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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황하문명’ 중국의 문화 습격에 담긴 노림수 

공산당의 정당성, 공산주의 사상의 우월성 선전이 주목적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태권도·한복·비빔밥·김치 등 한국 고유 전통문화까지 중국 것이라 주장
중국 공산당, 외국 문화·사상 유입에는 인색하다 못해 알레르기 반응까지


▎중국에서는 ‘타도공가점 (打倒孔家店· 공자[초상화]의 거점을 부수는 일)’의 위기를 거쳐 지금 다시 유교에 대한 재평가와 논쟁이 뜨겁다. 2017년 전국인민 대표회의에서손뼉을 치고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 등 최고 지도자들.
중국의 황하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원지 중 하나다. 인류 문명의 후손들은 이후 생성된 중국의 문화에 매료돼 있다. 중국의 많은 문화유산은 인류가 불가사의로 여겨질 만큼 신비하다 못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다. 순수한 문화만으로도 중국의 매력은 독보적이다.

문제는 중국이 그러한 문화를 대내적으로는 통치 수단으로 이용하고, 대외적으로는 ‘공격 수단’의 하나로 활용하는 데 있다. 굳이 세계를 향해 문화적 공세를 펼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중국 문화는 충분한 매력인데 말이다. 더 아이러니한 사실은 중국 공산당이 문화대혁명 시기(1966~76)에 한때 파괴하려 했던 전통문화와 문화유산을 막대한 경제력을 통해 복원하는 중이라는 점이다. 이마저도 성에 차지 않는지 중국 공산당은 재력을 앞세워 외국에 문화전(戰)을 도발하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소프트 파워’와 공공외교를 내세워 외국에 자신의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문화·교육·사업에 적극 투자하면서 그 의도와 목적에 의구심이 일고 있다. 심지어 최근 중국은 태권도·한복·비빔밥·김치 등 우리의 고유 전통문화까지 자신의 것으로 정의하려 한다.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문화가 언어·생활방식·관습·전통·풍습·제도·사상 등을 모두 아우른 결정체라는 것을 중국도 수용한다. 이를 공유한 사회 주체가 민족이고, 민족이 공통된 문화를 향유하고 이를 경계로 설립된 단위 공동체가 국가다. 따라서 문화는 한 나라의 정체성의 관건이다. 적어도 다민족·다문화의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오늘날 중국은 55개의 소수민족과 한족(漢族)이 어우러지는 국가를 형성했다. 중국은 통일될 때마다 이민족을 정복하고 흡수하고 융합해야만 했다. 따라서 내부적인 결속을 다지고 이들에 대한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문화라는 공통분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의 통일을 이룬 모든 왕조와 황제가 황하문명을 기반으로 제도와 사상을 통일하는 국정을 펼쳐야만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전통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 때부터 쉽게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중국이 문화를 통치수단으로 사용했던 역사는 유구하다. 이는 중국 정치문화의 전통이 된 것이다.

중국, 역사적으로 소수민족 통치 정당화에 ‘문화’ 활용


대외적인 의미에서 중국의 문화 의미 역시 진화를 거듭했다. 중국 문명의 우월성은 중국 주변 국제질서를 지탱해온 조공체계의 중추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문화를 이웃 나라들이 습득함으로써 중국의 문화 질서에 순응하게끔 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특히 중국이 평탄하고 흥성할 때는 우월한 문화가 주변 국가들을 중국의 의존국으로 만드는 데 최선의 외교적 도구가 됐다. 결국 중국의 유구한 조공 질서를 문화가 지탱해준 셈이었다. 이런 중국의 외교적 유산이 오늘날 동아시아가 중국 문화권으로 규정되는 근거가 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 정치외교에서 문화의 의미는 또 한 번 진화한다. 대내적으로 문화는 세 개의 발전 단계를 겪게 된다.

첫 번째는 마오쩌둥 시기(1949~76)로 사회주의 문화를 탐구하는 발전 시기다. 이 시기의 특징으로 ‘중체서용(中體西用)’을 문화 건설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으며, 문화 발전을 위한 ‘백화제방(百花齊放)·백가쟁명(百家爭鳴)’을 방침으로 채택했다.

두 번째는 개혁개방 시기(1978~2012)로 사회주의 문화건설을 위한 발전 시기다. 이 시기의 특징은 사상 해방에 따라 중국 현대화에서 문화건설의 목표, 지위와 역할을 수립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세 번째 시기는 시진핑 국가주석 부임 이후 천명된 ‘신시대(2012~현재)’로 사회주의 문화 강국의 건설 단계로 명명된 시기다. 시진핑 시기의 문화는, 문화 자신감에서 우러나야 하는 힘임을 정의했다. 그 이유는 국가와 민족이 발전하는 데 가장 기본적이며 깊고 내구성 있는 힘이 문화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에 대한 자각과 자신감의 증강이야말로 중국이 가고자 하는 길, 견지하고자 하는 이론과 제도의 원천이라 주장하는 이유다.

중국은 지금의 시대적·역사적 상황을 100년에 한 번 찾아온 기회로 보고 있다. 중국의 부상이 100년 만에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야말로 중화문명을 부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결의가 중국 공산당 내부에 만연하다. 마오 시기에 마련된 ‘살신성인’의 정신에 입각한 혁명 문화라 할 수 있는 ‘홍색 문화’가 사회주의 문화로 안착했다.

그리고 개혁개방 시기를 맞아 중국의 사회주의 정신문명이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이는 문화시장의 육성이었다. 물질문명뿐 아니라 정신문명이 더해져야 비로소 사회주의 건설을 완성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시진핑의 신시대에서 문화의 시대적 의미는 중국인의 자부심과 자존감 회복은 물론 대외적으로 중국 문화의 우월성과 강대함을 알리는 기회다.

중국은 자신의 유구하고 찬란한 문화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를 세계와 공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역시 2011년에 문화 강국을 국정 목표로 공식화하면서 세계와의 인문·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중국은 대외적인 교류를 강조한다. 2020년 5월 아시아 문명 대화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문화가 다양하기 때문에 교류가 필요하고, 교류로 서로의 장점을 배우면서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밝혔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 문화 교류의 현실은 명목상의 교류에 불과하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의 문화 교류는 중국의 우월한 전통문화와 공산당의 정치적 치적을 세계에 선전하는 것으로 변질할 수밖에 없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중국의 문화 교류가 일방통행의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데 있다. 자신의 문호는 폐쇄하면서 대외적으로 자신의 문화 선전에는 공세적이다 못해 습격이라는 비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이 경제력을 앞세워 문화 교류를 자연스러운 결과로 포장하면서 그 의도와 목적을 선의적인 것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 공산당의 정당성, 공산주의 사상의 우월성과 합리성을 선전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반면 중국은 외국의 문화와 사상이 중국 내로 유입되는 것에 인색하다. 인색하다 못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중화문명의 붕괴가 외부 사상과 이념의 유입 때문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를 두고 세계는 중국이 이른바 ‘대외 공포증(xenophobia)’을 강하게 가진 나라로 치부한다. 특히 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이후에는 이 같은 중국의 습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서구의 이념과 가치관이 공산당의 통치 기반과 정통성을 잠식할 수 있다는 강한 우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호는 폐쇄하면서 문화 교류 주장하는 일방통행


▎‘천안문사태’는 1989년 6월 4일 베이징 한복판에 있는 천안문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중국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해 유혈사태를 빚은 정치적 참극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미 냉전시기에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에서 일어난 공산주의에 대한 소요 사태를 이런 이유의 결과로 정의했다. 또한 1989년 천안문사태를 서구가 이른바 ‘화평연변(和平演邊, 사상 침투와 같은 평화적인 수단으로 정권 전복의 계략)’을 시도한 결과로 규정했다.

이 같은 중국의 확고한 신념과 의식은 지난 여름 중국의 권위 있는 학자에 의해서도 다시 확인됐다. 왕지스 베이징대 교수는 [포린어페어스]에 게재한 ‘중국에 대한 음모(The Plot against China)?’ 기고문을 통해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아직도 중국 사회에 침투하려 든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 중국은 외국 사상과 가치의 용이한 유입을 심히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의 방증으로 중국 정부는 급기야 지난 10월 중국인을 포함한 개인 투자자와 외국 기업이 중국 미디어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즉, 중국의 SNS 플랫폼에 대한 투자를 전면 차단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제재의 일환으로꺼내 든, 지난 2016년부터 유지한 ‘한한령(限韓令)’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중국은 우리와의 인문문화 교류를 강조했다. 특히 내년이면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만큼 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그럼에도 중국이 ‘한한령’을 해지하려는 노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아직도 중국 내에서 우리의 드라마나 방송을 시청할 수 없다. [KBS 월드]와 [아리랑 국제방송]도 중국에서는 수신이 불가능한 현실이다.

시진핑이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되기 직전인 2011년에 중국 공산당은 문화 강국의 목표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2020년 11월에 개최된 중국 공산당 19차 5중전회에서 2035년까지 문화 강국 달성을 확정했다. 시진핑의 신시대에 들어와서 중국의 문화 강국 달성을 위한 로드맵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우월한 중화민족의 새로운 창조적 전환과 창의적 발전을 핵심 골자로 담았다. 그리고 그의 시대를 ‘신시대’로 규정한 작금에 중국의 정신문명 건설은 그가 세운 국정 목표와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주지하듯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된 2012년부터 내세운 ‘중국의 꿈(中國夢)’, 즉 ‘중화민족의 부흥’을 국정 최대 목표로 내세웠다.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49년에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실현하겠다는 중국 공산당의 포부를 알렸다. 여기에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문화의 완성도 포함됐다.

이는 전 민족의 문화 창조능력을 끌어올려 중국의 정신을 배양하고 정신문명의 수요를 충족시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문화를 풍부하게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정신문명(문화)의 구현이 곧 문명 강국으로의 부상을 의미한다.

지난 19차 5중전회에서 중국 공산당은 문화를 양질의 문화 발전이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갈구하는 중국인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정당한 수단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문화는 중국 사회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그 가치를 알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화제방과 백가쟁명’의 정신이 살아야 하고 문화의 창조적 전환과 창의적 발전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완성이 물질문명뿐 아니라 정신문명의 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문화 발전의 이상적 구현 과정에서 이념과 가치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 2012년 18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이념을 전당·전 국민·전 민족의 사상과 행동을 통일시키는 통섭적(通涉的)인 위상을 공표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가 견지될 때 생명력과 창조력이 강한 사회주의 정신문명이 탄생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념이 인식을 지배하면 문제 발생하는 건 자명


▎2019년 9월 베이징의 중국 건국 70주년 군사퍼레이드 예행연습 중 치안 유지를 위한 현지 주민 감시 조직인 ‘차오양 군중’ 성원이 시민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문화에 대한 사회주의 이념과 가치의 주도적인 견인차 역할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그래야 오늘날 중국이 역대 왕조가 붕괴한 과오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부 결속력을 강화하고 통치 기반을 견고히 하는 데 이념 주도의 문화적 기반의 중요성을 알린 것이다.

이렇게 이념이 문화에 대한 인식을 지배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자명한 결과다. 세계적인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저비스는 그의 명저 [국제정치에서 인식과 오인]에서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념이 인식을 지배하면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는 오류를 쉽게 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그의 주장에 부합이라도 하듯 시진핑 주석은 결국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미디어와 여론에 대한 이념적 통제를 강조하고 나섰다. 미디어와 여론이야말로 이념 투쟁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는 자연스럽게 정당화될 수밖에 없다. 그 여파는 공산당이 타국 문화에 대해 편파적이고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입장과 자세를 가지는 것으로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주변국의 문화유산 원천까지 약탈하려는 속내

중국 공산당에게 있어 문화는 내부 단결과 결속력을 다지고 대외적으로 중국의 우월성을 알리는 수단이다.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중화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부각할 수밖에 없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인에게 중국의 정체성을 함양하기 위해 동원되는 최적의 수단은 민족주의가 된다. 민족주의로 중국인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고, 민족주의로 중국의 폐쇄적 문화교류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이 국가를 영도하는 중국의 독특한 국가 체제 때문에 중국의 민족주의의 선봉에는 공산당이 존재한다. 따라서 공산당이 중국의 문화적 공격에 배후로 지목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 여기서 중국 공산당이 왜 대외적으로 문화적 공격을 자행하는지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산당의 목표는 만천하에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2049년에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실현하면서 이를 몸소 체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추구하는 강국의 면모에는 문화 강국이 포함된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이 의미하는 문화강국은 사회주의 문화강국이다. 사회주의 문화 강국은 곧 사회주의 이념과 가치로 차별되는 문화로 무장된 강국을 뜻한다. 따라서 중국의 문화외교는 본연의 의도와 목적과는 다르게 공세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색채가 더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내부에서부터 그 빛이 발산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그 색채가 희석되는 것을 선제적으로 방어해야 한다. 중국의 문화 교류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이고 일방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대외적으로 사회주의 이념과 가치가 가미돼 발산하는 사회주의 문화의 교류 방식은 공세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과 이념을 달리하는 나라에 이는 불가피한 결과다. 문화 교류가 정치적 공세의 도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나라에 사회주의를 홍보하는 것 자체가 반감과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중국이 공공외교를 통해 ‘소프트 파워’를 증강하려는 과정에서 같은 결과를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공자학원’의 설립 목적과 의도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시진핑의 중국은 세계의 비판과 의심을 개의치 않는 자세로 일관한다. 오히려 우리와 같은 주변국의 문화유산 원천까지 약탈하려 한다. 그가 강조하는 문명의 다양성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주목해볼 만한 사실이 있다. 서구에서는 스파게티·피자·넥타이 등의 유래를 두고 벌이는 문화적 설전을 볼 수 없다. 왜 유독 동아시아에서만 이러한 설전이 아직도 나타나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왜 동아시아의 문화유산에는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가 병행되는지도 말이다.

같은 문명권에 속한 우리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이념과 가치를 떠나서 중국의 문화적 공격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자신의 문화전통과 유산을 한때 부정했던 중국 공산당에 원죄가 있는 듯하다.

-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jwc@khu.ac.kr

202112호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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