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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32)] 30년 한우물 열정 ‘어린이 대통령’ 김종석 

“미키마우스 몰아낸 ‘뚝딱이’ 창조, 국산 캐릭터 역사의 맨 앞에 있죠” 

사진 신인섭 기자
한국방송대상 공로상… ‘개그맨 1호 박사’ 전문성, 장수 비결로 꼽아
“3세대 아이들에게도 꿈과 희망 전달” 각오… 커피·빵집 사업 도전도


▎자신이 운영하는 양수리빵공장 4층에서 ‘뚝딱이 아빠’ 의상을 입고 인터뷰를 하는 김종석 대표. 그는 ‘뚝딱이 아빠’ 모자만 1000개, 안경도 800개를 갖고 있다고 했다.
'뚝딱이 아빠’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방송인 겸 희극인 김종석(62) 씨가 지난 9월 큰 상을 받았다. 제 48회 한국방송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것이다. MBC 공채 코미디언 출신인 그는 EBS의 ‘딩동댕 유치원’을 포함해 어린이 프로그램을 30년 넘게 진행하면서 어린이 인성 발달과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방송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한국방송대상의 올해 가수부문 수상자는 방탄소년단(BTS), 연예부문은 유재석 씨다. 지난해 한국방송대상 공로상은 KBS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있는 송해 선생이 받았다.

김종석 씨는 다양한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대표님’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경기도 양평의 양수리 강변에 ‘양수리빵공장’이라는 국내 최대 빵집 겸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다. 6층짜리 빌딩 중 5개 층에서 빵과 커피를 맛보며 수려한 경관을 즐길 수 있다. 팔당대교 인근 ‘벨스타 커피’라는 카페도 김 대표가 오픈한 곳이다.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물멍’하기에 최고의 포인트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평일 휴일 가릴 것 없이 손님들로 북적댄다.

양수리빵공장 4층에서 김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직접 만든 빵과 커피를 취재진에게 권하며 김 대표는 “여기는 커피 맛이 좋기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집이고요. 우리 집빵은 전국에서 가장 좋은 재료를 쓴 겁니다”라며 영업(?)에 열을 올렸다. 그는 “30년 넘게 어린이 프로라는 한우물을 판 열정을 인정받은 것 같습니다. 상을 받으니 짐이 더 무겁고 행동도 조심하게 됩니다. ‘당신이 쌓은 거 한 번에 무너뜨리지 마세요’라는 하늘의 사인이자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10개 접고 ‘딩동댕 유치원’ 맡아


▎김종석 대표가 지난 9월 3일 제 48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뒤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사진:김종석 대표
큰 상 받으신 걸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어린이 프로만 쭉 하다 보니까 이런 영광도 얻게 되네요. 이런 상은 최불암 선생님이나 송해 선생님 정도 돼야 받는 줄 알았는데 왜 저한테 줬을까 생각해 봤어요. 어린이 프로는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장르입니다. 방송국 안에서도 그렇고요. 묵묵히 미래 꿈나무들을 위해 애쓰시는 많은 어린이 프로그램 종사자들을 대신해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생각하고 저한테 주신 것 같습니다.”

어린이 프로에 올인 한 게 개그맨으로서 어른들 웃기는 건 어렵다고 판단해서 전략을 바꾼 게 아닌가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죠?(웃음). 이주일·이용식·이경규 이분들은 말만 하면 웃겨요. 우리는 ‘야 커피 한잔 갖고 와’하면 안 웃기잖아요. 그런데 주일이 형은 (이주일 목소리로) ‘야, 커피가 마렵다야’ 그럼 웃겨요. 한 마디 한 마디가 웃기는데 난 이분들을 웃긴 적이 없어요. 평생 직업으론 내 달란트가 부족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EBS에서 제안이 온 겁니다. ‘김종석 씨 이미지·말투·속도가 어린이 프로그램에 맞는 것 같다’며 와 달라고 해요. 당시는 방송사 전속 계약이 있어서 MBC 소속은 MBC만, KBS는 KBS만 출연할 수 있었거든요. 제가 MBC에서 10개 가까운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는데 그걸 접고 과감하게 EBS ‘딩동댕 유치원’으로 이적했죠. 처음 몇 년간은 갈등도 후회도 많이 했어요. 수입이 8분의 1로 줄었거든요.”

본인의 성격이나 캐릭터가 어린이와 맞는 부분이 있었나요?

“사실 저도 코미디언으로서 꽤 인기가 있었어요. 얼굴이 멀쩡한 친구 치고는 좀 웃겼거든요. MBC ‘뽀뽀뽀’에서 찰리 채플린이나 피에로 역할을 맡아 팬터마임도 했는데 제가 어린이 프로에 맞는다는 걸 느꼈어요. ‘야 일요일이다’ ‘파란마음 하얀마음’ 같은 걸 하면서 어린이 프로의 노하우를 축적했죠. 그걸 EBS에서 알아보고 저를 스카우트 한 겁니다.”

장수 캐릭터인 뚝딱이도 직접 만드셨다면서요?

“맞습니다. ‘딩동댕 유치원’에 왔더니 캐릭터가 하나도 없는 겁니다. 당시 우리나라 어린이나 영유아들에게 가장 친근한 캐릭터는 미키마우스-미니마우스였잖아요. 디즈니 친구들을 가슴·신발·가방에 붙이고 다녔죠. 그게 우리 아이들 정서에 맞나 싶고, 사실 미키마우스는 찍찍 쥐새끼잖아요. 당시에 미키마우스 1년 로열티만 780억 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자’ 해서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현재는 더케이호텔)에 방을 잡고 PD들과 인형 제작하는 분들 모아놓고 밤샘 작업을 했죠. 거기서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좋은 아빠 나와라, 자상한 엄마 나와라 뚝딱’ 이렇게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캐릭터 뚝딱이가 나온 겁니다. 그 후 3년 만에 미키마우스 로열티가 120억으로 뚝 떨어졌어요. 2년 후 방귀대장 뿡뿡이가 나오고, 그다음부터 미키마우스가 거의 사라졌죠. 또 5년 뒤에는 뽀로로가 등장하면서 우리나라가 캐릭터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신했잖아요. 미키마우스 브랜드를 밀어내고 국산 캐릭터가 등장하는 역사의 맨 앞에 뚝딱이가 있습니다.”

본인은 뚝딱이 아빠로 큰 인기를 얻었잖아요.

“뚝딱이는 제가 주도해서 만들었는데 프로그램 MC인 제가 뚝딱이라는 캐릭터한테 밀릴 거 같더라고요. 다시 회의를 주관해서 ‘뚝딱이 혼자 나가면 결손 아이가 된다. 아빠 정도는 있어야겠다’고 했죠. 그럼 누가 할 것인가? 장동건이나 이정재, 안성기 선배님 이런 분이 하면 좋을 텐데 안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겠습니다’ 그랬죠. 하하. 뚝딱이가 탄생하자마자 영화 소품 만드는데 가서 귀를 만들고 안경·모자·의상을 갖추기 시작했죠.”

같이 출연한 아이가 엄마 돼 자식 데리고 찾아와


▎자신이 만든 뚝딱이 캐릭터 인형을 안고 포즈를 취한 김종석 대표는 “한국 캐릭터 산업의 맨 앞에 뚝딱이가 있다”고 했다. / 사진:연합뉴스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로 32년째 장수하고 있는데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습니다.

“지방 공개방송을 가면 아이를 데려온 엄마가 저한테 빛바랜 옛날 사진을 보여줄 때가 있어요. 제가 엄청 젊었을 때라 저랑 같이 사진에 나오는 아이가 누구냐고 물으면 ‘얘가 바로 접니다’ 하면서 웃어요. 그 아이가 자라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데려온 겁니다. 그때 느낌은 굉장히 묘해요. 한 세대를 넘어 두 세대 동안 아이들과 엄마·아빠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었구나 싶고, 3세대까지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죠. 어린이 프로는 주목받지 못하면서도 굉장히 손이 많이 가서 옛날에는 새벽 2시까지 녹화하고 그랬어요. 아이들은 10시~11시가 되면 자거든요. 잠깐씩이라도 화면에 나오게 하려고 ‘자 우리 친구들’ 하면서 깨우려고 손으로 엉덩이를 툭툭 치면 제 쪽으로 픽하고 쓰러져요. 그럼 또 NG가 나고…. 방송 중에 이런 헐렁한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옷을 가만히 잡고 있는 애가 있어요. 나중에 보면 ‘영역 표시’를 해 놓아서 옷이 흥건히 젖어 있죠. 텔레비전에서 봤던 사람을 보고 반가움의 표시로 그렇게 한 거겠죠. 하하하.”

어린이 프로그램의 터줏대감으로 30년 넘게 장수한 비결이 뭘까. 그는 ‘전문성’을 꼽았다. “어린이 프로가 어쩌면 가장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고 봐요. 아이들의 언어·생각·창의성과 발달 관계 등을 잘 알지 못하면 주는 대본 그냥 읽는 연기자가 될 수 있고 그러면 오래 못 합니다.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심어 주고 싶어서 광고학 석사 과정을 공부했고, 아이들을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성균관대에서 아동학 박사학위를 받아 ‘개그맨 1호 박사’라는 영광을 얻게 됐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에 대한 정보와 변화하는 환경, 트렌드 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얼마 전에 이사를 했는데 ‘딩동댕 유치원’에서 사용한 의상과 소품만 한 트럭분이 나오더라고 했다. 모자가 1000개, 안경도 800개 정도 있다면서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놀이동산이나 공연장 같은 곳에 컨설팅도 자주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못 맞추는 데가 있어요. 거기를 가는 친구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브레인스토밍을 합니다. 가족들이 오는 공원이나 시설의 비전, 주의사항, 연출 등을 자문하지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판타지 속에 들어가서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을까 연구하는 거죠. 아주 오래전 에버랜드 홍보대사 역할을 할 때인데요. 손님이 오면 티켓팅을 하고 ‘자, 줄 서셔야 해요’ 같이 무미건조하게 안내만 하는 겁니다. 몇 시간씩 버스를 타고 에버랜드에 온 아이들도 많을 텐데 그 아이들의 판타지가 깨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손가락을 펴서 좌우로 흔들고 좀 과도한 몸짓으로 ‘어서 오세요. 여기는 꿈의 세계에요’ 이런 퍼포먼스를 해 주면 아이들의 기대치가 얼마나 높아지겠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굉장히 큰 선물이 될 거라고 조언한 적이 있어요. 지금이야 어딜 가나 그런 게 기본이 됐지만요.”

놀이동산 등 어린이 판타지 깨지 않도록 컨설팅


▎EBS 대표 캐릭터 펭수와 각종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그려진 양수리빵공장 엘리베이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종석 대표.
서울역 고가도로 철거할 때도 아이디어 자문을 하셨다면서요.

“사실 좀 아쉬움이 있었어요. 뉴욕의 철길처럼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게 통과가 안 됐어요. 서울역 고가를 보행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차량 통행을 막고 공사를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 커다란 현수막을 걸자고 했거든요. ‘다리야 60년 동안 힘들었지. 이제는 네가 쉴 때가 되었어. 쉴 때는 많은 사람들이 걸으면서 너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보는 시간이 될 거야. 다리야 그동안 수고했어’ 뭐 이런 내용인데 이보다 훨씬 멋진 문구였거든요.”

아이들은 동물이든 사물이든 인형이든 사람처럼 대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천진함이 창의력으로 이어진다는 걸 김 대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와의 대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가 ‘창의력’이었다. “우리나라에 기름이 나지 않잖아요. 아니 있긴 있다. 남자들 얼굴에 개기름, 크크. 그걸 수출할 순 없잖아요.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미래 100년 200년 먹고사는 길은 창의성입니다. 새로운 물건과 환경을 만들고 그걸 수출해서 돈을 벌어야죠. 우리나라 부모는 아이가 학교 갔다 오면 ‘오늘 안 싸우고 잘 놀았냐, 뭘 배웠냐’ 묻는데 유대인 부모는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오늘 뭘 질문했니?’라고 묻는다고 하잖아요. 질문한 걸 계속 적어보면 이 아이가 뭐에 관심이 있는지 알게 됩니다. 호기심을 창의력으로 연결하고, 사물을 늘 새롭게 보는 법을 알려줘야죠.”

혹시 교육부장관이 된다면 뭘 하실 건가요?

“중앙미디어그룹에서 밀어주면 될지도 모르죠(웃음). 우선 모든 교육청에서 행정 감사 대신 창의력 감사를 하라고 할 겁니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원장·교장·교감이 모두 돈 얼마나 썼는지만 계산하고 있어요. 얼마나 창의력 있는 교육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감사하고, 그걸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죠. 두 번째는 영어 교육입니다. 영어는 이제 산소, 공기와 같은 겁니다. 두 번째 모국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법을 배우는 순간 영어는 어렵게 돼 있어요. 학교에서 십수 년 영어를 배우고 박사까지 해도 외국인 만나면 말 한마디 못하는 게 문법이 뇌를 눌러서 그렇거든요. 그래서 영어 문법 선생님을 회화 선생님으로 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추진할 겁니다.”

‘커피와 빵으로 스타벅스와 붙겠다’는 꿈꿔


▎김종석 대표가 자신이 구워낸 빵을 한 아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빵과 커피를 갖고 미국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했다.
양수리빵공장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제가 호기심이 많다고 했잖아요. 비즈니스도 관심 많은 분야지요. 이건희 회장, 정주영 회장, 워런 버핏같이 크게 성공한 분들의 자서전을 좋아합니다. 집에는 해를 그려놓고 ‘해봤어?’라는 말도 써 붙였어요. 정주영 회장님이 하셨던 말씀이잖아요. 가장이 직업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가정이 많잖아요. 일자리가 생겨야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업가는 꽃입니다. 목숨 걸고 사업을 일으켜서 성공한 사람을 존중해야지 그들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흠을 부각하려 한다면 누가 기업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왜 빵집이었나요?

“사업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처음 시작한 게 주유소였고, 요즘 같은 시스템을 갖춘 편의점도 시도해 봤고, 호텔 체인화도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 전공인 교육사업으로서 서울에서 가장 큰 유치원도 운영했고요.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미래 사업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생겼어요. 대학 강의나 특강을 하면 ‘나의 미래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학문적으로만 접근하면 공허하잖아요. 내가 직접 방향 잡아서 해야지 마음먹고 그 많던 사업을 정리했어요. 경기도 팔당에 인큐베이팅 하는 카페가 있는데 이름이 벨스타 커피입니다. 앞에 한강이 흐르고 맞은편엔 산이 있는, 제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의 모습과 똑같아요. 그게 미래 사업이 될 것 같았어요. 그걸 재정비하면서 수리수리 양수리 빵공장을 본격적인 사업으로 시작한 겁니다. 세 군데 더 땅을 확보해 놓고 설계를 하고 있어요.”

사업을 하면서 ‘미국과 싸워 이겨보고 싶다’는 꿈을 펼치겠다고 하셨는데요.

“꿈은 이룰 수 없는 겁니다. 이룰 수 있는 건 꿈이 아니죠. 그걸 잘못 잡으면 큰일 납니다. 어떤 아이가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이 됐다, 그러면 꿈을 이룬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미하일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한 것처럼 플로우(flow) 상태가 됩니다. 홍수처럼 다른 생각이 밀려 들어와 마약·도박·게임 같은 데 중독되기 쉬워요. 우리 아이가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할 꿈을 꾼다면 행동이 바뀝니다. 저는 꿈을 꾼 거죠.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커피 마니아의 주머니를 털어 1조5000억원을 털어서 어디로 가져갈까요. 우리나라도 사계절이 뚜렷해서 미각이 발달했고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문화가 형성돼 있어요. 커피나 빵도 마찬가지여서 정말 맛있게 하는 곳이 많거든요. 대한민국의 커피 문화를 한 단계 올려보자, 우리가 스타벅스만 잡으면 전 세계로 나갈 수 있다. BTS처럼. 그래서 이름도 벨스타 커피라고 지었고, 양평에 전국에서 제일 큰 스타벅스 바로 맞은편에 땅을 사서 설계를 했어요. 스타벅스와 제대로 한번 붙어보려고요. 사람들은 미쳤다 하지만, 거기서 망하든 흥하든 해보고 싶거든요.”

미국에도 진출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을 이기려면 미국 문화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미국을 한번 공격해 보자고 마음먹었죠.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폐막식 사회를 제가 본 걸 아무도 기억 못 하는 더러운 세상에 살고 있어요(웃음). 당시 유엔본부 사람들이 많이 와서 보고 저 사람을 한번 써먹어야겠다 생각했나 봐요. 유엔본부에서 열린 피스 콘서트 사회를 보고,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에서도 사회를 봤죠. 그 뒤에 뉴욕·시카고·시애틀 곳곳을 뒤지면서 사업할 자리를 찾았죠. 이것저것 따져 보니 라스베이거스가 제일 낫더라고요. 라스베이거스에서 제일 큰 빵집이 코로나로 망해서 다섯 달 문을 닫고 있는 걸 인수해 11월에 오픈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커피와 빵의 본고장 미국에서 노하우를 축적하면 양수리빵공장과 벨스타의 경쟁력도 높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김 대표는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 선생과 ‘형님-동생’ 사이로 지내고 있다. 조 선생은 무려 6년 동안 송사에 시달렸다. 무명화가의 도움을 받은 화투 그림을 자신의 창작물로 판매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조 선생은 1심에서 유죄(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를 선고받았다. 2심은 무죄, 대법원 최종심도 무죄로 나왔다. 김 대표는 무죄 판결이 나오자마자 양수리빵공장 6층 갤러리에 조 선생의 작품 120여 점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자신도 조 선생의 작품 6점을 사서 건물 곳곳에 전시했다.

김 대표의 말이다. “영남이 형님은 말은 좀 거칠지만, 진짜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그림에도 창의력이 숨어 있어요. 6년 동안 고생했는데, 세계 최초로 아마추어 화가를 국가가 나서서 프로 화가, 전문 화가로 만들어 준 거죠. 그분의 창의성을 소개하고 싶어서 우리 건물에서 전시회를 했는데 재밌는 건 양수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손님들이 영남이 형님 그림이 걸리고 나서는 그 앞에서만 사진을 찍더라는 거죠.”

웃음의 본질은 행복·건강 주는 알약

요즘 개그맨과 개그 프로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코미디·개그 프로가 많이 없어졌어요. 개그라는 장르에서 트렌드를 읽지 못한 것 같아요. AI(인공지능)와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모든 게 빨라졌어요. 기승전결이 아니라 바로 결(結)을 보여줍니다. 개그맨이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 온갖 난리를 피우는 거죠. 이제는 개그 프로를 소비자 입장에서 보게 되는데, 늘 사회 현상과 반대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디지털·AI 시대가 되기 전에는 굉장히 템포가 빨랐다면 이제는 천천히 가야죠. 예전 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처럼 기-승으로 가다가 뭐 하나 빠져도 허허 하고 웃을 수 있는 그런 프로 말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심형래한테 투자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심형래는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는 데도 아이디어가 있어요. 생각할 기회를 시청자에게 주고, 시청자와 게임을 하는 겁니다. 내가 누구를 때릴 것처럼 오른손을 올리고 있다고 칩시다. 시청자들이 이렇게 때릴까 저렇게 때릴까 생각하고 있을 때 왼손을 밑에서부터 툭 친다거나 이렇게 템포와 포즈가 굉장히 중요하죠. 스피드는 유튜브나 틱톡을 따라갈 수가 없잖아요. 말을 몰라도 행동만 봐도 웃기는데 텔레비전에서 그것보다 재미없는 걸 왜 보겠어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생각하면 코미디 프로의 전성기가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슬랩스틱이든 스탠딩 개그든 웃음의 본질은 같을 텐데요.

“행복이죠. 건강이고요. 삶을 구해주는 촉매제 같은 겁니다. 우울감 때문에 죽어가고 자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이 희망이고 약일 수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그런 분을 위해 주는 알약이라고 생각해야지, 이걸 시청률이나 광고의 관점에서 보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린이 대통령’으로 장기집권 중인 김 대표는 서정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CEO 최고위 과정의 인기 강사로도 정평이 나 있다. 하루 7종류의 신문을 정독한다는 그는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자신만의 유머 코드로 엮어내는 재주가 있다. 그는 “어른들을 웃길 때보다 어린이들이 즐거워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개그맨으로서 자신이 만든 유행어가 있냐고 물었다. 그는 “많죠. ‘친구들 안녕?’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나요’ ‘뚝따라닥닥뚝딱딱’ 이런 거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3년 동안 진행한 [레전드를 찾아서] 중에 가장 유쾌한 인터뷰였다.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튜브 방송국인 중앙UCN의 부사장을 겸하고 있다.

202110호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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