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스포츠 특집 | 정밀분석] 루저 신세로 전락한 한국 프로야구 현주소 

시대정신도 비전도 사라진 KBO ... 정지택 총재 임기는 잃어버린 시간? 

방역지침 어겨 리그 중단 등 온갖 잡음 속 야구 대표팀 도쿄올림픽 메달 획득도 실패
리더십 부재로 대기업 구단에 乙 신세 못 면해, 뉴미디어 외면하며 팬들의 반감 자초


▎2021년 8월 7일 도쿄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더그아웃을 휘감은 야구 대표팀 분위기가 KBO리그의 현주소를 상징한다. / 사진:올림픽 사진공동취재단
도쿄올림픽 야구 준결승이 열렸던 8월 5일 요코하마스타디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선수들의 표정은 내내 굳어 있었다.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선수들의 표정엔 무심코 짓는 미소 한 번 없이 비장감과 비통함만 감돌았다. 이날 대표팀은 미국에 2-7로 완패했다. 이로써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약 13년 동안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야구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유지했던 ‘올림픽 챔피언’ 타이틀이 사라졌다. 이어 8월 7일 도미니카공화국전마저 6-10으로 패배하며 동메달도 따지 못했다.

최정예 멤버로 구성된 선수들의 어깨는 출정 시점부터 한없이 무거웠다. NC와 두산, 키움 일부 선수들이 방역지침을 어긴 탓에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며 7월 12일 리그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프로야구 성립의 세 축이라 할 구단·선수·KBO(한국야구위원회)의 ‘이 순간만 넘기고 보자’는 식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상당수 야구팬들은 ‘이런 프로야구가 대한민국 최고 인기 스포츠여도 괜찮은가’라는 근본적 의구심에 직면했다.

그동안 KBO리그에는 승부조작, 도박, 성(性)범죄, 약물, 음주운전, 심판 비리 등의 추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팬과 여론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근접한 시점에, 코로나19 방역지침 위반과 은폐 행위가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KBO는 시대의 화두라 할 수 있는 공정(公正)의 정신과 괴리된 리그 중단 결정을 내리며 ‘KBO가 KBO했다’는 비아냥과 함께 권위가 추락했다. 온갖 악재에 포위된 야구계는 ‘김경문 감독을 위시한 대표팀 선수들이 도쿄올림픽에서 호성적을 올리면 일거에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고 매달렸을 터다. 이런 분위기는 고스란히 대표팀 선수들의 맥 빠진 경기력으로 전이됐다. 멘털 스포츠인 야구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생각에 함몰되면 독이다.

어느 야구 담당기자는 “설령 대표팀이 금메달을 땄더라도 야구의 도덕성이 회복되고, 인기가 만회되는 것은 아니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세상의 정서가 달라진 것을 KBO와 야구계만 모른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이나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처럼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올리면 야구의 위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나이브하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매뉴얼 뒤집은 엿가락 행정


▎정지택 KBO 총재는 취임사에서 코로나19 철저 방역, 도쿄올림픽 금메달, 리그 수익 개선 등을 약속했지만 민망할 정도로 이뤄진 게 없다. / 사진:KBO
진단이 정확해야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오는 법이다. 지금 KBO리그가 질시의 시선을 받는 이유는 ‘야구를 못해서’가 아니다. 현재의 시류를 읽지 못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 못하는 지점이 환부다. 한국 프로야구 행정의 컨트롤타워인 KBO 책임론이 비등한 배경이다.

사실 KBO의 입지는 꽤 애매하다. 바깥에서는 ‘저 정도 힘을 지니고, 저것밖에 못하느냐’고 저격할 수 있겠지만, 다수의 야구계 인사이더들은 ‘딱 저 정도밖에 할 수 없는 힘만 있다’고 바라본다. 다시 말해 KBO의 ‘엿가락 행정’은 10개 구단과의 역학관계에서 을(乙)의 처지임을 고려할 때 구조적일 수밖에 없다는 관점이다. 가까운 예로 KBO는 코로나19 4차 웨이브가 심각해지자 리그 중단을 결정했다. 문제는 그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는 점이다. 다수의 구단 관계자 취재를 종합할 때, ‘몇몇 구단의 이해관계에 KBO 이사회가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끌려다녔다’는 것이 중론이다. KBO를 더 유구무언으로 몰고 간 것은 2021년 3월 24일 발표한 ‘코로나19 통합 대응 매뉴얼’이다. 당시 KBO는 “미국, 일본 프로야구 및 유럽 등 국내외 타 종목 리그에서도 KBO 매뉴얼 제공을 공식 요청했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를 통해 통합 매뉴얼을 보완했고, 각 구단과 깊이 있는 의논을 거쳤다” “비상 상황 발생 시 대응 매뉴얼은 더 정교하게 수립됐다”고 자화자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지택 KBO 총재도 꽤 흡족하게 여겼다는 후문이다. 특히 핵심은 “2020년 정규시즌에는 1군 선수단에서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리그 중단을 결정할 수 있었지만, 2021시즌에는 자가격리 대상자를 제외한 대체선수로 중단없이 운영된다”는 대목이었다. KBO가 가장 부각한 대목을 채 넉 달도 지나지 않아 KBO 스스로 깬 셈이다.

당시 KBO는 “엔트리 등록 미달 등 리그 정상 진행에 중대한 영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긴급 실행위원회 및 이사회 요청을 통해 리그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고 단서조항을 달았다. 사실 매뉴얼이라는 것은 일종의 지침이지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바뀔 수도 있다. 문제는 KBO의 태세전환이 납득할 만한 프로세스 공개 없이 급발진했다는 점이다. 가령 ‘이사회에서 어느 구단들이 리그 중단에 찬성했고 반대했으며, KBO는 이래서 불가피하게 매뉴얼에 예외를 둘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 극히 부족하다. 그 폐쇄성과 비일관성이야말로 야구팬들이 분노하는 본질이다. 이를 두고 한 KBO 출입기자는 “KBO가 매뉴얼을 내놓고 그토록 자랑이나 안 했으면 이렇게 우습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KBO가 매뉴얼을 뒤집은 배경을 두고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이 나온다. 하나는 KBO ‘무(無)지성 행정’의 표본이라는 일반론적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KBO는 초기에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선제 조치를 한 것’이라는 음모론적 시각이다. 일부 선수들이 숙소에서 술판을 벌인 것을 사전에 알았기에 전격적으로 리그 중단을 결행할 수 있었다는 논리다. 상반된 두 시점 사이 어딘가에 KBO를 보는 세간의 프레임이 반영돼 있다.

오죽하면 KBO는 야구계의 사각지대?


▎김택진 NC 구단주는 리그 중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과문까지 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NC 야구단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 사진:연합뉴스
체육계에서 오랫동안 KBO를 보호해준 견고한 방어논리는 ‘그래도 KBO만 한 경기단체가 없다’는 명제였다. 1982년 출범 이래 한국 프로야구는 최고 인기 스포츠 지위를 40년 가까이 유지해왔다. 그러나 프로스포츠 산업화 물결과 코로나19는 KBO의 위상을 뿌리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KBO는 대기업 회원사들이 제공하는 우산효과를 누렸다. 중소·중견 기업이 운영하는 일본, 대만 프로야구와 구조적으로 달랐다. 야구단에서 적자가 수백억원씩 발생해도 모(母)기업이 해결해줬다. 기업 형편이 어려워지거나 야구단에 흥미를 잃어도 다음 구매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가령 태평양이 손을 떼면 현대, 해태가 손을 떼면 KIA, 쌍방울이 손을 떼면 SK가 나타나 야구단을 인수했다. KBO도 마케팅 전담 조직인 KBOP를 만들었고, 중계권료 협상 등을 담당했지만, ‘프로야구의 융성이 KBO 덕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모 구단 관계자는 이런 KBO를 두고 “야구계의 사각지대”라고 비유했다. 책임은 별로 지지 않으면서 야구 인기에 편승해 세를 키웠다는 비판이다. KBO리그를 두고 이장석 전 히어로즈 야구단 대표는 “재벌들의 운동회”라고 축약한 적이 있다.

이런 구조에서 KBO 직원들에게 필수적인 미덕은 인화 같은 스킨십 매니지먼트였다. 비전이나 추진력처럼, 숫자로 찍히는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실행력은 부차적이었다.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KBO에 가장 아쉬운 점은 비전을 갖춘 리더십의 희박함”이라고 진단했다. KBO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 관계지향적인 조직이 되면서, 악재를 극복하기보다 악재에 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버티다 여론이 더 악화되기 일쑤였다. 리그 중단을 촉발한 NC 야구단에 대해 7월 16일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직접 나서서 “이번 사건에 연루된 선수는 물론 관계자 전원에 대한 무거운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날 KBO 상벌위원회는 NC 박석민·박민우·이명기·권희동에게 72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1000만원 징계를 내렸다. 바깥에서는 이를 두고 “송 대표가 경고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 중징계가 나왔겠는가”라는 의심을 드러냈다. 공교롭게도 김택진 NC 다이노스 구단주의 사과문과 황순현 NC 야구단 대표이사 사퇴도 이날 나왔다.

이번 리그 중단 사태에서 확인됐듯 악재가 터졌을 때 예전에 비해 KBO 책임론이 비등해지고 그 여진이 오래가는 것은 KBO를 향한 불신의 시선이 그만큼 강렬해졌다는 위험신호를 내포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비해 KBO의 혁신은 한참 더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할수록 기업의 돈벌이는 힘겨워지고 있다. LG전자가 휴대폰 사업에서 철수했고, 롯데가 차세대 주력사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삼성도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실용주의로 전환했다. IOC 위원 출신이자 스포츠로 삼성의 일등주의를 구현했던 이건희 전 회장과 같은 ‘묻지 마 스포츠단 투자’를 더는 바랄 수 없다. 실제 삼성전자는 역대 최고의 실적 속에서도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미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이렇게 절박한 흐름에서 연간 수백억원 적자에 걸핏하면 노이즈를 일으키는 야구단에 투자를 확대할 필연성은 크지 않다.

LG도 야구를 사랑했던 구본무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구광모 회장 체제로 재편됐다. 구 전 회장의 동생들인 구본능 전 KBO 총재나 구본준 LX 회장 등은 여전히 야구광이지만, 예전처럼 LG그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최태원 SK 회장은 아예 야구단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SSG에 팔았다. 최 회장은 평소 소신인 ‘사회적 가치’로 스포츠단 투자의 방향을 선회했다. 상업적이고 사회적 스캔들이 빈번한 프로야구를 아예 접은 것이다. 정의선 회장의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다. 모 대기업 관계자는 “SSG가 최종적으로 SK를 인수했지만 KIA와도 협상했다. 성사 직전까지 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제 프로야구는 대기업에조차 매력적이지 않다. 이를 두고 야구계 안팎에서는 “조만간 다운사이징의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예측한다. 어느 한 구단이라도 우승을 노리고 선수 몸값을 지르는 ‘죄수의 딜레마’가 작동하는 이상 쉽진 않겠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대기업의 대리전 양상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KBO도 심상찮은 기류를 감지하고 있다. 정운찬 전 총재는 프로야구 산업화라는 깃발을 내걸었다. 그는 돈 버는 KBO를 꿈꿨지만, 실행력이 빈곤했다. 변화는 미미했고, 외부에서 영입한 사무총장은 오래지 않아 물러났다. 그 자리는 성골 KBO 출신이 차지했다.

야구인들 사이에서 프로야구 산업화에 관해 오랫동안 풀지 못한 의문이 하나 있다. ‘KBO에는 MLB라는 모델이 있다. 그것만 카피해도 절반은 할 텐데 왜 못하느냐’는 궁금증이다. KBO가 MLB를 따라 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MLB는 커미셔너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미국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은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커미셔너의 중재력에 의존한다. 그렇게 된 데에는 그에 걸맞은 실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MLB 사무국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통합 사이트 ‘MLB.com’이 꼽힌다. 콘텐츠를 한곳에 묶으면서 강력한 흡인력이 발생했다. 이는 곧 구매력으로 연결됐다. 돈을 많이 번 만큼 시장이 커지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실체 없는 ‘프로야구 산업화’ 구호


▎코로나19 탓에 관중 입장이 제한된 잠실구장의 풍경. KBO리그에 대한 불신이 워낙 팽배해져 팬데믹이 끝나도 야구장이 가득 채워질지 의문이다.
반면 KBO는 MLB의 1/3 수준인 10팀으로 구성됐지만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못한다. 일단 총재부터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물이거나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낙하산이 대부분이었다. LG家 출신인 구본능 총재를 제외하면 실행력이 극히 떨어졌다. 구 총재 임기 동안 9구단 NC와 10구단 KT의 탄생, 광주와 대구 등에 새 야구장 개장 등 뚜렷한 업적이 이뤄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구 총재가 커미셔너의 할 일을 이해했고, 이에 걸맞은 추진력을 갖춘 구단주 출신 총재였기에 가능했다. 이후 정운찬, 정지택 총재 체제에서 KBO의 역량은 급전직하하며 야구의 산업화도 구호로 전락했다.

딱히 블루오션을 창출하지 못해도 KBO에는 보루가 있었다. 중계권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KBO는 뉴미디어 시대의 트렌드를 역행하는 선택을 감행했다. 2019년 2월 LG·SK·KT 등 이동통신 3사와 네이버·카카오 등 포털사 2곳이 연합한 컨소시엄과 5년간 총 1100억원 규모의 뉴미디어 중계권을 체결한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야구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 계약에 우려의 시선을 내비쳤다. “유튜브 ‘짤방’이 사라지게 됐다. 이는 야구 콘텐츠를 전파하는 플랫폼의 확장을 KBO 스스로 틀어막은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MLB만 해도 유튜브나 SNS 플랫폼을 경시하다가 시장의 정체를 맞았다. 젊은 팬들이 이탈한 탓이다. 플랫폼의 경계를 허문 NBA에 밀리게 됐다. 그 결과 야구는 미국에서도 ‘올드하다’는 이미지에 갇혔다. 콘텐츠 소비자가 시간을 할애할 대상은 야구만이 아니다. 타 종목은 물론 넷플릭스가 있고, 게임이 있다. MZ 세대 등 젊은 층이 어떻게 콘텐츠를 향유하고 재생산하는지에 관한 문법에 무심하다가 성장이 정체된 MLB의 경로를 KBO도 답습하는 형국이다.

KBO가 산업화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사이, 코로나19라는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 이는 프로스포츠의 소비 패턴을 바꾸는 일대 사건이다. 더는 야구장에 만원 관중 상태에서 이벤트를 여는 게 최고의 마케팅이 아닌 세상이 온 것이다. 비대면 시대로 갈수록 플랫폼의 힘이 세진다. 그러나 KBO는 당장의 중계권료에 집착한 나머지 플랫폼의 가능성을 경시했다. 그나마 MLB처럼 자체 플랫폼을 강화할 역량조차 애초에 없다.

대기업 구단에 끌려다니는 무기력 여전

코로나19가 장기화할수록 관중 수입 감소는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일반기업이었으면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뒤에 있으니-실제 히어로즈 야구단조차도 키움증권이라는 네이밍스폰서가 있으니-망하지 않는다. 이럴수록 회원사의 입김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세상에 맞서 별다른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KBO는 다수 구단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리그 중단은 이런 토대에서 이뤄졌다. 정지택 총재가 총대를 멘 결단과 거리가 멀다. KBO 이사회는 10개 구단 사장들의 결사체다. 나름 그룹에서 성공한 임원이 내려오지만, 야구 전문가는 아니다. 게다가 임기가 정해져 있다. 장기적인 결정이 내려질 수 없다. 복수의 구단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리그 중단도 다수 구단이 찬성해서 내려진 결정이 아니었다. 몇몇 구단이 목소리를 내자 다수 구단은 침묵했다. 원칙을 들어가며 반대한 구단은 소수였다. 리그 중단이라는 중대사에 관해 각 구단이 찬반에 관한 입장을 공개 못하는 현실 자체가 프로세스의 불투명성을 반증한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정지택 총재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7월 23일 선수 관리 실패에 대한 사과문까지 냈다. 그러나 사과의 포인트가 틀렸다는 지적에 직면했다. 한 야구인은 “시대가 어느 땐데 선수 관리 운운인가? KBO는 진짜 반성할 부분이 뭔지도 모르는 사과문을 냈다”고 말했다. 실제 두산그룹 출신인 정 총재의 사과문은 “KBO 위에 ‘천룡구단’ 두산이 존재한다”는 식으로 온라인에서 조롱당하고 있다.

현재 KBO의 최대 악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19로 관중이 못 들어오거나 야구 시청률이 예전만 못한 것도 아니다. 진짜 환부는 KBO의 존재감이 희미해져가는 사이, 한국 프로야구의 비전이 갈수록 협소해지는 데 있다. 정지택 총재와 KBO 수뇌부들은 이를 반전시킬 동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지택 체제의 KBO는 리그 중단으로 무력함을 대내외에 고백했다. 그의 임기가 ‘잃어버린 시간’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 정작 KBO는 평온해 보인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109호 (2021.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