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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화제] MLB 폭격하는 ‘二刀流’, 오타니 쇼헤이의 모든 것 

베이브 루스 그 이상의 존재, 야구의 고정관념을 깨다 

타자로 43홈런·투수로 2점대 평균자책점 기록하며 올스타전 신드롬까지
WAR 등 세부지표도 독보적… 체력과 스피드, 정신력, 성실함까지 겸비


▎오타니 쇼헤이는 세계 최고 난이도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괴력을 발하고 있다. 분업화된 현대 야구에서 존재 자체가 경이로움이다. / 사진:AP연합뉴스
2021년 메이저리그는 오타니 쇼헤이(27·LA 에인절스)의 시대를 체감하고 있다. 9월 8일(한국시간) 시점까지 홈런 43개로 빅리그 전체 1위를 달리면서, 동시에 투수로 팀 내 최다인 9승에 2점대 평균자책점까지…. 더 경이로운 사실은 오타니의 ‘비현실성’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을 거슬러 2017년 12월, 오타니가 LA 에인절스와 계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정판으로 제작된 오타니 공식 야구카드 1만7000여 장은 하루 만에 완판됐다. 야구카드 제조사 판매 신기록이었다. 기대에 걸맞은 열풍도 이어졌다. 데뷔 첫해인 2018년 오타니는 타자로 22홈런, 투수로 4승을 기록해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만하면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해 9월 팔꿈치 수술 소식과 함께 시즌을 마감했다. 이듬해 무릎 수술까지 받는 바람에 한동안 오타니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은 사라졌다.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해내기에는 인간의 육체가 한없이 미약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시즌이나마 투타 겸업을 실천한 것은 현대 야구에서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들 했다.

실제 수술 이후 재활과 코로나19 여파 속에 치른 2020시즌 오타니는 타자로 1할대 타율, 투수로 2경기 출전이 고작이었다.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투수와 타자 중 한쪽에 집중하라”는 쓴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오타니는 “학창 시절부터 주위에서 한계를 말할 때마다 오히려 동기가 부여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2020년을 ‘불쌍했던 시즌’으로 간단히 정리한 오타니는 빅리그 4년차를 앞둔 2021년 더 직진하기로 작정했다.

결점 없는 ‘야구 완전체’


▎오타니 쇼헤이의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출전을 기념해 뉴욕 양키스 레전드 베이브 루스와 비교한 애니메이션. / 사진:유튜브 캡처
“야구는 프로레슬링이 아니라”는 일본 야구계 원로 장훈의 일침에도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완전히 달라진 체형을 만드는 한편, 시애틀에 위치한 투수 전문 훈련 기관 ‘드라이브 라인’에서 투구 자세를 최적화하기 위해 신체 각 부분의 움직임을 살폈다.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가는 사이, 주기적으로 혈액을 채취해 식이요법에 따른 피로 회복도를 세밀하게 측정할 만큼 집요했다. 한 시즌 내내 최고의 리그에서 완벽한 투타 겸업을 견뎌낼 ‘건강한 신체’가 그만큼 간절했다. 오타니가 겨우내 기울인 노력과 무관하게 ‘만화적 상상을 추종하고 무모한 도전마저 미화한다’며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다. 기대하는 쪽도 그저 2018년 수준의 성적이면 만족이지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고 봤다.

그러나 뚜껑이 열리자 생전 보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4월 4일 시즌 첫 선발 등판에서 2번타자 임무까지 맡은 오타니는 첫 타석 초구를 걷어 올려 홈런을 뿜어냈다. 선발 투수가 2번타자로 나선 것은 1903년 이후 처음이었고, 1973년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된 이후 아메리칸리그(AL)에서 선발투수가 홈런을 날린 것도 최초였다. 홈런 7개를 쌓아가던 4월 26일에는 텍사스를 상대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베이브 루스 이후 꼭 100년 만에 홈런 1위 타자가 선발투수로 등판한 날이었다.

오직 오타니만 가능한 기록이 줄을 이었다. 승리투수가 된 다음 경기에서 홈런 2방을 때리는가 하면, 탈삼진 10개로 압도적인 투구를 펼친 다음날 1회 곧바로 홈런을 치는 등 컴퓨터 게임에서도 구현하기 힘든 상황이 반복됐다. 마운드에서는 최고 163㎞의 강속구를 뿌리고, 타석에서는 비거리 143m의 대형 홈런을 날리는 193㎝의 건장한 청년을 향해 미디어는 열광했다.

오타니가 더 평가받는 이유는 출전 빈도에 있다. 현대 야구의 상식을 흔들었다는 2018년만 해도 LA 에인절스 구단은 오타니의 일본 시절 기록을 근거로 1주일에 1회 이상 선발 등판하지 않도록 조치했고, 신체적 부담을 우려해 투구 전후로 충분한 휴식일을 제공했다. 지명타자로 나서는 것도 1주일에 3회 정도로 제한했다. 그런데 올해에는 스스로 휴식을 반납했다. 투수로 나서는 경기에서도 곧잘 지명타자로 출전한다. 팀 내에서 데이비드 플레처와 함께 가장 자주 출전하는 선수가 됐다.

전반기를 마치면서 33홈런에 투수로도 4승 1패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린 오타니는 이미 스타 중의 스타였다. 다른 프로 스포츠와의 흥행 경쟁에 고심 중인 MLB 사무국이 굴러온 복덩이를 마다할 리 없었다. 2021년 올스타전을 ‘오타니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예상대로 오타니는 투수와 타자 부문에서 모두 올스타에 선정됐다. 역시 최초였다. 판을 벌인 김에 MLB 사무국은 오타니가 AL 선발 투수 겸 1번타자로 나서도록 기존 규칙을 손봤다. 자신을 위해 마련된 축제에서 오타니는 사전 행사인 홈런 더비부터 등장해 화제를 낳았고 올스타전에서 승리투수가 되는 것으로 수고를 마쳤다. 폭스스포츠는 “올스타전 시청자수 지표가 전년도보다 올랐다”고 보도했다.

건강해진 오타니의 신체는 평균 홈런 비거리 127m(전체 4위), 평균 타구 속도 시속 151㎞(전체 6위)의 폭발적인 타격을 만들어냈다. 투수로도 최고 구속 163㎞의 강속구와 함께 피안타율이 0.074에 불과할 만큼 압도적인 스플리터(포크볼)를 뿌려댔다. 종종 잊히곤 하지만, 오타니는 필요할 때 초당 9.2m(리그 평균은 초당 8.2m)까지 내달릴 수 있는 스피드까지 갖췄다. 소속팀 조 매든 감독에게 언제든 그린 라이트를 보내 달라며 과감한 주루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은 결과, AL 역대 4번째로 42홈런과 22도루를 돌파한 선수로도 기록됐다. 최근에는 홈스틸까지 해낼 만큼 경기를 읽는 눈과 여유까지 선보이고 있다.

미국 야구 전문매체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매년 현역 스카우트들의 설문 조사로 선정하는 분야별 최고 선수에서 오타니는 이례적으로 최고의 파워 부문과 최고의 주루 부문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더불어 ‘가장 흥미로운 선수’로 뽑힌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한동안 오타니를 찬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베이브 루스를 소환하는 것이었다. 루스는 투수와 타자로 각각 리그를 지배했고, 특히 이전까지 큰 의미를 두지 않던 홈런을 경기의 핵심 요소로 끌어올려 야구라는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118년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오타니가 쉼 없이 진화하자 루스조차 적절한 비교 대상인지 의문을 품게 됐다. 1914년 데뷔한 루스는 1917년까지 투수로만 뛰었다. 지명타자 제도가 없던 시절에 타석에서 엄청난 타구를 날리긴 했지만, 처음에는 기행에 가까웠다. 타격에 재미를 붙인 루스는 1918년 투수로 13승을 거두면서도 적극적으로 타석에 나서 첫 홈런왕을 차지했다. 1919년부터는 타격에 전념하기 위해 외야수로 정착했다. 결과적으로 루스의 타격 욕심은 미래를 제대로 내다본 것이었다.

오타니와 루스가 명확히 구분되는 점이 있다. 바로 투타 겸업을 향한 의지다. 루스는 투수와 타자로 모두 나서던 1918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선발 로테이션을 정상적으로 소화하면서 매일 타자로 나서는 것은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이라고 전제한 뒤, “나는 아직 젊고 강하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시즌을 이렇게 해낼 자신은 없다”고 덧붙였다. 투수 출신인 루스는 타자로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잠시 투타 겸업을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 루스가 투수와 타자를 제대로 병행한 시즌은 1918년과 1919년 두 시즌뿐이다.

다시 말해 현대 야구의 높아진 수준과 체계적인 분업화 등 다양한 변수까지 고려하면 오타니는 이미 어떤 선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라는 게 ESPN의 대표 칼럼니스트인 팀 커크잔의 의견이다. 오타니의 위엄을 통계 수치로 논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평가 잣대로 통용되는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의 경우 오타니는 타자로 나섰을 경우 4.7로 전체 10위권, 투수로는 2.6으로 전체 40위권이다.(팬그래프 9월 5일 기준)

투수와 타자, 개별적으로도 최상위권이지만 오타니가 ‘투타 동일체’인 홀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1위 선수가 된다. 두 가지 포지션을 소화해 선수 명단 한자리를 아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WAR 수치 계산에 감점 요소인 지명타자로 뛴다는 점을 논외로 해도 그렇다. 그러나 몇 가지 공식과 수치로 오타니를 정의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특별함을 놓치는 것일지 모른다. 최근 미국 야구계에서는 숫자나 기록보다 오히려 투수와 타자를 병행하는 실제 과정에서 오타니의 초인적인 능력을 짚는 의견이 많다.

기록보다 더 위대한 의지력


▎오타니 쇼헤이의 일거수일투족은 일본에서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다. 심지어 도쿄올림픽을 압도할 정도였다.
미국 유일의 메이저리그 전문 월간지 [베이스볼 다이제스트]는 1999년 11월호에서 ‘왜 투수는 좋은 타자가 될 수 없는가’를 다뤘다. 대다수 야구인은 ‘선수들이 10대 후반을 지나면서 어느 한쪽으로 재능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냈다. 투수와 타자가 사용하는 근육이 전혀 다르다는 것도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무엇보다 야구가 분업화하면서 굳이 이중으로 수고할 필요가 없어진 투수와 타자는 다른 습성을 지닌 종족으로 나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베이브 루스는 커녕, 비슷한 선수도 나올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루스와 비슷한 선수가 나타난 2018년 [베이스볼 다이제스트]는 자세를 바꿔 오타니 특집 기사를 내걸었다. 두 영역을 모두 단련해 빅리그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는 오타니를 ‘경이적인 선수’라 평가했다. 스포츠 전문매체 [디애슬레틱]은 두 가지 임무를 물리적으로 수행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소화하는 것이 더 까다롭다는 의견을 냈다. 야구 기록표에서 투수는 수비, 타자는 공격 측에 속하지만, 실제 행위로는 그에 반하는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디애슬레틱은 “간혹 타석에 들어서도 다음 투구를 생각하느라 타격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마이애미 투수 로저스의 말을 인용하며 상반된 성질의 두 가지 행위를 경기 내내 수시로 전환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 역시 “경기 중 투수와 타자의 뇌가 다르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며 “어떻게 실시간으로 두 영역을 오가면서도 최상의 기량을 과시하는지” 오타니에게 캐묻기도 했다. 다만 뉴욕 양키스 투수 게릿 콜은 스스로 타석 경험을 통해 투구 전략에 도움을 받는다면서 오타니의 경우도 두 가지 활동이 부담 대신 상호 작용을 하는 쪽으로 발달한 것이라 추측했다.

오타니는 학창 시절부터 야구와 관련된 모든 면에서 학습을 멈추지 않기로 유명했다. 자신이 던진 공의 사소한 느낌이나 상대에 대한 정보는 물론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하찮은 정보까지 놓치지 않고 노트에 기록했다. 계획도 뚜렷했다. 다음 주, 다음 달, 내년, 그리고 25세와 30세 목표까지. 고교 시절 자신의 모든 구상을 도표로 만들었던 것은 야구팬들에게 너무나 유명하다.

목표를 세운 뒤 실천하는 언행일치도 남달랐다. 프로 무대를 밟기 전부터 오타니에게 투타 겸업은 막연한 희망사항이 아니었다. 일본 니혼햄 시절, 경기 전 불펜에서 공 100개를 던진 뒤, 8분간 타격 연습을 병행하며 자신만의 루틴을 일찌감치 다졌다. 결과적으로 오타니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메이저리그 투타 겸업이 가능하다고 믿은 사람이었고, 스스로 증명했다.

‘올드 스포츠’ 야구의 구세주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자의식에 취하지 않고 절제심을 유지하는 성품은 오타니를 더욱 빛나게 하는 요소다. 오타니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야구 선수로의 성취보다 우선”이라고 했다. 꿈을 위해서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구단에 평범한 숙소와 차량을 요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타니는 작년 운전면허 취득 이전까지 통역의 도움 속에 현대 쏘나타를 이용했다.

마치 이성과 감성, 과학과 예술이 절묘하게 결합한 듯한 오타니에 대해 알면 알수록 누구든 경외심이 커지는 듯하다. ESPN 해설자 더그 글랜빌은 “오타니가 순수한 열정과 성취로 스포츠의 본질적인 기쁨을 일깨워주고 있어 고맙다”는 내용의 칼럼을 게시하기도 했다. 자신은 금지약물이 만연하고 홈런이 흔하던 시대에 선수 생활을 하는 바람에 인간의 성취욕에 대해 실망하고 의심했는데 오타니 덕에 초등학교 시절 순수했던 자신을 떠올릴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단순히 실력이 뛰어난 것뿐만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고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선수. 그래서 NBA의 케빈 듀랜트와 NFL의 J.J. 와트 등 다른 종목 선수들이 먼저 나서서 MVP로 꼽는 선수. 대안 없이 정체됐던 야구계가 미래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도록 유도하는 선수. 태평양 건너 한국 야구 유망주조차 롤 모델로 꼽는 선수. 여태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는, 그래서 비교 대상이 없는 새로운 존재. 그가 바로 오타니다.

- 전훈칠 MBC 스포츠부 MLB 전문기자 thateye7@mbc.co.kr

202110호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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