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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2030(2030년 국내 30위권 대학 진입)’ 기틀 다지고 용퇴하는 임태희 한경대학교 총장 

“‘변할 수 있다’ 믿고 전력투구… 경기 대표 국립대학으로 우뚝 설 것” 

젊은 세대와 공감하며 소통 힘써… 경쟁력 높아져 보람
학교 행정력·에너지 낭비 막기 위해 총장 임기 단축 용단


▎임태희 한경대 총장은 “곧 학교를 떠나지만, 이후로도 공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더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교정에서 산책을 즐기던 임 총장이 카메라를 보자 환하게 웃고 있다.
교정에 들어서면 아담한 축구장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이라 그런지 잔디는 더욱 싱그럽다. 축구장 잔디밭을 가로지르면 대학본부가 나온다. 경기도 안성시 중앙로 327에 자리한 국립 한경대학교의 컨트롤타워다.

한경대의 뿌리는 안성공립농업학교. 일제강점기이던 1939년 독지가 박필병 선생의 기부로 문을 열었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경대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국립대다. 개교 후 발전 과정에서 여러 차례 개명(改名) 끝에 지금의 한경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건 1999년.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9년 ‘2030 한경 비전 선포식’을 열고 ‘길을 만드는 대학, 경기 대표 국립대’를 다짐했다. 2030이란 2030년까지 국내 30위권 대학에 진입하겠다는 포부이자 다짐이다.

현재 한경대의 CEO(최고경영자)는 임태희 총장. 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3선(16~18대) 국회의원을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그런 그가 2017년 10월 20일부터 한경대 선장을 맡고 있다. 취임 당시 “4차 산업혁명 시대 새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다짐했던 임 총장을 만나 재임 3년여 동안 이룬 성과와 향후 과제 등에 대해 들어봤다.

“국립대는 국가적 과제 책임감 갖고 수행해야”


▎2019년 12월 개최된 ‘2030 한경 비전 선포식’에서 특강을 하는 임태희 한경대 총장. / 사진:한경대
취임 3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신다면.

“제가 이전에 경험했던 직업들은 현재의 문제 또는 가까운 미래의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에 반해 학교는 학생들의 미래, 한국 대학 교육의 미래 등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공무원·정치인· 각료에게는 정책 수요자가 좀 멀리 있지만, 교육은 정책 결정자·집행자와 수요자가 같은 울타리에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학교에서는 사소한 정책 변화가 학생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곧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차이점은 공무원이나 정치인의 경우 일방적일 때가 많은데, 학교 행정은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그들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합니다. 정치나 행정의 정책 결정·집행 과정에도 학교처럼 끊임없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임 동안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었고, 또 아쉬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국립대는 기업이나 민간에서는 할 수 없는 기초과제나 국가적 과제를 책임감을 갖고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학교는 미세먼지·기초환경·에이징 테크(Aging Tech) 세 가지 부문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이 세 가지 부문에서는 나름대로 성과도 냈고, 노하우도 쌓았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우리 학교가 국가 사회에 적잖이 기여할 수 있을 걸로 기대합니다.”

미세먼지 연구와 관련해서는 산학협력 활성화에도 박차를 가하셨죠?

“우선 산학협력 재정 규모가 최근 수년 동안 크게 향상됐습니다. 2017년 131억원에서 2020년 188억원으로 3년 동안 56억여 원이 증가했습니다. 연구비 수주 금액도 2017년 약 70억원에서 지난해 137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액됐습니다. 이는 유수의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공정한 경쟁 속에서 한경대가 연구과제를 수주한 것으로, 우리 학교의 연구 역량과 활동 수준의 비약적 향상을 입증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한경대는 미세먼지 저감 및 ODA(공적개발원조) 사업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안성은 초미세먼지 농도 전국 1위를 기록하는 등 대기오염이 매우 심각한 지역입니다. 중국에서 서풍을 타고 오는 미세먼지와 평택항의 선박·산업단지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오염인자가 합해져 안성으로 유입되지만, 안성 동쪽의 차령산맥에 막히다 보니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한경대는 지역을 대표하는 국립대학으로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선행연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2019년 국토교통부 주관 5년간 240억원 규모의 ‘도로 미세먼지 저감 및 실증 연구’ 수주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안성시와 협업도 추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안성시와 전통시장 미세먼지 저감 연구 협약을 맺고 우리 학교 정문 버스정류장에 미세먼지 저감 ‘테스트 베드(Test Bed)’를 설치함으로써 모니터링 장치를 통해 도로변 미세먼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의 대형 실외 미세먼지 저감 구간이라 할 수 있으며, 지금도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성시의 협조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또 한경대는 2008년 ‘미얀마 홀레구 지역 농촌개발사업 PMC(Project Management Consulting) 용역’, 2021년 ‘몽골 생명과학대학교 산학연계형 축산기술지원센터설립 및 고등교육 역량강화사업’에 선정돼 60억원을 수주하는 등 다양한 국제개발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경대 역점 과제 중 하나인 에이징 테크는 무엇인가요?

“에이징 테크는 노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되 삶의 질을 향상하는 웰 에이징(Well-Aging)과 항노화·노화방지 등으로 표현되는 안티 에이징(Anti-Aging)을 합친 기술로 중·노년층이 편하게 사용하기 좋은 기술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노령층이 증가한 나라입니다. 2000년 무렵에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 진입이 예상됩니다. 지속적인 저출산 현상과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노년 부양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청년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셈이지만, 2060년 이후로는 청년 1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합니다. 준비 없는 초고령화 사회 진입은 노년층에는 고통을, 청년층에는 짐과 부담감만 주게 됩니다.”

“에이징 테크로 청년 일자리 문제도 해결”


▎한경대에서 운영 중인 창농팜 농장을 찾아 포도를 손질하고 있는 임태희 총장. / 사진:한경대
에이징 테크는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에이징 테크(스마일 에이징)를 통해 국가 또는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비용을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첨단기술로 노년층의 건강과 인지능력을 유지·향상함으로써 국가나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청년들이 에이징 테크 관련 첨단기술 인력으로 투입되면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가들과 기업인들에게는 새로운 분야이면서도 확정 수요가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활발한 투자 유치가 가능합니다. 여러 계층의 고용과 창업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왜 스마일 에이징인가요?

“웃어야 합니다(웃음). 그리고 건강해야 웃을 수 있어요. 그다음에는 일이 있어야지요. 일이 없으면 웃을 수 없습니다. 또 그다음에는 문화와 인간관계가 중요하지요. 그게 안 되면 스마일 에이징은 어려워요. 고령화 사회의 키워드입니다.”

재임 중 웰니스 산업융합학부를 신설하는 한편 학부제를 개편하셨죠?

“네, 웰니스(Wellness)는 ‘well-being+happiness+fitness’의 합성어입니다. 웰빙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2의 인생, 즉 장·노년기의 삶의 질 향상과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는 국내 최초의 새로운 융합 분야입니다. 웰니스 산업융합학부는 의류산업학·아동가족복지학·식품영양학·웰니스 스포츠과학이 융합돼 2020년부터 새롭게 시작한 학부입니다. 초고령 사회 진입과 함께 실버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2020년 세계 실버산업 시장 규모는 7000조원에 이른 것으로 추산되며, 대기업들은 액티브 에이징 산업을 새로운 유망 시장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흐름을 선도적으로 주도하며, 관련 산업 전문가 양성을 준비하고자 학부를 신설하게 됐습니다. 2020학년도 신입생부터 학부제를 도입했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에 따라 특정 학문에 통달한 인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문에 능통한 T자형 인재가 주목받을 것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연관성이 깊은 기존의 학과들을 13개 학부로 통합하는 것으로 이미 학사 구조 개편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입학 후 여러 전공이 융합된 학부 내에서 학문적 다양성과 기본적인 교양 지식을 얻고, 본인에게 적합한 전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소통에 강한 융합형 인재 양성이라는 우리 학교의 교육 목표 달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경대의 ‘전매특허’인 농업 분야 연구에서는 어떤 실적이 있었나요?

“농업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을 농업 재도약의 디딤돌로 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입니다. 핵심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이며, 이들은 미래 농업의 열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농업의 경쟁력이 인프라·기술, 하드웨어·소프트웨어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이동 중인 것이죠. 우리학교 민승규 교수팀은 2019년 전 세계 21개 팀이 출전한 세계 인공지능 농업대회에서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IT(정보통신) 농업 올림픽’으로 불리는 이 대회는 농업인과 AI의 토마토 재배 대결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형 AI 농업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 사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우리나라 농업 여건에 적합한 한국형 모델, 즉 작지만 강한 ‘디지털 강소농(强小農)’ 모델을 개발하는 데 한경대는 농업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강소농(强小農)’ 개발에 역량 집중


▎2020년 6월 3일 한경대와 한국복지대 통합 합의서 제출식 때 자리를 함께한 임태희 한경대 총장(왼쪽)과 이상진 당시 한국복지대 총장. / 사진:한경대
평택 한국복지대와의 통합 진행 상황이 궁금합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국내 대학들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2019년부터 대학 입학정원이 고교 졸업자 수를 초과함에 따라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대학 경쟁력 제고 방안이 필요합니다. 20년 후 우리나라 대학 입학정원의 적정 수준은 현재의 30% 이하로 예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한경대 역시 최근 3년간 입학 경쟁률과 재학생 충원율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 중도 탈락률은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대외적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 적정 수준의 학생 수를 유지하기 위한 교육 품질 개선, 학생 지원 서비스 개선 등 전반적인 대학 경쟁력 제고가 절실합니다. 한경대는 4년제 일반 국립대 중 입학정원·교직원 등이 매우 적은 학교이며, 한국복지대는 유일한 국립전문대학으로 전체적인 규모가 작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경제적 효과 극대화, 대학 자원의 효율적 활용, 경기도 국립대의 위상 제고, 공적 고등교육 역할 강화 필요 등의 대의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통합을 밀어붙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난해 5월 한경대와 한국복지대의 학생·교직원·동문 등을 대상으로 통합 찬반투표를 한 결과, 한경대 교원의 60.6%, 직원의 73.6%, 학생의 85.5%가, 한국복지대의 교원 100%, 직원 91.8%, 학생 71.1%가 찬성했습니다. 양교가 통합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Technology(기술)+Human(휴먼)+Environment(환경) 친화적 융·복합 인재양성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또 웰니스 산업 분야를 기반으로 신산업 창출과 함께 사회 문제 해결을 통해 국가 지역산업 발전 및 국립대의 책무를 이행하는 지역 거점대학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자부품·반도체·자동차·기계산업을 중심으로 안성과 평택에서 미래융합산업·기술 특성화가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그 뿐 아니라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의 생애주기별 통합 교육을 통해 선진적 복지사회 실현에 기여하는 대학으로 발돋움하리라 믿습니다.”

4년 전, 돌연 왜 대학 총장에 도전하셨나요?

“솔직히 대학 총장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정치권을 떠나 2014년부터 한국정책재단 이사장을 맡았지요.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을 돕는 재단인데, 소상공인과 다문화 가정 등 소외계층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런 일을 하다 총장 도전 제의를 받고 고민했는데 문뜩 예전 경험이 떠오르더라고요. 과거에 서울대 초빙교수로 1년 동안 강의한 적이 있었지요. 그래서 대학에서 공적 책임을 다하는 것도 의무이자 보람이라 생각하고 도전하게 됐습니다.”

“나 하나 임기 단축하면 선순환 구조 정착”


▎임태희 한경대 총장은 주기적으로 학생들과 격의 없는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 사진:한경대
취임 당시 한경대는 어떤 학교였습니까?

“솔직히 국립대로서 브랜드 파워가 좀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대한민국 대학은 서열만 있을 뿐 ‘이 분야는 이 대학이 최고’라는 브랜드 같은 건 없는 것 같아요. ‘국립대도 이렇게 변화할 수 있구나’ 하는 사례를 만들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걸 (슬로건으로) 내걸고 총장에 응모했고, 선택됐습니다.”

임태희 총장실 벽에는 ‘길을 만드는 대학, 경기 대표 국립대학’이란 문구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임 총장이 부임 후 새로운 비전·방향을 제시하며 만들었다.

재임 동안 성과도 컸지만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장애인들의 생활 속 어려움은 사실 궤를 같이합니다.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한국복지대와 통합을 추진하게 된 것이지요. 빨리 통합이 마무리돼서 시너지효과를 냈으면 했는데, 일부 시민단체·지방자치단체 등의 반대로 통합 작업이 좀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미 9부 능선은 넘었으니 머지않아 잘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4차 산업혁명 시대 융·복합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전공의 벽을 허물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원래 좀 보수적이라 여의치는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좀 남아요. 하지만 사회와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긴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래도 제가 총장으로 일하는 동안 물꼬는 텄으니 곧 실현되지 않겠습니까?

임기 단축을 결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2017년 10월 20일에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4년 임기이니 오는 10월 19일 퇴임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10월이면 중간고사로 학교가 가장 바쁠 때입니다. 그런 시기에 총장 임기를 시작하면 학교 행정력과 구성원의 에너지 낭비가 극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직교수 인사만 해도 그래요. 한창 학기 중에 보직교수 인선을 하고 보니 여러 면에서 불편과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래서 ‘모든 학사 일정은 개학(3월 1일, 9월 1일)과 동시에 시작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미 (셀프 임기 단축 계획을) 교육부에 전달했어요. 늦어도 새 학기 시작 전에는 인수·인계를 마무리하고 새 총장님 체제로 우리 한경대가 새 출발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셀프 임기 단축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외부에서 들어와서 학교를 경영해보니 학기 중에는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연구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또 학교 행정력도 교수님들과 우리 학생들을 뒷받침하는 데 집중돼야 합니다. 4년 전에 총장 취임식을 생략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 개인으로만 보면 임기대로 10월 19일까지 일하다가 조용히 물러나는 게 가장 편하겠죠. 하지만 저 하나 임기를 단축하면 이후 총장님들은 학기 시작과 함께 직(職)을 수행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할 거예요. 학교와 구성원들을 생각하면 개인적인 유불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조금씩만 배려하면 다 같이 살 수 있다”


▎근무시간 중 잠시 짬을 내 교내 도서관에 들른 임태희 한경대 총장. 임 총장은 “코로나19가 끝나고 학생들이 더 많이 이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총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배우신 건 무엇인가요?

“요즘 학생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너무 잘 압니다. 어른들은 그들이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면 됩니다. 혹시 기존의 틀이 학생들을 방해한다면 좋은 방향으로 해결해주면 될 것 같아요. 그래야 젊은 세대들이나 교수님들이 미래 대응력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자율의 힘이죠. 총장이나 보직교수들의 생각대로만 학교를 바꾸려 할 게 아니라 학생들의 생각을 학교 운영에 반영해야 한다고 봅니다. 학생들에게는 큰 틀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정도만 말해주면 될 뿐, 일거수일투족을 지적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지적보다 중요한 게 공감이에요.”

네 번째 직업의 임기가 끝나갑니다. 향후 어떤 구상을 하시는지요?

“돌아보면 40년 이상 공직자로서 살아왔습니다. 국가·사회로부터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 바로 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공적 책임감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단 한시도 잊어본 적 없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60대 중반인데,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은 한 번도 해보기 어려운 일을, 그것도 분야를 달리해가며 네 번이나 했습니다. 개인적인 자리가 아니라 전부 공적인 자리였다는 것도 제게는 과분한 영광이었습니다. 학교를 떠나면 단기적으로는 학교에서 추진했던 스마일 에이징(에이징 테크) 분야 연구에 몰두하려 합니다. 스마일 에이징 문제는 저 개인의 문제이자 후배들 세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후배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 세대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젊은 사람들도 보다 홀가분하게, 마음껏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역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고, 또 민간 전문가들과 열린 플랫폼을 준비하려 합니다. 저는 정치를 했던 사람이자 국정의 중심에서 일했던 사람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제가 경험했던 정치 가운데 국민이 가장 걱정하게 만드는 수준에 이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에 대한 불만의 정도가 가장 높은 시기가 요즘인 것 같습니다. 분열·갈등·분노·증오의 정치가 통합·소통·대화·동반의 정치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임 총장은 곧장 교내 커피숍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아이스크림을 주문한 임 총장은 커피숍 사장에게 “요즘 방학 중인데 매출은 어떠냐”고 물었다. 사장은 “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영업난이 지속하자 임 총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교내에 입점해 있는 커피숍·편의점·서점의 임대료를 받지 않고 있다. 임 총장은 “그동안 커피숍이나 편의점의 임대료는 구성원들의 복지에 사용됐다. 우리에게는 혜택이지만 저분들에게는 생계”라며 “조금씩만 배려하고 양보하면 다 같이 살 수 있다”고 말끝에 힘을 실었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2108호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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