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정치특집] 대선의 계절에 주가 오르는 김종인, 야권 통합엔 먹구름? 

‘김종인 상왕’ 프레임, 윤석열은 어떻게 돌파할까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중도 확장성과 대선 판세 전략 세우려면 김종인의 ‘경험’ 필요해
윤석열 ‘통합형 선대위’ 바라지만 김종인은 ‘실무형’ 원해 시각차


▎2021년 11월 15일 김종인(앞줄 오른쪽 셋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윤석열(앞줄 왼쪽 셋째)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이날 김 전 위원장의 선대위 합류를 공개 요청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비롯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금태섭 전 의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전 제주지사, 정진석 국회부의장, 주호영 의원, 하태경 의원, 진중권 동양대 교수, 권경애 변호사, 김경률 회계사….

2021년 11월 15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김종인(81)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하 위원장)의 출판 기념회는 권력이 지금 어디로 향하는지를 함축하는 장면 같았다.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윤 후보는 권성동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 후보 비서실장, 이양수 선대위 수석대변인 등과 함께 노(老) 정객을 찾았다. 그는 축사에서 “국가 대개조가 필요한 시점에 또다시 김 박사님께서 역할을 하셔야 될 때가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며 “어려운 정권 교체와 국가 개혁의 대장정을 벌여나가는 이 시점에서 그동안 쌓아오신 경륜으로 저희를 잘 이끌어주시길 부탁드리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극존칭을 써가며 선대위 합류를 간청했다.

보스가 아니라 보스에게 귓속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에게 힘이 쏠리는 것이 정치권력의 문법이다. 어쩌면 김 전 위원장의 정치 인생에서 정점을 찍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에서 족적을 남긴 대다수 거물 정치인이 플랫폼+콘텐트 기반이었던 것과 달리 김 전 위원장은 콘텐트만 지니고 있다. 지역, 세대의 지지 기반 없이 한국 정치의 ‘인싸’가 된 만큼 그를 둘러싼 적정가치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에 김 전 위원장의 내재가치를 긍정하는 시선이 있다. 이념적으로 중도, 지역적으로 호남을 끌어들이고 정치공학적으로 선거 판세 전략을 설계할 때 그만한 인물이 없다는 의견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광주 5·18 묘역 ‘무릎 사과’로) 호남에서 (다른 야당 유력 정치인에 비해) 김 전 위원장에 대해 거부감이 적다. 그리고 그의 주특기는 ‘물타기’다. 상대편이 먼저 주장할 것 같은 어젠다를 먼저 치고 들어간다. 민주당의 이슈를 보수가 뺏어오면, 중도층은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도 “진보의 가치를 수혈해 보수의 약점을 보완하겠다는 데 김 전 위원장의 가치가 있다”며 “경제민주화가 그렇다. 김 전 위원장은 이재용, 최태원이 한국 경제를 끌고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종인의 가치를 둘러싼 극과 극 평가

그리고 다른 한편에 김종인 거품론이 자리한다. 김 전 위원장의 가치가 과대평가됐다고 판단하는 관점이다. 이들은 과거 여야를 넘나들며 김 전 위원장이 해냈다고 알려진 선거 성과가 실상 뜯어보면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2022년 3월 대선도 ‘김종인이 가서 윤석열이 이긴다’가 아니라 ‘윤석열이 이기니까 김종인이 간다’고 바라본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김 전 위원장이 윤석열 선대위에 합류한 순간부터) 민주당이 과거 전두환 국보위 경력, 동화은행 비리 사건 등을 들추기 시작하면 2030세대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 아울러 2030세대는 이런 정치인에게 기대는 윤석열 후보가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그는 “김종인의 중도 확장성은 오른쪽에 치우쳐 있었던 2012년 대선의 박근혜 후보 때는 먹힐 수 있었다. 박근혜에게 기대할 수 없는 이야기를 김종인의 입을 빌려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박근혜에 비해) 중도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대위에 영입해봐야 기대했던 효험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다.

선대위에서 김 전 위원장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정작 윤 후보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선 선대위 캠프는 후보 중심으로 가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윤석열 후보의 이미지는 강인한 불도저다. 이런 후보가 김종인에게 끌려가는 모습으로 비치면 오히려 매력이 반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벌써 민주당은 ‘김종인=흥선대원군, 윤석열=고종’이라는 식의 상왕(上王) 프레임을 작동하고 있다.

2021년 11월 5일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되자 김 전 위원장은 기민하게 구도를 잡기 시작했다. “파리떼”, “자리 사냥꾼”, “문고리 3인방” 같은 자극적이면서도 귀에 쏙 박히는 김 전 위원장 특유의 화법이 등장했다. 플랫폼이 빈약한 김 전 위원장이 세(勢)를 확보하는 패턴은 일정하다.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구세력의 상징적 세력 혹은 인물을 친다. 그다음에 새로운 피를 수혈해 그 자리를 메워 혁신 이미지를 전파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파리 떼’와 ‘자리 사냥꾼’은 누구를 지칭?


▎2021년 4월 8일,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바로 다음 날 김종인(앞줄 오른쪽)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명예롭게 물러났다. 이후 그를 향한 정치권의 수요는 급증했다.
실제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영입된 김 전 위원장이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시절 이해찬, 정청래 등이 숙청당하다시피 공천을 받지 못했다. 공식적으로는 직접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그가 자유한국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2020년 총선에서도 홍준표, 김태호 등이 공천 컷오프 됐다. 게다가 4·15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생환한 홍준표 의원이 복당을 원했을 때, 김 전 위원장이 반대 의사를 나타내면서 둘의 관계는 더 악화했다.

윤석열 선대위 합류를 앞둔 시점에서도 김 전 위원장은 ‘반(反)김종인 연대’의 싹을 자르겠다는 행보를 보였다. 칼날은 장제원 의원, 주호영 의원,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 김무성 전 대표 등을 향하고 있다. 현재 국민의힘은 주류 계파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근혜, 문재인 같은 당내 대 주주가 없으니 그 어느 때보다 김 전 위원장이 원하는 바를 최대한 지를 수 있는 환경이다. 더 호재인 점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그를 정치적 멘토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 외곽에서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같은 영향력 있는 논객이 김종인 전권 선대위 체제 지지를 표명했다.

선대위가 출범하기도 전 시점부터 김 전 위원장의 입김이 들어가는 모양새가 강했다. 금태섭 전 의원, 윤희숙 전 의원, 임태희 전 의원 등을 선대위 요직에 임명하려는 그의 의중이 언론에 흘러다녔다. 이미 11월 10일 임명된 김병민 선대위 대변인과 윤희석 전 윤 캠프 공보특보도 ‘김종인 키즈’로 분류된다.

국민의힘 후보가 된 뒤 윤 후보의 첫인사는 비서실장 임명이었다. 11월 8일 4선의 권성동 의원이 내정됐다. 권 의원은 경선 당시 윤 캠프 종합지원본부장을 역임한 최측근이자 윤 후보의 1960년생 동갑 친구다. 둘은 초·중·고 시절부터 강릉에서 알고 지낸 사이였다. 권 의원은 강릉 출신이고, 윤 후보는 강릉에 외가가 있다. 검찰총장 사퇴 후 윤 후보가 처음 만난 정치인이 권 비서실장이었다.

당초 윤 후보가 염두에 둔 비서실장은 장제원 의원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장 의원은 윤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역임했었다. 그러나 아들인 래퍼 노엘(본명 장용준)이 9월 18일 무면허 운전과 음주 측정 거부 및 경찰관 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자 장 의원은 윤 캠프 총괄실장에서 사퇴했다. 김 전 위원장은 아들 문제로 구설에 오른 장 의원이 비서실장으로 컴백하면 여론이 악화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윤 후보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김 전 위원장과 장 의원의 껄끄러운 관계가 진짜 본질이라고 바라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을 이끌 때를 전후해 장 의원은 “옹졸하다”, “알량한 정치기술자”, “노욕에 찬 기술자”, “희대의 거간 정치꾼” 등의 비판을 가하며 감정이 쌓였다는 것이다.

선대위 구성, 정치 초년생 윤석열의 첫 난제


▎김병준(왼쪽) 국민대 명예교수의 선대위 승선에 대해 김종인(가운데)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부정적이지만, 윤석열 후보는 원하고 있다.
복수의 증언에 따르면, 윤 후보는 어떤 형태로든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의 도움을 원하고 있다. 경선 때부터 “윤 캠프 좌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건넬 정도로 신뢰가 두텁다. 김 교수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이 특정 후보를 돕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회적으로 사양했다. 그러자 윤 후보는 선대위에서 요직을 맡아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윤 후보는 11월 11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했다. “소탈하면서 기득권과 싸운 노무현 정신을 잘 배우겠다”, “국민 통합이라는 것이 용서와 화해의 통합도 있지만 또 부당한 기득권을 타파함으로써 국민 통합을 기하는 측면이 있다”는 말을 했다. 노무현은 문재인과 다르다는 전제 아래 노무현을 본받겠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김 교수는 참여정부의 정책실장이었다. 문재인 민정수석 등 친노 주류와 정치적 철학이 판이했지만, 노 대통령은 김 교수의 ‘행정수도’ 등 정책 기획 능력을 중용했다. 결국 윤 후보와 김 교수의 결합은 ‘문 대통령과 차별화된 노무현 정신 계승’이라는 맥락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김 전 위원장과 김 교수가 불편한 관계라는 점이다. 2021년 4월 김 교수는 페이스북에 “당을 개혁한다며 굳이 긴 시간과 권한을 달라고 해 줬더니 ‘아사리 판’, ‘어차피 안 되는 당’ 운운하며 침이나 뱉고 있다. 그의 일 처리 방식은 일방적으로, 개혁이나 관리에 성공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고 조직에 대한 책임 의식도 없다”고 적시하며 김 전 위원장의 처세술을 비판했다. 이어 “윤 전 검찰총장이 뇌물 받은 전과자와 손을 잡겠나”라며 가장 아픈 부분을 찔렀다. 김 전 위원장은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당시 2억1000만원을 뇌물 수수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 확정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김 전 위원장도 가만있지 않았다. 곧바로 “하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며 “(김병준 교수가) 비대위원장을 했을 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맞대응했다. 11월 15일 출판기념회에서도 김 교수의 선대위 합류 가능성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김 전 위원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나는 그런 이야기를 처음부터 안 한다. 뭐가 짜이면 그때 가서 판단하는 것이지 미리부터 어쩌고저쩌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잘랐다.

김 전 위원장이 윤석열 선대위에 입성하는 순간 구주류인 김무성계는 소외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11월 15일 마포포럼에서 “이준석 대표와 김종인 전 위원장이 윤석열 후보를 도왔거나 앞으로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당원들을 파리 떼, 하이에나, 거간꾼으로 매도하는 등의 분열 리더십이 과연 선거에 도움되는 일이겠냐”며 “대선은 후보가 돋보이도록 모두 뒤에서 자신을 낮추거나 숨겨야 한다. 후보 이외의 다른 인사가 나서면 선거를 망친다”고 반격했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도 라디오 방송에서 “킹 메이커를 한 번 하면 됐지 몇 번씩 하느냐”며 “그건 과욕이자 본인의 욕심”이라고 견제했다.

친(親)김종인과 반(反)김종인의 경계가 뚜렷해질수록 최종 결정권자인 윤 후보가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 관건은 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이 어느 선에서 타협할 수 있느냐다. 윤 후보로서는 김 전 위원장이 꺼리는 인물들을 전부 다 내치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만에 하나 이렇게 흘러가면, 윤 후보 주위에 사람이 모이기 어렵다. 선대위가 후보 중심이 아닌 채로 돌아가는 인상을 주는 것도 부담이다. 선대위 구성 이후에도 김 전 위원장과 한배를 타는 한, 안건이 생길 때마다 어디까지 요구를 들어줘야 할지는 정치 초년생 윤석열에게 상당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김형준 교수는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과의 관계에서 설득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면, 자칫 권력 다툼으로 비쳐져 국민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고 경계했다.

국민의당 실체 놓고 설전


▎2021년 4·7 재·보궐선거까지 김종인(왼쪽 둘째)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과 안철수(오른쪽 둘째) 국민의당 후보는 어색한 동거를 했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적대감을 표출했다.
김 전 위원장이 윤석열 선대위 간판으로 존재하는 한, 대선까지 윤 후보가 필연적으로 짊어져야 할 부담도 짙어진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대표적이다. 둘의 불화는 정치권에서 서사가 길다. 2012년 이전 무렵만 해도 김 전 위원장은 안 후보의 정치적 멘토로 불렸다. 그러나 안 후보의 “(김종인은) 여러 멘토 중 한 명” 발언 이후로 갈라섰다. 김 전 위원장은 안 후보와 정치적 지향이 전혀 다른 박근혜 후보 캠프로 갔고, 안 후보는 2012년 대선후보를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양보했다.

세월이 흘러 2021년 4·7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계기로 둘의 앙금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안철수로의 후보 단일화가 국민의힘 내부에서 탄력받았을 때부터 김 전 위원장은 일관되게 반대했다. 2021년 1월 12일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그는 “안철수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본인 외에는) 아무도 없다”, “안 후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입당을 하느니, 합당을 하느니 이따위 소리들을 꺼내나?”, “3자 구도로 가도 국민의힘 후보가 이길 수 있다” 등의 혹평을 쏟아냈다.

실제 국민의힘은 오세훈 후보를 선출했고, 지지율 역전으로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안 후보는 오세훈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다. 이때도 김 전 위원장과 안 후보는 유세 단상에 같이 올라가지 않는 등, 서로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다. 이후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자 다시 드러내놓고 으르렁대는 관계로 치달았다. 선거 직후 국민의당에서 “선거 승리는 안철수 대표가 주도한 단일후보 시너지 효과 때문”이라고 하자 김 전 위원장은 곧바로 “지금 ‘야권’이라는 것은 없다”며 “실체가 없는데 무슨 놈의 야권이며, 무슨 대통합 타령이냐”라고 강하게 불쾌감을 표시했다. 비례대표 의원 3명뿐인 국민의당의 실체 자체를 거의 무의미하게 본다는 맥락이다. 이어 그는 4월 8일 마지막 비대위 회의 직전에는 “안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을 축하하며 ‘야권의 승리’를 운운했는데 건방진 소리다. 국민의힘이 승리한 것”이라고 강한 톤으로 강조했다.

안철수 독자 출마해도 정권 교체할 수 있다?

김 전 위원장의 이런 시각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상당 부분 계승된 상태다. 양당 합당 과정에서 나온 이 대표의 “소값은 완벽하게 쳐 드리겠지만, 그 나머지 값은 어렵다”는 발언 속에는 안 후보의 정치적 지분을 그리 높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함의가 담겨 있다. 실제 이 대표는 11월 3일 “상황에 따라 검토를 해야지 통합만 하면 이긴다는 간단한 도식으로 하다 보니 국민이 개혁에 의문을 갖게 된다”며 “정치 공학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이면 실패”라고 말했다. 그는 “당 지도부, 대선후보와 미리 상의하지 않고 (단일화) 거간꾼 노릇하는 사람은 해당 행위자로 일벌백계 처리하겠다”는 경고까지 했다. 이에 대해 안 후보의 선거대책총괄본부장인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단일화 선제안은 없을 것”이라며 “혼자 감정에 못 이겨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한다”고 이 대표를 겨냥했다.

11월 15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안 후보 지지율은 4%로 나왔다. 윤 후보(45.6%)가 이재명 민주당 후보(32.4%)를 오차범위 바깥으로 앞서고 있지만, 간격이 좁혀진다면 안 후보의 협력이 아쉬울 수 있다. 김종인·이준석과 안철수가 견원지간이어도 후보 단일화는 결국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신율 교수는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가 이뤄졌다”는 전례를 들었다. 정권 교체 여론이 비등할수록 단일화 압력이 안 후보를 향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윤석열과 김종인의 동행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여부다. 김 전 위원장은 과거 숱한 정당에 참여했지만, 대부분 끝이 좋지 않게 나왔다.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자격으로 박근혜 후보를 도운 2012년 대선만 해도 선대위에서 갈등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김 전 위원장이 아니라 김무성 당시 총괄 선대본부장이 꼽힌다. 2021년 4·7 보궐선거 승리 후 국민의힘을 떠나면서도 “국민의힘으로 대선을 해볼 도리가 없다”, “저 아사리 판에 윤석열도 안 갈 것 같다” 등의 독설을 가했다.

윤 후보를 향한 과거 발언도 일관된 것이 아니었다. 2021년 1월 김 전 위원장은 ‘별의 순간’이라는 수식어를 당시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신분이었던 윤 후보에게 선사했다. 독일에서 유학한 김 전 위원장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 제목을 인용해 ‘별의 순간’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윤석열의 정치 입성을 띄웠다. 그러다 2021년 3월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윤 후보와의 4월 만남이 결렬되자 태도가 냉랭해졌다. 5월 “흙수저에서 시작해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는 인물”이라며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호평하더니, 6월에는 “사심이 없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며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이어 7월에는 “대통령으로 갖출 자질은 다 갖췄다고 본다”며 원희룡 전 제주지사를 극찬했다.

윤 후보가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뒤 지지율 답보 상태에 빠지자, 김 전 위원장은 비판을 지속했다. 9월 금태섭 전 의원, 진중권 전 교수, 권경애 변호사가 만든 선후포럼 유튜브에 출연해 “본인(윤석열)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고 당이 어느 정도 압력을 가했는지 모르지만 급작스럽게 당에 들어가서 본인 스스로도 그 결정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랬던 김 전 위원장은 대안 옵션들이 소멸하고, 윤 후보가 야권 유력 주자 지위를 굳히자 서서히 태세를 전환했다. 특히 경선 마지막 구간에서 윤 후보에게 힘을 본격적으로 실어줬다. 왕(王) 자 논란, 전두환 옹호 발언 등으로 윤 후보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엄호 발언을 해줬다. 특히 10월 29일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일반 국민이 생각하기에 이재명 대 윤석열 경쟁으로 볼 것이기 때문에 (경선도) 그런 방향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윤석열 대세론을 점화시켰다.

“김종인은 항상 정배(강팀)에 베팅했다”

김 전 위원장은 “항상 정배에만 베팅한다”는 촌평을 듣는다. 정배는 스포츠토토에서 강팀에만 돈을 거는 행위를 일컫는다. ‘역배’보다 배당률이 높진 않지만, 돈을 딸 확률이 높다. 신율 교수는 “김 전 위원장은 킹 메이커라기보다 한국 정치의 판세를 가장 잘 읽는 사람”이라고 요약했다. 누군가를 승자로 만드는 영향력 자체는 미약하지만, 누가 승자가 될지를 간파하는 안목은 빼어나다는 뜻이다.

김 전 위원장과 인터뷰를 한 적마다 마지막에 꼭 듣는 말이 있었다. “다시는 안 한다”, “지쳤다”, “혼자서 세상 돌아가는 책이나 보고 살 것이다.” 그가 이 다짐을 실현할 때는 대체 언제일까. 적어도 당분간은 아닐 것 같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images/sph164x220.jpg
202112호 (2021.1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