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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의 뮤지컬 오디세이(3)] 세상을 홀린 팬텀의 마력, '오페라의 유령' 

괴물 아닌 아픈 사랑의 패배자로 관객들 가슴속 깊이 다가가 

[뉴욕타임스] “현대 뮤지컬을 정의한 작품” 극찬
음악·드라마·춤 모두 세계인 입맛 맞게 업그레이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양준모(오른쪽)와 최현주가 열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온갖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뮤지컬 붐을 주도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뮤지컬도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온갖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의 뮤지컬 붐을 주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현대 뮤지컬을 정의(定義)한 작품”이라는 극찬을 보냈다. 뮤지컬의 주요 구성요소인 음악·드라마·춤·볼거리를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블록버스터급으로 업그레이드해 새롭게 규정했다는 뜻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경매 장면에서 시작한다. 경매인이 그 옛날 ‘팬텀’이 떨어뜨린 문제의 샹들리에를 마지막 경매품으로 소개하고 스위치를 켜는 순간, 유명한 서곡이 울려 퍼진다. 웅장한 울림, 심장이 뛰는 멜로디…. 그 뒤로 3시간이 꿈결처럼 흘러간다.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의 추리 작가 가스통 르루가 1910년에 발표한 소설이 원작이다. 로이드 웨버는 [캣츠]에서 호흡을 맞춘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와 힘을 모아 1986년 런던 허 마제스티 극장에서 첫 막을 올렸다. 연출은 이제는 고인이 된 거장 해롤드 프린스, 작사는 찰스 하트가 맡았다.

로이드 웨버는 옛 동료 팀 라이스에게 작사를 의뢰했지만, 라이스는 당시 ‘아바(ABBA)’ 멤버들과 함께 [체스]란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을 때라 거절했다고 한다. 이미 그 무렵엔 둘의 사이가 많이 틀어져 있었다. [캣츠]의 연출을 거부했던 해롤드 프린스는 [오페라의 유령] 연출을 승낙했다. 마이클 크로포드가 팬텀, 로이드 웨버의 아내였던 사라 브라이트만이 크리스틴 역을 맡아 두 배우 모두 스타덤에 올랐다.

캐릭터의 힘: 그로테스크한 매력의 팬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2000회 이상 팬텀(주인공)을 연기한 브로드웨이 스타 브래드 리틀. / 사진:설앤컴퍼니
[오페라의 유령]은 제목부터 참 매력적이다. 오페라의 유령…. 신비하고, 격조 있고, 도대체 뭔 내용일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뮤지컬이 성공한 원인을 꼽아보면 한둘이 아니다. 로이드 웨버의 음악을 비롯해 스토리·스펙터클·의상·안무·마케팅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수많은 요소가 맞물려 성공의 수레바퀴를 돌렸지만, 그 출발은 무엇보다 오페라의 유령, 즉 팬텀이라는 주인공 캐릭터의 구축에 있었다.

가면으로 반쯤 얼굴을 가린 채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팬텀.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 있는 신비한 인물이다. 병적으로 사랑에 집착하지만, 내면에는 깊은 상처와 아픔이 있다. 로이드 웨버는 이 그로테스크한 인물의 겉모습과 내면을 적절히 조화시켜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가스통 르루의 원작소설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눅눅하고, 섬뜩하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인과 흉측한 괴물의 이야기, 환상적이지만 악몽을 꾼 듯하다. 그러나 뮤지컬은 원작과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아름다운 오페라 가수 크리스틴을 사이에 둔 팬텀과 청년 귀족 라울의 삼각 로맨스라는 틀에 스토리를 재구성했다. 기이한 공포소설을 신비하고 매혹적인 러브 판타지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팬텀이 있다. 소설에서는 ‘에릭’이라는 팬텀의 이름이 나오지만, 뮤지컬에서는 신비감을 위해 뺐다.

팬텀은 흉터 있는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 미궁에 은거한다.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이 있으며, 마술까지 구사하는 신출귀몰한 괴인이다. 그는 신비한 능력으로 오페라하우스를 지배하려고 한다. 도대체 그는 어디서 와서, 언제부터 그곳에 살게 된 것인가.

2막에서 그의 정체에 대해 짧은 언급이 있다. 팬텀의 연적(戀敵)인 라울이 오페라단의 발레 선생인 마담 지리를 다그치자 그녀는 마지못해 팬텀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음악과 마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한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불행하게도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져 태어났다. 순회 곡예단에서 원숭이처럼 구경거리 노릇을 하던 아이는 어느 날 철망을 뚫고 탈출에 성공했고, 그 뒤 소식이 끊겼다. 그 아이가 팬텀이라는 게 마담 지리의 추측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우월감과 콤플렉스를 동시에 갖고 있다. 이 자부심과 열등감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성격이 원만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우월감과 콤플렉스가 둘 다 매우 강해서 내면에서 심하게 충돌할 경우, 심성이 비틀어지기 쉽다. 팬텀이 그렇다. 얼굴뿐 아니라 마음도 일그러져 있다.

세상을 미워하며 평생을 외로움 속에서 살아온 한 남자를 상상해보라. 술 한잔 함께할 친구도, 이야기 나눌 대상도 없다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럽겠는가. 세상에 대한 원망과 운명에 대한 저주에 사로잡혀 잠 못 이루며 지샌 밤 또한 얼마나 많았겠는가.

친구라고는 음악 말고는 없었던 그의 앞에 어느 날 여인이 나타났다. 아름답고 노래에 재능 있는 오페라하우스의 코러스 크리스틴이다. 팬텀은 환영처럼 크리스틴에게 접근해 노래를 가르쳐준다. 언젠가 음악의 천사가 나타나 너를 도와줄 것이라는 말을 아버지에게 듣고 자랐던 크리스틴은 팬텀을 그 천사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틴은 그의 유일한 대화 파트너가 된다. 극단적인 환경에서 살아온 팬텀에게 크리스틴은 이제 절대적인 존재다.

장중한 팝 오페레타 풍에 매혹적 드라마 담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배우 브래드 리틀.
불안하게 이어지던 팬텀과 크리스틴의 관계는 라울이라는 젊고 잘 생긴 귀족 청년이 등장하면서 풍비박산 난다. 라울과 크리스틴은 어린 시절 친구였고, 예쁘게 성장한 크리스틴을 보자 라울은 금세 사랑에 빠진다. 팬텀은 라울의 등장에 이성을 잃고 만다.

광기에 휩싸인 팬텀은 이제 자신의 능력을 무한 발산하기 시작한다. 힘으로 사랑의 장애물을 없애려고 한다. 크리스틴을 지하 미궁으로 납치하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오페라 극장의 운영에 간섭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공연 도중 샹들리에를 떨어뜨려 극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린다.

병적으로 사랑에 집착하는 팬텀은 분명 위협적인 ‘스토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텀이 무시무시한 괴물이자 스토커로 관객에게 비쳤다면 이 뮤지컬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진 운명의 희생자, 아픈 사랑의 패배자로 관객들의 가슴에 다가가야 한다. 팬텀을 그런 인물로 채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로이드 웨버의 아름다운 음악이다.

로이드 웨버는 ‘뮤지컬의 황제’라고 불린다. [요셉과 어메이징 테크니칼라 드림코트]부터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그리고 [캣츠]를 거치며 숙성된 이 황제의 음악적 재능은 [오페라의 유령]에서 마침내 활화산처럼 분출한다. 뮤지컬계에는 “모든 넘버 가운데 한 곡만 괜찮아도 절반의 성공은 보장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모든 넘버가 다 훌륭하다면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 [오페라의 유령]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로이드 웨버는 절충의 대가다. 여러 요소를 섞어 대중의 입맛에 맞는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감각이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클래식과 팝을 버무린 장중한 팝 오페레타풍에 매혹적인 드라마를 담았다. 팬텀이 부르는 곡들은 위압적인 사랑에서 출발해 분노를 거쳐 회한의 감정을 담아내고, 크리스틴의 노래에는 순수한 존경과 두려움, 새로운 사랑에 대한 희망이 섞여 있다. 라울은 사랑의 기쁨, 그리고 괴인(怪人)으로부터 연인 크리스틴을 지켜내겠다는 결연함을 표현한다. 로이드 웨버의 대단한 점은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각각의 곡을 따로 떼어내 들어도 훌륭하다는 사실이다.

전주(前奏)만 들어도 듣는 이의 청각을 집중시키는 테마곡 ‘오페라의 유령’은 팬텀과 크리스틴의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보여준다.

“잠결에 노래해 주고. 꿈결에 찾아왔어요. 날 부르고 내 이름 속삭이던 그 목소리, 꿈인가요, 환상인가요? 여기 오페라의 유령이 있어요, 내 마음속에….” 크리스틴이 두려움에 떨며 노래하면 팬텀은 답한다. “한 번 더 노래해! 나와 함께 우리의 노래를. 그대를 향한 힘 강해지고, 날 피하려 해도 할 수 없어, 나는 그대의 마음 안에 있어.”

팬텀은 신비한 능력으로 여인을 장악하려 한다. 무리한 일방통행이다. 크리스틴은 음악적 재능을 깨우쳐주는 팬텀이 한편으론 고맙지만 다른 한편으론 두렵다. 상충하는 두 개의 마음은 이 테마곡에 긴장감 넘치게 투영된다.

크리스틴이 부르는 아리아 ‘생각해 줘요(Think of me)’는 로이드 웨버 특유의 쉽고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이 발휘된 곡이다. 라울과 크리스틴의 오페라하우스 지붕 위에서 함께 부르는 ‘바람은 그것뿐(All I ask of you)’과 함께 갈라 쇼에서 단골로 들을 수 있는 아리아다.

가슴 밑바닥을 박박 긁는 팬텀의 흐느낌


▎영화로 재해석한 [오페라의 유령]의 한 장면.
반면, 정신을 잃은 크리스틴을 데리고 지하 미궁에 도착한 팬텀이 노래하는 ‘밤의 음악(The music of the night)’은 그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크리스틴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보여준다. 팬텀이 간절하게 “그대만이 내 노래를 날게 할 수 있어, 도와줘, 밤의 노래를 만들 수 있도록…”이라고 호소하는 순간, 팬텀은 괴인에서 사랑의 열병을 앓는 가련한 남자로 변모한다.

[오페라의 유령] 역시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다. 뮤지컬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아리아들 외에도 극 중 삽입된 오페라 [한니발]과 [일 무토]에서는 고전 오페라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수십 명의 배우가 계단에 서서 함께 부르는 ‘가면무도회(Masquerade)’ 역시 파워풀한 대규모 성악 합창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일각에서 이런 로이드 웨버에 대해 “클래식의 표절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장삿속으로 어설프게(?) 클래식 음악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로이드 웨버는 점잔만 빼며 대중과의 소통에 소극적인 클래식계에 대해 ‘봐라, 나처럼 하란 말이야’라고 큰소리치는 듯하다.

크리스틴을 둘러싼 팬텀과 라울의 싸움이 마침표를 찍는 클라이맥스는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크리스틴이 라울과 약혼하자 팬텀의 광기는 이제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살인을 저지르는가 하면, 오페라 상대 역으로 변장해 무대에서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호소한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의 가면을 관객 앞에서 벗겨버린다. 그의 치부를 대중 앞에서 공개한 것이다. 화가 난 팬텀은 크리스틴을 지하 미궁으로 납치하고, 뒤쫓아온 라울마저 올가미로 꽁꽁 묶어버린다.

팬텀은 크리스틴에게 최후통첩한다. “내 곁에 영원히 있겠다고 약속하면 라울을 풀어주겠다”고. 물론 거부하면 라울은 죽은 목숨이다. 바로 이 순간, 크리스틴은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아픔과 외로움에 진한 연민을 느낀다. 팬텀이 왜 그렇게 자신에 집착해 왔는지를 깨닫는다.

크리스틴은 “하느님이 나에게 당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줄 용기를 줬다”며 팬텀에게 키스한다. 팬텀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따뜻한 배려를 경험한다. 자신의 헛된 욕망과 집착의 한계를 깨달은 팬텀은 비통함 속에서 그녀를 놓아준다. ‘가면무도회’의 첫 소절 “마스커레이드, 가면들의 무도회, 마스커레이드, 얼굴을 숨겨 찾지 못하도록…”을 흐느끼며 부른 뒤 가슴 속에 담아놓았던 한마디를 어렵게 털어놓고 사라진다. 그 한마디는 “크리스틴, 사랑해”였다.

팬텀의 이 흐느낌은 가슴 밑바닥을 박박 긁는다. 국내 무대에 수 차례 섰던 브로드웨이 스타 브래드 리틀(Brad Little)의 노래와 연기는 특히 인상적이다. 2000회 이상 팬텀을 연기한 그가 가면이 벗겨져 흉한 얼굴을 드러낸 채 흐느끼며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세상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만큼 가슴 아픈 게 또 있으랴. 더구나 팬텀에게 크리스틴은 그의 모든 아픔을 메워줄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었다. 그녀를 단념한다는 것은 팬텀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다.

팬텀은 굉장히 소화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노래도 부르기 어렵고, 연기도 쉽지 않다. 로이드 웨버의 의도대로 내면의 아픔을 끄집어내야 한다. 마지막 순간, 그의 구구절절한 아픔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까딱 잘못했다간 정말 ‘그로테스크한 괴물’로 비칠 수도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신비하고 몽환적인 무대에 아이디어 번뜩이는 화려한 볼거리들을 끊임없이 등장시킨다. 무대 소품과 세트의 분량만 컨테이너로 20대가 넘는다. 메가(mega) 뮤지컬의 대명사다.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는 로이드 웨버의 음악과 팬텀의 드라마에 걸맞은 환상의 무대를 첨단 메커니즘을 활용해 구현했다. 스펙터클의 혁신이었고, 덕분에 관객들의 눈높이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도입부부터 객석을 압도한다. 서곡이 연주되는 사이 20만 개의 유리구슬로 장식된 1t 무게의 샹들리에는 흔들거리며 두둥실 천장으로 올라가 매달려진다. 이때 뒤편에 드리워진 휘장은 무대 밖으로 마술처럼 빨려 나간다. 어느새 무대 위엔 파리 오페라하우스가 옛날 모습 그대로 펼쳐져 있다. 관객의 혼을 쏙 빼놓고 시작한다.

소품·세트만 컨테이너 20대, 메가 뮤지컬 대명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샹들리에의 추락 장면을 리허설하고 있는 모습.
이 샹들리에는 1막 피날레에서 크리스틴에 분노한 팬텀의 마술로 천정에서 관객들의 머리 위로 뚝 떨어진다. 객석 여기저기서 ‘엇!’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는 명장면이다. 팬텀이 혼절한 크리스틴을 보트에 태우고 지하 미궁에 켜져 있는 281개의 양초 사이로 유유히 노를 저어가는 장면은 환상의 극치이다. 무대 곳곳에서 양초가 마법처럼 솟아나고, 보트는 푸른 안개를 헤치며 신비의 세계로 크리스틴뿐 아니라 관객 모두를 데리고 간다.

팬텀의 첫 등장과 마지막 퇴장 장면도 인상적이다. 팬텀은 크리스틴의 분장실 거울 속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라울이 크리스틴을 만나려 하자 그녀를 거울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2막 끝부분에서 비통에 빠진 팬텀은 왕의 의자에 앉아 망토로 자신을 덮는다. 마담 지리의 딸인 무용수 맥이 망토를 들어보니 팬텀은 사라져버리고, 그가 썼던 가면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다. 이외에 화려한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갖가지 가면을 쓰고 계단에서 부르는 ‘가면무도회(Masquerade)’ 장면은 패션쇼를 능가하는 장관이다.

로이드 웨버는 [캣츠]에 이어 [오페라의 유령]을 빅히트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이후에는 아쉽게도 히트작을 내지 못했다. 1990년대 들어 [사랑의 여러 양상(Aspects of Love, 1990)] [선셋 불레바드(1994)] 등을 내놓았지만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2004년엔 [캣츠] [레미제라블]의 연출가 트레버넌과 다시 손잡고 팬텀의 배우 마이클 크로포드를 내세워 야심작 [우먼 인 화이트]를 내놓았지만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우먼 인화이트]는 19세기 추리작가 윌키 콜린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스터리 판타지로 프로젝션 기법이란 신기술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페라의 유령]과 비슷했고, 음악은 신통치 않았다. 간판 넘버로 내세운 ‘내 마음을 믿어요(I believe in my heart)’는 한 번 들어볼 만하다.

로이드 웨버는 2010년엔 [오페라의 유령]의 후속 격인 작품 [러브 네버다이즈(Love never dies)]를 선보였다. 무대를 미국의 놀이공원 코니아일랜드로 옮겨 다양한 볼거리 속에 팬텀과 크리스틴, 라울 그리고 라울과 크리스틴 사이에서 태어난 구스타브라는 열 살 아이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어갔으나 역시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사랑은 절대 죽지 않지만, 재능은 나이가 들면 죽을 수 있나 보다.

※ 김형중 - 공연 칼럼니스트. 연세대와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20년 넘게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고 한국뮤지컬대상과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무대예술의 경이로움을 글로 풀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쓴 책으로 [우리시대 최고의 뮤지컬 22]가 있다.

202108호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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