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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화제] 세계인 열광시킨 '오징어 게임' 숨은 코드 셋 

한국적이고 트렌디한 데다 창조적이다 

기성세대 겨낭한 권선징악 탈피해 입체적 캐릭터로 젊은층 공략
잔혹한 오락물에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내 영화 [기생충] 연상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입체적으로 풀어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 사진:넷플릭스코리아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 앓이를 하고 있다. 넷플릭스 순위가 집계되는 83개국 모두에서 한 번씩 1위를 차지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넷플릭스 콘텐트 중에서 83개국 모두 1위를 차지한 것은 오징어 게임(감독 황동혁) 이 처음이다. 특히 ‘볼리우드’(Bollywood)라 불릴 정도로 자국 콘텐트가 강세인 인도에서도 1위에 올랐다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CNN은 자사 홈페이지에 [오징어 게임]이란 별도 섹션을 개설해, 관련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10월 첫 주 기사에서 [오징어 게임]에서 67번 참가자가 가고 싶어하는 제주도를 ‘한국의 하와이’라며 소개했다. 그러면서 “제주도는 [오징어 게임]의 열기 때문에 더 많은 방문객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인도 일간지 [인디언 익스프레스]는 10월 7일 인도의 달고나 열풍을 보도했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벌써부터 올해 핼러윈 축제 의상으로 [오징어 게임]에 이용된 코스튬이 인기몰이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전에도 [겨울연가], [대장금] 같은 드라마가 아시아 등지에서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고, 얼마 전에는 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킹덤]이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이전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차별성을 갖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 가진 특별함은 무엇일까.

과거에도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한국 드라마들이 있었다. [대장금]과 [겨울연가] 등이 대표적이다. [대장금]은 중국·이란·터키,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특히 큰 인기를 누렸는데, 주 공략층은 중년 이상의 기성세대였다.

‘욘사마’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일본의 경우 주요 팬덤이 일본의 중년 여성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는 2008년 일본에 갔을 당시 서점의 ‘한류’(韓流) 코너를 갔을 때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한류 잡지를 뒤적이는 건 중년 여성들뿐, 젊은 세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 친구에게 물어보니 “한국 드라마는 스토리 전개가 너무 느리고, 옛날 방식이다. 우리 부모님이 좋아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기분이 나쁠 것은 없었지만, 뭔가 입맛이 썼다.

서바이벌 게임에 휴머니즘 장착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인 기훈(이정재)이 일남(오영수)과 서울 시내 편의점에서 재회해 소주와 생라면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기훈은 노인 배려라는 한국적 정서가 강하게 투영된 캐릭터다. / 사진:유튜브 캡처
이란에서 국민 드라마로 불렸다는 [대장금]은 해외에서 신선하게 느낄만한 조선의 궁궐과 복장, 음식 등 눈을 사로잡는 볼거리가 풍부했다. 하지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뚜렷한 ‘권선징악’의 스토리였다. 선악 구도가 명확한 가운데 ‘선인’(善人)은 끝까지 선하고, ‘악인’(惡人)은 끝까지 악하다. 이런 전개가 공동체를 중시하고 신앙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동 국가들에서 먹혔던 것이다.

반면 이런 드라마들이 미국이나 유럽 시장 등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다. 입체적이지 않은 인물이나 스토리 전개는 진부하기도 했거니와 그들에게 한국보다 익숙한 인도의 ‘볼리우드’에서 이미 열심히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도 아닌 한국 드라마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반면에 [오징어 게임]은 매우 트렌디한 드라마다. 미국·유럽·일본 등에서 가장 인기 장르이면서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서바이벌 데스게임’을 기본 축으로 한다. 거기에 더해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단면(황금만능주의+빚) 등을 적절히 녹여냈다. 트렌디한 오락물에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냈으니 서구에서 열광할 요소를 두루 갖춘 셈이다. 하재근 평론가는 “외국에서는 자본주의 모순이나 빈부 격차는 영화제에서 상 받는 명작에서 주로 그려지고, 상업적인 장르물은 그냥 오락 위주”라며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오락성 있는 장르물에 사회적인 메시지가 들어가니 재밌으면서 의미도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존 한국 작품들이 앞세운 ‘권선징악’의 가치도 부각되지 않고 캐릭터는 입체적이다. 피해자들은 단순히 피해자로만 남아있지 않는다. 게임 안에서 또 다른 갑과 을의 질서가 만들어지고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가 생성된다. 그러면서도 이 상황을 잔혹하게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 때로는 웃음을 유발하며 자유자재로 비틀고 있다. 전 세계의 젊은 세대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힘이다.

또한 이것은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를 휩쓸었던 [기생충]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풍자와 해학을 곁들여 펼쳐 보인 [기생충]은 세계 언론의 호평 속에 세계무대를 석권했다. BBC는 “오징어 게임은 현대 사회의 계층 갈등을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방식으로 풀어냈다”며 “이런 서사 구조는 부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함께 다룬 한국 영화 [기생충]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트렌디한 작품을 만들면서도 그 안에 한국적 코드를 강하게 넣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전에 넷플릭스에서 대박을 쳤던 [킹덤]은 조선 왕조라는 매우 한국적 배경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는 사실 여느 좀비물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좀비 스토리에 조선왕조의 미장센을 덧입혀 색다른 좀비물로 승부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겨울연가]도 배경만 한국일 뿐 그 안의 대사는 모두 일본어로 바꿔서 드라마를 만들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다. 또 그런 덕분에 일본 중년층에서 빨리 흡수된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그간 해외에서 호평받은 작품들은 껍데기를 제외하면 실상은 매우 보편적인 코드를 담고 있었다.

반면 [오징어 게임]은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점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설정이 곳곳에 있다. 주인공 기훈(이정재)은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후 사채와 도박을 전전하는 인물. 철딱서니 없는 중년남을 책임지는 것은 당뇨로 고생하는 노모다. 그렇지만 기훈은 노모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게임에 뛰어들었고, 목숨이 걸린 게임에서 홀로 버려진 노인(일남)을 자청해 떠맡는다. 효(孝)와 노인 배려라는 한국적 정서가 강한 캐릭터다.

기훈과 협력·갈등하면서도 종국에는 자신의 어머니 걱정을 하며 최후를 맞는 상우(박해수)나 북한에 남은 어머니를 탈북시키고 동생과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새벽(정호연)도 마찬가지.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에 다양한 인생 군상을 통해 휴머니즘을 장착한 것은 매우 한국적인 코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미국에서 서바이벌 데스게임 장르는 인기가 있지만, 효성을 부각한다든지 휴머니즘 같은 개념이 없다. 그저 단순한 오락물이고, 사이코패스에 맞서 자신의 이익이나 생존을 위해 싸울 뿐이다. 서구인에겐 [오징어 게임]의 캐릭터들의 정서가 색다르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설정인 게임은 어떠한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일본에서 유래한 게임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미 백 년 가까이 한국에서 즐겨진 게임이다. 여러 가지 패러디를 양산한 ‘달고나’ 역시 한국적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의 단순성과 오락성은 외국에서도 선풍적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남미 등 해외 곳곳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는가 하면, ‘달고나’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체험으로 꼽히고 있다. 원래 게임은 보편성과 단순성이 핵심인 유희다. 하지만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만드는 콘텐트에서 이렇게 과감하게 자국의 어린이 놀이를 여러 개 앞세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작품의 참신도를 토마토의 신선도로 표현하는 미국의 리뷰 사이트 ‘로튼 토마토 닷컴’에서 [오징어 게임]의 신선도 지수는 공개 직후 일주일 동안 100%였고, 10월 9일 현재는 91%를 기록하고 있다. 90%를 넘기면 훌륭한 수작으로 평가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징어 게임]이 얼마나 참신성을 인정받는지 알 수 있다.

일본 문화 모방에 그치지 않고 창조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고 있다. 서구에서 인기있는 ‘서바이벌 데스게임’ 장르에 한국적 게임을 가미한 것이 [오징어 게임]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 사진:넷플릭스코리아
사실 [오징어 게임]이 정작 가장 인정받지 못한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이다. 일본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이유였다. 1996년부터 연재 중인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주인공 카이지가 사기로 지게 된 막대한 빚을 해결하기 위해 거액을 주는 게임에 참여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의 처지에 대한 설정부터 배를 타고 고립된 공간에서 게임이 벌어진다는 점, 거액을 주지만 게임에 패배할 경우 참혹한 대가를 치른다는 점, 그 외에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일부 게임 등이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한국에도 팬층이 많다 보니 그 어느 나라보다 기시감을 토로하는 시청층이 많았던 것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대사로 유명한 만화가 김성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징어 게임은 철저히 일본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분위기를 대폭 차용한 작품이라 느꼈다”며 “카이지의 ‘가위바위보’ 게임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등으로 바꾸고, 그 외 여러 가지 상황이나, 이슈 등을 절묘하게 교체(?)한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이것은 각자의 기준점이 다를 것이기에 여기서 시비를 가릴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지점에서 한국 콘텐트의 방향성이 확실해진 측면도 있다.

그동안 세계시장에 내놓아 성공한 한국의 콘텐트 중에 ‘메이드 인 저팬’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아온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K-POP의 아이돌은 1980~1990년대 ‘소녀대’나 ‘스맵’(SMAP) 등을 탄생시킨 일본의 J-POP을 카피한 것이고,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같은 예능부터 룰라의 ‘천상유애’ 같은 음악까지 일본 문화에 대한 모방은 유래가 깊다. 요즘 세계를 홀리고 있다는 찬사를 듣는 웹툰은 또 어떤가. 과거 고행석, 이두호, 이현세 등이 남긴 한국 만화의 맥을 잇는다기보다는 [드래곤볼], [슬램덩크], [신세기 에반게리온], [공각 기동대] 등의 일본 만화풍에 가깝다. 현재 문화 산업을 이끄는 20~40대는 상당수가 ‘저패니메이션’이라 불리는 일본 만화영화로부터 세계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방이 모방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애플의 아이폰을 카피한 갤럭시가 세계시장을 점령했듯이 일본 문화의 수혜를 받고 성장한 한국은 이제 그것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하고 더욱 ‘먹기 좋은 음식’으로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일류로 대접받게 됐다. 그러면서 관계도 자연스레 재설정됐다. 이제는 J-POP이 K-POP을 모방해 ‘프로듀스 101’ 같은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을 수입해가고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Mnet의 ‘걸스플래닛 999’에는 걸그룹이 되고 싶어 지원한 일본과 중국 소녀들이 참여하고 있다. 매년 한국 각 소속사의 오디션에는 일본·중국뿐 아니라 미국·유럽에서도 찾아오고 있다.

K-콘텐트, 유튜브와 넷플릭스 타고 세계 곳곳과 소통


▎[오징어 게임] 참가자 복장을 한 모습을 공개한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 / 사진:넷플릭스코리아
다시 말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다른 문화의 장점을 유연하게 수용하고 그것을 더욱 완성도 있게 만들어 시장에 되파는 것이 바로 한국의 힘이며, ‘방탄소년단’(BTS)에 이어 [오징어 게임]이 확인시켜준 가능성인 것이다.

과거 한국의 문화 콘텐트는 제약이 많았다. 일단 5000만명의 한국인만 사용하는 한국어로 만들어지고, BBC나 CNN 같은 세계 유수의 미디어 플랫폼이 없었으며, 할리우드처럼 거대 자본을 투입할 여력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딱 한국인만 즐길만한 문화 오락거리를 만들었다. 세계 시장은 언감생심이었다.

그 벽을 처음 부수게 도와준 것은 유튜브다. J-POP보다 한 수 아래라고 평가받던 K-POP은 유튜브를 타고 ‘퍼포먼스가 멋있는 눈을 즐겁게 하는 음악’이라는 평을 얻었고, 세계 곳곳과 소통하면서 BTS처럼 보편적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그다음에 나타난 것이 넷플릭스다. [오징어 게임]의 총 제작비는 200억원. 편당 20억원으로 한국 드라마 평균의 2배가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여전히 저렴하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편당 제작비 1위를 차지한 [더 크라운]의 경우 편당 1300만 달러(약 150억원)가 들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의 7배다. 최근에 만난 한 외국계 플랫폼 관계자는 “해외에서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저렴한 제작비”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넷플릭스 등 해외 주요 플랫폼은 앞으로 한국 콘텐트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 한국 콘텐트는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 유성운 중앙일보 기자 pirate@joongang.co.kr

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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