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정치특집 | 집중분석] 또다시 배회하는 개헌론, 그 파괴력과 여야 진영의 셈법 

이재명, 윤석열 외에는 개헌에 우호적 기류… ‘분권’ 필요성은 공감, 방식 놓고 백가쟁명 

‘87년 체제’ 변경 위해 대선 앞두고 여권의 친문, 야권의 김종인이 다시 불 지펴
국민의힘은 정권교체 이슈가 개헌에 묻힐까 우려… 최재형발 개헌은 실체 모호


▎2018년 문재인(왼쪽) 대통령은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초청해 개헌에 관한 자문 안을 전달받았다. / 사진:연합뉴스
"유럽 국가의 경우 국왕이나 대통령, 총리가 외교 활동을 분담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영국 G7 정상회의와 오스트리아·스페인 순방 성과 공유를 위한 헌법기관장 초청 오찬 간담회(6월 30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나라의 권력 구조는 의원내각제(영국·스페인)와 이원집정부제(오스트리아)다.

이를 두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개헌 의도는 아닌 것으로 안다”며 해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미묘한 파문이 일었다. 국회가 어느 때보다 개헌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6월 21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 시스템의 대변혁이 필요하다”며 개헌을 촉구했다. 의장실은 개헌 찬성률이 66.4%에 이른다는 국민 여론조사도 공개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헌법학자들의 모임인 한국헌법학회 회원 76.9%가 개헌에 찬성한다고 거들었다. 여야 원내대표는 국회에 정치개혁특위를 조속히 구성해 개헌 문제를 다루기로 의견을 모았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주자 또는 그 주변에서 개헌 논의가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숨겨진 개헌의 정략적 의도를 경계하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새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대선 국면에서 개헌 문제가 좋든 싫든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1987년 현행 헌법 도입 이후 5년마다 실시되는 대선에서 개헌은 ‘약방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결실을 보지 못한 채 매번 꼬꾸라지기 일쑤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거대 여당을 만들었고, 궁극적으로 내각제 개헌을 통한 장기집권을 꿈꿨다. 하지만 노태우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합당 당시 내각제 비밀각서에 도장을 찍었던 김영삼(YS) 민자당 대표가 개헌 드라이브에 강력히 반발했다. 여론 역시 집권세력의 “밀실야합”이라며 YS에 가세하자 개헌은 졸지에 ‘없던 일’이 돼 버렸다.

대선의 감초, 개헌의 수난사

5년 뒤 대선에서는 야당 유력주자 김대중(DJ), 김종필(JP) 후보가 개헌을 들고 나왔다. 두 사람은 ‘집권 후 2년 안에 내각제 개헌’을 국민 앞에 공개 다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DJP 연합은 김대중 단일후보의 승리로 정권을 쟁취하기에 이르렀지만 개헌은 다시 무산됐다. IMF 환란위기, 개헌 정족수 미달을 내세워 김대중 대통령이 발을 빼버린 것이다. 결국 대선 전 개헌 카드는 거대 보수 포위망을 뚫기 위한 DJ의 정치적 미끼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헌이 이렇게 정략적이고 부정적으로 각인된 때문인지 2002년 대선 때는 관련 논의가 아예 없었다.

그러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개헌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초 대국민 담화를 통해 4년 중임제 개헌을 골자로 한 ‘원 포인트 개헌’을 전격 제안한 것이다. 단임제의 폐해를 바로잡고 대선과 총선 주기가 맞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였다. 야권 유력주자들은 발끈하고 나섰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개헌의 정국 블랙홀 우려를 들며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일축했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시간 낭비”라며 거들었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당시 개헌에 반대한 뒤 정권을 잡은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중 여러 번 ‘4년 중임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을 제기했다. 그때도 유력주자였던 박근혜는 완고하게 반대로 맞섰다. 이렇게 두 차례나 개헌을 무산시킨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던 박근혜도 ‘역사의 아이러니’를 피해 가지 못했다. 자신의 집권 4년 차 막판인 2016년 10월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돌발적으로 개헌 추진을 선언했다. 공교롭게도 당일 밤 JTBC의 특종으로 ‘최순실 태블릿 PC’에 담긴 대통령의 연설문 수정본, 비공개 일정 등이 적나라하게 보도됐다. 이에 분노한 국민의 촛불에 박근혜와 함께 개헌론도 스러지고 말았다.

2017년 대선에서도 개헌론은 주요 쟁점이었다. 이번엔 여야 후보 모두 임기 중 개헌을 공약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를 공약한 문재인 후보는 당선 뒤 이를 발의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당시 개헌 저지선(100석)을 넘는 의석을 가졌던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국회의 총리 선출권’이라는 대통령 권한 축소를 강하게 요구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한국당은 개헌안 국회 표결 때 집단으로 퇴장해버렸다. 이른바 ‘투표 불성립’으로 처리가 무산된 개헌안은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민주화 이후 30여 년 동안 개헌은 대선을 전후해 꾸준히 시도됐고, 그때마다 엎어지면서 수난의 길을 걸어왔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개헌론이 또 불거졌다. 역시 집권 세력에서 먼저 나왔다. 다만 청와대 주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보다 여당 대선주자 중심으로 다양한 안이 등장했다. ‘평등과 분권을 위해 양원제 개헌’(최문순 강원지사), ‘연방제 수준 분권 국가를 위한 개헌’(김두관 의원), ‘토지공개념 도입을 위한 개헌’(이낙연 의원) 등 아이디어가 분출하는 느낌이다. 권력구조에 집중했던 과거와 궤를 달리하다 보니 개헌안의 초점도 다소 흐릿하다.

정작 정치권의 주목을 모은 것은 대선주자가 아닌 최인호 민주당 의원이 제시한 개헌안이었다. 그는 6월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대선후보들은 현재의 정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현실 가능한 개헌안을 공약으로 제시하라”면서 먼저 자신의 개헌안을 공개했다. 골자는 ▷대통령 4년 연임제 ▷대선 결선투표제 ▷여소야대 때 야당 추천 국무총리 등이다. 대통령 임기를 최대 8년까지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 가능하고, 결선투표로 대통령의 민주적 정통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아울러 국회 추천 야당 총리를 헌법에 조문화하지 않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야당에 사실상 총리직을 넘기는 정치 관행을 만들어 권력균형을 이루자는 것이다.

최 의원은 이낙연의 당대표 시절 수석대변인 출신이자 이번 대선 캠프에서는 상황본부장을 맡고 있다. 또 당내 주류인 ‘친문’의 부산파 핵심이며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그의 개헌론을 ‘이낙연 개헌안’ 또는 ‘친문 개헌안’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물론 그는 “특정 대선후보라든지 특정 정치세력과는 무관하다”며 “개인적 안”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 날 친문 싱크탱크 격인 ‘민주주의 4.0 연구원’이 ‘권력 안정과 민주적 통치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헌 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현역 의원만 56명이 가입한 당내 최대 친문 모임 ‘민주주의 4.0’의 개헌에 대한 전향적 태도는 당 안팎에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이원집정부제부터 내각제까지


▎민주당 이낙연(왼쪽) 후보와 정세균(오른쪽) 후보가 개헌안을 고리로 반이재명 연대를 형성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낙연과 함께 친문 대선주자로 꼽히는 정세균 전 총리 또한 이미 개헌안을 공개 천명해놓은 탓에 당 주류가 개헌에 단일 대오를 갖춘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정세균의 개헌안 요지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이지만 “개헌의 핵심은 분권”이라며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을 중심으로 외치를 책임지고, 국회가 추천한 총리가 내치를 책임지는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정세균은 내년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를 주장하며 “내가 대통령이 될 경우 4년 중임제 개헌 성공을 위해 임기 1년 단축”을 제안하는 등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여당의 개헌 드라이브에 대해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은 공개적 반응을 삼가는 분위기다. 야당 대선주자들은 개헌 필요성을 소극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여당의 개헌 의도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 일각에서는 내각제 개헌안이 불거져 귀추가 주목된다. ‘야권 최고의 전략가’로 통하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입을 통해서였다. 김종인은 6월 22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두고 “대통령 5년 임기 중 2년만 하고 2024년 총선에서 내각제를 도입하는 개헌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그 사람(최재형)은 권력에 대한 집착이 없고 부친으로부터 ‘국가에 충성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최재형의 대선 출마를 종용해왔던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때맞춰 대통령 임기 단축을 통한 개헌 시도라는 ‘최재형 대선 시나리오’를 언급하며 가세했다. 다만 내각제보다는 이원집정부제 도입 가능성을 높게 봤다. 정작 주인공 최재형은 아직 가타부타 말이 없다.

여야 경계 허무는 개헌의 치명적 유혹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야권의 개헌론자로 꼽힌다.
본격적으로 대선 국면을 앞두고 여야에서 개헌론이 제기됐지만 청와대는 일단 오불관언(吾不關焉)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6월 16일 “개헌과 관련한 문제는 이제 대통령의 시간에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6월 임시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부겸 총리 역시 권력구조 개편 등 개헌 추진 요구에 “국회에서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며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임기 말 대통령이 개헌 주체가 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정치권이 개헌을 추진한다면 이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도 해석됐다.

공을 넘겨받은 민주당은 적극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개헌에 대한 청와대 입장이 나온 날 기자간담회에서 “(대권주자들의 개헌론에 대해) 정책위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있다”며 “경선이 시작되면 각 캠프 정책을 책임지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채널을 만들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사실상 개헌에 대한 묵인 방침을 밝히자 여당이 나름의 스케줄에 따라 추진하겠다고 답변하는 모양새가 연출된 것이다. 당·청의 개헌에 대한 전향적 태도는 대선과 그 이후를 겨냥한 전략적 셈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당장 대선 전망이 그리 밝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4월 7일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 참패는 ‘20년 집권론’을 공언했던 여권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2030 젊은 표심의 이탈이 그 직후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이른바 ‘이준석 현상’과 맞물려 가속화하자 위기감이 배가됐다. 실제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은 거의 모든 조사에서 50%를 넘나들고 있다. 이처럼 야당 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는 선거판을 그대로 두면 승리 가능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즉각 여당 편으로 되돌리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판을 흔들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흔히 ‘정국의 블랙홀’로 부르는 개헌만 한 수단이 없다.

우호세력을 포함해 개헌 통과선에 육박하는 180석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본격적으로 개헌을 추진할 경우 그 파장은 결코 간단치 않다. 이 경우 여권은 국회 의석 우위를 바탕으로 정국주도권을 갖고 가면서 선거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 야권은 또 다른 차원에서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 안전판 마련을 위한 노림수로서의 개헌을 의식하고 있다. 만약 여권이 정권을 빼앗길 경우, 이번에는 자신들이 적폐 청산의 대상이 될 상황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이를 대비해 개헌을 통해 야당과의 정치적 공존을 모색하려 한다는 시각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김종인의 내각제 발언이 나온 다음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슈 전환을 통해 실정을 덮으려는 현 정권 주류와 개헌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야권 일부가 손잡고 권력을 나누자는 것”이라며 “이상한 정치적 야합”으로 규정했다. 이어 “현 정권의 잘못을 그냥 덮으면 미래로 나아갈 출발점이 사라지고, 국민이 납득할 수도 없다”고 날을 세웠다. 개헌을 현 정권의 실정 가림막으로 쓰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발한 것이다. 그러나 야권도 개헌 필요성을 마냥 모르쇠로 일관하기는 쉽지 않다. 김종인은 “정권 교체가 된다 해도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 구성 때문에 차기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며 개헌에 힘을 실었다.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사사건건 정치적 몽니를 부릴 경우 사실상 국정 운영이 마비되다시피 할 것이라는 우려다.

反이재명 연대 고리 될까, 정권교체 프레임 희석할까


▎정의화(왼쪽)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통해 개헌론에 불을 지피려 한다는 시선이 나온다. 반면 이준석(오른쪽) 국민의힘 대표는 개헌에 부정적이다.
최근 국민의힘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절대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 주도 시의회의 비협조로 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실제 서울시의회와 부산시의회는 얼마 전 추경심사 때 두 시장이 각각 공약했던 ‘서울런’과 ‘어반루프’ 사업예산을 전액 삭감해버렸다. 나름 새로운 정책을 통한 시정개혁을 추진했던 두 사람으로서는 첫걸음부터 족쇄에 묶여버린 셈이 됐다. 이 때문에 대선을 전후해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분권형 개헌이 이뤄져야만 정권교체 이후 일정한 권한을 나누어 가진 거대 야당과의 협치를 통해 국정운영이 순조로울 수 있다는 관점이다.

또 다른 추진 이유는 개헌에 대한 적극적 태도가 결국 정권교체의 큰 동력이라는 주장이다. 그 근거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드러나고 있는 ‘87년 체제’로 규정되는 현행 헌법과 21세기 AI 시대를 사는 현실 사이 엇박자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다. 사회의 기본적 규범으로 여러 문제가 드러난 헌법을 오히려 야당이 앞장서 바꾸겠다는 당당한 자세가 여권의 정략적 개헌 의도를 저지하고, 나아가 유권자들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에 대한 비판적인 세태와 이에 따른 권력분산 여론, 이준석 현상으로 드러난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의 시대착오적 규정 등 정치적 명분도 충분하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개헌의 가장 큰 장애물은 대선 지지율에서 여야 각 진영에서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는 1위 후보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이 지사는 당내 대선주자들의 개헌론에 대해 “‘경국대전’을 고치는 일보다 국민의 구휼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민생 우선을 내세워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은 개헌에 대해 공개 언급한 적이 없다. 개헌에 대한 캠프의 입장을 묻는 일부 언론의 질문엔 아예 침묵했다. 일종의 정치적 ‘사보타주’를 통해 개헌 반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1위 주자들의 개헌 경계심과 몸조심은 이해할 만하다. 섣부른 개헌 논의와 추진이 현재의 대선 구도를 뒤흔들 가능성이 큰 탓이다. 실제 민주당에서는 적극적으로 개헌론을 펼치고 있는 이낙연과 정세균이 이를 고리로 한 ‘반이재명 연대’로 막판 역전을 노린다는 말이 파다하다. 이에 대해 이 지사의 한 측근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제기되는 개헌론은 1등 주자를 몰아붙이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며 “개헌은 대선후보가 정해지고 당의 입장을 정한 후 야당과 협상할 문제”라며 경선 과정에서의 개헌 논의 중단을 주장했다.

윤석열 입장에서는 개헌 논의가 급부상할 경우, 개헌 이슈에 모든 것이 묻혀 ‘정권 심판론’을 앞세운 캠페인 자체가 먹혀들지 않고, 자연스레 정권교체 명분이 희석되는 시나리오를 우려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개헌을 대선 투표와 엮는 순간 난장판이 되고 대선 결과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론을 펼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 유력 주자들의 입장에서는 설사 대선에서 당선된다 해도 개헌으로 인한 정치적 손해가 자명하다. 대통령 임기를 최대 8년까지 가능하도록 바꾼다 해도 신임 대통령 취임 이전에 개헌이 완료되지 않으면 자신의 임기만 단축하는 꼴이 될 수 있다. 헌법 제128조 2항이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탓이다. 여기에다 권력구조가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뀌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온전히 자신의 소유가 돼야 할 막강한 대통령 권한의 상당 부분을 국회 또는 야당과 나눠 ‘반쪽짜리 대통령’이 불가피하다.

야권의 다크호스인 최재형발 임기 단축을 통한 내각제 또는 분권형 개헌론 또한 아직 분명한 실체가 없다. 무엇보다 정식 정치 입문도 하기 전에 정치공학적 셈법에만 매달린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이 경우 잘못된 권력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자기희생보다 오직 대통령이 되기 위해 임기까지 저당 잡히는 정치꾼 이미지가 더 부각될 수 있다. 또 다른 걸림돌은 빈곤한 여야의 정치력이다. 저마다의 개헌안은 권력 구조와 관련해 대통령중심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역대 9차례 개헌에서 여야 합의로 개헌안이 마련된 경우는 단 두 번뿐이다. 4·19혁명 후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제3차 개헌과 6·10 민주화 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들인 제9차 개헌이 그것이다. 거의 혁명에 준하는 국민적 압력이 있어야 가능했다는 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개헌론

그렇다고 이번에도 개헌은 물 건너갔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정치적 변수가 만만찮다. 과거의 정치적 패턴과 달리, 권력 핵심인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고 개헌을 밀어붙이는 형태가 아니다. 여당뿐만 아니라 야권에서도 개헌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들의 반대도 예전의 강도에 미치지 못한다. 당내 경선과정에서 개헌론을 앞세운 후보들의 약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다 여론도 우호적 태도를 거두지 않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론이 60~70%의 우위를 계속 보여주고 있다.

향후 개헌의 관건은 두 가지다. 첫째, ‘최소한의 개헌’이다. 여야가 함께 수용 가능한 최소한의 부분만이라도 먼저 바꾸자는 것이다. 핵심인 권력구조 측면에선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대통령 직선제는 유지하면서도 제왕적 권력을 나누는 방안이 현실적 타협안이다. 구체적으로 2018년 정부의 개헌안 발의 때 야당이 요구한 ‘국회의 총리 선출권’을 보장해주면 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자연스레 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국회 권한이 커지는 탓에 여당도 청와대 눈치 보지 않고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속도전이다. 대통령 임기 첫해에 개헌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대통령의 힘이 가장 강할 때 밀어붙여야 진정성과 정치적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여야 공히 차기 대통령 첫해 개헌 완료를 이번 대선에 공약해야 한다. 걸림돌은 대통령 임기 단축 문제다. 아울러 국회에 개헌특위를 조속히 구성해 선거가 끝나자마자 개헌 절차를 일사불란하게 추진해야 한다. 놀라운 역동성을 보여온 한국 정치가 세간의 비관적 전망을 뒤엎고 정치적 대타협으로 개헌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번 대선의 또 다른 주요한 관전 포인트다.

-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 jwhn20@naver.com

202108호 (2021.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