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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를 찾아서’(5)] 1295년 역사의 올림픽을 대하는 세 가지 관찰 포인트 

문명의 진보 향한 위대한 도약대 

‘신 앞에서의 평등’ 기치로 모든 도시국가가 참여한 평화의 대제전
지구촌을 휩쓴 질병과 전쟁 중에도 올림픽의 성화는 꺼진 적 없어


▎올림픽은 강인한 신체와 정신의 조화를 통해 최고의 인간상을 구현하려는 인류의 바람이 깃든 세계인의 축제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항아리에는 더 빠르고, 더 강한 인간의 모습을 찬미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 사진:중앙포토, 유민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도쿄 올림픽이 ‘마침내’ 시작됐다. 정확히 7월 26일부터 8월 8일까지다. 바이러스로 인한 불안과 우려가 교차하지만 경천동지할 사건이 없는 한 강행될 것이다. 33개 종목에서 339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분위기 자체가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7월 7일 기준으로 약 200여 나라가 참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편집자 주]

'citius, altius, fortius’ 올림픽과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구다. 라틴어로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faster, higher, stronger)’란 말이다. 올림픽이 지향하는 모토(motto)다. 궁극적으로는 도덕심 고양에 있겠지만, 신체 단련을 통한 스포츠 제전이 올림픽 개최의 대의이자 명분이다. 몸을 움직이는 스포츠는 인간의 본능에 기초한, 원초적인 경쟁심을 불러일으킨다. 약육강식은 인간 문명, 아니 모든 생명체의 기본원칙이다. 정신·지략·기술이 아닌, 육체적 차원의 약육강식이 인류 역사의 출발점이다. ‘높고 강하고 빠른’ 인간만이 물리적 차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헤라클레스와 같은 슈퍼맨 신화는 고대 문명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누가 더 빠르고 강력하며 오래갈 수 있는지가 가치이자 미덕이다. 본능은 싫든 좋든, 인간의 몸과 머릿속에 잠재해 있다. 매력적인 여성을 만날 경우, 청년·장년·노인 할 것 없이 남성이라면 곧바로 눈이 가게 된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법·도덕·교육·지성으로 통제하지만, 마음 깊숙이 이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본능이 꿈틀댄다. 기본적으로 올림픽은 그 같은 인간 본능에 기초한 경쟁 공간이다.

올림픽의 출발점은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된 고대 올림픽에 있다. 제우스를 찬미하기 위해 4년마다 한 번씩 열린, 그리스 도시국가(Polis; 폴리스) 전체를 아우르는 최대 축제다. 그리스 폴리스는 한때 1000여개에 달했다. 이합집산을 통해 축소되기도 하지만, 자기 정체성에 기초한 독립의식이 모든 폴리스의 공통분모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주의 세계관이다. 올림픽은 그런 아이덴티티의 확인 장소인 동시에 인간 본능의 경연장이었다.

고대 올림픽 역사는 기독교 등장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기독교 유일신 사상에 반하는, 제우스를 내세운 제전이기 때문이다. 서기 394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의 칙령에 의해 폐지됐다.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최종 선포한 인물이 바로 테오도시우스다. 기원전 8세기 이래 정확히 1170년간 이어진 길고 긴 역사가 황제 한마디 말로 사라진 것이다. 이후 올림픽이 부활한 것은 1896년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결성과 더불어 그리스 아테네에서 대망의 올림픽이 부활한다. 폐지 이후 무려 1502년 만이다.

제우스 찬미하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축제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전쟁을 멈추고 제우스를 위해 체육 경기를 펼쳤던 제전에서 유래한다. 올림픽 성화는 아테네 올림피아 유적에서 채화돼 개최지로 봉송된다.
살다 보면 연륜(年輪)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원래 나무의 나이테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보통은 여러 해 동안의 노력이나 경험으로 이룩된 숙련의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올림픽은 인류 연륜의 집산물이자, 지구 문명과 문화의 최고 걸작품 중 하나다. 고대 1170년과 현대 125년을 합쳐, 1295년 긴긴 역사를 자랑하는 지구 차원의 초대형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식당은 맛과 멋에 이끌린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성실히 꾸준히 열심히’ 장사를 하는 과정에서 음식 솜씨만이 아닌 식당 주인의 인덕도 주변에 퍼져나간다. 반짝 대박 스타일이 아니라, 천천히 대대손손 이어지는 연륜의 무대로 변신한다. 유럽, 일본에서 만날 수 있는 일이백 년 된 노포(老舗) 레스토랑은 연륜의 결과물이다. 상식이지만, 노포 식당들은 ‘결코’ 비싸지 않다. 거품 없이 적절한 가격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노포 식당의 가치는 맛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용된 그릇이나 실내장식의 변천사에서부터 단골들과의 인간관계에 관한 스토리도 넘친다. 필자가 일본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250년 전통의 소바 식당은 좋은 본보기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카와바타야스나리(川端康成)가 즐겼다는 소바 맛도 일품이지만,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 소바 컵(蕎麦猪口) 감상이 노포에 들르는 이유 중 하나다. 창업 당시 사용했던 에도(江戸) 시대 소바 컵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깨지거나 마모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금과 은으로 때워서 수백 년 전 유물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컵 하나당 수선비가 최소한 1만 엔이 넘지만, 절대 버리지 않는다. 버리기는 쉽지만, 에도시대의 소바 컵 재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손바닥에 잡히는 작은 컵 하나지만, 역사와 전통의 향기가 가슴속에 퍼져나간다.

1295년 역사를 가진 올림픽의 의미와 가치는 대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수 있다. 연륜, 즉 나무의 나이테를 어느 부분에서 보느냐에 따라 ‘대하(大河)’ 정도가 아니라 ‘은하(銀河)’로 비상할 수 있다. 올림픽에 관련된 수많은 의미와 가치 가운데 필자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이하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소바 집에서 소바 컵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이하 세 가지 관점이 올림픽 역사 전체를 대하는 필자의 주된 관찰 포인트다.

#1. 개인주의에 기초한 평등한 인간

현대 올림픽에서의 승리자는 ‘금·은·동’ 세 명의 선수로 나눠진다. 올림픽 시상식을 자세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의문이 생기겠지만, 메달리스트가 서 있는 수상대 높낮이가 좀 이상하다. 금메달은 약 30㎝ 정도 높고, 은메달과 동메달은 높이가 같다. 수상대는 관객 눈높이와 똑같은 지상에 설치된다. 금메달 수상자만 30㎝ 더 높을 뿐, 은메달, 동메달, 나아가 관객의 눈높이는 똑같다. 왜 은메달 동메달이 같은 높이인지, 나아가 관객의 눈높이와 똑같은지 궁금하다. 정답은 고대 그리스에 있다. 당시 우승자는 단 한명이다. 금·은·동 3명이 아닌, 종목별 최종승리자 단 한명만 존재했다. 우승자의 징표는 금메달이 아닌, 당시 최고의 영예로 통하던 올리브 관(冠)이다. 1등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2등을 하거나 100등을 하거나 1등이 아니란 점에서 똑같이 취급됐다. 현대 올림픽은 그런 전통에 따라 은메달과 동메달 나아가 관객 모두를 같은 높이로 처리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도 올리브 관을 쓴 우승자를 위한 높은 수상대가 따로 있었을까? 추측건대 그냥 평지에서 단독으로 받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리스 폴리스는 평등에 기초한 자유시민체제다. 전쟁에 나갈 때는 장군이든 보병이든 모두가 동일한 월급을 받았다. 업무에 따른 구별은 있지만, 기본은 평등과 자유다. 올림픽 우승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다른 시민들보다 높이 올라 아래를 내려다볼 수 없다는 말이다.

오직 승리자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


▎올림픽 메달에는 날개 달린 전쟁의 여신 니케가 그려져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선보인 올리브 관을 든 니케의 조각상.
올리브 관은 올림픽 우승자를 위한 징표이자 상품이다.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면 스포츠 우승자의 상징으로 월계관도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에는 제우스를 기리는 올림픽만이 아닌, 태양의 신 아폴로를 찬미하는 스포츠 경기도 열렸다. ‘피티안 경기(Pythian Games)’로 불린 스포츠 축제다. 규모 면에서 올림픽에 못 미치지만, 고대 그리스 전역을 아우르는 스포츠 제전으로 인식됐다. 4년마다 열리는 이벤트로, 올림픽이 열리고서 2년 뒤에 개최됐다. 지지자의 금전적 지원이 있고 유능한 선수라면 올림픽에 이어 피티안 참가도 가능했다. 월계관은 피티안 경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올림픽의 올리브 관과 달리 피티안은 월계관을 우승자 머리에 올렸다. 서방에서 월계관은 ‘지성·지혜·지식’의 상징이다. 박사 학위를 받을 때 머리에 월계관을 올리는 대학도 많다. 시인, 문학가라고 하면 월계관이 반드시 따라붙는다. 시인·음악·예술을 주관하는 아폴로의 이미지와 통하기 때문이다.

월계수는 아폴로와 요정 다프네(Daphne)의 비극적 사랑을 통해 탄생한 나무다. 에로스(로마명 큐피드)가 쏜 납 화살에 맞은 다프네는 아폴로만 보면 피한다. 아폴로는 에로스가 쏜 황금 화살에 맞은 뒤 다프네만 따라 다닌다. 도망만 다니던 다프네는 아폴로에게 잡히기 직전에 강(江)의 신인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유럽 뮤지엄 어디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아폴로를 등진 채 나무로 변하는 다프네 모습이 도움의 결과다. 아폴로는 완전히 나무로 변신한 다프네를 보면서 통곡한다. 눈물을 거둔 뒤 다프네의 영혼이 깃든 나무를 인간 품격의 상징으로 만든다. 바로 월계수다. 21세기 관점으로 보면 스포츠 우승자는 지성·지혜·지식과 동떨어져 보인다. 고대 그리스는 다르다. 몸·정신·영혼이 하나라고 믿었다. ‘citius, altius, fortius’는 스포츠만이 아닌, 지성·지혜·지식의 영역에도 통했다. 아폴로 찬미가 주된 목적이었겠지만, 월계관이 스포츠 우승자에 한층 더 어울렸던 시대가 고대 그리스다.

올림픽은 기본적으로 돈과 무관한 아마추어 정신에서 출발한 축제다. 이기면 돈이나 고가의 상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차원의 명예가 전부였다. 그러나 우승자에게는 결코 돈으로 평가될 수 영예로운 선물 하나가 제공됐다. 제우스 신전 주변에 세워진 우승자 모습을 본뜬 조각이다. 올림픽 우승자에게는 무료 조각과, 신전 내 건립이 허락됐다. 제우스 신전에 세워진다는 것은 바로 신중의 신인 제우스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다.

고대 올림픽 우승자의 상징인 올리브 관과 관련해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다. 누가 우승자 머리에 관을 씌우는가, 라는 점이다. 정답은 우승자 자신이다. 올림픽 관계자들이 올리브 관을 미리 준비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우승자 본인의 손으로 모자를 쓰듯 관을 올렸다. 이는 평등과 자유에 기초한 그리스 정치 체제를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본보기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우승자의 명예와 영광은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로 연결된다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우승자가 소속된 폴리스와 왕 나아가 가족과 지지자들이 영광을 나누지만, 기본은 ‘나와 제우스의 일직선 관계’에 있었다. 누군가의 권위에 의한 올리브관 이 아니라, 제우스가 인정하고 제우스에게 바치는 우승자 개인의 의식(儀式)인 셈이다.

고대 올림픽 우승자는 올리브 관을 직접 써


▎요정 다피네(오른쪽)는 아폴로로부터 도망가던 중 월계수로 변한다. 아폴로는 이를 슬퍼하며 월계수를 최고 명예의 상징으로 만든다. / 사진:유민호
나폴레옹 대관식(LeSacre de Napoléon)은 루브르에서 가장 큰 프랑스 유화다. 어용(御用) 화가 다비드의 그림으로 1804년 12월에 파리 노트르담 사원에서 거행된 나폴레옹 대관식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명작이다. 그림의 중심은 나폴레옹이 왕관을 들고 부인인 조제핀이 꿇어앉아 기도하는 모습이다. 언뜻 보면 마치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왕관을 수여하는 듯한 광경이다. 화가 다비드가 대관식에 참석한 모두를 만족시키는 과정에서 연출된, 픽션에 기초한 장면일 뿐이다. 실제 현장에서 나폴레옹은 바티칸에서 초대된 교황이나 원로원 의장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왕관을 직접 머리에 올렸다. 동양 기준으로 보면, 나폴레옹의 행동은 무례하고 오만하게 비친다. 권위나 명예를 기존의 사회체계 속에서 ‘받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하사한 손목시계를 통해 ‘국가 최고 권력과 나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이 동양적 사고방식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필자는 거주지 시장(市長)에게 받은 영어사전 하나를 너무도 자랑스럽게 느꼈다. 사전 표면에 새겨진 시장의 이름을 보면서 ‘시장의 권위=나의 능력’으로 연결됐다.

나폴레옹은 물론, 25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그런 ‘인위적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에서 지방의 작은 폴리스가 아테네보다 더 큰 신전, 성벽을 쌓아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고대 로마도 마찬가지다. 변방의 도시가 로마보다 더 크고 높은 건물을 세워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경제적·정치적·사회적으로 능력이 된다면 더 큰 원형경기장을 만들 수도 있었다. 동양은 어떨까? 규모에서 조선 왕궁은 중국 황궁을 넘어설 수 없다. 무조건 작고 허름해야만 했다. 조선 지방의 관청은 한양의 왕궁보다 한층 더 누추하고 왜소해야만 했다. 지방 거주민의 경우 아무리 돈이 있어도 지역 내 관청보다 큰 집을 지을 수 없었다. 최고 권력, 이른바 중앙의 눈치를 보는 문화가 동양적 세계관이다. 권력관계만이 아닌,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나이를 통한 수직적 관계도 동양적 사고의 배경이 된다. 서방은 나와 신에게로 이어지는 직접 교류만이 중요할 뿐, 중간은 생략된다. 장유유서라고 하면 ‘왜?’를 연발할 뿐이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 우승자가 올리브관을 자기 손으로 직접 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서방의 개인주의, 능력주의의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2. 평화와 화합의 제전

올림픽은 인류의 평화 화합에 이바지해온 지구 최고 최대의 이벤트다. 20세기 들어 전쟁이나 이념 대립으로 인해 주춤한 적도 있지만, 평화 화합의 제전이란 가치는 변함없다. 주목할 부분은 전염병이다. 한국에서 보면 ‘도쿄 올림픽=팬데믹 재발’이란 관점에서 반대 여론이 지배적이다. 일본에도 그런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1295년에 걸친 올림픽 역사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전염병으로 인해 대회 자체가 중단된 적이 올림픽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팬데믹이 글로벌 차원의 대재앙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올림픽=전염병의 공포 하의 축제’라는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다. 전염병은 시공을 넘어 전 세계 어딘가에서 항상 발생해왔다. 1920년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 올림픽은 전염병 비상시국에 치러진 호례(好例)다. 백신도 없던 당시, 세계 선수단은 목숨을 걸고 경기에 참가했다. 1918년 발발해 2년간 맹위를 떨친 스페인 독감이 주범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약 5000만 명이 사망했던 시점에 열렸다. 2021년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희생자는 7월 기준으로 약 400만 명 정도다.

올림픽은 역경을 이겨낸 인류의 불굴 역사


▎인류의 평화와 화합의 제전으로서 위대한 역사의 도약대 역할을 해온 올림픽은 계속돼야 한다. 6월 28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미디어데이에서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시위를 당기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지만, 101년 전 벨기에 올림픽 때 스페인 독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프리카에 전염병이 돈다고 해서 지역 내 선수단 참가를 제한하거나, 경기 주최국 안에서 바이러스가 창궐했다고 해서 올림픽 자체를 중단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다. 팬데믹으로 인해 늦어질 수는 있다. 도쿄 올림픽에서도 목격하겠지만, 전염병 확산방지 차원에서 참가 선수단 규모를 줄이는 나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선수 스스로 참가를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론은 ‘The Show Must Go On(쇼는 계속돼야 한다)’이다. 일본 정부가 억지로 밀어붙여서 개최되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역경 속에서 지속한 인류의 전통이 불굴의 올림픽 역사 그 자체에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왜 전염병마저 무시하면서까지 올림픽 개최가 당연시됐을까? 정답은 역시 고대 올림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올림픽이 개최될 당시 최대 1000여개에 달했던 그리스 폴리스 사이에 특별한 신사협정 하나가 등장했다. 올림픽 기간 중 전쟁 금지다. 서로 전쟁을 하다가도 올림픽이 열리기 한 달 전부터는 창과 방패를 내려놓고 올림픽 경기장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폴리스의 99.99%는 전쟁중단 약속을 지켰다. 스파르타처럼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나라는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만 했다. 벌금을 내지 않거나, 전쟁을 계속할 수가 없다. 저주와 천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 화합에 앞서, 제우스 숭배가 고대 올림픽의 출발점이다. 그리스에서 제일 높은 해발 2917m의 올림푸스산(Mount Olympus) 꼭대기에 사는 제우스를 찬미하고, 나머지 다른 신들도 공경하자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따라서 올림픽 기간 중 전쟁중지는 폴리스끼리의 약속만이 아닌, 최고의 신 제우스에 대한 예의라 볼 수 있다. 당시 벌금은 올림픽 관계자나 폴리스 연합세력이 아닌, 제우스의 이름으로 내려졌다.

25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인의 신관(神観)은 21세기 현재의 위상이나 상황과 전혀 다르다. 신의 의미와 가치가 현대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신성하고 강력하다. 당시의 신은 인간에게 행복을 주고 용서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전염병이나 전쟁으로 한순간 폴리스 전체를 초토화시키고, 가뭄이나 홍수로 문명 자체를 몰살시키는 저주와 천벌의 신으로 통했다. 모든 신이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특히 제우스는 한층 더 무서운 신으로 통했다. 제우스는 천둥과 번개로 무장한 신이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치는 천둥과 번개는 신의 노여움으로 해석됐다. 오늘날처럼 과학적 현상으로 이해된 것은 불과 19세부터다. 결과적으로 제우스의 천벌을 무서워하는 과정에서 ‘올림픽=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제우스에 대한 공포가 올림픽을 절대 중단할 수 없는 이유이자 배경이 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올림픽을 중단할 경우 제우스의 저주와 천벌이 따를 거라 굳게 믿었다. 근·현대 올림픽도 그런 세계관에 따라 제우스 의식으로서의 올림픽을 강행하게 된다.

성적 고정관념 극복해온 올림픽의 새로운 화두

#3. 여성, 인종, LGBTQI와 올림픽

하계 올림픽 메달 전면을 자세히 보면 날개를 단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금·은·동 관계없이 전부 그려져 있다. 승리의 여신 나이키다. 그러나 다른 관점도 있다. 여성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를 형상화해서 메달에 새겼다는 식의 해석이다.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스포츠 제전이 고대 올림픽의 전모다. 나체로 이뤄지는 운동이기에 여성들의 관람 자체가 금지됐다. 여성운동가들이 보면 차별의 극단에 선 이벤트로 보이겠지만, 사실 고대 그리스에는 여성 전용 올림픽도 따로 존재했다. ‘헤레니안 경기(Heraean Games)’라 불린 스포츠 제전이다. 이름에서 보듯, 제우스의 부인인 여신 헤라를 모시는 의식이다. 4년마다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주변 어딘가에서 동시에 치러진 경기로 여성만 참가할 수 있다. 경기 운영 관계자도 전부 여성으로, 남성 올림픽의 달리기에 비해 6분의 1 정도로 줄어든 단축 경기가 이뤄졌다고 한다. 남성의 관람 자체도 금지됐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소문으로만 전해진다.

고대 올림픽 전통에 따라 1896년에 부활한 아테네 올림픽 당시 여성 참여가 금지됐다. 최초로 여성 참가가 허락된 것은 4년 뒤인 1900년 파리 올림픽 때부터다. 여성만으로 이뤄진 골프와 테니스가 신설되면서 22명의 여성 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21세기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운영방식으로 하계 동계 포함해 ‘여성 참가 비율 20% 이상’이 명문화돼 있다. 한국은 2016년 런던 올림픽 당시, 남녀 비율 50 대 50으로 이상적인 모델국가에 들어간다. 여성 참여 확대는 ‘올림픽=인류 문명 문화의 업그레이드 무대’로 창조해낸 원동력 중 하나다. 백인 남성에서부터 여성 나아가 인종차별을 넘어서 화합과 평화의 올림픽이 매년 펼쳐진다.

2021년 도쿄 올림픽을 통해 주목할 부분은 LGBTQI로 불리는 성 소수자 참여 문제다. 올림픽위원회는 성 소수자 보호와 차별금지를 자체 헌장에 명문화하고 있다. 문제는 남녀로만 나눠 운영하는 현재의 올림픽 구도다. 원래 남성이지만, 여성 호르몬이 많으면서 여성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남녀 경기 가운데 어느 영역에 참가할 수 있을까? 여성이다. 국가·사회·가족·타인이 아니라, 성 소수자 본인이 생각하는 성의 영역이 정답이다. 기존의 여성 선수들이 보면 근육형 남성이 여성이라 말하면서 참가하는 게 거부감이 들 것이다. 그러나 시대정신은 개인의 의사에 기초한 성적 아이덴 티티를 우선시한다. 앞으로 올림픽이 열리는 세계 곳곳에서 논의가 될 것이고, 화제로 남을 영역이 LGBTQI 성 소수자를 둘러싼 운영방침이다. 만약 2050년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올림픽이 열릴 경우 LGBTQI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지 궁금하다.

‘citius, altius, fortius’는 스포츠, 나아가 개인주의에 기초한 지성 지혜 지식과 도덕을 둘러싼 인류 발달사의 모토다. LGBTQI 성 소수자에 맞춰진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faster, higher, stronger)’ 논의는 앞으로 펼쳐질 올림픽의 최첨단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올림픽의 기본 출발점이자 원칙은 평화와 화합에 있다.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스포츠야말로 평화 화합으로 이끄는 최대 최고의 ‘명상(Meditation)’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108호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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