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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한국4-H본부 방덕우 회장의 ‘지·덕·노·체 중흥론’ 

“4차 산업혁명 시대 새 정신운동 펴야 할 때” 

“4-H 학생들 농업 프로그램 통해 인간과 자연의 일체감 피부로 느껴”
“디지털 농업, 탄소경제와 기후변화, IoT에 접목하는 활동 계획 수립”


▎서울 강동구 소재 한국4-H회관에서 만난 방덕우 한국4-H본부 회장은 “국민이 공감하고 참여하는 신규 사업을 개발해 4-H 운동의 저변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장수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전원일기]가 종영 20년 만에 다시 안방극장으로 컴백한다. MBC는 창사 60주년 특집으로 6월 18일부터 4주 동안 매주 금요일 저녁 [다큐플랙스-전원일기2021]을 방송한다. 최불암, 김혜자, 김용건, 김수미 등 당시의 출연진 30여 명이 출연해 [전원일기]를 추억하고 2021년에 [전원일기]가 다시 주목받는 세태를 분석한다. 2002년 12월 종영된 [전원일기]가 최근 케이블채널 MBC ON, KTV, GTV, EDGE TV 등을 통해 다시 방영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늦은 밤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여기저기서 각기 다른 회의 [전원일기]를 접하는 시청자도 적지 않다. 1980년 첫 전파를 탄 [전원일기]는 60대 이상 노년층에게는 고향과 농심(農心)이 주는 야릇한 그리움을, 2030세대에게는 투박하면서도 화면을 끊지 않고 롱테이크로 가져가는 연출기법이 신기하고 희한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전원일기]가 시청자들의 오랜 기억 저장고에서 다시 끌어올려지듯 그 시절 농촌의 대표적 심벌로 각인된 녹색의 네잎 클로버도 다시 국민의 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바로 한국4-H본부다. 기억하는가. 1970~1980년대 한국 농촌 자연부락 어귀에는 네잎 클로버 바탕에 지(智), 덕(德), 노(勞), 체(體)라는 4-H 운동 정신이 새겨진 화강암 표지석이 자리하곤 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4-H 운동은 Head(머리), Heart(마음), Hands(노동), Health(건강)라는 네 단어의 머리글자를 딴 대표적 농촌계몽운동이었다. 1947년 한국에 도입된 4-H 운동은 지·덕·노·체 네 가지 덕목을 자연부락에 전파하는 견인차 구실을 했다. 인구의 대부분이 농촌에 살던 1970~1980년대에 100만 회원을 헤아리던 한국4-H본부지만 산업화·도시화의 물결에 밀려 지금은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 2월 한국4-H본부 회장 경선을 거쳐 취임한 방덕우 한국4-H본부 회장은 농촌 기반 4-H 운동을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접목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한동안 4-H가 국민의 기억에서 멀어진 느낌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4-H가 생소할 듯하다.

“4-H 운동은 70년 넘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농촌계몽운동쯤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심지어는 아직도 4-H라는 단체가 있는지 되묻는 분들도 있다. 그동안 회원과 지도자 등 4-H 조직은 꾸준한 활동을 해왔지만, 홍보 부족 등의 사유로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4-H본부는 우리의 가치에 공감하는 개인과 단체, 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코로나19 방역활동 등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국민이 공감하고 참여하는 신규 사업을 개발해 4-H 운동의 저변을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을 연기한 탤런트 최불암 님을 4-H본부의 고문을 모셨다. 이 밖에도 농촌과 자연,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유명 인사들을 홍보대사로 영입해 4-H본부 제2의 중흥기를 펼쳐나가겠다는 각오다.”

“70년대에는 열정과 꿈을 펼칠 공간 있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 전국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었던 4-H 표지석. / 사진:한국4-H본부
개발 연대에는 4-H 행사에 대통령이 참관했다던데.

“1960~1970년대 4-H 중앙경진대회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직접 행사장을 찾아 4-H 회원을 격려했고, 대표 회원들은 청와대 초청을 받아 대통령과 오찬을 갖기도 했다. 가난과 빈곤에 허덕이고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없던 당시의 농촌 청소년들은 4-H를 통해 배움의 길을 찾고 희망을 발견했다. 4-H 경진대회는 농촌 청소년들이 열정과 꿈을 펼치는 기회의 공간이었기에 대통령도 힘을 실어준 것이다.”

통계를 보면 5공화국 당시 회원수가 100만 명을 헤아리는 등 활동의 정점을 찍었다.

“5공화국 정부도 4-H 활동에 우호적이었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한번은 전두환 대통령이 4-H 경진대회에 참석했다. 당시 나는 전국 시·도회장 대표 자격으로 오찬장 헤드 테이블에 앉는 기회를 얻었다. 옆에 앉은 전 대통령이 식사를 끝내고 나갈 즈음 내가 ‘전국에서 모인 농촌 지도자들에게 기념 될 만한 선물을 해주면 고맙겠다’고 건의했더니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비서진에게 ‘필요한 조치를 해라’고 지시했다. 나중에 그날 행사장에 모인 청년 지도자들에게 대통령 명의의 대형 벽시계가 전달됐다. 올 초 4-H 회장 선거운동을 하면서 만난 회원 중에는 이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분들도 더러 있더라.”

과거 4-H 운동은 새마을운동과 중첩되면서 독자적 발전 경로를 개척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4-H 한국본부가 펴낸 [한국 4-H 운동 70년사]는 “1970년대 한국 4-H 운동은 새마을운동이라는 변수 때문에 명칭이 변경되고 흐름이 단절되는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국가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면서 농촌부흥과 국가 성장동력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굴곡진 여정을 돌이켰다. 방 회장은 “한때 자연부락 마을회관 앞에서 나부끼던 4-H 깃발이 언제부터인가 새마을 기로 바뀌었다”고 당시의 시대상을 전했다. 80년대 황금기도 잠시, 90년대 들어 4-H는 내리막길을 걷는다. 회원이 10만 명 이하로 떨어지면서 중앙정부의 관심과 지원도 눈에 띄게 시들해졌다. 방 회장은 “1990년대부터 농촌에 힘이 확 빠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고 돌이켰다. 그나마 2007년 12월 당시 이재오 국회의원의 대표 발의로 ‘한국4에이치활동지원법’이 국회에서 제정되면서 민관의 재원 출연을 통한 4-H 활동 활성화의 물꼬가 트였다.

앞으로도 수도권 집중, 도시화 추세는 수그러들지 않을 듯하다. 한국4-H본부의 활동 영역과 입지도 줄어드는 것 아닐까?

“중앙 집중 현상은 앞으로도 더 심화할 것이다. 중앙 정부의 4-H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분명한 건 우리나라가 지속 가능한 선진국으로 나아가자면 농촌, 농업이 생명력을 간직하는 게 중요하다. 유럽 국가 농민들은 소득의 3분의 2 이상을 정부나 유럽연합 세금에서 수령한다. 자연의 환경과 가치를 지킨다는 이유로 도시가 농촌에 지불하는 보상이다. 우리는 바른 인성을 가진 청소년, 청년 농업인 리더를 육성해야 한다. 도시화하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질수록 우리 4-H 운동의 가치와 사명은 더 빛을 발한다.”

어떤 때는 명분과 현실이 따로 놀기도 한다. 한국의 요즘은 특히 그러하다.

“4-H 운동의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 본부는 정부·지자체·농협·농어촌공사·기업체·교육기관 등과의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시·군 단위부터 4-H인들이 참여하는 민간운동의 영역도 넓혀가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양성 프로그램도 개발할 참이다. 디지털 농업 등 탄소 경제와 기후변화, 사물인터넷(IoT)에 효율적으로 접목하는 활동 계획 수립도 시급한 과제다.”

4-H 한국본부의 [한국 4-H운동 70년사]는 4-H 운동 부침의 역사를 이렇게 기록한다. “2000년대 들면서 사회의 정보화, 인구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등과 맞물려 4-H 운동도 대대적인 변혁의 시기를 맞게 된다. 특히 농촌 지역 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하면서 마을 단위 4-H는 당연히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4-H 운동의 주체는 청소년이다. 4-H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대부분의 청소년은 농촌마을에 있었다. 거기서 4-H구락부라는 이름으로 마을 4-H회가 탄생했다. 이제 4-H는 다시 청소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로 학교였다. 마을 단위 4-H가 무너지면서 이미 90년대에 서서히 학교 4-H로 중심축이 옮겨가고 있었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방식 바뀌자 청소년단체 위축”


▎1960~1980년대 4-H 중앙경진대회에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등 성황리에 개최됐다. 사진은 1963년 4-H 중앙경진대회.
학교의 학생들은 어떤 방식으로 4-H와 만나는가?

“현재 전국 초·중·고 2000여 학교에 4-H회가 구성돼 대략 7만 명 학생이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을 3000여 현직 교사들이 지도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4-H 활동의 60% 이상이 농업 프로그램이 차지한다. 학생들은 주로 ‘텃밭 가꾸기’를 하며 인간과 자연의 일체감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한국4-H본부는 또 농업의 치유 기능과 연계한 반려식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반려작물과 함께하는 감성일기’ 과제활동을 4-H 지도교사들과 공동 개발했다. 반려작물을 가꾸는 과정에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어떤지 등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또 코로나19로 학생들의 활동 폭이 대폭 줄어든 지난해 지친 마음을 회복하는 원예치유 프로젝트인 ‘콩심팥심’ 활동도 시작했다. 콩심팥심이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우리 속담의 줄임말이다. 학생들에게 품종이 공개되지 않은 씨앗이 든 키트를 나눠줘 정성껏 키우면서 작물이 자라는 과정을 경험케하고 어떤 작물인지 깨닫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청소년과 일반 시민 5000여 명이 참여하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4-H 정신이 대한민국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원리로 굳건히 뿌리를 내리자면 정책 당국의 관심과 지원도 절실하겠는데.


▎지난해 3월 삼척 청년드론방재단과 정선군 4H 연합회가 드론, 동력 분무기 등을 동원해 삼척 소재 학교에서 코로나19 방역 활동을 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사실 요즘 고민이 생겼다. 2021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따라 현 고등학교 1학년부터는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청소년단체 활동은 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활기록부 기재 대상이 아닌 4-H, 보이 스카우트 등을 비롯한 청소년단체의 교내외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이에 더해 4-H 같은 청소년단체 지도교사에게 주어지던 가산점 역시 폐지되면서 지도교사들의 참여 동기도 저하되는 등 4-H의 앞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와 관계기관을 방문해 농심과 함께하는 4-H 활동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등 해법을 모색 중이다.”

4-H 종주국이라 할 미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미국의 경우 가장 큰 청소년단체의 하나가 4-H이며, 매년 대표들이 백악관을 찾아 대통령과 정례 면담을 갖는다. 미국 4-H 회원은 600만 명이다. 우리도 1981년에 100만 명 회원을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도 앞으로 4-H 저변 확대를 통해 사회적 기여와 영향력을 함께 키워가고자 한다.”

4-H는 회원들 간 국제 교류도 활발했다고 들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는 학생 4-H 회원들은 여러 경로를 거쳐 해외 문물을 체득하는 기회를 가졌다. 해외 그린 배낭 연수, 청소년 미국 홈스테이(1개월 체류), 미국 공립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1년 파견) 등이 대표적이다.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된 요즘은 국제 펜팔과 온라인 대화 등 비대면 글로벌 리더십을 함양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도시화(도시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이 90%를 넘어섰다. 이제는 4-H 활동의 주 무대도 도시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도시에서의 저변 확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어려운 요즘 나라를 위해 새로운 정신운동을 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 정신운동을 펼치기 위해 제2의 캐치프레이즈를 뭐로 할지 준비 중이다.”

“대외 원조 재단, TV 방송국, 장학기금 등 3대 목표 이룬다”


▎한국4-H본부가 원예치유 프로젝트의 목적으로 초·중·고 회원들에게 배포한 ‘콩심팥심’ 용기.
1970~1980년대 자연부락이 지금 시대에는 아파트 단지로 대체된 느낌이다. 4-H본부가 도시 내 아파트 관리비 운영이나 재건축·재개발 등 주민들의 이익에 직결되는 사안에 개방적이고 투명한 새바람을 불어넣는 운동으로 변신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아주 좋은 아이디어다. 우린 내부적으로 심도 있는 협의가 필요한 제안 같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4-H 운동은 청소년과 청년 농업인이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 및 교육 등을 통해 리더십과 농심을 함양하고, 자신의 역량을 개발해 지역사회와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4-H운동의 활동영역을 도시로까지 더욱 확장하고 저변을 확대하는 문제는 분명 더 나은 4-H 운동을 위한 당면 과제임이 틀림없다. 다만, 지도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4-H본부는 회원들이 4-H 활동을 통해 전인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활동에 주안점을 두다 보니 제기된 이슈와 그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4-H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를 깨끗하고 투명하게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

방 회장 개인의 4-H의 미래 구상을 소개한다면?

“세계 75개국에서 4-H가 활동 중이며 나도 글로벌4-H 부회장을 맡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한국의 4-H 정신을 개조한 정신운동이다. 해외 청년 지도자들을 한국에 초청해 4-H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고자 한다. 그러자면 농작물 재배 기술과 실무에 강한 4-H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같은 대외 원조 활동을 주관하는 재단을 가져야 한다. 또 글로벌 교류·협력을 강화하는 TV 방송국을 개설하고, 후진 양성 차원에서 장학기금도 조성하는 게 제 개인적 포부다.”

- 글 박성현 지역발전연구소 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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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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