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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슈]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특별한 프로젝트 

내수 살리고 원가도 절감하는 소재국산화에 총력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항공소재개발연합’구성해 국산화 개발 성과 공유하고 참여업체들과 MOU
알루미늄 소재 국산화 성공, ‘50% 국산 소재부품 풀(Pool)’ 구축 목표 세워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참여한 ‘항공소재개발연합’은 국내 기업과 재료연구소 등 유관기관간 소재국산화 방향성을 공유하고 상호 호혜적인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2019년 10월 출범했다. /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항공 소재부품 국산화에서 성과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KAI의 소재국산화는 금속재(알루미늄·티타늄·티타늄 분말), 복합재(수지·에폭시·경화제), 표준품(기계·배관·전장), 기능재(도료·실런트) 등 항공기 체계 관점에서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서 추진되고 있다. KAI는 국내 항공 소재부품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 국산화 참여업체와의 활발한 협력을 이어나갈 계획이어서 한국 항공산업을 이끄는 리더로서 시선을 끌고 있다.

항공 산업은 첨단기술과 신뢰도를 기반으로 한 산업으로 공인 및 수요자 인증이 필수적이다. 또 연구개발에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기술개발의 안정화 기간 및 품질체계 등 요구조건이 까다로워서다. 이러한 이유로 선진 해외 생산기업에 비하면 후발주자인 국내 생산기업들에게는 항공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항공 산업의 구조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운송, 제조, MRO(유지·보수·운영)가 그것이다. 소재부품은 세 부류 중 가장 중요한 제조 부문에 속한다.

특히 소재부품 분야 진입장벽이 높다. 각종 신소재가 다량으로 쓰이는 항공기는 전 제조공정에 관여하는 기초기술이 많은 첨단재료기술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가벼우면서도 높은 강도와 내구성·내열성을 갖춰야 하는 것이 항공기 소재기술의 핵심이다. 레이더·엔진·스텔스 기술과 함께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최고 수준의 비밀등급으로 취급되는 만큼 소재기술은 각종 절충 교역에 따른 기술이전·방산교류 등에서도 제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후발주자에게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100% 해외 구매에 의존, “이제는 바꿔야”


미국·일본·러시아·유럽 등 일반적으로 세계 항공 산업을 선도하는 항공 선진국들은 대부분 소재기술도 국산화율이 높다. 이들 국가가 소재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장기적인 연구개발 덕분이다. 항공 선진국 간에도 소재 분야만큼은 기술교역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정책을 등에 업고 이뤄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소재국산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기간 그 필요성을 인정받아왔다. 관련 인증제도 및 체계절차 부재로 국내 부품 사용이 제한되면서 해외 구매에 100%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생산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도 수입에 의존하는 소재의 수급이 불안정하면 전체적인 생산 일정에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고스란히 비용 리스크가 된다. 소재국산화를 해야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고 생산일정 및 비용을 안정화할 수 있는 구조다.

소재국산화는 항공 산업의 발전은 물론 국방·안보를 위해서도 그 필요성이 크다. 소재의 수급이 안정화하면 원활한 부품 공급으로 군의 전력 공백을 방지할 수 있으며, 운용유지를 위한 부품 공급이 수월해진다. 또 국내 항공 부품산업 활성화는 물론, 제3국 수출 금지 등의 각종 계약조건이라는 장애물이 사라져 수출 경쟁력 역시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소재국산화 필요성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국내 항공용 소재 시장은 1조1200억원 규모인데, 이중 KAI가 차지하는 수요 규모는 연평균 4000억원이며, 매년 증가할 전망이다. 소재국 산화율에 따른 수입대체 효과는 2030년까지 1865억원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납기 기한을 기존 36주(주요 부품 평균)에서 30% 단축한 25주로 줄일 수 있어 자재수급 안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KAI는 평가·인증, 요구도 분석 등 여러 기술지원을 통해 국내 소재 기업의 국산화 참여 및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또 개발에 성공한 국산 부품을 인증하고 수요 기업이 현장에 적용함으로써 국내 기업에 항공 산업 실적(track record)을 제공하며, 이를 통한 상용규격 등재 및 해외 항공 산업으로의 진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KAI 역시 원가 절감 및 납기 단축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에 공동 국산화 개발은 수요기업과 생산기업 모두에게 ‘윈윈’(win-win)인 셈이다.

KAI는 10월 20일 항공용 소재국산화를 위해 결성된 ‘항공소재개발연합’ 3년 차를 기념해 그간의 소재국산화 개발 성과를 공유하고 신규 참여업체와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연합은 국내 기업과 재료연구소 등 유관기관 간 소재국산화 방향성을 공유하고 상호호혜적인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2019년 10월 출범했다.

서울공항 ADEX 행사 기간 중 미디어컨퍼런스룸에서 진행한 이번 교류회는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한국재료연구원, 경남TP, 동양AK코리아 등 총 25개 업체와 기관에서 50여명이 참석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참석 인원 제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행사는 1·2부로 나눠 진행됐다.

이번 교류회에서는 국내 최고 소재부품 연구 기관인 한국재료연구원 원장의 축사와 함께 참여업체가 직접 개발성과를 설명하고 전시하는 자리를 가졌다. 소재국산화 성과 전시는 총 16개의 업체가 참여해 국산 항공기에 적용할 수 있는 100여종의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또한 KAI는 진합, 한화컴파운드, 강남제비스코, KCC 등 신규 참여업체 9곳과 체결부품·배관부품·전기전자부품·복합재료·기능성도료의 국산화 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아울러 국산화 신규 참여업체 간 업무협력을 통한 산업 생태계 구축을 목적으로 ‘항공우주산업 발전과 소재국산화 추진을 위한 상호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KAI가 소재국산화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당시까지 항공 분야만큼은 소재국산화 시도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까다로운 인증과 절차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KAI에서 소재국산화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재료공정팀의 오석근 선임은 “사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소재 중 실제 KAI에서 적용되는 소재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해외 구매 비용을 줄이면 원가가 절감되고, 또 원활한 소재 공급이 가능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장 수요 많은 알루미늄 소재 국산화에 성공


▎한국공항우주산업(KAI)이 국산화에 성공한 소재를 전시하고 있다. /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KAI)
소재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은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까다로운 인증 때문에 해외에도 소재부품 생산업체는 한정적이었다. 전 세계의 항공기 제작 업체가 한정된 생산 업체에 물량 발주를 하다 보니 KAI의 구매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KAI가 필요할 때 부품을 원활하게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항공기 제작은 일정이 중요한데, 일정에 맞춰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KAI는 소재국산화를 위한 작업에 착수했고, 2020년 본격적으로 소재국산화 개발에 돌입했다. KAI와 공급처 간 국산화 개발 효율성 제고를 위한 공동 개발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단기간 내 저비용으로 상품성 있는 소재·부품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소재 업체, 시험기관, 연구기관, 대학 등의 22개 업체가 KAI와 손을 잡고 소재국산화 연구개발을 진행하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올해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재 일부 소재는 국산화에 성공했는데, 가장 수요가 많은 소재인 알루미늄의 국산화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알루미늄은 수입되는 소재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이에 KAI는 국내 중소기업과 손잡고 8개월 동안 개발을 진행한 끝에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 전장 환경에 적합한 성능을 갖춘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하는 KF-21 사업에 알루미늄 압출재 33종 중 6종을 해당 재료규격서 내 인정품목록(QPL, Qualified Products List)에 등재했다. 국산 소재를 항공용 재료규격서 QPL에 등재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기에 더해 3D 프린팅 공정인 레이저 분말 베드 융해(L-PBF, Laser Powder Bed Fusion)공정에 대한 재료·공정 규격서 등재 후 해당 사업에 4종의 부품이 적용됐고, 3D 프린팅 파트에 적용하는 티타늄 분말 소재 역시 국산화 개발을 진행 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배관피팅, 본딩스트랩, 고강도 인장 및 전단 볼트와 너트, 도료 등도 국산화 개발이 한창이다. 그중 형상과 타입에 따라 400여개가 적용되는 저압용 배관피팅의 경우, 현재 18종을 국산부품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과정을 짚어보면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한 항공 부품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일단 국내 업체 중 항공용 부품 개발과 이를 적용한 경험을 가진 제조업체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KAI는 부품 신뢰도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는 비용과 시간이었다. 항공용 소재의 경우 국내 항공 산업 시장 규모가 타 산업 분야에 비해 크지 않고 기술적 진입 장벽이 높다. 이미 다른 분야에서 충분한 실적을 내는 업체에서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항공용 부품 개발에 선뜻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 KAI는 업체들을 설득하는 데 집중했다. 항공 산업은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고, KAI를 발판으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KAI와 손을 잡겠다는 업체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재 KAI와 협력업체들은 부품 신뢰성 확보를 위한 신규 과제도 함께 진행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 중이다.

KAI는 자사 물종(物種)을 기준으로 ‘50% 국산 소재부품 풀(Pool)’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향후 알루미늄 압출재·단조재 대상 소재를 확대해 KF-21의 알루미늄 국산화율을 높이고, 초음속 고등 훈련기 T-50과 헬기(KUH, LCH, LAH)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KAI는 이러한 청사진을 토대로 사업을 더욱 확장해나갈 방침이다. 군수뿐 아니라 향후 주문자 상표 부착(OEM) 업체(유럽 Airbus, 브라질 Embraer, 이스라엘 IAI) 소재부품 공급업체망(Supplier Chain)에 참여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해외 OEM 업체의 소재부품을 국산화하면 대상품 확대와 원가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협력업체와 함께하는 해외 진출 청사진 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재료공정팀은 항공 소재국산화를 주도하고 있다. /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KAI)
소재국산화는 당장이 아닌 미래를 보기 위한 사업이다. 소재 자체의 부가가치가 크기 때문에 내재된 경제효과 및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 소재를 국산화하지 못하면 결국 원가가 크게 오르게 되고, 이에 따른 경제효과도 반감된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다양한 항공기를 개발하며 부품의 국산화율을 크게 높여가고 있지만, 부품 국산화율 대비 소재 기술의 국산화율은 상대적으로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소재국산화율을 높일수록 원가 경쟁력이 높아진다. 또한, 소재의 연구개발·생산·인증 등의 국산화 전반에 필요한 프로세스에 투입되는 인력은 고스란히 고용창출로 연결된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소재국산화에 필요한 제1의 조건은 바로 일관성 있고 장기적인 연구개발이다. 높은 기술 수준을 필요로 하는 항공기 소재 특성상 단시간에 소재국산화를 이룩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소재 기술은 항공선진국의 배타성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타성 때문에 우리나라가 절충 교역 등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항공선진국으로부터 높은 수준의 소재 기술을 이전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존에 획득된 기술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고 장기적인 연구개발이 요구된다.

연구개발 등으로 획득한 소재에 요구되는 품질인증 역시 국산화를 어렵게 하는 장벽 중에 하나다. 항공기는 일단 제작되면 최소 30년 이상 운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시험 수행을 통해 소재 요구도를 검증해야 한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도 과제 중 하나다. 소재 개발은 부품 개발보다 투자비용 대비 회수에 훨씬 더 오랜 기간이 걸리며, 비용 회수도 보장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크다. 만약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로 장기적인 연구개발과 육성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소재국산화는 ‘일장춘몽’으로 끝날 수 있다.

이미 국산화에 성공한 소재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기술 보호가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소재국산화를 지원·관리하고 항공선진국에 준하는 품질인증 및 평가를 할 수 있는 별도 기구 설립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KAI 관계자는 “KF-21 사업 외 KAI의 모든 사업을 대상으로 지속해서 국산화 적용 대상 품목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KAI가 국산화에 도전한 이유는 국내 협력업체들과 미래를 같이 다져 나가기 위한 것으로 이번 개발이 끝이 아니라 이를 더 발전시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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