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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경찰국가, 일본의 오랜 그림자 

국민, 국가 명령에 묵묵히 복종하는 무명 병사로 전락 

경찰 임무 ‘자임’하며 주변 감시하는 일본 사람들
공안권력 개편 추진하는 한국에 반면교사 될 수도


▎일본 도쿄 한복판 히비야 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동경 경시청 음악대의 ‘수요 콘서트’가 열렸다. 이 행사가 이미지 개선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일본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보이지 않게 보고, 들리지 않게 듣는다.”

‘일본 경찰의 아버지’로 불리는 가와지 도시요시(川路利良, 1834~1879)가 일본 경찰의 역할로 규정한 말이다. 서양의 ‘폴리스’를 일본에서 ‘경찰(警察)’이나 ‘경시(警視)’로 번역했는데, ‘본다’는 뜻의 찰(察)과 시(視)를 썼다는 것에서 가와지가 만든 일본 ‘폴리스’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고 하겠다.

보통 경찰이라고 하면 우선 머리에 떠오른 것은 형사가 범죄자를 잡는 모습 또는 교통경찰관이 교통질서를 잡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가와지는 그보다는 ‘보이지 않게 보고, 들리지 않게 듣는’ 기능, 즉 ‘정보경찰’을 핵심으로 봤다. 정보경찰, 즉 사회를 은밀히 지켜보는 것을 경찰의 첫 번째 임무로 삼은 것은 가와지가 바로 프랑스에서 ‘경찰’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게 모든 것을 보는’ ‘판옵티콘(panopticon, 원형 교도소)’적 통치방식을 논한 철학자 미셸 푸코가 주로 참고한 것이 프랑스 경찰이었다.

일본 경찰의 성격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내의 ‘준식민지적’ 권력관계에서 만들어졌다. 메이지 유신을 주도했던 사쓰마(薩摩)·조슈(長州)의 번벌(藩閥) 세력은 보신전쟁(戊辰戰爭, 1868~69) 승리 후 막부를 지지했던 에도(江戶)·간토(關東)·도호쿠(東北) 지역을 마치 식민지 대하듯 지배했는데, 그 지배 수단으로 탄생한 것이 일본 경찰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경찰의 구성원 대부분이 일본열도 최남단 사쓰마 출신이어서 도쿄 주민들은 경찰관들과 대화 자체가 어려웠다고 한다. 물론 가와지 초대 경시총감도 사쓰마 출신이었다. 메이지(明治) 시대는 물론이고 다이쇼(大正)·쇼와(昭和) 시대에 와서도 경찰의 군림은 계속됐다.

제국주의 시절, 군과 함께 일본의 최고 권력 중 하나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출신들이 장악한 내무성이었고, 이 내무성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경찰이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전 총리가 이 내무·경찰 관료 출신이다. 과거 내무성(경찰)은 ‘정부 안의 정부’로 불렸고, 도쿄제대 출신들에게는 최고 선망의 ‘출세 코스’였다. 당연히 내무성 출신의 총리가 많았으며, ‘번벌’ 출신이 아닌 정당 출신의 첫 총리인 하라 다카시(原敬)도 내무성 출신이었다. 패전 후 내무성은 해체됐고 대장성·통산성 같은 경제부처가 부상했지만, 현재도 경찰청은 일본 엘리트의 산실 중 하나로 국회의원이 되는 유력한 코스다. 일본은 경찰의 나라다.

도쿄 거리를 걷다 보면 길가에 ‘위험(危険)’이라고 씌어 있는 푯말이 자주 보인다.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아부나이(危ない)!”라고 말하는 것도 자주 듣게 된다. 우리말로 “위험해!”라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하는 일본에서 정작 일본인들은 ‘세상은 위험해’라는 불안감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민중의 경찰화… “세상은 위험하니 감시 늦추지 마”


▎일본 도쿄 신주쿠의 모습. 횡단보도 바깥으로 길을 건너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 사진:연합뉴스
사회의 안전도를 잘 보여주는 범죄율을 보더라도 일본만큼 안전한 나라는 흔치 않다. 2014년 살인 통계를 보자. 살인사건의 경우 러시아에서는 1만3681건, 미국에서는 1만2253건, 독일에서는 716건이 발생한 데 반해 일본은 395건에 그쳤다. 일본 인구가 약 1억3000만 명이나 되는데도 발생 건수는 눈에 띄게 적다. 참고로 인구 5000만 명인 한국의 경우 같은 해 372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인구 10만 명당 4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 미국과 비교하면 일본은 10만 명당 0.3건이 발생했을 뿐이다. 강도사건 발생률 역시 현저히 낮다. 2014년 프랑스에서는 약 11만 건이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3000건밖에 없었다. 일본의 인구는 프랑스의 두 배가량 된다.

이렇게 안전한 일본에서 일본 사람들은 ‘세상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몸을 움츠리고 산다.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1912~26년)를 전후로 해서 한때 ‘경찰의 민주화’와 함께 ‘민중의 경찰화’라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 두 움직임 가운데 ‘민중의 경찰화’만 강해져서 남아 있는 듯한데, 국민이 스스로 경찰 임무를 맡아 자신을 포함한 주변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중의 경찰화’가 가져온 가장 중요한 결과는 ‘세상은 위험하니 감시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경찰의 ‘시선’을 국민이 자신의 ‘시선’으로 받아들인 점일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세상을 경찰의 눈으로 보게 됐다. 일본에서 경찰·탐정·범죄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나 드라마가 발달한 것도 ‘민중의 경찰화’와 관련된다. 일본인들이 낯선 사람을 ‘위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지레 경계하는 것도 ‘민중의 경찰화’가 낳은 결과다. 세상을 위험시하는 경찰관들과 국민이 함께 ‘안전대국’ ‘치안대국’ 일본을 만들어냈다.

또한 일본에서 자주 보게 되는 풍경이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순찰하고 있는 경찰관이다. 낯선 사람이 큰 가방을 끌고 골목길을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면 자전거를 탄 경찰관이 다가와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 낯선 사람으로서는 경찰관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이 들텐데, 사실은 ‘검문’이다. 경찰관은 자전거를 세우고는 예의 바르게 ‘외국인이냐’ ‘어디서 왔느냐’ ‘숙소는 어디냐’ 등을 묻고, 낯선 사람이 ‘유학을 왔다’ 또는 ‘여행을 왔다’고 하면 ‘공부 열심히 하세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라고 인사하고는 자전거를 다시 타고 유유히 떠나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본 경찰관들은 돌아다니며 관할구역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묻고 관찰하고 기록한다. 예전에는 모든 집을 매년 한두 번씩 ‘가정방문’하기도 했다. 주민들을 위험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기도 했는데, 위험한 사람들은 더 자주 방문했다. 물론 방문 후에는 꼼꼼하게 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일본이 ‘경찰국가’가 된 것은 근대 일본을 연 메이지 국가의 비민주적 성격, 즉 승자인 서일본의 패자 동일본에 대한 ‘준식민지적 지배’와 관련돼 있고, 또 일본 국가가 이러한 지배를 위해 프랑스 경찰과 영국의 식민지 경찰을 벤치마킹했다는 점도 그 원인이다.

대만은 경찰로, 조선은 군대로 통치했던 일제


▎1921년 도쿄 대지진 때 불타는 도쿄 경시청. / 사진:권태균
메이지 유신 이후 형성된 일본제국은 세 가지 지역으로 크게 나눠졌고, 각각 민주주의·경찰·군대로 다스렸다. 즉, 제국의 ‘중심’으로부터 정치적 거리에 따라 주민에 대한 대우를 달리했는데, 중심과 가까울수록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었고,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감시와 힘에 의한 복종을 강요됐다.

예컨대 우리는 보통 일본인들은 조용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성별과 계층에서, 지역적으로나 상황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목소리의 크기는 권력과도 관련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의 목소리가 크고,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서민보다 목소리가 크다. 서일본 사람들이 동일본 사람들보다 목소리가 크고, 함께 모여 있을 때가 혼자 있을 때보다 목소리가 크다. ‘인사이더’가 되면 될수록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세 가지 지역’은 일본제국이 오키나와·홋카이도·대만·조선·만주 등으로 계속 팽창해나가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주민이 차지하는 ‘위치’도 계속 달라졌다. 그리고 그 위치에 따라 ‘지위’도 달라졌다. 제국의 ‘세 가지 지역’ 중 가장 ‘안쪽’을 말하자면 ‘1등 주민들’이 사는 곳인데, 이들을 통치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였다.

일본제국이 대만·조선을 병합하게 되자 일본 ‘내지(內地, 일본)’ 주민들은 모두 ‘1등 주민’의 지위에 올랐는데,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그것이다. 그리고 제국의 중심에서 조금 바깥으로 나가면 ‘중간지역’이 나온다. 말하자면 ‘2등 주민들이 사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경찰이 통제하는 지역이다. 이어 제국의 가장 바깥 지역은 ‘3등 주민들’이 사는 곳으로, 군대가 무력으로 통제하는 지역이다. 조선 병합 후 일본 ‘내지’는 ‘데모크라시’로, 대만은 경찰(내무성)로, 막 병합한 조선은 군대의 총칼로 통치했다. 이러한 조선 통치를 일본에서는 ‘무단정치(武斷政治)’라 불렀다.

3·1 운동 이후 조선인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일본 군부는 관심을 만주 지역으로 새롭게 이동시키면서 조선 통치를 내무성에 넘겨줬다. 이 같은 내무성식(式) 조선 통치를 ‘문화정치(文化政治)’라는 미명으로 불렀다. 사실은 경찰통치였다. 메이지 시대 동안 ‘2등 주민’ 대우를 받던 동일본 지역을 통제하던 경찰이 점차 일본 ‘내지’에서의 역할을 줄이는 대신 대만·조선으로 무대를 넓힌 것이다.

메이지 정부는 경찰 창설을 위해 가와지 도시요시, 이시다 에이키치(石田英吉, 1839~1901)를 해외로 보내 조사하도록 했으니, 그곳이 프랑스와 홍콩이었다. 가와지가 파견돼 연구한 프랑스 경찰, 특히 파리경시청은 당시 가장 강력한 경찰기관으로 유명했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끝까지 추적하던 자베르 경감이 프랑스 경찰관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강력한 중앙정부에 의한 ‘위로부터의 통치’에 능숙한 프랑스는 일찍이 민중 통제를 위해 ‘감시 기능’(정보경찰)을 중심으로 하는 경찰을 발달시켜 왔다. 가와지 도시요시가 배운 경찰이 바로 프랑스 경찰이었고, 여기서 ‘감시 기능’이 경찰의 핵심이라고 배웠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판옵티콘’적 통치 방식을 다룬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통해 프랑스 경찰, 그리고 일본 경찰의 특성을 엿보기로 한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프랑스어 제목은 ‘감시와 처벌’(surveilleretpunir)인데,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규율과 처벌’(discipline and punish)로 바뀌었다. 물론, 저자 자신이 허락한 제목이다.

푸코의 머릿속에 ‘감시=규율’이라는 공식이 있었다. 푸코는 ‘보이지 않게 보는’ 감시가 민중의 규율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게 보는 것’이 어떻게 민중의 ‘규율’을 만들어내는지는 다음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시험 보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시험 감독관이 학생들 앞에 서서 감시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고, 학생들 뒤에 서서 감시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는데, 그 효과의 차이는 매우 크다.

경찰은 보모요, 국민은 어린 자식이니…


▎일본 도쿄의 번화가인 긴자에 있는 여자경찰 파출소. 일본 경찰은 안내와 민원 봉사가 업무의 대부분인 지역에는 여경을 집중적으로 배치한다.
감독관이 앞에 있는 경우 ‘커닝’을 하고 싶은 학생들은 감독관을 예의주시하면서 감독관이 딴 곳을 바라볼 때 ‘커닝’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감독관이 학생들 뒤에 서 있는 경우에는 감독관의 눈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항상 긴장해야 한다. 감독관이 가끔 “어이, ○○! 너 뭐 하는 거야?”라고 하면, 다른 학생들도 혹시나 자신이 지적받지 않을까 조심하게 된다.

학생들은 괜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 즉, 학생들은 감시자가 보일 때는 감시자를 쳐다보고, 감시자가 보이지 않을 때는 자신을 감시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가 자신을 감시하는 것이 바로 최고의 ‘규율’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의 강력한 중앙정부가 민중을 규율하기 위해 만든 기구가 바로 그 유명한 조젭 푸셰(Joseph Fouché)가 장관으로 이끌던 경찰이었다. 로베스피에르·나폴레옹 모두가 부침하는 동안에도 그 뒤에서 굳건히 공안권력을 놓치지 않고 휘둘렀던 것이 푸셰였고, 또 그의 경찰이었다.

그리고 이 프랑스 경찰이 이식된 것이 가와지의 일본 경찰이었는데, 또 다른 관료인 이시다가 홍콩 방문을 통해 배운 영국의 ‘식민지 경찰’을 여기에 가미했다. 당시 이시다는 홍콩의 ‘식민지 경찰’ 방식을 ‘영국 경찰 방식’으로 잘못 보고했다. 그런데 이 잘못 보고된 ‘식민지 경찰’ 방식이 사실 ‘준식민지’ 동일본을 지배하는 데는 더 적합한 방식이었다.

‘감시’(정보경찰)와 함께 일본식 경찰국가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은 ‘행정경찰’이다. 사회 질서를 위해 ‘사전에’ 미리미리 조처를 해두는 것이 ‘행정경찰’(업무)인데, 이와 달리 일이 발생한 후에 조처를 하는 것은 ‘사법경찰’(업무)이다.

가와지는 [경찰수안(警察手眼)]이라는 경찰관 지침서에서 “국가는 한 가족이고, 정부는 부모이고, 국민은 자식이고, 우리 경찰은 보모”라고 했다. 경찰은 문제가 발생한 후 엄격히 처벌하는 것보다는 마치 보모가 어린아이를 대하듯 국민을 가까이서 보살피는 것을 주 임무로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행정경찰’이다.

경찰은 보모이고 국민은 어린 자식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국민을 성숙한 어른으로 믿고 놔두는 것이 아니라 어린 자식처럼 못 미더워 노심초사하며 챙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행정경찰보다는 사법경찰을 중시하는 쪽이 국민의 자율성을 좀 더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검찰국가보다 더 위험한 경찰국가의 실상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에서 결백을 호소하는 주인공.
일본 경찰은 정보경찰(감시)·행정경찰(사전통제)뿐만 아니라, 사법경찰로서도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수사’에서도 주도적인 권한을 갖는다는 점이다. 검찰은 도쿄·나고야·오사카 같은 주요 도시 지검에 설치된 특수부의 제한된 범위의 수사권을 빼고는 주요 사건에서 경찰의 수사권에 의존한 공소 기능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정부 안의 정부’를 주도해왔던 일본 경찰이 권위와 권력에서 검찰·법원을 압도하다 보니 경찰의 ‘유죄 판단’이 쉽사리 최종적 판단이 돼버린다.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6)에서 주인공은 지하철에서 어느 여성에게 성추행범으로 오해돼 경찰에 붙잡힌다. 평범한 회사원인 주인공은 경찰에 의해 유죄로 판단됐다.

그런데 그의 변호인들은 “일본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경찰이 유죄로 판단한 사건을 무죄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자신들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감형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경찰에 자신이 유죄임을 자백하고 선처를 빌면서 감형을 추진해보자고 권유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경찰에 기소됨으로써 이미 직장·친구 등 모든 것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감형이 아니라면서 2년간의 공판 동안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한다. 일본 형사사법 시스템이 어떻게 됐든 ‘자신은 성추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유죄로 판단한 사건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률이 99% 이상인 일본에서 변호인이 할 수 있는 조력이라고는 그저 선처를 빌면서 감형되도록 도와주는 것뿐인 만큼, 사실상 주인공의 노력은 무모한 것이다. 일본 경찰의 심문 과정에서 변호인의 조력은 제한돼 있고 피의자의 인권은 매우 취약하다. 고문은 없지만, 잠을 재우지 않는 등 신체적·심리적 압박이 있다. 일본 경찰은 자백에 의존해 기소를 추진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일본의 거리는 조용하고 깨끗하다. 한마디로 ‘교교’(皎皎)한 거리다. 사람들은 행동이 조심스럽다. 과거 국민이 겨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제국주의적 팽창, 군부의 준동과 함께 또다시 경찰, 정치경찰인 고등경찰이 통제하는 ‘쇼와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후 일본 국민은 조용히 거리를 걸어 회사와 공장을 오가는 샐러리맨, 그리고 국가의 명령에 묵묵히 복종하는 이름 없는 병사가 됐다.

정보경찰, 행정경찰 권한에 수사권까지 가진 사법경찰이 어떻게 국민을 침묵시키고 교교한 거리를 만들어내는지 현재 공안권력 개편을 추진하는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됐으면 한다. 검찰국가도 위험하지만, 경찰국가는 더욱 위험하기 때문이다.

- 김동규 21세기공화주의클럽 정책위원장·전 외교관 peace4eastas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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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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