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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분열·부패·포퓰리즘 판치는 민주주의에 대한 처방전 

인류 최대 발명품, 재설계가 필요하다 

거버넌스 기능 마비 등 겪은 캘리포니아주의 혁신 시도 분석
국민 참여 높인 중립 심의기관 등 직접민주주의 결합안 제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황금의 주’ 곧 골든스테이트(Golden State)라 불린다. 4000만 인구의 캘리포니아주는 경제 규모가 2조5000억 달러나 돼 영국 등 웬만한 국가에 버금간다.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가 있는 이 주는 창의성과 혁신, 거대한 부를 창출하는 세계의 심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는 21세기 들어 헤어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다. 주 재정은 빚더미에 올랐고, 학교 수준은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공공비용은 고등교육보다 교도소 운영에 더 많이 지출한다. 당파적 교착상태에서 주의회는 예산처리조차 할 수 없었다. 정치문화와 공공 영역은 심하게 병들어 갔다. 민주주의는 퇴보하고 거버넌스는 마비 상태가 돼 버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인류 최대의 발명품으로 불리는 민주주의가 고장나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들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민주주의 쇄신]은 이러한 근원적 문제의식에 대한 해답을 탐구하는 과정과 대안을 그렸다.

공동 저자인 네이선 가델스와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 집중적으로 분석한 모델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정치시스템, 민주주의 제도다.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런 ‘그라운드 제로’ 상태에서 출발한다. 민주주의적인 가치와 개인주의적이며 자유분방한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효과적인 거버넌스를 운용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를 고민했다. 2010년 10월 결성된 초당파적 그룹 ‘캘리포니아의 미래를 생각하는 위원회’가 그 산실이었다. 위원들은 1년 동안 마운틴뷰의 구글 본사에서 월 1회 회의를 개최하고 캘리포니아를 새롭게 할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들은 거버넌스의 위기를 서구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적 제도의 부패로 나타난 증상으로 파악한다. 기존 시스템은 내부 기득권층의 조직화된 특권에 사로잡혀 세계화로 인해 나타난 불만과 급속한 기술 변화에 따른 붕괴를 해결하지 못했다. 기존 질서에 반발하는 격앙된 포퓰리즘 당원들은 부패한 제도를 더 위험하게 만들 작정으로 공화국을 영속시킬 수 있는 제도적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을 공격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와 제도를 버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양극화와 기능마비가 고착화했다고 본다. 게다가 대중사회는 소셜미디어 참여 세력으로 중무장한 다양한 집단으로 점점 더 세분화하고 디지털 자본주의의 출현으로 생산성 향상과 부의 창출이 고용 및 소득의 증가와 무관해지는 상황이 도래했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다음 선거주기라는 단기적 시야를 뛰어넘지 않는 한 그리고 통치합의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지 않는 한 부패하고 기능장애 상태인 현실을 개선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들은 민주적 제도를 쇄신하는 접근법을 제안한다. 새로운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를 위기에 처한 대의정치에 통합시키면서 동시에 중심추 역할을 하는 ‘심의기관’을 국민의 자치권으로 부활시키는 것이다. 공정한 중재기관의 개입을 통한 비정치화 없이 민주화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심의기관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캘리포니아는 민주주의의 실험실이라 불린다. 미래위원회와 이 책의 저자들은 주지사와 의회 지도부가 임명하는 무당파적 심의기관의 설립을 제안했다. 이 심의기관에 시민발안제 심사 권한과 자체적으로 심사숙고한 발의안을 서명이나 수집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중에게 제안하는 권한을 부여한다.

한국의 민주주의 또한 위기에 처해 있다. 당파적 이익에 눈이 어두운 정치권은 여야 관계없이 포퓰리스트적인 구호를 연일 쏟아 내고 있다. 권력 앞에서는 피아가 구분이 없다. 같은 당 대선후보라도 무차별 공격을 일삼는다. 음모가 판친다. 선동정치, 중우정치는 캘리포니아에 절대 뒤지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 쇄신]은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집 나간 민주주의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으려는 캘리포니아의 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월간중앙과 중앙SUNDAY에 모두 공급합니다.

202110호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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