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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의 뮤지컬 오디세이(6)] 이룰 수 없는 꿈 향한 돈키호테의 모험 '맨 오브 라만차' 

“썩을 대로 썩은 세상, 나 돈키호테가 결투를 청하는도다” 

시·공 초월해 수백 년 동안 관객 웃기고 울린 ‘백만 불짜리’ 캐릭터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의 믿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매력 만점 인물


▎세르반테스의 소설 [맨 오브 라만차]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세상의 통념과 고독한 투쟁을 벌였다. 소설의 배경이 된 스페인 라만차 지역의 풍경. / 사진:천운영
[맨 오브 라만차]는 스페인의 대 문호인 세르반테스의 걸작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가 원작이다. 데이비드 와서맨이 극본, 조 데리온이 노랫말을 쓰고, 미치 리가 음악을 만들어 196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세르반테스의 고전에서 무수한 곁가지를 빼고 우리가 익히 아는 돈키호테의 모험담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를 재구성했다. 국내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무수히 공연됐다. 2005년 ‘오디뮤지컬컴퍼니’가 정식 라이선스 초연 무대를 올린 뒤 꾸준히 리바이벌되고 있다.

[맨 오브 라만차]는 무려 반세기도 전에 나온 작품으로, 롱런의 중심에는 돈키호테라는 개성 강한 캐릭터가 버티고 있다. 돈키호테는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물이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을 웃기고 울려왔다. 재미와 감동을 다 갖춘 ‘백만 불짜리 캐릭터’다.

이 매력 만점의 인물은 약 400년 전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에 의해 탄생했다. 세르반테스는 당시 유행하던 기사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기발한 시골 양반 라만차의 돈키호테](이하 [돈키호테])를 썼는데 1부가 1605년, 2부가 1615년에 각각 출간됐다. 이 소설은 나오자마자 큰 화제를 모았고, 앞다퉈 여러 외국어로 번역됐다. 빅토르 위고, 투르게네프, 보르헤스 등 후대의 수많은 작가가 이 소설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었다. ‘근대 소설의 출발’ ‘인류의 책’ ‘인간사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이야기가 다 담겨 있다’는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스페인 라만차에 사는 늙은 귀족 알론조는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머리가 살짝 이상해진다. 급기야 자신이 기사 돈키호테라는 망상에 빠지고, 기사의 소명을 다 하기 위해 세상의 악을 일소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한 동네 사는 산초 판자를 꼬드겨 늙은 말 로시난테를 타고 함께 정의의 모험을 떠난다.

산초 판자와 함께 여정에 오른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창을 들고 달려들고, 허름한 여관을 웅장한 성으로 오해하고, 여관에서 일하는 천한 여자 알돈자를 아름다운 여인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다. 여관 주인을 성주로 착각해 그에게 기사 작위를 받는가 하면 세숫대야를 맘브리노의 황금투구라고 우기며 머리에 쓴다.

돈키호테의 이런 행동은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다. 세상에 소문이 퍼지자 돈키호테의 조카는 삼촌을 말릴 궁리를 한다. 그는 돈키호테 앞에 변장한 거울의 기사들을 보내 결투를 신청한다. 거울에 비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본 돈키호테는 자신이 기사가 아니라 그저 늙고 지친 노인 알론조임을 깨닫고 쓰러진다. 집으로 돌아온 돈키호테, 아니 알론조는 오랜 외지 생활에 지쳐 병상에 눕고,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이상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돈키호테의 이야기다. 하지만 원작은 이보다 훨씬 방대하다. 흥미로운 점은 돈키호테의 모험담 외에도 다양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아예 빠지고 다른 인물들이 주인공인 장(章)도 상당수다.

이뿐 아니다. [돈키호테]는 400여 년 전에 출간됐음에도 굉장한 파격을 담고 있다. 장난기 넘치는 이야기꾼인 세르반테스는 희한하게도 자신을 ‘제2의 작가’라고 지칭하며 슬쩍 빠진다. 아라비아의 역사가 베넹헬리란 사람이 원작자이고, 또 다른 아랍인이 번역한 걸 자기가 소개하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따금 끼어들어 이야기를 추가하기도 한다. 내레이터 겸 작가인 셈이다. 작가의 시점이 애매해진다.

무모하고 용감하며 진지한, 그 남자


▎[돈키호테]의 저자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 17세기 스페인의 대문호다.
더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 돈키호테는 2부의 초반부에서 1부 덕분에 스타가 돼 나타난다. 산초가 “우리가 겪었던 모험을 기록한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고하자 돈키호테는 매우 우쭐해 하고, 이후 도처에서 자신의 모험담을 읽은 사람들과 마주친다. 실제로 발간된 소설(1부)이 허구(2부)에 영향을 미쳐 돈키호테가 돈키호테를 언급하는 차원의 혼합이 발생한다. 현실과 허구가 교차하고 픽션과 리얼리티가 뒤섞인다. 저자와 텍스트, 독자의 경계가 무너져버린다. 20세기에 유행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씨앗이 이미 400년 전 세르반테스에 의해 뿌려진 것이다.

돈키호테는 무모하고 용감하고 진지하다. 우호적인 평가가 우세하지만,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 무모한 독불장군 같은 사람을 돈키호테에 비유하기도 한다. 돈키호테는 이렇게 뭐라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성향의 복합체다. 그래서 하나의 스타일이 됐다.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는 인간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분했다. 그는 햄릿을 사색형 인간, 돈키호테를 행동형 인간으로 규정하면서 “겸허한 마음과 위대한 영혼을 지닌 용감한 인물”이라며 돈키호테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돈키호테가 벌인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자기희생의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행위가 초래할 결과에 대해 이모저모 헤아려보고 또한 그 행위가 자신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 줄지 거듭 저울질하는 사람은 결코 돈키호테처럼 자기희생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숙한 이야기는 대중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식상하다는 약점도 있다. 동전의 양면이다.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되풀이한다면 힐난만 들을 수 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방대한 원작에서 필요한 것들만 골라 스토리를 재구성하고, 뮤지컬적 상상력을 가미했다. 이를 위해 우선 극중극(劇中劇) 형식을 취했다.

뮤지컬은 원작과 달리 작가 세르반테스가 하인과 함께 지하감옥에 신성모독죄로 끌려오면서 시작된다. 자신의 소지품을 빼앗으려는 죄수들에게 세르반테스는 변론의 기회를 달라고 한다. 변론의 방식은 다름 아닌 연극이다. 자신이 쓰고 있는 작품, 바로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죄수들과 함께 공연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돈키호테 역은 세르반테스의 몫이고, 산초 판자는 함께 들어온 하인이 자연스레 맡는다.

이 극중극 형식은 원작자 세르반테스에 대한 작가 와서맨의 오마주(hommage)라고 생각된다. 실제 저자(세르반테스)와 허구의 주인공(돈키호테)이 동일인일 수 있다는 포스트모던한 설정을 통해 세르반테스의 선구적인 감각에 경의를 표한 듯하다.

[맨 오브 라만차]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원작과 상당히 다르다. 원작은 전체적으로 코믹하다. 만담을 늘어놓듯, 옛날이야기하듯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까지 끌어들여 풍자와 유머를 섞어 장황하게 스토리를 이어간다. 반면 뮤지컬은 코믹한 면도 물론 있지만 진지한 휴먼 드라마를 지향한다. 현대인이 잊고 살아가는 꿈의 의미에 포커스를 맞췄다. 돈키호테의 캐릭터도 원작에 바탕을 두되 꿈을 화두 삼아 진지하게 재구성했다.

돈키호테는 ‘정상’이 아니다. 머리가 좀 이상해졌다. 문제는 ‘비정상’인 그가 바라보는 세상 역시 비정상이라는 점이다. 그의 눈에 세상은 온갖 불의와 부조리가 판치는 복마전이다.

주제 집약한 명곡 ‘이룰 수 없는 꿈’


▎뮤지컬 [돈키호테]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상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꿈을 담았다. 자신을 기사라고 믿었던 돈키호테는 거울을 통해 추한 몰골을 확인한 뒤 절망한다.
여기서 돈키호테와 세상 사이에 타협할 수 없는 전선(戰線)이 형성된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 왜 이런 불의를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사는 것일까. 왜 타파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용맹한 기사로서 그는 나약한 소시민들을 대신해 치열한 싸움터로 나아간다. 산초 판자와 의기투합한 뒤 우스꽝스러운 차림을 하고 호탕하게 불러 젖히는 테마곡 ‘라만차의 사나이’에는 그의 뜨거운 의지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들어라, 썩을 대로 썩은 세상 /나 여기 깃발 높이고 /결투를 청하는 도다 /나는야 돈키호테 라만차의 기사 /운명이여 내가 간다(…).”

땅에 떨어진 강호(江湖)의 도(道)를 바로잡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돈키호테에게는 [삼국지]의 도원결의 못지않은 엄숙한 출정식이지만 고색창연한 대사와 촌스러운 차림새의 부조화는 큰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정작 돈키호테는 진지하기 그지없다. 그의 뇌는 살짝 이상해졌지만 목소리엔 진심과 열정이 담겨 있고, 행동거지 또한 힘이 넘친다. 더 이상 그는 ‘미친 노인네’가 아니다. 먹고 살기 바빠, 정의라는 것에 관심 가질 여유조차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두터운 무감각을 깨뜨리는 영웅으로 조금씩 변모해간다.

돈키호테 못지않게 여성 캐릭터 알돈자의 역할도 대폭 수정됐다. 알돈자는 세르반테스의 원작에서는 돈키호테를 광인 취급하는 못생기고 무식한 시골 여자다. 돈키호테 역시 “기사라면 당연히 충성을 바쳐야 할 귀부인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알돈자를 택한다. 나중에 그녀가 추녀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원래 귀부인 둘시네아였으나 마술에 걸려 이렇게 된 것”이라며 마법을 풀어주려고 노력할 뿐이다.

하지만 뮤지컬에서 돈키호테는 알돈자에게 참된 사랑과 연민, 존경을 표현한다. “그대를 꿈꿔왔소. 나의 마음은 언제나 그댈 알고 있었소”라고 노래하며 애절한 마음을 전한다. “이 세상, 왜 이런지 알게 뭐야, 어떤 놈도 다를 게 없어. 사랑 따위는 필요 없어, 돈이나 듬뿍 줘”라며 밑바닥을 전전하던 알돈자는 그의 진심에 감동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돈키호테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로이드 웨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거리의 여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에게 감화되는 장면과 비슷하다.

뮤지컬에서 원작을 수정할 때 가장 자주 사용하는 테크닉 중 하나가 바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다. 대중이 좋아하는 러브 라인을 강화할 수 있고, 아름다운 아리아를 넣을 수 있으며, 매력적인 여배우들을 무대에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원작에 아예 없는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뮤지컬도 많다.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 역을 맡아 열연하는 배우 조승우. / 사진:오디뮤지컬컴퍼니
독일의 문호 괴테는 [파우스트]의 마지막 문장에서 “지상에서 이뤄지지 않은 것이 천상에서 이뤄진다”며 “영원한 여성성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고 말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 단테에게 베아트리체, 파우스트에게 그레첸이 구원의 여인이었다면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에게는 알돈자(둘시네아)가 그 역할로 격상된다. 그럼으로써 [맨 오브 라만차]는 진지한 구원의 드라마로 새롭게 태어난다. 코믹한 돈키호테를 예상했던 관객들은 기대치 않았던 감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원작을 재구성하고, 캐릭터를 수정해 깔끔한 드라마를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이제 딱 하나, 작품의 주제를 집약하는 멋진 테마곡이다. 용의 눈에 점을 찍어야 한다. [맨 오브 라만차]는 이것을 불멸의 넘버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으로 포착했다. 누구나 가진 꿈을 매개로 머리가 살짝 이상해졌지만 순수한 영혼을 지닌 돈키호테를 모든 이의 꿈을 대변하는 영웅으로 형상화했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노랫말도 좋고 멜로디도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귀에 쏙쏙 들어온다. 감정의 과잉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오는 곡이다. 돈키호테는 권력을 잡겠다는 것도 아니고, 스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 견딜 수 없는 슬픔,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목숨을 던지겠다고 다짐한다. 양심의 명령에 따라 비록 불가능할지언정 그 꿈을 향해 모든 것을 던지겠다고 맹세한다. 결연한 의지에 은연중 묻어나는 슬픔과 비장함이 이 노래의 맛이다.

[맨 오브 라만차]가 클래식의 반열에 오르는데 이 ‘이룰 수 없는 꿈’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왕년의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를 비롯해 엘비스 프레슬리와 도나 서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등이 불렀고, 1968년 로버트 케네디의 선거 캠페인 때 인용됐으며, 2013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마지막 홈경기에서도 연주됐다.

돈키호테의 투쟁은 세상의 통념과의 싸움


▎[맨 오브 라만차]의 주인공인 돈키호테(오른쪽)와 산초 판사. 1863년 귀스타브 도레 작품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은 남자 배우의 중저음을 100% 만끽할 수 있는 곡이다. 국내 무대에선 드라마틱한 창법에 관한 한 최고의 배우들인 조승우·류정한·정성화·황정민 등이 돈키호테 역을 맡아 이 곡을 열창했다. ‘이룰 수 없는 꿈’은 [맨 오브 라만차]의 상징이다. ‘투모로’를 통해 뮤지컬 [애니]를 떠올리듯,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를 통해 [에비타]를 떠올리듯, ‘이룰 수 없는 꿈’을 통해 많은 사람은 [맨 오브 라만차]를 연상한다.

부조리가 만연한 세상을 한 노인의 힘으로, 그가 아무리 용감무쌍한 기사일지라도 정의의 강물이 흐르는 땅으로 바꿀 수 있을까. 시작부터 무모해 보였던 돈키호테의 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그러나 [맨 오브 라만차]는 돈키호테와 알돈자의 플라토닉한 사랑을 통해서 희망의 싹을 틔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정신이 돌아온 돈키호테, 아니 알론조는 자신의 삶이 일장춘몽이었다고 생각한다. 회한에 잠긴 순간, 알돈자가 문을 열고 방안으로 뛰어들어 온다. 알론조가 그녀를 못 알아보자, 알돈자는 그가 자신에게 들려줬던 노래 ‘둘시네아’를 부른다. 옛 기억이 되살아난 알론조는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투구와 창을 가져오라고 한 뒤 ‘이룰 수 없는 꿈’을 부르지만 이젠 힘이 부족하다. 노래를 채 다 부르지 못하고 그는 세상을 뜬다. 슬픔에 빠진 알돈자는 절규한다. “돈키호테는 죽지 않았다”고, “내 이름은 둘시네아”라고.

돈키호테의 도전은 끝내 계란으로 바위 치기로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맨 오브 라만차]는 둘시네아로 다시 태어난 알돈자를 통해 희망의 싹이 돋아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돈키호테가 거둔, 작지만 유일한 승리는 바로 이것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의 꿈이, 그 이룰 수 없는 꿈이 알돈자라는 여인을 통해 작은 싹을 틔운다.

돈키호테의 고독한 투쟁은 사실 세상의 통념과의 싸움이다. 그가 겉으로 설정한 타깃은 불의와 악이지만 그 이면엔 세상 모든 사람이 공범으로 연루된 ‘통념’이 도사리고 있다. ‘에이, 나 하나 어떻게 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겠어’라며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마음에 돈키호테는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맨 오브 라만차]가 반세기 가까이 롱런하는 이유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돈키호테의 순수와 열정을 기억한다면 세상은 분명 바뀔 것이다. 그러기 위한 방법은 딱 하나다. 어느 순간 살짝 미쳐야 한다. 앞뒤 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믿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잘 기억해보라. 우리는 모두 인생의 어느 순간 돈키호테이지 않았던가.

※ 김형중 - 공연 칼럼니스트. 연세대와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20년 넘게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고 한국뮤지컬대상과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무대예술의 경이로움을 글로 풀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쓴 책으로 [우리시대 최고의 뮤지컬 2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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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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