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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산책] 가을 산책길에 듣기 좋은 우리 노래 

가을날 단풍잎 곱게 지듯 언젠가 한 번은 떠나는 것… 

하나둘 떨어지는 잎새에 무상함 느끼고 그 상실감 채우려 그리움 노래
가을 노래로 위로받은 마음으로 사랑에게 다가가고 사랑으로 행복 느껴


▎가을은 산책의 계절이다. 휴대폰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아름다운 우리 가곡을 들으면서 여유롭게 걸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휴애리 자연생활공원을 찾은 입장객이 핑크뮬리가 만개한 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사람은 하나의 삶을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겪고, 그리고 그만큼의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삽니다. 그런데 짐짓, 계절의 흐름 속에서 보게 되는 정취들이 슬픔과 기쁨 사이의 여러 감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쩌면 이러한 사계절이 있기에, 우리가 이토록 폭넓은 감성을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유독, 가을에 깊은 감상에 젖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겨울에서 여름까지 점차 만물이 풍성해지고 활력이 더해가며 생산적인 발전이 쭉 이어지다가, 하나둘씩 떨어지는 잎새에 무상함을 느끼고 쌀쌀해져 가는 대기에 움츠러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가을 노래는 상실감을 채우려 그리움을 노래하나 봅니다.

가을 노래

우리의 아름다운 가곡에는 가을의 서정을 그린 노래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을’을 제목으로 하는 노래가 많은데요, 이 가을 노래들은 어떤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가을의 편지’: 홍윤숙/ 김연준: 어떤 때 ‘가을이 왔구나’ 하는 느낌을 받으시나요? 아마도 산책하다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홍윤숙 시인은 색색의 낙엽이 가을 소식을 전하는 편지라고 하네요.

“은행잎에 노란물 단풍잎엔 빨간물/ 고운물 들여 보냈네 꿈처럼 들여 보냈네. 나무잎은 가을의 시 가을이 쓴 가을의 시/ 황홀한 꿈 가득 담아 술처럼 담아내누나.”

한양대학교 설립자이신 김연준 작곡가는 이 시에 편안하게 읊조리는 선율을 붙였습니다. 그분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600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했죠. 평론가 기무라 시게 오는 “이탈리아의 토스티, 미국의 포스터,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노르웨이의 그리그 등과 공통되는 섬세한 정념이 낭만적인 화성을 배경으로 나타나 있다. 어느 나라의 누가 듣더라도 친근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인간적인 온화함이 충만하다”며 감탄했습니다. ‘가을의 편지’를 듣고 있으면 누구나 이 말에 공감할 것입니다.

‘가을 노래’: 이해인/ 이혜성: 이해인 수녀의 시에는 지친 영혼을 맑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분의 시로부터 치유를 받고 힘을 얻곤 했죠. ‘가을 노래’도 가을이 주는 그리움의 정서를 소중히 다루며 마음으로 따뜻한 대화를 나눕니다.

“가을이 오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멀리 있는 친구가 보고 싶고/ 죄없어 눈이 밝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네.”

이 시에 선율을 붙인 이혜성 작곡가에 대해 가야금 명인이자 작곡가인 황병기는 “인간의 내면세계와 자연 사랑에 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늘 연구하는 자세로 작품에 임하는 진지한 작곡가”라고 말씀하셨죠.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이 때문인가 봅니다. ‘가을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작곡자의 말씀대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삶을 정리해야 하는 쓸쓸한 아름다움”이 잔잔히 밀려옵니다.

‘가을의 기도’: 김현승/ 정영택: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는 부족함이 채워지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결실의 시간이 되길 기도하지만, 마지막에는 오히려 홀로 있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기도하면서 가을은 고독의 계절임을 깨달은 걸까요?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이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정영택 작곡가는 제 고등학교 은사님이십니다. 당시에도 가곡 작곡가로 이름이 높으신 분이었는데, 약 30년이 지난 지금 또한 왕성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저를 기억하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됐으니 찾아뵙고 싶네요. 나지막이 속삭이는 선율이 듣는 사람의 마음도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합니다. 그러다 하늘을 향한 마지막의 울부짖음은,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젖히며 감동을 넘어 감격하게 합니다.

사랑에 그리움

앞의 노래들처럼 가을 노래에는 고독한 감성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어찌 그리 어려운 걸까요? 지나고 난 후에야 사무치는 그리움, 녹음을 이루던 잎새들이 무상하게 떨어질 때마다 낙엽에 새겨진 지난날들이 떠오릅니다.

“갈대 우는 강변에서 갈대꽃을 데려가던 사람”

‘연’(戀): 김동현/ 이원주: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울 때 그도 나를 기억하기를 바라는 소망은,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아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며 자신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김동현의 시는 그래서 더욱 가슴을 동요하게 합니다.

“미련을 버리고 편히 잠들라/ 그 무엇도 남지 않을 듯/ 꼭 나를 기억해주오 숨결까지/ 눈물까지/ 내 모든 것 그대에게로.”

감성적인 가곡들로 많은 사랑을 받는 이원주 작곡가의 ‘연’은 2007년 제1회 화천비목콩쿠르 1위 당선작입니다. 그리고 2016년에 TV에 방영된 한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한 경연자가 불러서 대중에게 알려졌죠. 아마도 이 노래에 익숙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군요. 차분하면서도 순간적으로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리는 극적인 선율이 오늘날의 낭만적인 감수성에 호소력을 더해 애틋한 감성을 가슴 깊이 찔러 넣습니다.

‘마중’: 허림/ 윤학준: 사랑은 기다리는 걸까요? 아니면 쟁취하는 걸까요? 허림 시인은 사랑을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다가가겠다고 합니다.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윤학준 작곡가는 초등학교 교사 시절 동요 작곡으로 명성을 얻으셨습니다. 지금은 장학사시라고 하네요. 그런데 2014년 제8회 화천비목콩쿠르에서 ‘마중’으로 1위에 당선돼 가곡 작곡가로서도 존재감을 드러냈죠. 그리고 2017년에 한 노래 경연 TV 프로그램에 이 곡이 불리면서 대중의 귀에 꽂히게 됐습니다. 무심한 듯 시작된 부드러운 선율이 서서히 감성적으로 충만해져,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달려갈 것 같습니다.

‘사람 하나의 행복’: 구준희/ 정보형: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은 그리움의 한가운데 있겠지요. 그래서인지 첫사랑을 생각하며 지은 구준희의 시는 피부로 전달돼 가슴에 맺힙니다.

“갈대 우는 강변에서 갈대꽃을 데려가던 사람/ 한때는 상처였고 아픔이던 못내 그리운 사람/ 사람 하나로 살아온 세월이 추억이 되어버린 지금/ 사랑의 이름으로 남은 사람 하나 있어 행복합니다.”

정보형 작곡가는 어린이 음악을 만드는 ‘아이가뮤직’의 대표십니다. 그런데 이 단체에는 또 하나의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창작 음악을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의 음악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선율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작곡자는 시인과 의논해 본래의 “배웠습니다”를 “행복합니다”로 바꿨습니다. 노래를 들을 때면 “행복합니다”라는 가사를 저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네요.

‘사랑’: 이은상/ 홍난파: 앞선 시대에는 사랑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이은상 시인은 기다림이든 쟁취든 행복이든, 활화산 같이 타오르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디 마오/ 타다 다시 타서 재 될 법은 하거니와(…) 탈진댄 재 그것조차 마저 탐이 옳소이다.”

“솔바람이 선선한 이 밤에 내 그대와 동행하고 싶구나”


▎대구 달서구 대명 유수지에서 시민들이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며 산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인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최초의 독주회를 열었던 홍난파 작곡가는 이 시에 동감했습니다. 모든 것을 태우는 사랑! 시인과 작곡자는 무엇을 그토록 사랑했던 것일까요? 마음을 사로잡은 한 여인이었을까요? 홍난파는 바이올린을 팔아 독립운동에 보탰고, 3·1운동에 참여해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으며, 첫 작품 ‘봉선화’로 민족의 염원을 노래하고, 미국 유학 중에 흥사단에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했죠. 하지만 안창호 선생과 함께 옥고를 치르다 지병이 악화돼 사상전향서를 쓰고 출소한 뒤 합병증으로 4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말년의 친일 행적이 그의 뜻깊은 과거를 무색하게 해 비통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노래한 ‘사랑’은 나라와 민족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워’: 이은상/ 채동선: 국화와 갈대꽃 같은 가을꽃도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하죠. 가을 이미지를 생각하노라면 흐드러진 갈대밭 사이를 걷는 모습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은상 시인도 들국화 피고 갈대꽃 날리는 가을의 어느 날, 그리움만이 쌓여 하늘만 바라봅니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님은 아니 뵈네/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부칠 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본다네.”

채동선 작곡가는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민요를 채보하고 가곡을 작곡하는 등 우리 노래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리움에 사무쳐 온종일 길을 헤매는 듯한 ‘그리워’의 선율, 누군가 그리울 때 한없이 구슬픈 이 곡을 부르고 나면 가슴 한구석의 응어리가 조금이나 풀어질 것 같습니다.

‘달밤’: 김태오/ 나운영: 밤에 떠오른 달도 그리움을 떠오르게 합니다. 김태오 시인은 사랑하는 그대는 어디에 있기에, 달빛을 보고 그토록 그리움에 빠져든 걸까요?

“솔바람이 선선한 이 밤에/ 달은 외로운 길손같이/ 또 어디로 가려는고. 달아 내 사랑아/ 내 그대와 함께/ 이 한 밤을/ 동행하고 싶구나.”

나운영 작곡가는 한국전쟁 후 현대적인 작곡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한국 현대음악에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분의 교향곡과 협주곡도 들어보셨으면 좋겠군요. 이와 달리, 그분의 가곡은 낭만적인 선율로 어려운 시기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줬습니다. ‘달밤’에 붙인 선율은 담담하게 그리움을 읊조리다가, 극적으로 치달아 감정을 쏟아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아리랑, 우리의 모습

가을이 그리움의 계절이라면, 아리랑은 진정한 가을 노래일겁니다. 나를 버리고 가신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아리랑은 오랜 세월 지역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죠. 오늘날 우리의 정서로 만든 새로운 아리랑들이 있습니다.

‘신아리랑’: 양명문/ 김동진: 김동진 작곡가의 첫 가곡 [봄이 오면]은 아마도 모르는 분이 없으실 것 같아요. [신아리랑]은 아리랑의 가사와 선율로 산뜻하고 밝게 시작하다 양명문 시인의 시가 등장합니다.

“모란꽃 필적에 정다웁게 만난 이/ 흰 국화 시들 듯 시들어도 안 오네 초가집 삼간을 저 산 밑에 짓고/ 흐르는 시대처럼 살아볼까나.”

아리랑이 빚은 가을의 기다림 정서


▎지난해 11월 열린 ‘창경궁 가을맞이 고궁음악회’를 찾은 한 시민이 휴대폰 카메라에 단풍과 공연팀을 함께 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아리랑이 빚은 가을의 기다림의 정서를 가을에 피고 지는 국화로 표현하며 쓸쓸함을 더하네요. 그리고 아리랑의 익숙한 선율에 김동진의 감상적인 선율이 더하니, 우리의 서정이 갖는 아름다움을 한껏 느끼게 됩니다.

‘아리랑 연가’: 김택수: 이제 막 나이 마흔을 넘긴 작곡가가 만든 아리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김택수 작곡가는 화학 영재 출신입니다만, 작곡으로 전향해 미국에서 작곡 교수님이 되셨죠. 최근에는 우리의 삶과 우리의 음악을 녹인 작품들을 쓰고 있는데요, ‘아리랑 연가’는 한국적 정서와 클래식의 어법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최원희·홍혜란 성악가 부부의 위촉으로 작곡하면서, 다양한 아리랑의 가사를 모아 오랜 외국 생활을 하신 두 분에게 어울리는 가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꿈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김택수에게 아리랑은 그리움만으로 채울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우리의 꿈도 밝게 빛나야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이 곡은 가곡이라기보다는 듀엣을 위한 콘서트 아리아처럼 강력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라리요’: 이승민/ 이지수: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건축학 개론] 등 영화음악으로 명성을 얻으신 이지수 작곡가도 비슷한 연배네요. 이분은 아리랑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2015년에 런던심포니와 함께 녹음한 ‘아리랑’ 앨범에서 아홉 곡의 새로운 아리랑을 선보이며 큰 주목을 받았죠. 여기에 수록된 ‘아라리요’는 특히 애창되고 있습니다.

“달빛 밤하늘 같이 하늘아래/ 내님 계신 그 곳 어딘가에/ 내 소식도 전해주오. 애타게 외로운/ 내 맘 알고 계신다면/ 날 잊지 마오 돌아와주오/ 아라리요 부디.”

달밤으로 그리움의 정서를 그린 이승민 시인의 시에 붙인, 우리 시대의 감각적인 화음과 심장을 더욱 고동치게 하는 리듬으로 만든 이지수다운 아리랑입니다.

‘강강술래’: 이동주/ 백병동: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듭니다. 가을은 언제부터 그리움의 계절이 됐을까요? 유럽에서 가을은 포도주와 사냥으로 즐거운 계절이었고, 우리 민족도 가을이면 추수의 풍요와 축제의 기쁨을 즐겼는데 말이죠. 이동주 시인은 한가위의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를 돌며 축제가 한창으로 치닫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열두밭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기폭이 찢어진다 갈대가 쏟아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명절을 맞아 밤새 축제를 벌이며 뛰놀고 술 취한 모습에, 우리나라 현대음악을 이끌었던 백병동 작곡가의 민속적인 리듬과 현대적인 화음이 어우러져 새로운 정취를 만들어냅니다.

‘나그네’: 조지훈/ 윤이상: 하지만 조지훈 시인은 술 익는 계절에 떠도는 나그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결국 홀로 남겨진 나그네의 모습에서, 가을의 외로움을 감출 수 없었던 걸까요?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낙엽에, 가을꽃에, 달밤에 그리움 담아 노래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 이루 말할 수 없는 그의 모진 삶 속에서 이런 아름다운 선율이 솟아나는 것을 보면, 예술가의 정신은 분명 범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광복 전후에 작곡된 초기 가곡에 대해 윤이상은 “우리 전통 음악이나 민요의 선적·율동적·색채적인 묘미를 연주해서 불러줬으면” 한다는 말씀을 남기셨죠. 세련된 화음과 민속적인 리듬 위에 쓸쓸함을 곁들인 선율이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일으킵니다.

‘산유화’: 김소월/ 김순남: 꽃구경이라면 봄이 생각나죠? 하지만 사실 우리의 산들에는 계절마다 계절 꽃들이 핀답니다! 김소월 시인은 계절마다 다른 알록달록한 산들을 바라봤고, ‘산유화’(山有花) 즉 ‘산에 피는 꽃’이라는 시를 적었습니다. 그런데, 아! 시인은 꽃에도 외로움을 담았군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최고의 천재 작곡가로 칭송됐으나 분단의 역사에 휘말려 이른 나이에 펜이 꺾인 김순남, 1940년대 중반 짧은 기간에 남긴 몇 곡의 가곡만이 그의 이름을 전하고 있습니다. ‘산유화’에 붙인 그의 세련된 선율과 민요조의 리듬은 우리 가곡의 지순한 아름다움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움, 이제 놓기

지금까지 가을 노래를 찾아보면서 많은 그리움을 만나게 됐네요. 하지만 이제 그리움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그리움이 쌓이면 마음의 짐도 무거워지니까요.

‘우리’: 오세영/ 이건용: 오세영 시인은 그리움이 담긴 이야기를 무심히 건네며 쓸쓸히 이별을 수긍하고 준비합니다.

“때로는 고운 날도 있었지만/ 때로는 미운 날도 있었지만/ 거기에 당신이 있지 않나요. 인생이란 그런 것/ 가을날 단풍잎 곱게 지듯/ 언제인가 한 번은 한 번은 떠나는 것.”

우리 주변과 우리의 삶의 모습을 기록한 이건용 작곡가는, 반복하는 리듬과 담담한 화음으로 속내를 알기 어려운 반주에 툭툭 던지는 선율로 이 시를 노래합니다. 사랑이 싹트지 않도록, 더 이상의 그리움이 쌓이지 않도록,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나그네의 모습이 짐짓 떠오르네요. 슈베르트의 ‘손풍금’처럼 말이죠.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 낙엽에, 가을꽃에, 달밤에 그리움을 담아 노래했습니다. 가을 노래로 위로받은 마음으로, 이제는 사랑에게 다가가고, 사랑으로 행복을 느끼며, 풍요의 축제를 즐기는 계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송주호 음악 칼럼니스트 croix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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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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