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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취재] 화장발 세우는 남자, 맨스 뷰티(men’s beauty) 열풍 

예뻐지고 싶은 자, 누구든 화장대 앞에 앉아라 

외모 가꾸기 통한 존경·자아실현 등 내면 욕구 충족되는 시대
2030에 영포티(Young Forty)·영피프티(Young Fifty)도 가세


▎최근 국내외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들의 인기가 상당하다. 13만 명의 팬을 지닌 뷰티 크리에이터 화니는 친근함을 무기로 남성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메이크업을 선보이고 있다.
"완벽한 피부 표현을 위해 기초부터 탄탄히 해야 합니다. 이 컨실러(얼굴 잡티를 가리기 위해 바르는 화장품)는 커버력이 진짜 대박입니다. 말린 장미 컬러를 눈두덩이에 발라보겠습니다. 하이라이터(얼굴 입체감을 강조하기 위해 바르는 화장품)를 해야 사진 찍을 때 예쁘게 나옵니다. 입술은 안쪽에 살짝 틴트(입술에 색을 내기 위해 바르는 액체 타입의 연지)를 발라 마무리합니다.”

뷰티 크리에이터 화니(20)가 자신의 인기 콘텐트 중 하나인 ‘체육대회 메이크업’ 유튜브 영상에서 강조하는 말이다. 6월 말 현재 이 영상의 조회수는 227만여 회, 댓글은 4만1000여 개 달렸다. 구독자 수는 13만6000여 명이다.

영상 속 ‘그’는 17가지 화장품을 사용하면서 자신만의 메이크업 팁(tip)을 구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전달한다. 여드름 가득하던 얼굴이 잡티 하나 없이 뽀얗게 변한 것을 본 한 외국인 구독자는 ‘한국의 화장하는 남성들이 정말 멋져 보인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바야흐로 ‘맨스 뷰티(남성들이 화장 등을 통해 외모를 가꾸는 현상)’ 시대다. 여성들 못지않게 자신의 얼굴을 ‘가꾸는’ 남성이 늘고 있다. 기성세대에겐 조금 낯설지 모르지만, 2030세대 사이에서 화장하는 남자는 ‘어?’가 아닌 ‘오~’의 대상이다.

사실 화장하는 남자가 등장한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일 축구 월드컵에 열광하던 2002년 당시 ‘히딩크의 황태자’였던 안정환과 ‘살인미소’로 여심을 사로잡았던 배우 김재원이 화장하는 남자의 원조 격이다. 안정환·김재원의 로션 제품 광고는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와 한국광고주협회가 서울 등 전국 5대 도시 케이블TV 가입자 2000명을 상대로 한 케이블TV 광고효과 조사에서 안정환·김재원이 모델로 등장한 ‘꽃을 든 남자’(14.5%) 브랜드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광고 영상 촬영을 담당했던 제작진은 “‘꽃을 든 남자’라는 브랜드에 걸맞게 남성성 속에 감춰진 여성성을 끄집어내는 게 CF의 기획 의도였는데 제대로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꽃을 든 남자’ 빅히트 이후 화장품 광고 시장에서 남성 모델 기용은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추세와 맞물려 젊은 남성 사이에서는 패션·외모 등에 관심을 갖는 ‘그루밍(Grooming)족’이 크게 늘었다. 이 같은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패션과 외모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남성)’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비롯한 1인 미디어 발달과 어우러지면서 맨스 뷰티로 진화·발전했다. 월간중앙이 2030 그루밍족 사이에서 ‘대세’로 통하는 뷰티 크리에이터 ‘화니’를 만난 것도 그 때문이다.

개성·취향 뽐내며 자아실현 욕구 충족


▎‘꽃을 든 남자’의 광고모델로 활동한 안정환(왼쪽), 김재원. 남성 모델과 화장품의 신선한 콜라보 덕에 당시 매출이 40%가량 늘었다. / 사진:TVCF 캡처
맨스 뷰티 열기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실제 유튜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뷰티 크리에이터 가운데 상당수가 남성이다. ‘남자 데일리(daily) 메이크업’, ‘남자 아이돌 메이크업’ 등 남성을 위한 메이크업 영상이 꾸준히 유튜브에 올라오고 있다. 인기 영상은 조회수 5만 회를 거뜬히 돌파한다.

2016년부터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화니는 학생 메이크업 콘텐트로 2030세대 팬들을 확보했다. 그는 “유튜브에서 처음 채널을 개설했을 때 성비는 7(여자)대 3(남자) 정도였지만, 지금은 놀랍게도 정확히 반반이다. 남성들의 관심도가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그의 인기 영상에는 ‘관리하는 남자 좋아요!’라고 말하는 여성 구독자뿐만 아니라 ‘남자가 봐도 귀엽다’, ‘이걸 보니 화장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형 멋져요’ 같은 남성들의 댓글도 눈에 띈다.

업계 관계자들은 2030세대의 거침없는 자기표현이 맨스뷰티 열풍을 견인하는 원동력으로 분석하고 있다. 2030세대는 자신들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또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다양한 간접경험을 통해 자신들의 취향도 형성해나간다. 유튜브·틱톡·트위터 등 SNS에서는 화장하는 남자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2030세대는 그런 정보를 자주 접하면서 화장에 대한 거부감을 줄인다. 최명화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를 두고 “2030세대 소비자들은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사회적 통념보다 자신들의 취향을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이들에게 화장은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예뻐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성별 불문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설명했다.

모바일 리서치 회사 ‘오픈서베이’가 최근 20~30대 남성 7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메이크업을 하는 남성은 4명 중 1명꼴이었다. 메이크업을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가운데 84.3%가 자기만족을 위해 꾸민다고 답했다. 올해만 20세가 된 화니 역시 이같은 오픈서베이 조사 결과에 공감한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화장을 시작했는데, 돌아보면 저는 또래 동성 친구들보다 훨씬 더 뷰티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멋있게 보이기 위해 옷을 사는 것처럼 메이크업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상대방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맨스 뷰티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지적 짝사랑 시점’, ‘일진에게 찍혔을 때’ 등 웹드라마로 유명한 ‘ TV(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 156만 명)’는 지난 1월 ‘유튜버 클라쓰(웹드라마)’에서 남학생이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주인공 권혁은 남자가 화장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편견을 극복한다. 영상에 달린 댓글은 ‘화장하고 꾸미는 남자가 더 멋지다’, ‘남자들이 화장하면 안 된다는 건 고정관념이다’와 같은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전문가들은 맨스 뷰티 열풍의 또 다른 원인으로 아이돌 문화의 확산을 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남자에게 ‘예쁘다’는 말은 칭찬이라기보다 비아냥이나 비하하는 말에 가까웠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 중 하나인 BTS(방탄소년단)만 보더라도 ‘예쁘다’는 말은 최고의 찬사다. 언론 매체들은 BTS 관련 보도에서 늘 ‘예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예쁘다=여성이라는 공식이 깨진 지 오래다. 요즘 젊은 남성들은 예쁜 외모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이처럼 예쁜 남자를 선호하는 현상이 화장하는 남자 신드롬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픈서베이가 발간한 [남성 뷰티 카테고리 리포트 2020]에 따르면 외모를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전체 응답자 3000명 중 47%는 “외모는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는 수단이며, 남성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답했다. 기능성 뷰티 브랜드로 유명한 A사의 김모(31) 팀장은 “결국 외모를 가꿈으로써 존경·자아실현 욕구가 충족되는 시대가 오면서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다. 특히 2030세대는 타인에게 인정받는 욕구가 강한 만큼 맨스 뷰티 역시 그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맨스 뷰티 현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직장인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인근의 뷰티 관련 매장을 가봤다. 퇴근 무렵인 오후 6시쯤 매장 안에서 젊은 남성 직장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직장인 황건희(34)씨는 “얼마 전부터 BB크림을 사용하고 있는데, 내 얼굴이 이렇게 깨끗해질 줄 몰랐다. 좀 더 일찍 발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황건희씨처럼 젊은 남성 구매자가 증가하면서 남성 화장품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10년 8000억원에 불과하던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15년 1조19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은 지난해 1조40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연평균 3.8%가량의 성장세를 보인다.

올인원 제품보다 남녀 공용 제품 선호


▎아이돌 그룹 ‘위아이’의 김요한(왼쪽)과 가수 강 다니엘의 화장품 화보. 예쁜 남자 아이돌 선호 현상은 맨스 뷰티 트렌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 사진:지방시 뷰티
해외 화장품 시장도 마찬가지다. 한국무역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2조9276억원(167억2000만 위안)에 달한다. 2016년부터 연평균 6~8%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최근 맨스 뷰티 시장이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맨스 뷰티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화장품 회사들도 남성 미용 카테고리를 강화하는 한편 기능별로 세분화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불과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화장품 매장에서 남성용 색조화장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인 에스케이투(SKII)는 남성용 제품을 국내에 가장 먼저 선보였고, 샤넬은 세계 최초로 한국과 일본에서 파운데이션과 립밤, 아이브로우 펜슬 등으로 구성된 남성 메이크업 라인 ‘보이 드 샤넬(BOY DE CHANEL)’을 출시했다.

화장품 회사들이 남성을 타깃으로 하는 제품 출시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남녀 공용 화장품, 즉 젠더리스(genderless, 성 파괴) 제품을 선호하는 남성도 적지 않다. CJ올리브영 관계자는 “예전에는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남성용 올인원(all-in-one) 제품을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기능성 제품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주목받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젊게 살고 싶어하는 40·50대도 외모가꾸기 관심


▎6월 10일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레코드 카페에서 만난 화니는 부모님이 화장하는 아들을 보며 걱정하기보다는 응원을 해주신 덕분에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 년 전부터 화장하고 있다는 한 남성 직장인은 “사실 여자·남자 화장법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메이크업의 진하기 정도”라며 “회사에 출근할 때는 보일 듯 말 듯 기초화장만 하지만, 주말이나 휴일에 외출할 때는 메이크업이 좀 진해진다”고 털어놓았다.

2030세대 남성들의 경쟁적 외모 가꾸기 현상에 4050세대의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4050세대 남성들에게는 기능성 화장품 구입 등 외모에 투자하는 것은 낭비나 사치로 여겨졌다. 화장품이란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달라졌다. 과거 같으면 ‘아재’ 소리를 들어도 전혀 낯설지 않았던 4050세대들도 외모 가꾸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선미 작가는 최근 발간한 [영 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에서 “예전에는 40대라고 하면 ‘불혹’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X세대가 현재의 40대가 되면서 ‘영포티(Young Forty, 젊게 살고 싶어하는 40대)’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영포티란 기성세대 같은 중년이 아니라 청년 같은 젊은 40대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영피프티(Young Fifty, 젊게 살고 싶어하는 50대)’까지 더해지면서 맨스 뷰티의 연령대는 확장하고 있다. 11번가·티몬 등 온라인 쇼핑몰에선 최근 뷰티 상품 구매자 중 중년층 남성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영포티·영피프티처럼 중년층이 2030세대와 함께 맨스 뷰티 트렌드에 빠진 이유는 인구 고령화로 인해 중위 연령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위 연령이란 전체 인구를 나이순으로 나열할 때 중앙에 위치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중위연령 변화를 살펴보면 1975년에는 중위 연령이 21.4세였지만 2005년 34.3세, 2010년 37.3세, 2020년 43.7세로 급격히 높아졌다. 현재 대한민국의 중심 나이가 40~50세에 속한다는 것이다. 통계로 보면 2020년의 43.7세가 1975년의 21.4세인 셈이다.

뷰티 크리에이터인 화니는 아버지 또한 자신처럼 피부 관리에 관심이 커졌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면서 제품을 추천해드리니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피부 관리를 시작했어요. 요즘 들어 ‘피부가 반들반들해졌다’며 만족해하신 걸 보면 흐뭇해요. 이제는 남자가 스스로 화장하고 외모를 가꾸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월간중앙 독자들도 저처럼 해보지 않으시겠어요?”

- 글 박남화 월간중앙 인턴기자 p.alice901@gmail.com /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108호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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