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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자연에 맞춘 제철 밥상의 맛있는 이야기 

도예가 아침상은 새벽 시장서 결정된다 

“그릇과 음식은 재료가 기본”… 좋은 흙 찾아 가마 옮겨
식사 메뉴도 2시 시작 작업 뒤 구입한 식자재따라 결정


여기,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그릇을 만들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담아 먹는 사람이다. 손수 빚은 그릇이 마음에 차고, 손수 지은 음식이 몸을 채우니 부러울 게 무에 있으랴. ‘그릇 굽는 신경균의 계절 음식 이야기’라는 부제만 봐도 그 넉넉함을 알겠다.

무릇 그릇과 음식은 닮은 점이 많다. 음식 담는 게 그릇이라는 것 말고도 그렇다. 그릇과 음식 모두 불을 잘 다뤄야 한다는 것이야 이해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가마 불 때는 데도 물을 잘 써야 한다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물은 불을 끌 때만 쓰는 것이 아니라 큰불을 만들 때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음식이나 그릇이나 재료가 기본”이라는 점이 닮았다. 도예가 신경균의 그릇과 음식이 맞닿는 지점도 바로 그것, 재료다. 부산광역시 장안에서 30년째 그릇을 굽고 있지만, 작가는 여러 차례 가마를 옮겼다. 덤벙다완을 만들고 싶어 고흥에 가마를 짓고 14년을 살았고, 사발을 만들려고 문경으로 가마를 옮겼다. 경주에 머물 때 달항아리를 만들고 싶었는데, 재료를 못 구해 양구에 가마를 짓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영·정조 때 양구 백토를 썼다는 기록을 보고 수소문한 끝에 양구에서 백토를 찾은 것이다. 기존에 쓰던 하동 백토와 섞어 실험하기를 수차례, 드디어 성에 차는 달항아리를 만들 수 있었단다. 그런데 양구 백토를 외지로 내올 수 없으니 가마가 양구로 가야 하는 것이다.

좋은 흙 찾아다니는 발걸음에 좋은 먹거리 재료들이 눈에 따라 들어왔으리란 유추가 어렵지 않다. 지금도 나무 물레를 발로 ‘차서’ 돌리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작가에게 좋은 음식 재료란 제철에 제 땅, 제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다. ‘참꽃(진달래)이 피면 바지락을 먹고’라는 책 제목에서 이미 냄새 맡은 그대로다.

그렇게 시작하는 작가의 아침상은 남들 눈에 ‘거’하다.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2시에 일을 시작하기에, 작가의 아침 식사는 다른 사람들의 저녁 식사인 셈인 까닭이다. 무엇을 먹을지 미리 정하지도 않는다. 새벽 일을 마친 뒤 시장에 가서 그날 나온 산나물과 생선, 해산물을 고르면 비로소 아침 메뉴가 정해진다. “시장이 달력보다 자연의 때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대단하거나 화려한 게 아니고 그저 자연에 맞춘 것”이라지만 자연에 맞췄기에 대단하고 화려하다. 생선가게 주인이 잡혔다고 연락해오는 1.5㎏짜리 줄가자미나 6㎏ 돌돔, 10㎏ 갯장어는 말할 것도 없고 깊은 산에서 캔 더덕과 병풍초, 송이, 능이가 그저 “수수한 집밥”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제철에 나는 것은 풍성해 이웃과 지인들이 오가며 함께 먹기 좋은” 집밥이다.

이처럼 자연에 맞춘 식성은 고려 다완을 재현한 작가의 부친 고 신정희 선생한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걸 모르고 아내 임계화씨는 신혼 때 피망·양상추·토마토·통조림 옥수수를 넣고 샐러드를 만들어냈다가 “사료 주나?” 핀잔을 들어야 했다.

작가는 장안 집 “동쪽 창에는 붉은 것이 좋아 석류를, 남쪽 창에는 맹종죽을, 서쪽에는 그늘 많이 드리우는 느티나무를” 심었다. “반듯한 조경보다 집과 나무가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곳에서 수수한 집밥을 먹고 사는 그를 매일 사료만 먹는 나는 부러워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cielbleu@joongang.co.kr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월간중앙과 중앙SUNDAY에 모두 공급합니다.

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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