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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취재] 끊이지 않는 논란,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민낯 

우리 동네 정체불명 펜스가 1억 원짜리라니 

작품당 평균 제작비 1억7900만원… 1조 원대 투입됐지만 유명무실
“철저한 사전 계획과 사후 관리 뒷받침돼야 미술작품으로서 의미”


▎경기도 양주시 신촌 마을에 그려진 벽화와 키스 해링의 작품(오른쪽)을 비교하면 동일한 형태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 사진:박남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추진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경기도 양주시에 만들어진 한 공공미술 작품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문제가 된 작품은 지난해 9월 말 4일간의 접수 기간을 거쳐 약 4개월 만에 제작됐다. 그런데 벽화에 그려진 작품이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그림을 그대로 베껴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키스 해링(1958~1990년)은 미국의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뉴욕 지하철에 그린 낙서화 등 공공벽화를 통해 고급미술과 저급미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노력한 예술가다.

문제가 된 벽화작품 아래쪽에 그려진 그림을 살펴보면 키스 해링의 ‘춤추는 사람들(Dancing men)’과 ‘춤추는 세 사람(Dancing Trio)’이라는 작품과 판박이 수준이다. 인물의 동작·색깔·움직임을 표현하는 선까지 그대로 본떠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두 가지 색깔이나 위치가 살짝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세히 뜯어보면 키스 해링의 ‘짖는 개(Barking Dog)’, 김환기 화백의 ‘달항아리’ 작품과도 유사하다.

표절 논란이 일자 양주시청 관계자는 “(작가 본인이 표절·도용 부분을 잘 알고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100% 원형을 따라 하지 않고, 영리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표절·도용 논란과는 무관하다”며 “넓은 의미의 패러디로 봐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시각은 다르다. 서양미술 전문가이자 미술과 관련된 저작권에 밝은 김채린 작가는 “양주시에 그려진 벽화는 완벽한 표절이다. 패러디는 기존의 작품을 인용하더라도 새로운 해석·의미가 필요하고 기존과는 다른 미적 개념이 드러나야 한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실패한 패러디”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존 작품의 시그니처를 변형했어도 그것에 대한 의미와 의도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기자가 현장을 찾았지만, 벽화 주변에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임을 알리는 안내문만 있을 뿐 작품에 대한 흔한 설명조차 찾아볼 수 없어 졸속으로 제작됐다는 의심을 받을 만했다.

세금 투입해 만들어놓고 관리는 나 몰라라


▎동작구는 조감도(오른쪽)와 같이 녹화작업을 구상하여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현재는 관리가 되지 않고 방치돼 있다. / 사진:박남화, 동작구청
서울 동작구에 설치된 공공미술은 관리부실로 지역의 흉물로 변한 사례다. 동작구청은 2018년 초 상도4동 양녕로 27길에 공공미술을 입힌 골목공원을 조성하겠다며 노후화된 옹벽과 경사지, 자투리 공간에 녹지를 만들기로 했다. 동작구청이 주관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당초 목표는 식물과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골목을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골목공원을 추진한 박범진 도시전략과장은 “마을·사람·예술이 함께 공존하는 공공미술 랜드마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 상도4동의 골목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150m에 달하는 노후화된 옹벽에는 펜스를 덮어 애초에 그 위로 덩굴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으나 초록빛으로 가득해야 할 옹벽엔 현재 덩굴식물은커녕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쓰레기가 가득했던 경사지와 자투리 공간에는 화단을 정비하고 계단식 목재 데크를 설치해 주민이 쉴 수 있는 쉼터로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현재 화단에는 죽은 식물만 가득해 주변을 칙칙하게 만들고 있었다. 주민 박모(59·여)씨는 “조성을 했으면 1년에 한 번이라도 정리를 해줘야 하는데 방치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주민들의 쉼터가 돼야 할 공간은 각종 폐기물과 리어카가 있어 휴식공간으로 사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주민 이완근(67)씨는 “(그곳에서 쉬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업을 제대로 한다면 좋지만, 관리도 안 하고 방치하는 사업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사업 초기에 주민협의체나 인근 빌라에 거주하는 분들과 잘 관리해 줄 것을 약속받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관리 주체가 애매모호해졌다. 일반 주민이기 때문에 본업과 함께 해당 구역의 유지·관리를 지속하기가 어렵다”며 관리부실을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내년에는(구청에서) 유지 관리 비용을 추가로 편성하는 방안도 고려하겠다. 편성이 어려울 경우 마을재생기업인 협동조합을 통해 유지·관리에 관한 협의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의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애물단지가 돼버린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짧은 사업 기간을 지적한다. 실제 문체부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2020년 7월 사업 안내서를 배포했고 8월 말부터 공모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딱 6개월 후인 2021년 2월까지 작품 완공을 목표로 했다. 6개월은 공공미술 작품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설치하는데 너무 짧은 기간이다. 실제 몇몇 지자체들은 프로젝트를 기한 내에 이행하지 못했고, 문체부는 2월 26일 사업기한 종료 이틀을 남겨두고 완공 시점을 올해 6월 말로 연장했다. 예술가들은 졸속 행정이라며 비판했고, 지자체 관계자들 또한 예견된 일이었다고 허탈해했다. 수원시립미술관장을 지낸 김찬동씨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충분한 시간과 소통·협업이 없다면 퇴행적 환경 미술만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지역에 어울리는 공공미술 작품 설치를 위해선 작가·관계자·주민이 모두 모여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촉박한 일정 때문에 대부분의 지자체가 ‘의미’ 보다는 정부 지원에 따른 ‘목표 수립’에만 초점을 두게 되면 예술성도, 지역별 특성도 없는 속빈 강정이 돼버린다는 지적이다.

유명작가 작품 고철로 버려 뭇매 맞기도


▎지금은 철거된 서울 ‘슈즈트리’와 경북 ‘대추 화장실’. 수억원을 들인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앞서 동작구청의 사례처럼 공공미술의 관리 부실도 허다하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국민권익위)는 지자체들의 공공 조형물 건립 및 관리체계를 개선할 것을 권고하고 그 이행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2019년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관리·개선 현황을 점검했다. 그 결과 60.1%에 달하는 지자체들이 국민권익위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 일부 지자체는 담당 부서조차 없어 관내에 조형물이 얼마나 설치돼 있는지 그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식 이하의 해프닝도 발생했다. 2017년 해운대구청은 글로벌 작가이자 유명 설치 미술가인 데니스 오펜하임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꽃의 내부’ 작품을 무단으로 철거한 뒤 고철로 버린 것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도심 한가운데 설치됐다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조용히 자취를 감춘 공공미술 작품도 적지 않다. 2017년 서울시가 ‘서울로 7017’ 개장을 기념해 설치됐던 ‘슈즈트리’ 작품은 제작비만 1억4000만원이 들어갔지만, 설치 9일 만에 철거됐다. 같은 해 경북 군위군에서는 7억 원짜리 ‘대추 화장실’을 제작했지만 혈세 낭비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시민들은 “주민이 2만4000여 명에 불과한데 7억원짜리 화장실이 왠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졸속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국내 공공미술의 역사는 꽤 깊다. 1970년대 상징 조형물 사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도시 미화 차원의 모더니즘 조각의 등장을 거쳐 1990년대 장소 특정적 공공미술과 ‘건축물 미술장식제도(현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의무화되면서 정착됐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정부가 문화 향유 인식 증대, 도시 환경 개선, 신진 작가 기회 제공 등을 내걸면서 대규모 공공미술 사업이 활성화됐다. 2009년 문체부는 예술가의 일자리 창출 명목으로 예술 뉴딜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지난해부터는 전국 228개 지자체별로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 중이다. 문체부가 추진한 두 프로젝트 모두 공공미술의 새로운 모델 창출, 생활 속 미술문화 향유 여건 개선, 예술가의 창작 활동 활성화를 목표로 삼았다. 이처럼 공공미술이 활성화되면서 2020년 기준 국내에 설치된 공공조형물의 수는 총 1만5000여 점에 달한다.

국민권익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공미술 작품 1점당 평균 제작비는 1억7900만원으로 현재까지 설치된 작품의 비용을 모두 합산하면 1조1254억원가량의 세금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투자 덕분에 누구나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됐지만, 정부가 기대한 만큼 효과를 보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주민들은 매일 출퇴근하는 골목에서 공공미술 작품과 마주하지만 그게 예술품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성동구 주민 허미나(30·여) 씨는 “자세히 보면 미술품 같기는 한데,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방향성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손모(64)씨는 “이런 것 말고 진짜 주민들에게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하고 세금을 썼으면 좋겠다”라고 꼬집었다.

선진국 사례 참고해 해묵은 논란 해결해야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의 대표 작품인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는 광택 유지를 위해 작품 예산의 50%를 쓰고 있으며, 매일 2회에 거쳐 수작업으로 청소한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전담기구의 부재, 둘째 유지·보수제도 미비, 셋째 소통·협력의 부족이다.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국내 공공미술은 예술의 새로운 모델 창출, 미술문화 향유, 창작 활동 활성화라는 좋은 의도를 갖고 추진됐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 한 문화계 관계자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지금도 곳곳에서 도용·흉물 논란, 사후 관리 미비, 일자리 늘리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체부가 해외의 공공미술 사업 사례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지자체가 아닌 중앙정부가 공공미술을 관리한다. 이렇게 되면 지자체별로 제각기 운영하는 것보다 체계적이고 통합된 사업을 주도할 수 있다. 지역 예술가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모(32)씨는 “지자체마다 모집하는 것부터 각각 다르게 운영해서 작가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꽤 컸다”고 말했다.

최근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을 완수한 양평군에서는 공무원의 과도한 개입으로 예술의 창작 활동이 제한된 아쉬운 사례를 남겼다. 이런 문제는 캐나다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수 있다. 캐나다는 단기 프로젝트 및 커뮤니티 중심의 공공미술이 활성화돼 있다. 매년 ‘밴쿠버 공공미술 프로그램’과 관련된 정책들을 논의하며 예술가가 주도해 프로그램을 만든다.

미국의 사후관리 제도는 국내 공공미술 작품의 미래에 대한 해답으로 삼을만 하다. 미국 워싱턴 주는 작품의 수명 주기를 단기(0~5년)·중기(5~15년)·장기(15~30년) 단위로 설정하고 기간이 만료될 시점에 지속 여부를 판단한다. 또한 늘어나는 주 미술 소장품의 보존을 위해 공공미술 작품의 1% 예산 중 0.5%에 해당하는 금액을 유지보수에 할당해 작품의 설치뿐만 아니라 유지보수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문체부는 지난해 6월 3차 추경 예산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 분야에 759억원을 책정했다. 당초 예산(11억원)보다 70배 늘어났다. 문체부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주민의 문화 향유를 증대하며, 지역 공간을 문화적으로 재창조하기 위해 예산을 증액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별화되고 발전된 방식으로 공공미술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화계의 반응은 대체로 차갑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 예산은 국립현대미술관의 20년 치 소장품 구입 예산과 맞먹는 수준”이라며 “문체부가 주도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보다 문화예술기관을 통한 예술가들에 대한 간접지원, 창작 준비금 지원이 진정으로 예술인을 위한 지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가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국민에겐 혈세 낭비라는 비판을, 예술가들에겐 의미 없는 지원이라는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 박남화 월간중앙 인턴기자 p.alice901@gmail.com

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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