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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특집] 전시 앞둔 ‘이건희 컬렉션’의 미술사적 가치 

천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작품들을 만난다 

1980~90년대에 ‘국보 100점 프로젝트’ 진행하며 명품 대거 구입
다시 구하지 못할 의미 있는 유물, 작가의 득의작(得意作) 다수 포함


▎정선, 인왕제색도, 1751년, 국보 제216호, 종이에 수묵, 79.2×138.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제색도]는 이건희의 의미 있는 컬렉션 1호다.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한 전시회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청화백자 전시장이었다. 100점이 넘는 명품이 그득한 전시장에서 페르시아에서 수입한 청화안료와 국내에서 생산된 안료인 토청으로 하얀 바탕에 파란색 문양이 그려진 도자기는 시선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림을 그린 화원, 그릇을 만든 도공, 안료를 얻기 위한 외교관계로 만들어진 작은 그릇 하나가 사람과 사회, 그리고 당대 기술력의 소산이라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릇 자체의 아름다움과 질료의 중요성에 눈을 뜬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다양한 문양의 비교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 방식은 미술사학에 입문한 초심자도 비교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세심한 배려였다. 후에 고 이건희(李建熙, 1942~2020) 회장이 이른바 ‘백자통’이었고, 그러한 관심 아래 호암미술관에서만 가능한 전시였음을 알게 됐다.

관객은 전시를 통해 유물이나 작품을 만난다. 개별로 존재하는 사물인 유물 혹은 작품에 재질서를 부여한 시선의 공간에서 작품으로 만나는 것이다. 1980년대 호암미술관, 호암갤러리의 전시는 연구자들에게는 성소(聖所)와 다를 바 없었는데,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르던 것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중 앞에 알려지기도 하고 또 수장고에 계속 잠들어 있기도 했던 작품들 중 일부가 최근 ‘이건희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돼 전시를 앞두고 있다. 또 지방의 몇몇 미술관에도 작품이나 작가의 연고와 관련해 이쾌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의 작품이 기증됐다.

컬렉터가 시간을 들여서 수집한 정선된 작품들


▎생전의 이건희 회장. 이건희 컬렉션의 의미는 시가 총액에 앞서 한 컬렉터가 한 점 한 점 오랜 시간을 들여서 수집한 정선된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이제 이건희 컬렉션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전시에서 만나겠지만 전시가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대중의 갈증은 커질 것이다. 몇조원에 해당하는 가치의 작품들이라 했으니 ‘이게 다가 아닐 텐데!’라는 작품의 수량에 대한 미진함이나 작품을 근사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전시 규모의 빈약함 등이 지적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이건희 컬렉션의 의미는 시가 총액에 앞서 한 점 한 점이 컬렉터가 정말 시간을 들여서 수집한 정선된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일어난 모든 사건이 아니라 의미가 있는 사건만 역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물건이나 작품을 기억하거나 보관할 수는 없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시선에 의해 작품들은 컬렉션된다. 그 시선을 우리는 기준이라 하며, 이번 기증품에 대해 관심이 깊어지는 이유는 양이나 작품의 가격에 앞서는 바로 그 절대적 가치에 있다. 다시는 구하지 못할 의미 있는 유물, 작가의 득의작(得意作, 예술가가 만들어낸 창작물 중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좋아하는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이건희 기증품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편년작과 유일본 등의 가치는 시가로 계산할 수 있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이른바 천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것들. 그 소중한 작품들이 속한 미술품을 우리 손에 받아 든 것이다.

통칭 이건희 컬렉션에는 고 이병철(李秉喆, 1910~1987) 회장의 소장품도 대거 포함되어 있다.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정선 필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가 국보 제216호로 지정된 것은 1984년 8월 6일이었고, 보물 제780호 [금동보살입상], 보물 제776호 [환두대도]도 같은 날짜에 지정 고시되었다. 국보 제235호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은 1986년 11월 29일에 지정 고시되었다. [월인석보권12]가 보물 제935호로 지정된 것은 1987년 12월 26일이었다. 이보다 먼저 호암미술관이 개관할 즈음에 이병철 소장의 국보 12건, 보물 9건 등 1167점이 삼성문화재단에 기증되어 호암미술관 소장품이 되었다. 하지만 소장품의 유형이나 시대가 고르지 않은 점 등을 수정하고 보완하기 위하여 호암미술관 개관을 계기로 집중적으로 컬렉션을 확장했다.

이병철 회장은 어떻게 컬렉션을 시작하게 됐을까? 호암미술관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고고학자 이종선에게 들려준 작품 수장 과정은 이렇다.

“젊은 나이에 대구에서 뛰어난 상재를 발휘해 삼성상회(지금의 삼성물산)를 설립해 거부(巨富)로의 첫발을 딛게 되었다. 초기에는 사업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대구 사람들과 미술품을 주고받으며 수집을 이어나갔다. 향리의 서예인이나 대구 출신 화가 서동진의 작품을 한두 점씩 모아 나가며, 차츰 그 분야와 수집 양을 다른 쪽으로 넓혀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살아 있는 서예인의 작품에 머물러 있었지만, 재미가 붙어 옛날 고서화 쪽으로, 또 도자기 골동품 쪽으로, 다시 현대미술품으로까지 관심이 바뀌면서 그 대상이 크게 확대되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재미도 있고 집중력이 발동해 규모와 수준을 대폭 늘려나가게 되었다.”

이병철의 컬렉션은 고고학적인 유물에서부터 동시대 김은호(金殷鎬, 1892~1979)와 문학진(文學晉, 1924~2019)과 가까이 지내면서 문학진의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호국상]을 비롯한 여러 작품과 김은호의 대표작들이 애장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김은호 작품 중에는 한 폭의 크기가 59.5×307㎝나 되는, 두 점이 한 세트인 [화조대작](1973년)을 비롯한 채색화들이 있다. 그는 김은호의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가는 내용을 그린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를 제일 훌륭한 작품’이라고 했다는데, 이는 ‘인재를 찾는’ 기업인의 특성상 그러했을 것이다.

고 이병철 회장 소장품도 대거 포함


▎김은호, 매란방, 1966년, 비단에 채색, 164×7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은호, 천녀산화, 1955년, 비단에 채색, 119.5×41㎝,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실제 고 이병철 회장과 김은호의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다. 1955년 작 [천녀산화(天女散花)]는 화면 하단에 “이병철 선생이 감상하여 달라”고 적었다. 이병철이 호암이라는 호를 얻은 해인데 호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호를 얻기 전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1966년작 [매란방]에는 “호암 선생이 감상하여 달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김은호는 1929년에 중국에서 경극배우 매란방(梅蘭芳, 1894~1961)의 공연을 보고 스케치하였던 것을 사진을 참조하여 인물화를 완성하였다. 김은호는 미인도에서와 달리 눈썹 숱이 많으며 직선으로 그려지고 눈꼬리도 약간 올라가게 함으로써 남성인 매란방의 정체성을 표현하였다. 의상 표현에서 부드럽고 화사한 색채, 귀갑 문양이 별 모양과 어우러져 현대적인 느낌마저 준다. 김은호 생전에 발간된 화집에서 이구열은 1966년에 중앙일보사가 주최한 제1회 ‘현대동양화 10인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라고 적었다. 2016년 11월 서울옥션블루 경매에 출품된 [매란방]은 화면 좌측에 낙관과 함께 “이당사(以堂寫)”라고 되어 있었다. 동일한 초를 사용하여 제작할 때에도 옷감의 문양을 다르게 표현하는 김은호의 특징을 두 [매란방]의 비교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이상좌, 불화첩, 보물 제593호, 종이에 수묵, 50.6×31.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가난한 집안이었던 김은호는 타고난 재주에 스승인 안중식, 조석진을 만나 좋은 교육 기회를 잡았다. 김은호처럼 타고난 솜씨로 화명을 떨친 이들이 있다. 조선시대 이상좌(李上佐, 1465~?)는 어느 선비 집안의 종으로 태어났지만 천재적인 솜씨 덕에 중종 임금의 특명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특히 인물화에 뛰어났다고 하지만 현재 그의 작품은 죄다 ‘전(傳) 이상좌’로 기록되어 있다. 그나마 분명 이상좌의 작품일 것이라고 여겨지는 스케치북 같은 [불화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긴 호암미술관 소장품이다. 조선 숙종 때 허목(許穆)의 문집인 [미수기언(眉叟記言)]에 “이상좌의 불화 묵초가 6본 있었는데, 낭선군 이우(李俁)가 그림을 사랑하여 그 화본을 구하였다… 명종, 중종 이전에 안견(安堅)은 산수로서 이름이 났고 이상좌는 인물을 잘 그려 신묘하다고 칭해졌다”고 했다. 허목이 말한 6본 불화묵초 중 한 본이 바로 이 작품으로 추정된다. 현재 5점만 남아 있지만 승려 위에 숫자들이 있어서 16나한을 그리려 했던 것이다. 종이 바탕에 가늘고 긴 선의 자재한 사용은 이상좌의 뛰어난 필력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조선전기 인물화의 화법을 보여준다.

퇴락한 사대부 집안 출신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은 평생을 인왕산에 살며 당대 실세인 노론과 교유하며 집을 짓고 사대부처럼 살았다. 1958년에 국회의원에 출마하느라 돈이 필요해 저당 잡혔던 서예가 손재형(孫在馨, 1903~1981)의 소장품 김홍도 필 [군선도병풍](국보 제139호)과 함께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 2점은 호암미술관 소장이 되었다.

호암미술관이 개관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실견하러 갔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인왕제색도]는 전시실에 걸려 있었고 [금강전도]는 수장고에 보관 중이었다. 이들 작품은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관장 부부가 1970년대에 구입한 것이라고 했는데, 호암미술관을 개관하며 미술관 소장품의 종류와 격을 맞추려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한 것이었고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인왕제색도]는 이건희의 의미 있는 컬렉션 1호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림 속 작은 집은 자신을 알아주던 친구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의 집인데 그가 병에 들어서 위독해지자 그의 쾌유를 비는 의미에서 그렸다고 해석되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는 이전 시대의 그림에서는 보지 못하였던 ‘변화하는 대기의 순간적 포착’을 볼 수 있다. 비 온 후의 습기에 더욱 또렷해진 자연경관과 물먹은 바위의 장쾌함은 이 그림을 매우 근대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인왕제색도'는 이건희의 의미 있는 컬렉션 1호


▎월인석보 권11, 1459년, 보물 제935호, 종이에 목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병철은 컬렉션의 기본은 명품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흔히 나의 수집품에는 명품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평가는 자유지만, 나는 수집 자체보다는 그런 골동품으로부터 마음의 기쁨과 정신의 조화를 찾는다. 그런 이유로 폭넓은 수집보다는 기호에 맞는 물건만을 선택한 것이 나의 소장품이다.”

하지만 이건희의 생각은 달랐다. ‘명품 한 점이 다른 컬렉션의 가치를 올려주고 체면을 세워준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980~90년 사이에 이른바 명품을 소장하기 위한 ‘국보 100점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국보와 보물이 ‘리움’에 소장되어 있고, 이번 이건희 기증품에 국보와 보물 60점이 포함될 수 있던 것도 그러한 목표를 가진 수집 덕이었다. 호암미술관, 호암갤러리의 전시들이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깊은 인상으로 남은 것도 사실 이후 어느 도록이나 연구서에서건 만나는 명품인 탓에 필자의 눈앞에서 사라진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이건희 컬렉션 기증품의 면모는 국립중앙박물관 2만1693점, 국립현대미술관 1488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기증품에는 유물의 격을 짐작할 수 있는 국보 14건, 보물 46건이 포함되어 있다. 두 기관 기증품의 통계에서 전적류(典籍類)는 모든 기증품의 54.2%에 이른다. 작고도 네모나며 단단한 오동나무 상자에 담겨 보관되어온 오래된 경전부터 어람용 도서에 이르기까지 전적류는 단연 수량에서 압도적이다.


▎감지은니묘법연화경과 표지. 1330년, 국보 제234호, 종이에 은니, 28.3×10.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적류에서 눈에 띄는 유물 중에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제일 먼저 나온 한글불교대장경인 [월인석보]가 있다.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불경언해서로 전체 25권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번에 기증된 권11과 권12는 초간본이어서 그 의미도 크다. [감지은니묘법연화경]은 전체 7책으로 구성되었다.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표지에는 금니로 제목이 쓰여 이 주위에 보상화 4송이를 금은니로 그렸다. 본문은 짙은 푸른색으로 염색한 종이 위에 은색 글씨로 썼다. 고려 충숙왕 17년(1330)에 구마라습의 [법화경]을 살아 계신 아버지의 장수와 돌아가신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신기가 필사하였다는 내용을 7권 말미에 적었다. 개인의 필사로 이루어진 법화경으로서 이른 시기의 것이며 7권이 모두 갖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당대 필사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초조본 대반야바라밀다경 권249, 고려현종연간(1011~1031), 국보 제241호, 종이에 목판, 세로 29.1㎝ 가로 49.5~51㎝×23장,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해인사에 소장된 대장경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된 [초조본 대반야바라밀다경 권 249]는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 23장을 두루마리처럼 이어 붙인 것이다. 고려 현종 때 부처의 위신력으로 거란의 침입을 막아보고자 제작한 초조 대장경 중 현재 전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국보 제235호인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은 고려시대 사경 중 가장 뛰어난 변상도를 보여준다. 짙은 푸른색종이 위에 금물로 그린 경전의 내용을 집대성한 그림은 고려시대 불화의 세밀한 제작방식도 추론하게 한다. 또한 뒷면에 ‘행원품변상문경화(行願品變相文卿畵)’라고 그림을 그린 이의 이름을 밝히고 있어서 사경 연구의 주요한 자료가 된다.

눈에 띄는 [월인석보]와 [고려 천수관음보살도]


▎고려 천수관음보살도, 비단에 채색, 93.8×51.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불화 중 천수관음보살을 그린 유일한 것이다.
얼굴 11면과 손 44개를 가진 보살의 모습을 나타낸 보물 제2015호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는 고려불화 중 천수관음보살을 그린 유일한 것이다. ‘다채로운 채색, 금니의 조화, 격조 있고 세련된 표현 등 고려불화의 전형적인 특징이 반영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정면한 채 바위 위 연화좌에 앉아 있고 화면 아래 좌측에는 선재동자가 합장하고 있다. 화면 상단은 거신 원형광배가 가득 차 있는데, 이를 배경으로 하여 여러 지물을 가진 44수와 그 사이에 촘촘하게 눈을 가진 손들이 표현되어 있다. 비교적 색이 어둡지만, 세밀하고 묘사적인 표현에서 고려불화의 전형성을 지닌 작품인 동시에 ‘고려불화 중 유일한 도상’을 보여준다.


▎채화칠기, 중국 한대, 보물 제559호, 나무에 옻칠, 높이 9㎝, 구연부 지름 2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대 칠기는 기술력과 예술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유물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대석암리에서 출토된 옻칠을 한 바리인 보물 제559호 [채화칠기]는 나무에 안쪽에는 붉은 칠을, 밑바닥에는 동심원을 그렸다. 적색·청색·녹색의 용그림과 흑색·청색·녹색 구름이 그려져 있고 구연부(아가리) 주변에 청색·녹색·황색으로 점선을 그리고 구연부 주변을 금속재인 동으로 둘렀다. 또한 그릇 안쪽에는 매미 모양 손잡이를, 바깥쪽에는 동물 모양 고리를 달았다. 발우에 세밀한 문양을 넣었을 뿐만 아니라 목재와 금속재의 혼용 등 매우 실용적인 동시에 실험성도 보여준다. 석제나 토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존이 어려워 유존례가 많지 않은 채화칠기 중에서 미적으로나 기법에서 매우 주요한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은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이응로, 남관 등 근현대작가의 내로라할 만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반드시 연구가 수행되어야만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지역에서만 활동한 작가와 월북 작가들이 북에서 그린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중섭의 드로잉과 엽서, 그리고 은지화(銀紙畵) 등 국립현대미술관 기증 104점, 제주도 이중섭미술관 기증 12점과 규모가 큰 [절구질하는 여인], [농악] 등과 양구 박수근미술관에 기증된 18점을 포함하여 90여 점을 상회하는 컬렉션의 규모는 국민작가 이중섭과 박수근에 대한 컬렉터의 애정과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중섭과 박수근에 대한 컬렉터의 애정 드러나


▎권진규, 손, 1968년, 테라코타, 51×28.5×1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281×56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환기의 가장 큰 그림 [여인들과 항아리], 아마도 박수근이 그린 그림 중 가장 큰 것일 [농악], 백남순의 유일한 근대기 작품 [낙원], 권진규의 자전적 테라코타 [손], 김기창의 [군마도], 박래현의 [무제]와 같은 작품은 만일 국보, 보물 지정제도가 근현대미술품에도 적용된다면 필시 번호를 부여받았을 작품들이다. 김기창은 1955년에 제작하고, 1956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이 작품이 워낙 대작이어서 실내에서 그리지 못하고 자신의 집 안마당에서 그렸다고 한다. 그의 말 그림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영리한 동물이며, 우리 인간을 위해 충용을 지니어서 인간과 생사까지 같이하는 훌륭한 동물이며 한번 노하면 하늘 높이 날뛰지만 마음을 너그럽게 지니면 순하기 이를 데 없다. 깨끗한 마음, 영리하고 지혜롭고 용맹스러움, 이런 성격을 우리 인간이 가진 감정 세계로서 화폭에 상징”한 것이라 하였다. 그의 [군마도] 중 가장 크고 격렬한 구도의 작품이다.


▎김기창, 군마도, 1955, 종이에 수묵채색, 4폭 병풍, 205×408.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역사적인 상흔으로 소환되는 작가 이응로(李應魯, 1904~1989)는 이적행위를 했다는 판결을 받고 징역을 살았다. 감옥에서도 사식으로 들어온 나무도시락을 잘라 조각을 만들고 고추장과 간장으로 드로잉을 하였던 그는 석방되고 프랑스로 간 뒤에는 생전에 고국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아쉽게도 호암미술관에서의 회고전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사망했던 것이다. 이응로의 작품이 이건희 컬렉션에 다수 소장된 것은 그의 회고전과 연관되어 이해할 수도,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문자추상 작품들과 함께 물성을 실험한 실험적인 바탕재의 다양한 사용을 보이는 규모가 큰 작품들과 타피스트리에 이르기까지 해외에서 제자들을 키워낸 이 작가 작품의 진면목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현대작가의 경우 규모 면에서 큰 작품들이 많은 것은 바로 명품을 지향한 결과일 것이다.

근대기 미술인들의 글을 읽다 보면 “피카소의 그림 한 장 없는 나라”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미술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말이자 세계미술계에서 소외감을 토로하는 관용어였다. 여전히 국립미술관에도 피카소는 소장되지 못한 상황인데, 한 해 구입예산으로는 턱없이 높은 가격 때문에 구입할 엄두를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건희 컬렉션에는 피카소, 달리,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샤갈, 고갱, 클레 등 근대기 대가들의 작품도 속해 있다.

후기인상주의자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 [무제](1875)는 1871년 파리에서 증권회사를 다니며 회화를 공부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1879년 그의 수입은 연간 3만 프랑의 엄청난 봉급자였으며 미술품 거래에도 능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파리에 정착한 지 4년 만에 그린 이 그림은 충실한 데생과 관찰을 보여준다. 그의 초기 작품은 색상이 지저분하였는데 배 부분 등에서 그러한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82년 증권시장 붕괴로 전업작가가 되기 전 그의 충실한 학습과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넓은 하늘과 자연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은 원시적인 생명성을 추구하였던 그의 성향이 생래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고갱, 무제(Untitled), 1875, 캔버스에 유채, 114.5×157.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피카소, 달리, 모네, 샤갈, 고갱 등 대가들 작품 다수


▎피사로, 퐁투아즈 시장(Marché de Pontoise), 1893, 캔버스에 유채, 59×5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색채의 광학적 효과에 기반을 두어 작품을 제작한 신인상주의자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는 후에 신인상주의를 포기했다. 감각의 자유, 자발성, 신선함을 표현하기에 과학은 이미 “감각을 따르기에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색채에 대한 감각을 표현했다. [퐁투아즈 시장] 시리즈는 도시 안에서 다양한 옷을 입은 농부들의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색채의 자율성을 실험적으로 보여주었다. 사실 인상주의자들의 작품 안에서 부르주아는 무채색 혹은 짙은 색채의 옷을 입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그들이 옷 색깔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 근로자, 농부들은 색깔 있는 옷을 입었다. 풍부하고 다양한 옷 색깔은 노동계급의 미학을 반영한다. 이건희 컬렉션의 1893년작 [퐁투아즈 시장]은 그러한 다양한 옷 색깔 속에서 평화로운 협동의 사회에 속하는 여성들을 그려낸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자기 텃밭에서 키운 곡물을 파는 여성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깊은 진실을 추구하는 피사로의 마음을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초현실주의자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의 1940년작 [켄타우로스 가족 Family of marsupial Centaurs], 정확히는 ‘육아낭을 가진 켄타우로스 가족’은 달리의 작품세계 진행에서 주요한 터닝 포인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달리재단의 ‘카탈로그 레조네’에 따르면 ‘개인소장’이며 1941년 시카고에서 발표된 뒤에 뉴욕에서 전설적인 줄리안 레비 갤러리(Julien Levy Gallery)에서 소개되었고 이후 미국의 여러 미술관에서 전시되다가 1964년에 일본 도쿄프린스호텔갤러리에서 전시한 후, 1970년 파리의 갤러리에서 [달리]전을 한 뒤로 전시 이력은 없다. 하지만 달리에 대한 연구서에서는 반드시 언급되는데, 신화적인 주제로 회귀한 것뿐만 아니라 기법에서도 고전적인 형식을 따르는 전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초현실주의자답게 “엄마의 자궁이라는 낙원에서 나올 수도 되돌아갈 수도 있는 켄타우로스가 부럽다”고도 했다. 캥거루처럼 육아낭에서 아기를 꺼내기도 하고 집어넣기도 하는 자궁은 생명에 대한 심층 세계의 내면을 보여준다.


▎달리, 켄타우로스 가족(Family of marsupial Centaurs), 1940, 캔버스에 유채, 35×30.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피카소의 작품을 단 한 점도 소장하지 못하였던 국립현대미술관은 피카소의 도예작품 박스로 가득할 것이고, 어느 조용한 전시실에서 우리는 모네의[수련] 앞에 끌어다 놓은 의자에 정좌할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름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시대에 이건희 컬렉션은 그 이름 안에서도 최고의 것들을 넣으려 했던 노력과 시간이 담겨 있다. 컬렉터가 시간을 들여서 작품을 소장한 것처럼 그 작품은 시간을 들여서 분류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전시실에서 오롯한 자신의 가치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작품 하나하나는 단순한 자산적 가치를 넘어선 정신과 문화의 가치를 가시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 조은정 (미술사학자,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초빙교수) arthistori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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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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