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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초대석] ‘대한민국 범죄예방’ 홍보대사 배우 박상원 

“디지털 기반 범죄 피해는 치명적… 국민의 인식 전환 필요해”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셉테드 등 경찰 범죄예방 노력 알리기 위해 홍보대사 수락
“이름만 걸어놓는 건 사양,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역할 할 터”


▎배우 박상원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SNS 같은 범죄들은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안기고, 그것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범죄예방에 대한 국민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지난 8월 5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본청에서는 ‘대한민국 범죄예방 홍보대사 위촉식’이 진행됐다. 대한민국 범죄예방 대상은 민간의 치안 활동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치안 활동 참여에 공이 큰 단체(지방자치단체·기업·사회단체 등)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경찰청과 [중앙일보]가 2016년 공동 제정한 상이다.

대한민국 범죄예방 1호 홍보대사를 맡은 주인공은 ‘바른생활 사나이’ 배우 박상원(62). 박상원은 위촉식에서 “이름만 걸어놓는 홍보대사가 아닌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역할을 하려 한다”고 힘줘 말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들은 적잖이 반색했다.

그로부터 근 두 달 뒤인 10월 1일 박상원 홍보대사를 다시 만났다. 장소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박상원은 “위촉식 때 말했듯이 이름만 걸어놓는 홍보대사는 사양하겠다. 민간의 범죄예방 활동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근황이 궁금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 수업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그는 모교인 서울예술대학에서 2007년부터 강의하고 있다). 그래도 연기 수업의 특성상, 대면·비대면 방식을 섞어서 진행합니다.”

최근 대한민국 범죄예방 홍보대사를 맡으셨죠? 어떻게 제의를 받으셨고, 왜 수락하셨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몇 곳에서 (홍보대사를 맡아주면 어떻겠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범죄예방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처럼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일을 하는 데 (저더러)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어서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범죄예방 홍보대사로 어떤 일을 하실 건가요?

“홍보대사로 위촉된 뒤 유심히 살펴보니 경찰이 범죄예방을 위해 많은 정책을 수립하고 있을 뿐 아니라 셉테드(CPTED·범죄예방 환경설계) 같은 사업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더라고요. 이 같은 경찰의 노력과 활동을 국민에게 보다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일반 국민 개개인이 생활 속에서 범죄예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요즘에는 민생형 범죄보다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디지털 등을 기반으로 하는, 범죄라고 느끼기 어려운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그런 범죄들은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안기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범죄예방에 대한 국민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름뿐인 홍보대사가 아니라 아이디어 제공 등 범죄예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역할을 찾으려 합니다.”

이력을 살펴보니 각종 홍보대사 경력이 유독 두드러지더군요. ‘홍보대사 전문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웃음)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기자 선후배가 사회 곳곳에서 (홍보대사를 맡아) 봉사하는 게 일반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홍보대사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할이니까 영광스럽고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어떤 단체에서 홍보대사 수락 요청이 오면 저는 일단 그 분야를 공부합니다. 그러고 나서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제 자세를 굉장히 이례적으로 받아들이는 걸 느낍니다. 사실 저는 기회가 왔을 때 공적인 일들을 잘해내려는 욕심이 있어요. 단순히 이름만 걸어놓는 홍보대사는 싫습니다.”

박상원은 ‘홍보대사 전문배우’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는 2002년 세계박람회(EXPO) 홍보대사, 2003년 다일공동체 홍보대사, 2007년 서울특별시 홍보대사, 2011년 대한민국 국가브랜드 홍보대사, 2013년 대장경세계문화축제 명예 홍보대사 등을 역임했다.


▎배우 박상원의 사무실 한편에 자리한 ‘21세기 100년’이 표기된 패널. 박상원은 “열심히 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배우 박상원’ 하면 ‘바른 생활 사나이’ 이미지 그 자체잖아요? 왜 그런 이미지를 얻게 됐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대중은 자연인 박상원보다는 작품 속의 박상원을 많이 떠올리겠지요. 장총찬([인간시장])·장하림([여명의 눈동자])·강우석([모래시계]) 등등. 그동안 워낙 이상적인 인물들의 역을 맡아 연기하다 보니 저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자연인 박상원도 부끄럽게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좀 부담은 됩니다(웃음).”

“바른 생활 사나이 이미지, 부담 아닌 감사”


▎2002년 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위원장인 정몽구(가운데) 당시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자리를 함께한 홍보대사 배우 박상원(오른쪽)과 가수 이문세.
‘바른 생활 사나이’ 이미지로 불편함을 겪을 때도 있나요?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불편하진 않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와 영광으로 받아들입니다.”

1986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셨죠? 올해로 연기 인생 만 35년인데 이 길을 후회하신 적은 없는지요?

“방송만 따지면 1986년 데뷔지만, 연극 무대부터 따지면 1978년부터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이 길을 택했을 당시만 해도 연기자가 사회적으로 명예를 얻거나, 처자식을 잘 부양할 정도의 돈을 벌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면서 연기만 잘해도 사회적으로 명예도 얻고 부도 얻을 수 있게 됐어요. 이 또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꽤 성공한 친구들일지라도 이제 대부분 은퇴했는데, 저는 아직도 종착역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너무 철들지 않으려 합니다. 너무 철들면 제가 하는 기본 작업이 필요로 하는 상상·공상 같은 게 딱딱해질 수 있으니까요. 현재진행형의 박상원으로 살고 싶습니다.”

배우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사실 저는 시청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웃음).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거죠. 그래도 결국 돌아보면 시청률의 감사함 속에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대한민국 역대 드라마 시청률 톱 10 가운데 제가 출연했던 작품이 4개나 있습니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그대 그리고 나] [첫사랑], 참 신기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역대 드라마 시청률 순위는 1위 [첫사랑](1996)(65.8%), 2위 [사랑이 뭐길래](1991)(64.9%), 3위 [모래시계](1995)(64.5%), 4위 [허준](1999)(63.7%), 5위 [젊은이의 양지](1995)(62.7%), 6위 [그대 그리고 나](1997)(62.4%), 7위 [아들과 딸](1992)(61.1%), 8위 [태조 왕건](2000)(60.2%), 9위 [여명의 눈동자](1992)(58.4%), 10위 [대장금](2003)(57.8%) 순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배역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저로서는 앞에서 언급했던 작품들보다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지 못했던 작품들과 그 속에서 제가 맡았던 배역들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한편으로는 연민이 생기기도 하고요.”

“학생들 강의 준비 과정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2009년 배우 박상원(왼쪽)은 자신의 첫 번째 개인 사진전에서 발생한 수익금을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에게 기부했다.
배우로서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은 무엇인가요?

“인물을 만들어내는 과정, 즉 캐릭터라이제이션(characterization) 측면에서 보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박상원을 버리고 철저히 작품 속의 햄릿으로 가는 것, 또 하나는 기존의 햄릿을 버리고 박상원의 햄릿으로 가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TV 드라마에 많이 출연하다 보니 ‘박상원화’돼 있는 인물을 많이 연기했다면, 앞으로는 연극 무대를 통해 박상원이 보이지 않는 캐릭터들을 많이 연기해보려 합니다. 우선, 지난해에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던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를 내년 1월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릴 계획입니다. 저 혼자서 1시간 30분 동안 관객과 싸워야 해요. 앞으로는 이처럼 힘든 작업을 많이 할 겁니다. 악기를 연주해야 하니까 요즘 콘트라베이스를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박상원은 지난해 11월 예술의전당에서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를 공연했다. 2014년 연극 [고곤의 선물] 이후 약 6년 만의 연극 무대 복귀였다. [콘트라바쓰]는 [좀머씨 이야기] [향수]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이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앞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통해 현대인의 고독을 그린 작품으로 국내서도 여러 차례 연극으로 제작됐다.

배우로서 가장 존경하는 선배는 누구인가요?

“연기자로서나 자연인으로서 이정길 선배님을 존경합니다.”

두 분이 함께하신 작품도 있나요?

“1998년쯤 방영됐던 [우리 읍내]라는 드라마에서 이정길 선배님은 나이든 고참 경찰, 그리고 저는 젊은 신참 경찰로 나왔어요. TV 드라마의 [투캅스]였죠. 그 뒤로도 [여자의 방] 같은 작품에 함께 출연했습니다.”

‘배우 박상원’의 연기에 대해 점수를 주신다면?

“저는 저 자신에 대해서 여전히 가혹하고 혹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걸어온 길이 있으니, 평균보다는 조금 더 되지 않을까요? 70점 정도? 남은 (연기 인생) 동안에 방점을 찍고, 저를 더 혹독하게 만들어서 연기를 그만둘 때 좋은 점수를 주려 합니다(웃음).”

오래전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죠? 학생들을 가르치시면서 느끼는 보람은 무엇인가요?

“모교인 서울예술대학에서는 2007년부터 강의하고 있고, 그 전에 1997년부터 서강대·수원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일단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제가 연기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조심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미래와 연관된 일이니까요. 그런데 돌아보면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은 학생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 또한 다행이고 감사할 일입니다.”

강단에서 특별히 강조하시는 게 있는지요?

“예전에 제 스승들한테 배울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배우 이전에 인간이 되어라’였습니다. 그 말이 제 삶의 모토가 됐어요. 저는 학생들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 한 살 더 먹고, 밥 한 그릇 더 먹고, 또 배우 많이 만나고, 극장에 자주 가면 연기는 는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린치핀(linchpin, 조직·계획 등의 핵심 인물)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궂은일 마다치 않고 솔선수범해라.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게 곧 성공의 지름이다’.”

“죽기 살기로 하지 않으면 꿈은 내게 오지 않아”


▎대한민국 범죄예방 홍보대사 위촉식이 8월 5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렸다. 홍보대사 배우 박상원(오른쪽)과 김창룡 경찰청장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전민규 기자
부인과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계시죠? 가족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 가족들에게 박상원이라는 인물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었지만, 불편할 때도 꽤 있었을 겁니다. 일반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언론 매체) 노출을 최소화하려 했습니다.”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바쁜 와중에도 중요한 집안일이 있을 때는 시간을 함께했다고 생각하는데, 가족들은 좀 다르게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유명한 아버지, 바쁜 아버지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스트레스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연기자·유명인으로서 불편함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죠. 그걸 불편함이나 스트레스로 받아들인다는 게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편함보다는 오히려 감사함으로 받아들였죠.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할 일이 많은데 감사해야죠.”

배우가 꿈인 후배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지.

“역시 동전의 양면입니다. 옛날에 배우의 길이 큰 대우를 받지 못할 때는 경쟁률이 그리 높지 않았지요. 우리 세대 때는 묵묵히 열심히 하면 대부분 어느 정도의 기회는 얻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만큼 경쟁률이 치열하다 보니 우리 때와는 다릅니다. 햄릿의 대사에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이 나오는데 저는 이걸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의역합니다. 다시 말해서 죽기 살기로 하지 않으면 결코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은 나한테 오지 않습니다.”

사진에도 조예가 깊다고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요즘은 휴대폰 때문에 카메라를 놓고 다니기도 하는데, 그래도 평생 가지고 다녔던 것 같아요. 세 차례 사진전을 열었고, 사진으로 상명대 디지털이미지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좌우명이나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경구(警句)가 궁금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입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자는 겁니다. 한문으로는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라고 할까요?”

예정된 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사무실을 둘러보니 안쪽 한편에 ‘21세기 100년 달력’이라고 쓰인 패널이 있었다. 의미를 물었더니 박상원은 “2001년부터 2100년까지 100년을 적은 패널”이라며 “매년·매월 열심히 살면서 나를 돌아보겠다는 의미로 만들었는데, 2050년 이후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웃었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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