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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와 목민관 대화] 최원식 인하대 교수와 박남춘 인천시장이 말하는 ‘인천 경쟁력’ 

최원식: “개항기 인천의 근대문화유산 빛을 발하다”
박남춘: “바이오·수소·항공정비로 경제구조 고도화” 

■ “냉전체제 해체 이후 물류 주도권 인천으로… 첨단산업 속속 합류”
■ “평화는 인천의 사활적 이익… 인천공항~강화도~개성~해주 잇는 도로 구상”
■ “수도권 혐오 시설 더는 존치 안 돼… 환경특별시로 거듭날 때”


▎박남춘 인천광역시장(왼쪽)과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10월 5일 인천 중구 인천시민애(愛)집에서 만나 도시의 미래를 논했다.
인천시는 서울·경기와 더불어 이른바 ‘수도권 광역지자체’로 불린다. 비수도권에서 보면 일면 매력적인 입지일 수 있으나 인천 스스로는 서울·경기와 수도권 지자체로 묶이는 현실이 때론 불편하게 와닿기도 한다. 각각 인구 1000만에 달하는 서울·경기와 인구 300만인 인천은 사이즈부터가 다르다. 그런데 같은 수도권으로 분류되다 보니 두 덩치 사이에서 부대끼는 일도 잦다. 예컨대 정부는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자 수도권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인천시의 경우 3개 공공기관이 비수도권으로의 이전 대상으로 분류됐다. 인천시는 “경제력이 집중된 서울·경기와 같은 수도권이라고 인천에도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미래 산업 육성에 불가결한 공공기관이 이전 대상에 포함되는 등 인천의 역차별이 심화한다”고 우려를 표한다. 또 30년 이상 서울과 경기에서 배출되는 생활 쓰레기가 인천의 매립장에 수용되면서 인근 주민은 대기오염과 악취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인천시는 강조한다.

인천은 지난 40년간 인구, 행정구역, 재정, 지역내총생산 액 등에서 외연을 확대했다. 하지만 제조업 노후화에 따른 경제구조 고도화, 쓰레기 매립에 따른 환경문제 해결이라는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인천이 어정쩡한 입지를 극복하고 미래를 기약하자면 바이오·수소·항공정비라는 3대 첨단산업으로 지역 경제가 거듭나야 한다는 게 박남춘 인천광역시장의 경제구조 고도화론이다. 또 인천의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종료 기한인 2025년에 앞서 서울·경기 지자체가 자체 쓰레기 소각장 마련 등 자구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10월 5일 옛 인천시장 관사인 인천시 중구 소재 인천시민애(愛)집에서 가진 ‘구루와 목민관 대화’에는 박 시장과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참여했다. 최 명예교수는 1949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까지 인하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초대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하는 등 생애 대부분을 인천과 함께한 지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두 분은 다 인천에서 태어나 지금도 인천의 내실을 다지는 주역으로 활동한다. 인천 토박이가 본 인천은 어떻게, 얼마나 변했나?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_ 인천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새로운 도시다. 근대 도시에서는 토박이를 따지면 안 된다. 근대 도시는 새로운 시민의 합창으로 이끌어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모여 새로운 비전 아래 이상과 꿈을 펼치면 다양성이 시너지 효과로 이어지지만 비전이 없으면 다양성은 지리멸렬한 분열로 귀결될 뿐이다. 사실 해방 이후 인천의 정치적 위상은 막강했다. 정치적 거물들의 도시였다. (조선공산당 재건에 참여한) 이승엽, (진보당 당수를 지낸) 조봉암, (2공화국 국무총리를 지낸) 장면 이 세 사람을 빼고서는 한국 현대 정치사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들이 차례로 정치에서 탈락하거나 꺾이면서 인천은 정치적으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장면 전 총리는 민주당 내 신파(新派)에 속했는데 김대중 정부가 미완(未完)의 장면 정부를 이어받았다고 하겠다. 인천은 단체장 직선제가 시행된 1995년 이후로 가장 실감 나는 변화를 겪었다고 본다. 그전까지는 시민이 지자체 단체장을 직접 뽑을 권한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인천시장 선거권을 행사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여기에 냉전체제의 해체가 맞물리면서 인천은 획기적 전환점에 들어선다. 인천은 서울의 관문이자 서해 및 세계로 열린 경제적 창구로 주목받았다. 탈(脫) 냉전시대를 맞아 중국이 열리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인천의 위상은 동아시아의 중심, 즉 ‘배꼽’으로 격상되기도 했다. 인천시와 시장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는 걸 목도하면서 시대의 변화상을 새삼 실감한다.

이승엽·조봉암·장면이 주름잡던 인천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
박남춘 인천시장_ 인천은 독자적으로 독립을 시작한 게 40년밖에 안 된 도시다. 1981년 직할시로 승격하기 전에는 경기도의 일부였다. 원래 서울시는 경기도에 속했고, 도청 소재지이기도 했다. 서울시가 특별시로 경기도에서 분리돼 나갈 때도 도청은 수원이 가져갔다. 정치적 위상에서 인천이 밀린 셈이다. 이후 인천직할시로 승격하면서 독자적인 행정을 펼 기반이 마련됐다. 최 교수께서 말한 대로 그 이후 인천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남과 북의 경제 협력을 중시하는 정부에서는 인천과 북한 남포 간 뱃길이 열리면서 교류가 재개됐다. 냉전체제의 해체는 물류의 주도권이 인천으로 넘어오는 단초를 제공했다. 인천 송도에 신항이 열린 데 이어,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으로 인해 동남아로 가는 물동량의 중심지로서 인천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인천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4년 연속 300만TEU를 넘어섰다. 여기에 더해 가장 중요한 발전은 인천국제공항의 개항이다. ‘인천’이 하나의 브랜드로 전 세계인에게 각인되고 있다. 인천공항은 인천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첨단산업을 인천에 유치하는 데도 큰 지렛대 역할을 한다. 바이오산업이 송도에 둥지를 튼 것부터가 그러하다. 영종도에 리조트 산업과 항공정비(MRO) 산업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나, 청라에 수소 산업이 유치되는 것도 인천국제공항이라는 든든한 기반시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천의 경제구조 고도화를 이끌 첨단산업으로는 어떤 걸 꼽을 수 있나?

박 시장_ 기존 제조업에다 바이오·수소·항공정비 산업을 미래의 산업으로 꼽을 수 있다. 과거 서울의 구로공단 등 전통 제조업이 인천 남동산단 쪽으로 옮겨오는 등 인천은 서울이 밀어내는 전통 제조업을 끌어안는 위치에 있었다. 지난 수십 년 인천은 제조업의 중심 지위를 구가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부가가치나 성장 등에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노후화 및 영세화에 따른 경쟁력 저하가 원인이었다. 게다가 셀트리온이 인천에 설립되기 전에는 변변한 대기업 본사 하나 없던 곳이 인천이다. 하지만 송도 쪽에 셀트리온의 투자가 본격화되고, 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들어오고, 다국적 제약사 머크가 인천에 한국생명과학운영본부를 세우면서 바이오 혁신 클러스터의 모양새가 갖춰졌다. 또 정부로부터 바이오 산업 인력을 양성하는 바이오공정인력양성센터를 유치함으로써 인천은 세계 미국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바이오 도시로 성장해 가고 있다. 현재 바이오 기업 30여 곳과 연관 기관, 기업 30여 곳 등 모두 60여 곳이 송도에 입주한 상태다. 이처럼 바이오 생태계를 확충하면서 송도는 2018년 단일도시로는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설비를 구축(56만L)하기에 이르렀다.

최 교수_ 미래 먹거리 산업은 남들이 개척하지 않은 산업,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산업, 또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산업이 제격이다. 특히 바이오 산업의 경우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건강과 생존, 생명가치의 차원에서 새로이 주목받는 분야로 떠올랐다. 인천이 가진 인프라와 전문인력을 바탕으로 인천이 세계 최고의 바이오 산업 거점으로 성장해달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

매립지 발생 가스도 수소에너지로 전환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박 시장_ 그뿐 아니라 인천은 대규모 수소 생산 기반과 항만·공항 및 수도권 배후 수요 등 수소 산업의 성장을 주도할 여건을 갖춘 지역이다. 특히 청라는 수소 산업의 메카로 발돋움하는 중이다. SK인천석유화학은 액화수소 플랜트 사업 계획에 따라 인천 서구에 관련 시설 착공에 들어갔다. 또 수소 분야 투자를 본격화하는 현대차가 수소연료전지 공장을 청라에 짓는다. 현대차 계열의 현대모비스가 청라 인천하이테크파크에 짓는 수소연료전지 공장은 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인 스택을 생산하고, 관련 연구소에서는 수소 산업 발전 방안을 연구한다.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정제해 수소에너지화하는 사업도 청라 수소클러스터의 주요 연구 대상이다. 이런 성과들을 기반으로 10월 7일 문재인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이 참여한 가운데 ‘수소경제 성과 및 수소 선도 국가 비전’ 보고대회가 인천 서구에서 열린다.

그리고 영종도는 이제 명실상부한 항공기 산업의 메카로 불린다. 영종도 일대를 항공정비산업 및 공항 경제권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최근 인천공항공사는 이스라엘 MRO 기업인 IAI사와 합작해 항공기 기체 개조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미국의 아틀라스 항공의 기체 정비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영종도 입주 의향을 밝힌 바 있다. 인천시는 항공산업 육성과 항공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인천항공산업 산학융합원을 송도에 개설했다. 인천은 이처럼 바이오·수소· MRO 산업이라는 3개 축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며 기존의 전통 산업이 이들 첨단산업과 연계해 동반 발전을 꾀하게 된다.

최 교수_ 수소 산업 역시 화석 연료를 대체하고 탄소 중립을 이룰 핵심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상황이다. 인천의 기존 산업구조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디딤돌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항공정비사업은 인천국제공항을 가진 인천시로서는 세계 유수 항공사의 MRO 시설을 유치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에 더해 인천의 전통에 기반한 문화산업의 가능성도 언급하고 싶다. 지금 인천시가 추진하는 이들 사업도 결국 인천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는데 인천 전역에 산재하는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해 문화·관광 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순 없을까? 인천의 오랜 전통에 기반한 차이나타운이 세인의 시선을 끌면서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인천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하버파크호텔은 중구 개항장, 차이나타운 등 관광지가 인접한 데다 인천항 내항과 자유공원 일대를 내려다보는 훌륭한 입지 덕에 전국에서 관광버스가 밀려드는 명소로 입지를 굳혔다. 이처럼 인천엔 한국 근대사를 품은 문화적 유산이 수두룩하다. 구한말 개항을 통해 중국·일본·서양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왔었다. 고색창연한 근대건축물만 해도 눈이 부실 정도였다. 현 중구청 일대는 리틀 일본, 차이나타운은 리틀 중국, 자유공원 일대는 리틀 서양으로 이름을 떨쳤다. 정지용·이상·김기림 같은 일류의 모더니스트들이 이들 장소에서 한국의 미래를 꿈꾸었던 유서 깊은 공간들이다. 인천이 그 당시에도 충분히 모던했었다는 방증이다. 이런 인천의 근대 풍경이야말로 인천의 미래 자산 아닐까. 또 인천의 갯벌과 같은 자연환경도 충분히 매력을 발산하는 인천의 자랑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원도심은 원도심대로 문화 키워드로 살려 재구조화하고 부가가치를 입히면 인천의 훌륭한 핫 플레이스로 거듭날 것이다. 오랜 세월 축적된 자산인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남동산단은 문화를 향유하는 지역으로 탈바꿈


▎인천시 연수구 송도 신항 컨테이너 부두. 송도 신항은 정부의 신남방정책에 따라 동남아로 가는 물동량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 사진:연합뉴스
박 시장_ 굉장히 좋은 제안을 해주셨다. 인천이 직면한 고민이랄까 어려움의 하나가 엄청난 규모의 인천공항 이용객이 인천에 머물지 않고 바로 서울 등 외지로 빠져나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 서울과 견줘 먹고, 보고, 즐길 대상이 충분히 경쟁력을 갖췄는가. 인천시청 공무원과 인천연구원 연구원들이 일류 도시에 요구되는 필요충분조건을 찾는 중이다. 왜 낮에는 인파로 넘치는 인천남동산단이 밤에는 불이 다 꺼지고 암흑지대로 변하는가? 왜 젊은이들이 여기에 머물지 않고 빠져나가는가? 고심 끝에 남동산단에 우리 문화를 입혀보기로 했다. 우선 이곳에 사람이 정주하는 기숙사를 만들고, 외국인이 즐기는 거리를 조성하겠다. 인천남동산단이 문화를 향유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76년 만에 반환되는 미군기지 인천 부평 캠프마켓 부지에는 음악을 심을 것이다. 해방 및 한국전쟁 이후 미군기지는 우리 대중음악의 산실 역할을 했다. 거기에 대중음악자료원이나 관련 문화 콘텐트를 만들어볼 참이다. 오늘 우리가 대화하는 이 자리[인천시민애(愛)집]도 실은 폐쇄적으로 운용되다 재생 사업을 거쳐 최근 시민에게 문을 열었다. 시민이 인문학 공부를 하거나 바리스타 강연을 듣고 음악을 감상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 교수_ 예전에 중국과 일본의 개항장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가는 곳마다 입장료를 받고 기념품을 판매하는 등 매연 없는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더라. 인천은 지금 제2의 개항기를 맞고 있다.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외국인이 인천에 오래 머물며 인천의 문화를 소비하는 시대를 기대해본다.

민선 7기 인천시의 지난 3년은 ‘환경특별시로 가는 기틀을 다지는 기간’으로 설명되고 있다. 환경이 특별히 강조된 배경이 궁금하다.

박 시장_ 앞에서 얘기했듯이 우리 인천이 스스로의 결정권을 갖기 시작한 게 불과 40년밖에 안 된다. 그 전에는 수도권의 불편한 시설 상당수가 인천으로 쏟아져 왔다. 영흥 화력발전소의 경우 생산 전력의 40%만 인천에서 소비되고 나머지 60%는 서울, 경기로 공급된다. 화석연료 중심 발전으로 대기 오염 및 탄소 배출 문제가 발생했다.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가 인천에 더해진다. 미세먼지 대책 수립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도시가 인천이다. 매립지 주변에 각종 폐기물 처리 업체가 난립하고, 악취와 침출수로 인해 주민이 겪는 고통이 컸다. 환경 관리의 필요성이 가장 절실한 도시가 바로 인천이다. 시민 삶의 질에 직결되는 환경 관리에 시청이 만전을 기울이는 이유다.

최 교수_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후손이 그 고통을 짊어지는 게 환경 문제다. 쓰레기 매립지 문제만 해도 인근 주민이 수십 년째 고통을 감내해왔다. 이 문제는 ‘인천은 서울과 경기 쓰레기를 안 받겠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미래 세대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하려는 근본적인 움직임의 시작’이라는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

박 시장_ 지금도 20t짜리 트럭 600대가 인천에다 쓰레기를 쏟아붓는다. 매립장이 처음 조성될 때 주변 인구는 2만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70만 명을 헤아린다. 몇 년 후에는 100만 시민이 쓰레기장의 영향을 받는다. ‘더는 인천에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가 인천 시민의 여론이다. 90% 가까운 시민이 수도권 매립지 종료를 바란다.

70만 시민이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 영향권에서 시름


▎인천시 송도에 자리 잡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생산시설. /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중앙정부와 서울, 경기가 수긍할 만한 해법을 인천시에서 제시할 순 없을까?

박 시장_ 그 답을 찾고자 선진국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처럼 쓰레기를 그대로 땅에 묻는 직매립 방식을 고수하는 선진국은 거의 보질 못했다. 가깝게는 일본의 오사카와 요코하마가 인구 규모는 우리와 비슷한데 6~8기의 쓰레기 소각장을 운영하더라. 이미 오래전에 직매립 방식은 폐기했다. 소각해서 소각재를 땅에 묻거나 항만 옆에 호안을 쌓아 만든 빈 공간에 소각재를 버리는 식으로 생활 폐기물을 처리한다. 쓰레기를 그대로 땅에 묻는 방식은 세계적으로도 통용되지 않는 방식이다. 이미 송도와 청라에는 소각장이 각각 하나씩 운용된다. 시민의 건강을 해치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적이 없다. 일본의 소각장도 시민이 참여하는 가운데 소각물질의 농도를 엄격하게 감시하고 시민에게 시설을 결혼식장이나 숙박시설로 개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소각장이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실정이다. 이게 과학적으로 안전한가 아닌가의 토론과 검증의 과정은 생략된 채 막연한 불안을 안기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소각 시설 확충과 같은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아 지금까지 땅에 묻어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서울과 경기에 쓰레기 소각장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하는 게 시급한 시점이다.

최 교수_ 대담을 하다 보니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1990년대 문민정부 시절에 인천 굴업도가 핵폐기물처리장 건립지로 고시된 적이 있다. 그때 인천시민이 거시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섰다. 여야를 떠나 모든 시민이 한마음으로 뭉쳐 정부의 시책을 막아냈다. 시민의 정당한 분노가 분출되는 과정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지금 박 시장 얘기를 들어보니 쓰레기를 그대로 묻을 게 아니라 소각 처리하는 게 괜찮은 대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혐오시설을 무턱대고 반대하는 ‘님비현상’과는 별개의 문제다. 앞서 강조한 문화의 범주에는 환경도 핵심 요소로 들어간다. 인천의 대기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시민은 더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가 있다. 시장과 공무원들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박 시장_ 인천은 공항, 항만, 산업단지를 끼고 있다 보니 화물 차량의 이동이 빈번하다. 화물차가 유발하는 환경 오염 문제를 해소하고자 친환경 수소 시내버스 5대를 간선버스 노선 3곳에 투입했다. 시내버스뿐만 아니라 트럭도 수소에너지 동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문제는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중앙정부와 협의코자 한다. 급격한 확장과 성장과정에 나타난 후유증을 치료하고 시대 변화에 적응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인천은 고려시대의 중심, 개성과는 한 생활권


▎2019년 열린 ‘인천 개항장 문화재 야행’ 행사장에 몰린 시민들. 인천시는 개화기 근대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 사진:인천시
인천은 인천공항이라는 세계로 향하는 관문과 서해5도·강화도라는 접경지역을 함께 아우르는 특이한 지정학적 조건을 갖춘 지자체이기도 하다. 동북아 정세와 남북관계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기도 한데.

최 교수_ 사실 인천은 통일에 사활적 이익을 가진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서해5도, 강화도 등 접경지역 주민은 각종 개발과 행위에 제한을 받는다.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인데, 보상이나 지원은 늘 기대를 밑돌았다. 이는 인천의 지정학적 특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인천은 동아시아의 ‘배꼽’에 해당하고 남북을 잇는 가교로 기능해왔다. 전두환 시절에도 인천과 북한 남포 사이에 교역이 증가했다고 할 정도다. 분단 전에는 경기도는 북부 지역의 개성, 남부 지역의 수원 그리고 서부 지역의 인천이라는 3개 거점을 중심으로 경제가 굴러갔다. 경기도의 트라이앵글인 셈이다. 개성하고 인천은 인적·물적 교류가 특히 빈번했다. 고려 시절에는 인천 이씨가 고려 3대 귀족의 하나로 군림했다. 고려 중기 문신 이자겸이 인천 이씨였다. 고려 왕조에서는 인천이 중심도시였다. 그래서 인천과 개성은 오가는 사람이 넘쳤다. 소설가 고(故) 박완서 씨가 황해도 개풍 사람인데 그분이 내 학교(서울대 국문학과) 공부 선배이기도 하다. 전쟁 이후에 인천은 접경지역이 되면서 완전히 반공도시로 재편됐다. 분단 이후 인천의 거상(巨商), 거부(巨富)들은 인천 출신 정치인들을 후원했는데 이승엽·조봉암·장면 등이 차례로 몰락하면서 인천의 부자들도 지역을 떠나 서울로 가버렸다. 그 뒤로는 인천 경제의 알맹이가 쏙 빠진 형국이었다. 강화도에는 고려시대 유산이 즐비하다. 강화도에 고려문화연구소를 세우는 등 이를 관광 문화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박 시장_ 최 교수 얘기대로 인천은 평화가 밥이고 경제다. 이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강화군 교동도라는 동네다. 과거에는 최전방 해안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확성기를 틀어대던 곳인데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양쪽이 확성기를 철거하자 주민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확성기 방송이 사라지면서 동네는 호젓한 분위기로 변모했고 관광객도 늘었다며 현지 주민들이 기뻐하며 반색하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또 연평도에 가면 분단이 낳은 비극의 현장을 만나게 된다. 연평도 포격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다. 또 인근엔 북방한계선(NLL) 수역이 보이는 통일전망대가 서 있다. 이곳에서는 우리 어선은 진입이 안 되는 NLL 수역에 중국 어선이 버젓이 조업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우리 어민들은 정말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중요하게 다룬 의제의 하나가 서해 평화 어로수역이었다. 남북이 NLL 수역에 군사력을 물리고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해 양측 어민의 조업을 허용하자는 구상이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어민의 서해안 조업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이런 것들이 남북이 평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인천시는 중국 웨이하이(威海), 산둥(山東)과 자매결연을 하고 있다. 그래서 백령도와 중국을 잇는 직항로를 개설해 중국 관광객을 백령도에 유치하는 구상도 제안했다. 여객선도 띄우고 백령도에 소규모 공항을 만들어 항공기도 오가게 하면 좋겠다. 백령공항은 결항이 잦고 선박에 의존하는 백령도의 교통 접근성 제고와 관광 활성화에 필수적인 시설이다. 해양주권을 굳건히 하는 데도 백령공항은 크게 기여한다. 공항의 경우 활주로를 건설하고 항공 안전 구역도 설정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군사적으로도 민감한 현안이기는 하다. 평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이지만 인천시는 이를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여론을 환기하고자 한다. 최 교수도 말했듯이 강화도와 개성은 지척이다. 강화에서 개성에 고무신 신고 왔다가 한국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못 간 분들이 많다고 하더라.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든 인천시는 평화를 준비한다. 인천공항에서 시작해 강화도를 거쳐 북한의 개성, 해주로 넘어가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방안도 늘 대비하고 검토하는 게 인천시의 입장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천시에는 평화가 경제이고 밥이다.

최 교수_ 나는 백령도가 대만의 진먼다오(금문도)와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50년대 중국군이 대만에 속한 진먼다오에 대규모 폭격을 가하는 등 이곳은 군사적 대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양안 분쟁의 상징인 진먼다오에 중국과 대만이 공동으로 대학을 설립하는 방안을 거론할 정도로 양안 관계 개선의 첨병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백령도 또한 진먼다오처럼 남북을 잇는 통로로 기능하기를 기대해본다.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축이 동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다. 그런데 이 기운을 현실로 변모시킬 준비가 부족한 것이 문제다. 한국 그리고 인천이 그 사명을 의식하여 냉철한 이상주의 아래 함께 ‘다른 동아시아’,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기틀이 만들어지기를 시 정부와 시민사회에 기대하고 싶다.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받는 역차별


▎최근 재단장하고 시민에게 개방된 인천시민애(愛)집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박남춘 인천시장(왼쪽)과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
박 시장_ 인천이 가지는 취약점도 냉철히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수도 서울과 가깝다는 게 이점이 될 수 있지만 서울일극주의로 인해 환경적 측면에서 기피 시설이 인천으로 넘어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또 좋은 일자리가 서울에 쏠리다 보니 창의력이 넘치는 인천의 젊은이들이 그쪽으로 유입되고 만다. 대부분의 직종에서 숙달된 인력이 서울로 속속 유출되는 상황이다. 서울이 가깝다 보니 인천 독자적인 문화인프라 조성에도 애를 먹는다. 그럼에도 인천은 서울·경기와 같은 수도권으로 묶여 여러가지 규제를 받고 있다. 한국환경공단 등 인천 소재 3개 공공기관이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비수도권 이전 대상으로 분류됐다. 인천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역차별을 우려해 공공기관 이전을 반대하는 여론이 드높다. 인천이 글로벌 인재와 투자를 확보해 대한민국 경쟁력을 높이는 혁신의 허브가 될 수 있게끔 중앙정부차원의 사려 깊은 판단과 지원이 요구된다.

- 글 박성현 지역발전연구소 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정준희 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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