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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의 뮤지컬 오디세이(5)] 전 세계를 울린 한 여인의 모성애, '미스 사이공'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요. 당신은 돌아올 거예요” 

베트남 전쟁통에 고아 된 17세 소녀 킴과 미군 크리스의 러브스토리
눈물의 힘 무기로 서양 이어 동양도 평정… 뮤지컬 빅 4 한 자리 차지


▎1989년 영국 런던 로열 드루리레인 극장에서 초연된 [미스 사이공]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뮤지컬 속 주인공 크리스와 킴의 열정적인 키스 장면.
[레미제라블]의 작곡가 클로드 미셀숀버그는 1985년 한 잡지에 실린 한 장의 흑백사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진 속에는 공항에서 생이별하는 한 베트남 모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슬픔에 찬 눈으로 어린 딸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는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울고 있었다.

여인은 전쟁통에 만난 미군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았지만 남자는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가까스로 연락이 됐지만,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한 후였다. 여인은 고민 끝에 이별을 선택했다. 아이만이라도 풍요의 땅 미국에서 자라게 하기 위해서였다.

숀버그는 이 사진에서 하나의 주제를 떠올렸다. 아무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의 행위, 바로 ‘궁극의 희생’이었다. 한 베트남 여인의 기구한 삶을 그린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이렇게 시작됐다. 서양 남자와 동양 여자의 만남이라는 틀은 지아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에서 가져왔다.

[미스 사이공]은 1989년 런던 로열 드루리레인 극장에서 초연됐다. [레미제라블]의 대박 콤비 숀버그과부브릴이 다시 뭉쳤고, ‘미다스의 손’카메론 매킨토시가 제작을 맡았다. 주인공인 열일곱 살 처녀 킴 역에는 1년여의 오디션을 거쳐 필리핀 출신의 레아 살롱가가 발탁됐다. 당시엔 10대 후반의 앳된 소녀였지만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뮤지컬스타로 발돋움했다. 출세작 [미스 사이공]을 비롯해 [레미제라블] [왕과 나] [플라워 드럼 송] 등에 출연하며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관객들을 울렸다. [레미제라블]에서는 처음엔 에포닌 역으로, 나중에는 나이가 들어선 판틴 역으로 출연했다. 살롱가는 국내에도 팬이 많아 2008년 내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필자는 영국에서 [미스 사이공]을 처음 봤다. 대사가 영어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신기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만 들어도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흘렀다. 주인공 킴의 슬픈 사연이 사정없이 가슴을 적셨다. 킴의 아들 탐이 무대에 아장아장 등장하는 장면부터 킴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마지막 장면까지 마치 ‘손수건 없이 절대 볼 수 없는’ 옛날 신파극을 보는 듯했다.

'나비 부인'을 70년대 베트남으로 옮긴 듯


▎월남전을 소재로 1987년 개봉된 영화 [플래툰]. 전쟁의 비정함을 고발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뮤지컬은 물론 영화나 연극·소설 등 서양에서 나온 텍스트 가운데 이렇게 원초적으로 모성애를 표현한 작품이 또 있을까. [미스 사이공]은 놀라울 정도로 동양적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다. 어머니와 자식 간의 정과 희생, 그것이 만들어내는 진한 아픔과 눈물의 미학이 이 작품의 강점이다. [미스 사이공]은 이 눈물의 힘을 무기로 서양과 동양을 평정했고, 뮤지컬 빅 4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눈물의 미학은 이 뮤지컬이 원작으로 삼은 오페라 [나비 부인]에서 유래한다. 190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초연된 [나비부인]은 [투란도트] [라보엠] [토스카] 등과 더불어 푸치니의 대표작 중 한 편이다. 개항기 일본의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한 [나비 부인]은 미군 장교 핑커튼과 어린 게이샤 초초상의 비극적인 사연을 그리고 있다. 초초상은 친척들의 거센 반대에도 미군 대령 핑커튼과 결혼식을 올린다. 초초상은 남편을 따라 기독교로 개종할 만큼 그를 믿고 사랑하지만 핑커튼에게 그 결혼은 그냥 장난이었을 뿐이다.

초초상은 아들 하나를 키우며 미국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지만 3년째 아무 소식이 없다. 핑커튼은 이미 고향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 초초상을 잊고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핑커튼이 마침내 돌아오고, 이 소식을 들은 초초상은 뛸 듯이 기뻐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초초상 앞에 미국인 아내가 나타나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선언한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초초상은 30분 후 핑커튼이 직접 아이를 데리러 오라고 말하고, 아버지의 칼로 자결한다.

[나비 부인]은 당시 유행한 통속 연극을 오페라로 만든 작품으로 서양에 유행하던 일본 문물에 대한 호기심과 이국주의를 활용한 작품이었다. 동양에 대한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하다. 푸치니의 다른 작품 [투란도트]는 배경이 중국이지만 실제 중국과 큰 상관이 없다. 푸치니는 중국에 가본 적도 없고, 고증에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았다.

[미스 사이공]은 [나비 부인]의 틀을 1970년대 베트남으로 옮겼다. 이야기의 전개도 비슷하다. 하지만 주제는 180도 바꿨다. 미군 병사 크리스와 베트남 처녀 킴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과 킴의 절절한 모성애가 중심축이다.

베트남 전쟁에 막바지에 이른 1975년, 함락 직전의 사이공이 배경이다. 전쟁통에 고아가 된 17세 소녀 킴이 클럽 [드림랜드]에서 일을 시작한 첫날, 미군 병사 크리스가 동료들과 함께 클럽을 찾는다. 둘은 하룻밤을 함께하고, 잠들어 있는 킴을 보며 크리스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녀가 고아란 사실을 알게 된 크리스는 자신과 함께 지내자고 한다. 그러나 크리스는 귀환 명령을 받고 급히 미국으로 떠나고, 킴은 그날의 인연으로 얻은 아들 탐을 키우며 혼자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시절의 정혼자로 이제 베트콩 장교가 된 투이가 찾아와 함께 살자고 강요한다. 킴은 거부했고, 화가 난 투이는 아이 탐을 죽이려 한다. 놀란 킴은 크리스가 남기고 간 권총을 찾아 엉겁결에 투이를 살해하고 보트 피플이 돼 태국 방콕으로 탈출한다. 킴이 죽었을 것이라 믿고 실의에 빠져 살던 크리스는 미국에서 엘렌을 만나 결혼하지만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다 방콕에 킴과 자기 아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엘렌과 함께 방콕을 찾는다. 크리스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킴은 엘렌이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른다.

하지만 크리스보다 먼저 킴을 만난 엘렌은 모든 것을 이야기해준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추락한 킴. 아들 탐만이라도 미국으로 보내려고 한다. 자신이 아들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녀는 크리스가 남긴 그 권총으로 목숨을 끊는다. 크리스는 킴의 죽은 몸을 안고 끝없이 오열한다.

[미스 사이공]은 [나비 부인]의 수직적 남녀 관계와 달리 수평적 러브스토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킴과 크리스의 사랑의 순수함을 부각했다. 그런데도 ‘미국 남자에 의해 버려진 아시아 여자의 이야기’라는 설정은 바꿀 수 없었다. 이런 미묘한 정치적 성향 때문에 개막 당시 오리엔탈리즘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오리엔탈리즘 바탕에 깔고 있다는 비판도


▎1989년 초연돼 전 세계 팬들의 가슴을 적신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한 장면.
[미스 사이공]이라는 제목 역시 술집에서 미군들이 장난삼아 뽑은 가장 예쁜 아가씨란 뜻이다. 실제 브로드웨이 공연을 앞두고 미국의 아시아계 단체들은 [미스 사이공]이 미국의 베트남 참전을 미화하고, 아시아 여성을 비하했다면서 공연 중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이래 서양의 전통 비극은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이야기다. 하지만 [미스 사이공]에서 킴의 캐릭터는 그렇지 않다.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인다. 서양비극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캐릭터다.

그러나 이런 비난과 별개로 [미스 사이공]은 레아 살롱가를 비롯해 한국의 이소정 등 아시아 배우들이 킴 역을 통해 브로드웨이 스타로 발돋움하는 통로 역할을 해왔다. 아시아 인의 아픔을 다루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시아 여배우들에겐 브로드웨이 진출의 교두보가 됐다.

[미스 사이공]의 논쟁적인 스토리를 중화시켜주는 것은 숀버그-부브릴 콤비가 만든 아름다운 음악이다. 그들은 크리스와 킴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그리고 ‘궁극의 희생’이라는 주제에 맞춰 [레미제라블]에 이어 또다시 깊이 있고 감성적인 멜로디를 선보였다. 특히 앞으로 전개될 사건에 대한 암시를 노랫말에 담아 안타까움을 극대화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촘촘하게 깔린 복선의 미학을 짚어가며 감상하는 데 있다.

크리스는 킴을 만나 하룻밤을 새운 뒤 잠들어 있는 그녀를 보며 ‘신이여 왜?(Why god, Why?)’를 부른다. “하느님도 너무 하시지, 진작 만나게 하지 왜 베트남을 떠나기 직전 이 아가씨를 만나게 됐을까?”라며 원망하는 내용이다. “왜, 도대체 왜?”라고 절규하는 크리스의 대사에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직감하는 불안의 전조가 엿보인다. 크리스는 잠이 깬 킴에게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해 돈을 주려고 하지만 킴은 “당신이 나의 첫 남자”라며 고개를 젓는다.

하룻밤 만에 정신없이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짧은 동거를 시작한다. 이때 둘이 부르는 듀엣곡이 유명한 해와 달(Sun and Moon)’이다. “당신은 햇살이고, 나는 달/신이 정한 운명으로 만나/한밤에도 한낮에도/하늘을 함께 하며/당신과 신의 축복을 받았네(…)”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을 함께 하며 신의 축복을 믿으며 사랑을 맹세한다. 그러나 남자는 해, 여자는 달이다. 해는 낮에 뜨고 달은 밤에 뜬다. 오작교를 놓지 않는 한 만날 수 없는 견우와 직녀인 셈이다. 둘의 행복이 너무 짧기에 안타깝고, 사랑의 파국을 예고하기에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남기는 여운이 예사롭지 않다.

미국으로 크리스를 떠나보낸 뒤 킴은 아들 탐을 키우며 힘든 나날을 버텨낸다. 철없는 아들은 이제 어린 미혼모 킴의 모든 것이 됐다. 숀버그가 생각한 ‘궁극의 희생’이라는 주제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탐을 향한 킴의 모성애가 조금씩 관객의 가슴을 울리기 시작한다.

“내 품에 안긴 조그만 너, 원하는 것도 없는 너, 이리도 작은 널 위해 내 목숨 다 바칠 거야”로 시작하는 킴의 노래 ‘내 목숨 너에게 줄 거야(I’d give my life for you)’는 작품의 주제를 대변하는 명곡이다. 사실 [미스 사이공]의 음악이 세련되지 않았다면, 이 뮤지컬은 정말 신파극이 됐을지 모른다. ‘내 목숨 너에게 줄 거야’처럼 감성을 파고드는 곡들이 있어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 곡 역시 나중에 목숨을 끊게 되는 킴의 비극을 의미심장하게 암시한다.

‘내 목숨 너에게 줄 거야I’ 작품 주제 대변하는 명곡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나비 부인]의 틀을 1970년대 베트남으로 옮겼다. 작품의 스토리 전개도 비슷하다.
탐이 무대에 아장아장 걸어 나오며 존재를 알리는 장면은 [나비 부인]에서 아이가 등장하는 장면과 비슷하다. 어린 꼬마가 무대에 처음 나오는 순간, 관객들은 “어…”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쉽게 무장해제한다. 해맑은 아이의 모습은 킴이 겪고 있는 고통과 강렬하게 대조되어 비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킴과 크리스의 미국인 아내 엘렌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함께 부르는 ‘난 여전히 믿어요(I still believe)’는 [나비 부인]으로 치면 아리아 ‘어떤 갠 날’에 해당한다. “나는 여전히 믿어요. 당신이 돌아올 거라고, 그럴 거라고…, 내가 믿고 있는 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요. 당신은 돌아올 거예요.”

[나비 부인]의 핑커튼 아내와 달리 [미스 사이공]의 엘렌은 합리적인 인물이다. 남편의 고통과 킴의 상황을 이해한다. 하지만 상당히 작위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결혼 전에 외국 여자에게서 낳은 아이가 하나 있다는 말을 듣고 엘렌처럼 행동할 여자가 얼마나 있을까. 킴과 크리스의 ‘아름답지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플롯을 완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캐릭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작품에는 킴과 크리스 외에 비중 있는 역할이 하나 더 있다. 클럽 드림랜드의 사장인 ‘엔지니어’다. 미국에 가서 한몫 잡겠다는 꿈을 가진 속물 장사꾼으로 작품의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주는 코믹 감초 역이다. 모두가 진지한 가운데 혼자서 튄다. 그래서 [미스 사이공]의 진짜 주인공은 엔지니어라고 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그가 부르는 ‘아메리칸 드림’은 이 작품의 명 넘버 중 하나로 흥겹기 그지없다.

한편 뮤지컬 빅 4는 포스터도 모두 유명하다. [캣츠]에는 고양이 눈 두 개, [레미제라블]에는 어린 코제트의 모습, [오페라의 유령]에는 팬텀의 마스크가 있다면, [미스 사이공]의 포스터에는 석양을 배경으로 헬리콥터들이 날고 있다. 석양에는 킴의 얼굴 윤곽이 아로새겨져 있다.

전쟁터의 참혹함과 이별의 아픔 상징하는 헬리콥터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상징하는 헬리콥터 장면. 전쟁터의 참혹함과 이별을 보여준다.
헬리콥터는 베트남전의 상징 중 하나다.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 [죽음의 묵시록] [플래툰] 등에도 등장하듯 정글이 많은 베트남의 특성상 헬리콥터가 많이 동원됐다. [미스 사이공]은 관객들이 실물로 착각할 만한 헬리콥터 세트를 무대에 등장시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이공 함락의 날, 미국 대사관 앞은 베트남을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아비규환을 이룬다. 부대에 복귀한 크리스는 헬리콥터에 오르고 킴을 애타게 부르지만 보이지 않는다. 굉음과 함께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맹렬히 돌기 시작하고, 헬기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뒤엉켜 생지옥을 방불케 한다. 마침내 대사관의 철조망이 닫히고 수많은 사람의 생과 사가 엇갈린다. 헬리콥터 장면은 [미스 사이공]이 팬 사이에서 입소문이 금방 돌게 된 최고의 이슈였다.

아쉽게도 이 헬리콥터 세트는 이제는 보기 힘들다. 비싼 제작비가 문제였다. 2004년 시작된 투어 버전부터 실물 크기 헬리콥터 대신 3D 영상이 등장했다. 국내 공연에서도 이 3D 영상을 활용했다. 3D 영상이기는 하나 이 헬리콥터 탈출 장면은 여전히 압권이다. 엄청난 굉음과 바람을 일으키며 긴박하게 떠오르는 헬리콥터는 삶과 죽음이 오가는 전쟁터의 참혹함과 킴과 크리스의 이별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스 사이공]을 비롯한 뮤지컬 빅 4는 화려한 스펙터클 때문에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엄청난 제작비가 소요되는 화려한 눈요깃거리로 사람들을 유혹한다는 것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드라마 흐름과의 부합 여부다. 오로지 볼거리를 위한 볼거리라면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미스 사이공]의 헬리콥터 장면처럼 드라마의 흐름을 따르면서, 극적 효과를 고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탓할 이유가 없다. 자본과 아이디어가 없어서 못할 뿐이다.

[미스 사이공]은 헬리콥터 장면 외에도 화려한 세트로 유명하다. 베트콩들이 지도자 호치민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벌이는 축하 퍼레이드를 벌이는 장면, 클럽 드림랜드의 군무 장면도 유명하다.

숀버그-부브릴 콤비는 [레미제라블]에 이어 [미스 사이공]을 빅 히트시키며 다시 한 번 재능을 과시했다. 여세를 몰아 1996년 런던에서 야심작 [마틴 기어]를 선보였다. [미스 사이공]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그들의 오랜 파트너인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가 기획을 맡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성과는 앞의 두 편에 비하면 썩 좋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로렌스 올리비에 상을 휩쓸며 흥행 성적이 괜찮았지만, 미국 브로드웨이 입성에는 실패했다. ‘무겁고 장중한 유럽 스타일’이라는 미국 내 반응이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이들은 이후 [해적 여왕](2006) [마르그리트](2008) 등 후속작들을 내놓았지만, 예전만큼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숀버그-부브릴 콤비와 관련해 한 가지 흥미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1990년대 후반 국내 제작자들이 이 콤비에게 창작 뮤지컬을 의뢰했다는 것이다. 조건이 맞지 않아 불발로 끝났지만 만약 성사됐다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 김형중 - 공연 칼럼니스트. 연세대와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20년 넘게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고 한국뮤지컬대상과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무대예술의 경이로움을 글로 풀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쓴 책으로 [우리시대 최고의 뮤지컬 22]가 있다.

202110호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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