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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실속 없었던 30년 자유주의 패권 정책 

미국, 세계 개조의 꿈 버릴 때다 

핵심 이익이 위협받을 때만 영향력 발휘
과거 성공 ‘역외균형전략’으로 전환 제언


"미국은 스스로에게 인류 전체를 위한 민주주의의 불빛이 되고, 세계를 이끌어갈 십자군의 임무가 부여됐고 믿었다.”

미 국제정치의 거목 헨리 키신저의 분석이다.

[미국 외교의 대전략]의 저자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국제정치학 교수 또한 1990년대 탈냉전 이후 미국이 스스로의 우월한 힘을 이용해 세계를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고 지적한다. 자유주의 패권 정책과 개입주의가 미국의 대전략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대전략이 미국 스스로는 물론이고 전 세계 모두에게 실망스러운 결과를 안겨줬다고 지적한다.

자유주의 패권론자들은 자유주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거나 유지된다고 보지 않는다. 강대국의 적극적인 리더십 하에서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기타 자유주의 원칙이 널리 확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미국만이 이런 역할을 맡을 자질이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자유주의 패권 정책을 30년간 지속한 결과 미국이 더 번영하지도, 전 세계가 더 평온해지지도 않았다. 미국의 주도 하에 자유민주주의가 전 세계에 뿌리내릴 것이라는 야심 찬 계획은 희망에 그쳤다. 이 책의 원제가 ‘선의가 낳은 지옥’(The Hell of Good Intentions)인 이유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리비아의 내정에 개입하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낭비했고, 끝없이 전쟁과 국가건설을 반복하는 수렁에 빠져들었다. 미국이 맞섰던 독재정권들은 의외의 복원력과 뛰어난 생존력을 보여줬고,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권위주의로 미끄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부시, 오바마의 3대 행정부에 걸쳐 자유주의 패권 정책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왜 미국 지도자들은 비현실적인 목표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과거의 실수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을까?

저자는 우선 미국이 워낙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환경에 놓여있어 잘못된 외교정책을 상당 기간 지속하더라도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는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보다 실질적인 원인은 미국 외교안보 기득권층의 밥그릇 챙기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내 관료ㆍ의회ㆍ학계ㆍ언론 등 분야에 포진한 소위 외교안보 엘리트들은 그들에게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에 더해 자부심까지 가져다준 기존의 정책을 쉽사리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미국의 국익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내부 순응 논리가 우선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외교안보 담론을 지배한 자유주의 패권론자들은 글로벌 리더십의 필요성을 과장하고, 전 세계에 자유주의 이상을 설파하는 역할이 미국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대중을 설득한다.

지난 2016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외교의 낡은 녹을 털어내겠다”고 선언하며 자유주의 패권의 반대편에 섰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라는 또 다른 잘못된 전략을 추구했고, 자신의 정책을 지지해줄 만한 인재를 구하지도 못했다. 그 결과 2017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포기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북핵 문제에도 순진하게 접근했다.

저자는 이제라도 미국이 과거에 성공했던 ‘역외균형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를 개조하겠다고 나서는 대신, 미국의 핵심 이익이 위협받을 때만 영향력을 발휘하라는 취지다. 특히 미국의 핵심 이익과 직결된 세 지역인 유럽, 동북아, 페르시아 만에서 특정 국가가 마음대로 누비지 못하게 역내 세력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지배적 위치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현직 외교관으로 번역을 맡은 김성훈 외교부 중동2과장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다시 자유주의 패권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동시에 기존의 외교정책을 부분적으로 재조정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며 "미국 외교 노선의 거대한 물줄기가 바뀔 때마다 한국에 미치는 파장이 컸다는 점에서 30년간 지속한 자유주의 패권을 역외 균형으로 대체하자는 미국 내 목소리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월간중앙과 중앙SUNDAY에 모두 공급합니다.

202109호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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