당 교육비는 대략 1640만원 정도다. 서울대생 1인당 교육비 5000여만원에 턱없이 밀리는가 하면, 6000여만원이 넘는 교육비를 자랑하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같은 과기부 산하 대학과는 아예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대학이 받는 등록금, 국비, 산학협력수입 등을 학생 수로 나눌 때 이런 격차가 발생한다. 분권형 개헌에 이런 교육 격차 해소 방안이 반영되길 바란다.

이영표가 강원대에 제안한 남북 축구 외교


▎지난해 10월 삼척시 강원대 삼척캠퍼스에서 열린 강원 액화수소 산업규제자유특구 보고회에 참석한 최문순(왼쪽 둘째) 강원도지사와 정세균(왼쪽 셋째) 당시 국무총리. / 사진:연합뉴스
두 분이 생각하는 지금까지 ‘강원도의 별의 순간’(강원도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

최 지사_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하는 장면을 강원도 ‘별의 순간’, 아니 ‘금성의 순간’으로 꼽겠다. 금성은 별 중에서도 가장 밝은 천체니까. 강원도는 남북으로 갈라진 지역이다. 남한과 북한에 각각 강원도지사를 두고 있다. 세상에 이런 곳은 없다. 분단 전만 해도 한반도 등뼈에 자리한 강원도는 전국 교통과 물류의 중추 역할을 하면서 역사의 중심부에 위치했다. 러시아에서 오는 신문명의 연결로이자 영국이 원산에 국내 1호 골프장을 만들 정도로 태백~원산 라인은 외국인 활동의 주 무대였다. 문물이 발전하고 사람의 왕래가 잦은 덕에 가장 혁신적인 고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강원도는 해방 이후 느닷없는 분단으로 폐쇄되고, 전쟁으로 원한과 분노가 서린 곳으로 전락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시작해 1953년 7월 27일 휴전으로 끝을 맺었다. 이 3년 1개월 동안 전선이 이동한 기간은 7개월 남짓하고 2년 5개월 가까이 고착된 전선에서 남북은 공방을 벌였다. 주된 전장이 강원도였고 많은 장정과 양민이 피를 흘렸다. 철원군 백마고지, 양구군 펀치볼 등 강원도에 유독 격전지가 많은 이유다. 나는 한국전쟁을 ‘강원도전쟁’이라고 부른다. 희생이 컸던 만큼 분노와 적개심도 불타올랐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성사되면서 강원도는 분단과 대치의 상징에서 평화와 화합의 메카로 거듭나게 됐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이었다. 통일된다면 철원이 통일 한국의 수도가 될 것이라는 염원을 가지고 있다.

김 총장_ 2016년 강원대 총장에 선출되면서 학교의 비전으로 ‘통일한국의 중심대학’을 내걸었다. 지금은 분단국이지만 장차 통일될 과정의 주역이 되는 대학으로 우뚝 서자고 구성원들에게 호소했다. 강원도는 분단된 대한민국의 최전방 지자체이면서 통일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통일은 절대 강원도를 피해 갈 수 없다. 마찬가지로 통일은 강원대를 패싱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남북 간의 접경지역 전염병 예방 협력, DMZ 생태계 및 환경 보전, 문화적·사회적 동질성 회복, 경제협력 정책개발에 이르기까지 통일의 기반이 되는 각종 연구의 중심에 강원대가 자리하게 된다. 통일의 초석을 놓는 남북 공동과제를 수행하는 작업도 강원대가 주도하게 될 것이다. 강원도 미래에 가장 중요한 장면을 꼽는다면 단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다음 정부의 중요한 과제, 2024년 청소년 동계올림픽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김헌영 강원대 총장은 지역 발전을 도모하자면 지자체와 대학에 주는 예산 재량권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면?

김 총장_ 축구 국가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던 이영표 강원 FC 대표가 얼마 전 날 찾아왔었다. 그는 강원도 내 유소년 축구 선수들의 졸업 후 진로 문제를 언급하면서 강원대가 축구단을 창단해 이들을 받아줄 수 있냐고 묻더라. 프로축구단인 강원FC만으로는 도내 청소년 축구 선수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니 강원대가 이들이 운동을 이어갈 공간을 열어달라는 의사 타진이었다. 이 대표가 축구를 단순 스포츠 차원이 아닌 남북 교류와 통일의 시각에서 사고하는 듯했다. 예컨대 중·고등학교-대학-프로축구단으로 이어지는 강원도 축구 라인업이 갖춰지면 향후 북한과의 단위별 친선 경기 등 남북 축구 외교를 강원도가 주도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얘기하더라. 이렇듯 축구 하나만 보더라도 통일을 지렛대로 한 구상이 가능한 곳이 강원도다. 북한과의 학문적 교류는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강원대가 북한 평양과학기술대학, 원산농업대학과 교류해온 지도 2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대는 농업생명과학기술 공동 개발, 축산·산림·의료·에너지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 교류를 모색해왔다. 2018년 평양과기대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학교 마당에서 재배되는 씨감자, 옥수수 종자를 강원대에서 보내줬다고 하더라. 아마도 평양과기대에서 가장 유명한 남한 대학을 들라면 단연 강원대가 되리라 자부한다. (웃음) 북한과 다각적 교류를 해온 강원대 농업생명과학대의 위상은 전국 농생대 중 톱3에 든다고 단언할 수 있다.

듣고 보니 강원도의 꿈은 통일과 동행한다는 느낌을 준다.

최 지사_ 큰 생각은 언제나 변방에서 일어난다. 변방은 기득권에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멀리서 판을 본다. 그래서 큰 생각, 큰 변화는 언제나 변방에서 시작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남북관계에 생각만큼 진전이 없어 섭섭하기는 하지만 군사적 적대행위는 거의 사라졌다. 2024년엔 청소년 동계올림픽이 강원도에서 열린다. 청소년 동계올림픽은 다음 정권에 굉장히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아마도 북한은 다음 정부와 뭘 하려 들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김 총장_ 강원도는 나라를 위한 끝없는 봉사와 희생을 마다치 않은 지역이다. 전쟁 시기에는 온갖 상흔을 끌어안았고, 산업화 시기에는 석탄과 석회석 등 에너지와 원자재의 요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물과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해준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밑바탕에 강원도가 자리한다. 그런 강원도에 제조업 기반은 열악하다. 중앙과 지방의 지리적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게 차라리 잘된 일인지 모른다. 재래식 굴뚝산업의 빈자리에 첨단 미래 산업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지사께서 심혈을 기울인 수소산업, e-모빌리티 클러스터, 폐기물 재활용 순환경제 등이 뿌리를 내린다면 대한민국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할 것이다. 여기에 미지의 땅 DMZ와 자연환경…. 개발되지 않은 자연은 강원의 가치이기도 하다. ‘근대화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가치가 있기에 미래에도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듯이 강원도는 시대를 초월하고 지역을 뛰어넘는 글로벌 잠재력을 갖춘 고장이라 하겠다.

- 글 박성현 지역발전연구소 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기자

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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