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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16년 장수한 메르켈 독일 총리 리더십의 비밀 

정책 연속성이 성공 요인, 국익 위해 반대 세력과도 협력 

현실 냉정하게 분석, 단기처방 아닌 중장기적 측면에서 정책 입안하고 시행
국민 지지 바탕으로 독일을 세계 문제 해결 주도하는 국가 반열에 올려놓아


▎16년간 독일을 통치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지지를 받는 지도자다. 2015년 시리아 난민과 사진을 찍고 있는 메르켈 총리. / 사진:AP 연합뉴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어느 모임에서나 대선후보가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오랫동안 지쳐 있는 데다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 시원한 정치를 해주는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물론 지도자가 바뀐다고 해서 코로나19가 당장 없어지거나 경제가 단기간에 급성장해서 고용이 많이 늘어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국민을 통합해 이끌어갈 지도자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필자는 2000년대 중반 독일에서 근무한 이후 독일 사회의 위기와 변혁 그리고 독일이 유럽의 지도국가로 변모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앙겔라 메르켈(67) 총리라는 탁월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메르켈 리더십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메르켈은 2021년 9월, 무려 16년간의 통치를 마치고 퇴임할 예정인데 헬무트 콜 총리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지도자로 남을 것이다.

메르켈은 동독 출신의 최초 여성 총리로서 역대 독일 총리 가운데 51세라는 가장 젊은 나이에 집권했다. 하지만 메르켈 내각이 출범할 당시 그녀가 장기 집권하리라 예상한 정치 평론가는 거의 없었다. 총선에서 보수 성격의 기민당이 가까스로 승리한 데다 독일의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웠으며, 2005년 9월 총선 이후 2개월간의 어려운 협상 끝에 11월에야 메르켈 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다당제 정당체제로서 초대 아데나워 총리부터 지금까지 연합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메르켈 기민당 당수는 연정 파트너로 진보 최대 정당인 사민당과 대연정 정부를 구성해야 했다. 1966년 키징거의 기민당과 브란트의 사민당이 참여했던 대연정 사례가 있었지만 40여 년 만에 대연정을 구성한 메르켈 정부는 얼음 위를 걷는 듯 많은 우려 속에 출범했기에 주도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보다 타협과 양보를 통해 운영해나가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동·서독 통일의 후유증이 오래가면서 독일의 실업률은 12%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 기업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었고, 청년 실업은 20%에 육박했으며, 동·서독 주민 간 경제적 차이도 줄어들지 않아 사회적 갈등도 깊었다. 다만 다행스러운 요인은 슈뢰더 전임 총리가 고용의 유연성을 제고시키는 어젠다 2010 개혁 정책을 채택함에 따라 경제가 탄력적으로 전환할 여건이 조성됐다는 점이었다.

16년이 지난 오늘의 독일 상황은 어떠한가? 메르켈 총리는 지난 4차례 정부 가운데 3차례를 사민당과 대연정을 구성하면서도 확고한 지도력으로 자신의 방향에 따라 국정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했다. 제조업과 수출에 기반을 둔 독일 경제는 완전고용에 가까워짐에 따라 해외에서 산업인력을 도입할 수준에 이르렀다. 독일은 경쟁력이 높은 제조업 기반하의 기술 강국으로 디지털 혁명을 부르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해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범적인 국가가 됐다.

대외적으로도 독일은 유럽 정치·경제의 주도적인 국가가 됐다. 유럽 전체를 휩쓰는 위기가 연이어 발생할 때마다 메르켈 총리의 지도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 유럽연합(EU)의 재정 협상, 2008년 미국발(發) 세계 금융위기, 2009년 이후 수년간 지속했던 그리스의 재정 위기 및 유로화 위기,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2015년 시리아 난민의 유럽 대거 유입, 2019년 이후 코로나19 등 주요 위기 때마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이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됐다.

확고한 지도력으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운데)가 7월 18일(현지시간) 폭우로 인한 아르강 범람으로 마을이 초토화된 슐트를 방문해 피해 상황을 설명 듣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독일의 위상이 올라감에 따라 주변 국가들의 독일에 대한 경계심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을 군사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만들었고, 통일 독일을 경제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1989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주도로 유럽통화동맹(EMU)을 구상해 유럽단일통화인 유로화를 탄생시켰다. 독일이 통일 여파로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유럽 국가들은 독일이 재부상하기 어려울 거라 안도하면서 독일을 ‘유럽의 병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메르켈 집권기를 거치면서 독일이 유럽 정치의 중심이 되고 경제적으로 유럽의 기관차 역할을 하게 되자, 찬사와 함께 일각에서는 ‘독일의 역습’이라고 하면서 독일의 부상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위상이 확대되면서 국제 여론조사에서 메르켈 총리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20년 ‘Pew Research Center(퓨 리서치 센터)’는 메르켈 총리가 독일에서 2020년 81%의 지지도를, 그리고 세계 주요 14개국에서는 75%의 경이적인 신뢰도를 보인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메르켈에 대한 한국인들의 신뢰도를 보면 집권 초기인 2007년에는 27%에 불과했으나, 2018년에는 76%에 이를 만큼 높았다. 메르켈 총리에 대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신뢰도 역시 높아 유럽 정상 가운데 그녀를 가장 먼저 공식 초청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미국-유럽 간의 관계는 2차 대전 이후 최저점으로 추락하는 등 위기 상황이었다. 2021년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나락으로 떨어진 대서양 협력 관계를 복원하고자 메르켈 총리를 초청해 미국과 독일 관계뿐만 아니라 유럽과의 협력 그리고 중국·러시아·우크라이나·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등 민감한 국제사안을 긴밀하게 논의했다.

EU 중심국가로서 경제 정책 건전성과 일관성 유지

메르켈 총리가 국내외적인 위기 속에서도 절대적인 지지를 얻은 배경에는 어떤 리더십이 있었을까? 먼저, 그녀는 과학자였던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한 이후, 단기 처방이 아닌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사안의 경우 미세한 부분까지 확인하는 가운데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는 능력을 보였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하던 2020년 3월, 그녀의 대국민 연설에서도 이 같은 모습이 나타난다. 메르켈 총리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코로나19가 2차 대전 후 가장 심각한 위기 상황임을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가 대처하고 있는 일을 설명하면서 국민의 협조를 요청했다. 연설 전문가들은 주요국 지도자가 코로나19와 관련해 국민에게 보낸 메시지 가운데 메르켈의 대국민 연설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엄중한 사실을 가볍게 여기던 태도와 비교됐다.

둘째, 메르켈 총리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유연성 있게 정책을 집행했으며, 필요한 경우 정책 방향을 과감하게 시정했다. 과학을 신뢰한 메르켈 총리는 원자력을 지속해서 활용하고자 했으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에 대한 반대 여론을 수용해 원자로를 점진적으로 폐쇄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물론 나타난 성과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전기 비용이 급격히 상승했으며 원자력의 점진적인 폐기로 석탄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이 증가했다. 또 부족한 에너지원을 천연가스로 보완하고자 러시아 가스를 확대해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유럽 각국은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유럽 전체의 이해를 도외시하고 독일이 자국의 이해만 챙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셋째, 메르켈 총리는 유럽연합 중심국가로서 경제 정책의 건전성과 일관성을 유지했다. 2009년 그리스의 재정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에 대해 유럽 각국의 의견이 분분하고, 독일 국내 여론도 그리스 지원에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유로화가 위기에 봉착하고 유럽연합의 와해 가능성이 제기됐다. 메르켈 총리는 ‘개혁이 없으면 금융 지원이 불가하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그리스의 변화를 유도했다. 한편으로는 세계금융은행(IMF)과 유럽중앙은행 등의 참여를 이끌어내 그리스에 금융구제기금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메르켈 총리는 유럽연합의 결속성을 유지하면서 유로화를 지켜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메르켈 총리는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라는 전 세계적 위기 상황에 대응해 유럽 팬데믹 회복기금을 주도하는 등 유럽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유럽 국가들은 독일이 주변국에 대한 수출을 통해 통일 후유증을 극복하고 성장했으면서도 유럽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데는 인색하다는 비판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넷째,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세계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국가적 위상과 품격을 격상시켰다.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은 시리아 난민 문제에 대응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더욱 돋보였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유입에 대해 여러 유럽 국가가 국경을 차단하는 등 비인도적인 조처를 한 데 반해 메르켈 총리는 국내외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동 난민 100만여 명을 수용했다. 난민 문제는 메르켈 총리의 지지기반을 흔들 정도로 커다란 충격이었으며, 극우 보수 성격의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이 의회 내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러·중 강하게 압박 않으면서 미국과는 협력


▎2017년 7월 독일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언론 발표를 마친 뒤 만찬장으로 이동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비판을 무릅쓰고 수용한 난민이 독일 여성을 성추행하고, 회교도 테러리스트의 테러가 일어나자 여론이 악화했다. 난민 수용에 대해 자매 정당인 기독사회당 총재도 메르켈 총리를 비판했으며, 그녀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크게 하락했다. 나아가 독일이 난민을 수용한 이유가 인도주의적 고려 때문이 아니라,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산업기술 인력이 부족하게 되자 이를 메우기 위한 경제적인 이기심에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러한 비판에 대응해 메르켈 총리는 나치가 인류에 저질렀던 죄로 말미암아 많은 유럽인이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유랑하게 됐으며, 이러한 독일의 뼈아픈 과거를 잊지 말고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또 메르켈 총리는 자신이 동독에서 자라면서 자유를 빼앗겼던 경험에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인식하고, 자유를 찾아 억압된 나라를 탈출한 난민들을 도와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난민을 독일이 수용해야 하며, 국제사회와 공조해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독일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라며 국민을 설득해나갔다. 그 결과 국내에서 문화와 종교가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는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국제사회에서는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인권을 중요시한다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유럽의 위상도 높아지게 됐다.

지도자의 역할과 관련해 메르켈 총리는 전후 독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차 대전 후 독일은 아데나워·브란트·콜·슈뢰더 총리 등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기에 분단과 통일의 거친 파고를 잘 넘었다. 아데나워 총리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친서방 정책, 브란트 총리의 평화를 향한 동유럽 및 소련과의 동방정책, 콜 총리의 독일이 주도하는 동서독 재통일, 슈뢰더 총리의 개혁을 통한 통일 후유증 극복 등이 그들의 대표적인 성과였다.

이러한 바탕 위에 메르켈은 독일을 다시 한번 유럽의 지도 국가로 우뚝 세웠다. 이전의 지도자들이 전후 전범 국가에서 유럽의 일원이 되는 데 초점을 맞추고, 통일을 이룬 이후 독일 내부의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데 주력해야 했다면, 메르켈 총리는 독일을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크림반도를 점령해 모든 국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독일이 주도해 러시아를 G8 회의 일원에서 축출해 책임을 물었다. 달라이 라마의 초청, 중국의 위구르계 탄압 및 홍콩 민주 인사 진압 비판, 화웨이(華爲)에 대한 제재 등 인권 문제 및 미·중 갈등에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보다 중요시했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를 긴장으로까지 몰고 가지는 않았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이후 유럽연합의 러시아 제재에 독일이 참여했지만, 독일의 에너지원 확보에 필요한 러시아 가즈프롬의 독일 가스공급사업(Nord Stream 2)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독일은 유럽연합 의장국 역할을 하면서 중국-유럽연합 간의 투자 협정도 계속 추진했다. 독일은 중국과의 무역,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이 필요했기에 러시아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지 않고 자국의 입장을 고려해 일정한 수준에서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

독일을 연구하는 어떤 전문가는 메르켈 총리를 단거리 선수가 아니라 긴 안목을 가지고 꾸준하게 뛰는 장거리 선수에 비유하면서 그녀의 통치 성과를 연속성(continuity)과 안정성(stability)으로 규정했다. 전임 총리들이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그 효과를 확대해나가는 등 연속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국내외적으로 일어나는 위기를 유럽 공동체와 협력하면서 극복해나감으로써 안정성을 유지하고 역동적인 유럽을 만든 것으로 평가한다.

정책의 연속성은 메르켈 총리의 장점이자 성공 요인이다. 그녀의 성공은 경쟁 세력이었던 슈뢰더 총리의 노동 개혁이 없었거나 그의 정책을 승계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다. 독일이 유럽의 견인차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슈뢰더 전임 총리가 ‘어젠다 2010’의 노동 개혁 정책으로 꽉 막힌 혈을 뚫은 데 이어 메르켈 총리가 이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기에 가능했다.

전임 총리들의 성과 바탕 둔 연속성과 안정성

슈뢰더 총리는 개혁 정책의 후유증으로 2004~2005년 2년간 여러 지방선거에서 자신이 속한 사민당 후보가 연이어 낙선했고, 그 역시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해 메르켈 총리에게 정권을 내줘야 했다. 그러나 그의 개혁 정책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1990년 통일 이후 나락으로 빠져들던 독일 경제가 메르켈 총리 집권 사실상 1년 차이던 2006년부터 반등하기 시작해 현재의 강한 독일을 만들 수 있었다.

5년마다 전임 정권이 시행한 모든 정책을 비판하고 단절시키는 것이 유능한 지도력으로 인식되고 있는 우리에게 정책의 연속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지도자가 정치적인 반대 세력과도 협력하면서 국가를 위해 용기 있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교훈이다.

또 위기의 안정적 관리 역시 그녀의 장점이었다. 메르켈 총리는 여러 차례 유럽의 위기를 주도적으로 수습했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 재임 중 불안했던 미국-유럽과의 관계를 2021년 7월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화했다. 미·독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사항을 보면 독일을 통한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의 문제점, 유럽의 안보 비용 부담 증가, 미·중 갈등 가운데 중국에 대한 압력에 독일 참여 등 양측 간에 상당한 이견이 있는 사안이어서 양국 정상이 한차례 회담을 통해 합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의견이 다른 사안에 대해 같이 협력하면서 실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나갈 것이다. 좋은 친구 간에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Good friends can disagree)”고 정상회담을 평가한 점에서 상호 신뢰성을 엿볼 수 있다. 다음 정부에서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교훈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변화를 보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우리 속담이 떠올려진다. ‘유럽의 병자’라고 비판받던 독일이 메르켈 총리의 통치를 통해 ‘유럽의 대들보’로 거듭나는 것을 보면서 왜 지도자가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커다란 단절과 충격을 겪고, 우리의 밝은 면은 도외시한 채 부정적인 면만 부각하는 국내 정치가 배워야 할 대목이다.

국내의 세대 간·지역 간 갈등, 주변국과의 긴장 관계 등 어려운 환경에 처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특히 차기 지도자는 국내외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가운데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성공한 여러 지도자의 통치 방식을 유념하면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기대한다.

- 조윤수 전 주(駐)터키 대사 swallow1210@naver.com

202109호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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