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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와 인생’] 64세 때 63타,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의 비결 

“몸이 손목, 어깨부터 클럽까지가 회초리” 

2008년 ‘에이지 슈트’ 기록… 휘두르는 동작 연상 스윙법 조언
“골프는 인생의 반려자… 자신이 공부하고 배우는 노력이 중요”


▎2015년 7월 캐슬파인 골프장에서 라운드 도중 꽃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라종억 이사장. 그의 가장 큰 정체성은 골퍼나 무도인이 아니라 시인이다. / 사진:라종억
라종억(74)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은 2008년 10월 16일 캐슬파인 골프장에서 63타를 쳤다. 아마추어의 스코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숫자다. 캐슬파인 골프장은 전장이 길지는 않지만 난코스다. 이전까지 이 골프장의 코스레코드는 67타였다. 나이를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라 이사장은 1947년생이다. 그는 “원래 1944년생인데 독립 운동을 하신 선친이 해방 전후 바쁘게 지내는 통에 호적 신고가 늦었다”고 했다. 1944년생이라면 2008년에 64세, 1947년생이라면 61세다. 64세로 계산할 경우 에이지 슈트가 된다.

아마추어의 최연소 에이지 슈트(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적은 타수를 치는 것) 기록은 알 수 없다. 프로 선수들 중 최연소 에이지 슈트는 64세에 64타를 친 게리 플레이어다. 라종억 이사장의 기록은 숫자상으로 잭 니클라우스, 아널드 파머와 빅3로 불렸던 게리 플레이어보다 빠르다.

그러니 믿기 힘들다. 라 이사장의 63타는 자선 골프 대회에서 나왔다. 대회 경기위원도 당연히 이 스코어를 믿지 않았다. 동반자들의 일관된 증언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라 이사장은 다음날 류웅렬 경기위원과 함께 검증 라운드를 해야 했다. 라 이사장은 그날 65타를 쳤다. 그러고 나서야 63타 기록을 인정받았다.

페어웨이 적중률 100%, 그린 적중률 100%, 보기 없이 버디만 9개 나온 완벽한 라운드였다고 한다. 라 이사장은 “전 날 꽃밭을 걷는 꿈을 꿨다. 천국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캐슬파인 골프장도 오솔길 느낌이 나는데 꿈을 꾼다는 생각도 났다”고 말했다. 당시 라 이사장은 지인이 준 골동품 퍼터를 썼다. 헤드를 퍼시먼(감나무)으로 만든 얇은 블레이드 퍼터였다. 정확히 맞히지 않으면 방향이 확 틀어지는, 관용성이 전혀 없는 퍼터였는데 그날은 백발백중이었다. 라 이사장은 “그 라운드에서는 자신감을 넘어 공이 홀에 쑥쑥 들어갈 것 같은 기분, 이른바 무아지경의 몰입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라 이사장은 에이지 슈트가 많았다. 그러나 스코어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기록은 해프닝에 불과하다. 골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라 이사장은 53년 전인 1968년 6월 서울 군자리(현 어린이 대공원)에 있던 서울컨트리클럽에서 골프를 시작했다. 아버지를 따라 갔다가 옅은 노을을 향해 날아가는 드라이브 샷에 반했다고 한다.

그는 감수성이 매우 뛰어나다. 그에게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골프는 자연과의 교감이자, 문학적 영감이다. 눈과 귀와 마음이 함께 하는 동반자다. 그는 “욕심내지 않고 자연과 교감하다 보면 부수적으로 좋은 스코어가 나오기도 한다. 스코어와 상관없이 동반자와 나누고 즐기다 보면 항상 골프가 즐겁고 결과에 만족하게 된다”고 했다.

골프 사랑은 크다. 그는 “요즘 반려견, 반려식물을 키우는 분들이 많은데 진짜 인생의 반려자가 되는 건 골프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골프채가 나를 반기는 것 같다. 항상 채를 직접 닦고 고이 모셔놓는다”고 말했다.

라 이사장은 “골프는 프로 경기를 관람하기도 하지만 직접 할 때가 더 많다. 남이 하는 것을 보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사람들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골프의 매력을 실감할 수 있다”고 했다.

골프는 인생처럼 이야기가 창조되는 인문학


▎2008년 10월 캐슬파인 골프장에서 63타를 기록해 받은 에이지 슈트 기록 확인서. 라 이사장은 “원래 1944년생인데 독립운동을 하는 선친이 해방 전후 집을 비워 신고가 늦어져 호적에 1947년 생으로 기록됐다”고 했다. / 사진:라종억
자연과 함께 하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 때문에 골프는 기본적으로 인문적이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한 라운드는 한 사람의 인생 여정처럼 이야기가 창조된다(스토리 크리에이팅). 게다가 골프는 비극적인 스포츠다. 라 이사장은 “테니스는 끝나고 나면 멋진 샷, 좋은 것만 기억난다. 골프는 거꾸로 라운드 후 잘 안된 것만 기억이 난다. 상처가 모두 기억이 난다. 그래서 골프를 두고 자살 게임(suicide game)이라고 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골프의 슬픔엔 아이러니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라 이사장은 “골프는 잘 안되니까 더 잘 하고 싶은 욕망이 든다. 골프는 너무 비관적이어서 다른 불행한 것들이 상대적으로 덜 비관적이 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아름다운 사랑을 얘기한 ‘들장미’ 시를 쓴 이후 연애를 못했다.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다른 것은 시들해 보인다”라고 했다.

슬픈 골프를 하게 되면 다른 괴로움은 별 게 아닌 것이 되고 이를 통해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는 거다. 라 이사장은 “괴로운 일을 당해 매일 술을 마시고, 불면의 밤을 보내던 사람들이 골프를 통해서 평화를 찾은 걸 많이 봤다”며 “꼭 골프장에 가지 못하더라도 연습장에서 목표를 정해놓고 휘두르면 몰입을 하고 아픔을 잊을 수 있다”고 했다.


▎1968년 북악 스카이웨이 골프 연습장에서 홍덕산(가운데) 프로에게 그립 잡는 법을 배우고 있는 라종억 이사장(왼쪽). 당시 연습장에서 캐디들이 손으로 공을 놔줬다. / 사진:라종억
그는 태권도 8단에 합기도 9단이다. 사격 국가대표도 잠깐 했다고 한다. 미국 시카고 유학 시절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태권도장에서 가르칠 때 일화다. “덩치 큰 흑인이 찾아와 대련하자고 했다. 태권도는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운동이 아니다. 그에게 벽돌을 손에 올려놓고 깨보라고 했다. 아무리 세게 쳐도 벽돌은 손에서 떨어질 뿐이다. 나는 벽돌을 깼다. 태권도 수련이 깊으면 겉은 멀쩡하게 두면서 창자를 끊을 수 있다. 겉은 약해 보여도 속이 강해야 진짜 강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드라이버로 351야드를 친 적도 있다.

이런 일화를 들으면 관운장 같은 무인이 연상되는데 그의 가장 큰 정체성은 시인이다. 문인으로 동백상도 받았다. 골프에 대한 시도 쓴다. ‘곡달장송을 이정표 삼아/ 먼 곳에서 온 기러기 손은/ 곡달산 정상에 나래를 접고/ 숨을 돌려 우리를 보네...’ 프리스틴 밸리 골프장에서의 감흥을 적은 시다. 시뿐 아니라 수필식 자서전을 쓰고 ‘스케치 포엠’이라는 즉흥시를 쓴다. 여유로운 여행 에세이, 손녀의 성장에 대한 책도 냈다.

라 이사장은 말투가 여성처럼 부드럽다. 아들 뻘인 기자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평생 한눈팔지 않고 도덕 선생님처럼 살았다고 평했다. 그는 “다른 곳을 둘러보지 않고 내 일에 만족하고 노력하면서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잡기에도 능하다. 석 점을 놓고 조치훈에게 이기고, 조훈현에게 아깝게 진 바둑 아마 6단이며 와인 애호가이기도 하다. 라 이사장은 “골프는 바둑, 와인과 비슷하다. 수천 년간 똑같은 바둑이 없었듯, 똑같은 골프도 없었다.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오고, 오래 시간을 끌면 슬라이스가 나온다”고 했다. 그는 “와인은 단순하게 마시고 취하는 걸 뛰어넘어 인간의 五感(오감)을 일깨우는 것이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골프는 탁 트인 잔디에서 무엇인가를 후려 패는 공격 본능을 충족시키는 운동이다. 거기에 자신을 이겨 내는 극기의 과정과 예절이 첨가됐다. 자연에 도전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본능과 문명사회의 자기관리 능력이 조화를 이룬 운동”이라고 했다.

태권도 8단, 합기도 9단, 바둑 아마 6단


▎2015년 렉스필드 골프장에서 열린 사슴배 골프 대회에서 이븐파 72타를 쳐 우승한 라종억 이사장. / 사진:라종억
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뛰어날 수 있을까. 그는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는 일이관지(一以貫之)를 얘기했다. “태권도를 배우고 나니 다른 운동의 원리도 알겠더라. 사격의 조준은 골프의 어드레스와 똑같다. 골프 임팩트는 태권도의 임팩트와 같다. 하나를 제대로 알면 세상의 이치를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문(文)과 무(武)를 합치면 찬란할 빈(斌)이라는 한자가 된다. 라 이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한자다.

그의 선친은 독립운동가로 상하이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고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백봉 라용균이다. 그의 이름을 딴 ‘백봉 신사상’은 모범적인 의정 활동을 한 국회의원에게 주는 상이다.

라 전 부의장은 6남 1녀를 뒀다. 2남인 라종욱은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를 역임했고, 3남 라종오는 버지니아공대와 홀린스대학에서 정치행태학 등을 가르쳤다. 4남 라종일은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졌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경희대 정외과 교수를 거쳐 김대중 정부에서 주 영국 대사, 노무현 정부에선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과 주일본 대사 등을 역임했다. 6남인 라종억 이사장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을 졸업했고, 경기대에서 명예경영학박사, 순천향대에서 명예 정치학박사, 카자흐스탄 국립예술대 명예 문화학박사 학위도 있다.

골프와 인연은 아버지가 맺었다. 라용균 전 국회부의장은 일제시대 독립운동도 했지만, 부호이기도 했다. 1930년대부터 군자리 코스에서 골프를 즐긴 20여명의 한국인 중 한명이었다. 라종억 이사장의 장인은 신진자동차 사장이었다. 대학 1학년 때 해운대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청혼을 했고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해로하고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운동 신경도 타고났고, 머리도 좋으면 태어나자마자 인생 성공이 보장된 건 아닐까.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라 이사장은 “천재는 1%의 재능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그 1%의 재능은 노력하게 하는 열정(熱情) 유전인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소매치기가 된 대부호의 아들도 있고 최호성처럼 시련을 이겨낸 선수도 있다”는 예를 들었다. 한국과 일본 골프 투어에서 5승을 거둔 최호성은 수산고 3학년 때 참치 하역 작업 실습 중 장갑이 언 참치에 달라붙는 바람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잘렸다. 복부 피부 이식 수술로 봉합을 했지만 날이 차면 아프고, 감각이 무뎌진다. 막노동, 철강회사 하청업체, 광산, 슈퍼마켓 배달, 자판기 청소 등을 했다.

라 이사장은 “나도 운동하면서 안 다친 곳이 없다. 합기도의 비검술을 하다가 칼이 팔을 관통한 적도 있다. 시가 안 나와 몇 날 밤을 고민할 때도 있다. 3년 전 척추관협착증으로 10m 도 못 걸었다. 그러나 방법을 찾고 노력을 하면 길이 있더라. 허리가 아파도 하루 1만7000보씩 걸었다. 넉 달 걸었더니 병이 나았다”고 했다.

그는 또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면 투지가 부족한 단점도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여유가 있다. 최선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분명히 나온다. 사회는 열심히 노력하는 몇몇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독립운동가 라용균의 막내 아들


▎서울 통일문화연구원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라종억 이사장. 그는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을 위한 봉사가 인생 최고의 과업”이라고 했다. / 사진:지미연 객원기자
골프를 잘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 이사장은 “기본 기술은 제대로 배워야 한다. 몸을 만들어야 한다. 스트레칭을 하고 금주, 금연 등 몸을 아껴야 한다. 해머던지기 같은 원심운동을 이해해야 한다. 이삿짐센터 직원이 냉장고를 덜컥 지는데 그건 힘이 아니라 기술이다. 기본기에 충실해야 하고 연습을 많이 하고 책도 봐야 한다”고 했다.

회초리를 휘두를 때를 연상하라고 했다. 라 이사장은 “회초리는 손목이 올라가서 회초리 끝이 낭창낭창하게 느껴지는 순간 손목이 내려간다. 골프 스윙에도 대입할 수 있다. 어깨부터 클럽의 헤드까지를 회초리로 생각하고 몸의 허리가 회초리를 휘두르는 손목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몸을 회전시켜 팔과 그립, 골프클럽까지 회초리가 부드럽게 돌아가야 스피드가 난다”고 했다.

더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은 “자신에게 맞는 코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라 이사장은 “한 사람의 얘기만 들으면 어렵다. 어떤 사람이든, 전문가인 의사나 변호사도 완벽하지 않다. 자신이 공부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 크로스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느껴야 한다. 1968년 골프를 시작한 후 처음 3개월을 홍덕산 프로와 합숙하며 보냈다. 홍덕산 프로에게 배운 건 골프 기술이라기보다는 노력이었다. 몇 시간씩 벙커샷을 하고 새벽에 러닝을 하는 그런 노력, 정신력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기술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는 “최상호 프로는 오른손으로 퍼트를 하라고 하는데 나와는 안 맞더라. 자기가 배워야 한다. 남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찾아다니면서 조언을 듣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

8년 전부터 그의 마음은 카자흐스탄에 가 있다. 2013년 통일부 산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문화예술체육분과 위원장을 지내던 라 이사장은 카자흐스탄 고려인 청년들의 한국 유학을 지원했다. 라 이사장은 “당시 알마티의 한 시장에서 완전히 한국인처럼 생긴 아주머니가 빈대떡을 팔더라.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마음이 찡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통일과 나눔 아카데미 중앙아시아 지부를 알마티에 설립하고 고려인 대상 한글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 현대병원과 함께 현지 의료봉사도 한다. 2019년에는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지역(바슈토베 언덕)에 고려인 추모비도 설립했다. 라 이사장은 “1937년 10월 소련 당국은 고려인들을 차가운 기차에 태워 몸 숨길 곳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버리듯 두고 가버렸다. 고려인 조상들은 땅을 파고 찬바람을 피해 부둥켜안고 살아남았다. 그들의 묘비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추모비엔 그가 ‘동족여천(同族如天·동족을 하늘처럼 섬기자)’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이 언덕을 역사 유적지로 조성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골프는 그 다음, 다음으로 중요한 일일 뿐이다.

※ 성호준 골프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일보 사회부와 스포츠부를 거쳐 골프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중앙SUNDAY. 네이버에 ‘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골프 진품 명품’ 등의 칼럼을 연재했다. JTBC골프 채널에서 [JTBC골프 매거진] [LPGA 탐구생활] 등을 진행했다. 저서로 [타이거 우즈 시대를 사는 행복][맨발의 투혼에서 그랜드슬램까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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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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