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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민관열전] 환경과 사람 잇는 ‘생명 전도사’ 이항진 여주시장 

“생명 보살피듯 막힘없는 행정으로 상생 여주 만든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환경운동 경험 바탕으로 사람과 환경이 조화 이루는 정책 펼쳐
코로나19 신속 PCR 검사 도입 등 적극적인 행정 추진력 돋보여


▎이항진 여주시장은 오랫동안 지역에서 환경운동을 하다가 시의원을 거쳐 2018년 지방선거에서 시장에 당선했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생명의 순환 원리를 시정에 접목해 눈길을 끌고 있다.
남한강이 관통하는 경기도 여주는 예로부터 풍요와 생명의 고장으로 이름 높았다. 비옥한 땅과 맑은 물 덕분이다. 이항진 여주시장은 환경운동가 출신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장 수백 명 중에서 환경운동을 경험한 이는 손에 꼽는다. 천혜의 환경을 간직한 여주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깊이 깨달은 그가 목민관의 사명을 안은 건 숙명일지도 모른다. 11월 8일 시청 집무실에서 이 시장을 만났다.

환경운동가로서 남한강 곳곳을 탐사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는데 시의원을 거쳐 시장 당선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돌이켜 보면 제가 1999년부터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회운동에 발을 들였다. 한때 지역의 큰 문제였던 대형 마트 입점 논란을 거쳐 4대강 사업 문제를 겪으면서 운동가의 길을 가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들어 협동조합운동으로 잠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협동조합 활동을 마치면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그동안 활동 경험을 풀뿌리의회에서 적용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시의원 선거에 나섰는데 덜컥 당선됐다.”

사회운동 하는 사람이 의원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사실 들어가서 처음 느낀 게 있다. ‘관행적 시의원’은 아무것도 안 배워도 되겠더라. 사무국에서 원고 써주고 사람들 만나고. 그런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용어나 절차도 생소했다. 의회 직원이 의원보다 두 배 더 많은데 시 집행부에서 자료가 넘어오면 이걸 분석해줘야 하는데 전혀 설명을 안 해준다. 스스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장 도전은 좀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지방의회 활동을 하면서 다음 역할이 뭘까 고민했다. 주변에선 시의원 재선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재선 도전을 권유했다. 그런데 시장에 도전해보는 게 소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패하더라도 시도해봐야 벽을 하나씩 허물지 않겠냐는 생각에서다. 2018년 선거 기간 내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활동했는지, 귀에서 고름이 나오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였다. 그렇게 덜컥 당선했고, 어느새 3년이 지났다.”

의정활동에 이어 시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어 보니 소회가 어떤가.

“(이 시장은 자석 블록을 꺼내 정사면체를 만든 뒤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 사회는 이 블록 사면체와 같다. 각각의 면은 운동가, 행정, 언론, 시민사회의 몫이다. 각자의 시각에서는 자기 영역밖에 안 보인다. 꼭짓점 위에 있어야 네 면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정치다. 결국 세상만사의 문제는 정치로 귀결된다. 그만큼 정치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4대강 본래 모습 찾으려면 적어도 40년 걸려”


▎여주시는 지난해 12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한 시간 만에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는 신속PCR 검사를 도입했다. 5일장이 열리는 전통시장 입구에서 신속PCR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 사진:여주시
이 시장의 ‘좋은 정치론’은 제법 심오했다.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정치가 좋으면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지만, 정치가 망가지면 개인의 운명 선택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사회가 총체적으로 가져야 할 내적인 에너지는 여유와 용서, 배려에서 나온다. 임계점을 넘지 않는 충돌은 장려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진보할 수 있다.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건전한 충돌을 어떻게 만드느냐, 그게 바로 정치 설계다. 정치 설계 없이 시스템이 알아서 작동하거나 새로 봉착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시장은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고 청산하면 미래가 열릴 줄 알았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문제는 청산이 아니었다”고 진단했다. 그의 현실 진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적폐청산을 단행한 이후 한국 사회의 혼란상을 말하는 듯했다. 우리네 정치가 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나가야 할 미래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자성으로 읽혔다. 그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가야 할 알 수 없는 길을 어떻게 내디딜 것인가”를 이번 대선의 거시적 화두라고 규정했다.

시각을 여주로 좁혀보자. 과거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을 주도했고, 이젠 행정권을 쥔 시장이 됐다. 시민들 중에는 시장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4대강 사업을 원점으로 돌려놓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을 텐데.

“환경의 가장 큰 문제는 한 번 파괴된 것을 복구하는 데는 100배의 에너지가 더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때 한 4년 만에 환경이 망가졌다.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단순히 10배로 계산해도 40년, 100배면 400년이 걸린다. 당장 손바닥 뒤집듯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연은 우리가 의식하는 만큼 회복된다. 지금도 4대강이 옳으니 그르니 논쟁이 벌어진다.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만큼 환경의 복원도 더뎌진다. 마치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결코 좋아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시장으로서 행정의 방점을 어디에 찍고 있나?

“우리 시정의 화두는 ‘사람 중심’이다. ‘시민’, ‘국민’이 아니라 일부러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여주에 오는 사람 누구나 우리 시정의 중심이라는 의미다. 구체적으로는 다섯 가지 슬로건이 있다. 우리는 ‘아이 키우기 좋은 여주’를 지향한다. ‘아이’는 생물학적 아이뿐만 아니라 약자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전 생애 복지를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거다. 둘째로 ‘일자리가 넘치는 여주’다. 인구는 적지만, 30만 평 물류단지를 비롯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합리적인 도시 재생을 통해 내부 경제의 선순환을 꾀하고 있다. 셋째는 ‘농촌과 도시가 조화로운 여주’다. 여주는 대부분 농촌 지역이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생기는 불균형을 해결하자는 뜻을 담았다. 이는 ‘문화와 예술이 풍성한 여주’로 이어진다. 다양한 의견과 취향이 공존함으로써 문화가 형성된다. 예술은 이런 문화적 다양성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시민과 소통하는 여주’를 꿈꾼다. 소통은 연결과 교환으로 성립된다. 정책으로 시민과 시민이 연결돼야 비로소 교환이 이뤄진다. 생명의 이치는 간단하다. 뭐든지 막히면 죽는다. 사회 원리도 마찬가지다.”

이 시장은 지자체장 중에서 부지런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그 덕에 여러 평가에서 여주시는 늘 상위권에 올라 있다. 지난해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일자리 및 고용개선 분야)을 차지했고, 전국 지자체 평가에서 인구 50만 명 미만 59개 시 부문 종합 1위에 올랐다. 2019년에는 지방재정 우수사례 및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석권했다.

전국 지자체 행정능력 평가 최상위권 기염


▎추분인 9월 23일 여주시 능서면 세종대왕역 인근 논에 유색 벼를 활용해 여주시 슬로건과 세종대왕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사진:여주시
인구 11만 명에 불과한 농촌지역이 행정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비결이 뭔가.

“관행에 머물지 않으려는 노력 덕분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엄마가 피곤하다고 아이에게 젖을 안 주면 어떻게 되겠나. 생명을 보살피는 건 중단도 막힘도 머뭇거림도 없어야 한다. 상생의 대원리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상생을 잃고 관행으로 돌아가면 생명은 멎고 만다. 지난해 7월에는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약이행평가단을 구성해 공약사업 진행상황을 시민이 직접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소통이 끊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다른 시·군의 좋은 정책을 따라 배우려고 노력도 한다. 취임할 때 약속했던 7대 과제 63개 공약사업의 70% 정도 진행됐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공약사업 중에 눈에 띄는 건 어떤 게 있나?

“학부모 부담을 줄여주는 무상 교복 지원이나 농촌지역 노인기초연금을 매월 5만원 추가 지급하고 있다. 또 주거 취약계층의 전·월세 지원을 확대했다. 농가에는 농산물 택배비를 지원하고 시민 중심으로 조직 개편도 마쳤다. 또 전국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PCR 응급선별검사를 시작했다. 검체 채취에서 결과까지 한 시간 만에 나오니 다른 어느 지역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광장과 시장의 조화 이루도록 정책 설계 노력”


▎이항진 여주시장이 지난해 여주지역에서 첫 수확한 벼를 한아름 안고 있다. / 사진:여주시
여주가 시로 승격된 뒤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띄더라. 전철이 들어오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방식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 환경운동가 출신으로서 부담되지 않나?

“이렇게 비유해보자. 세상은 광장과 시장으로 나뉜다. 만약 시장이 광장을 장악하면 온갖 쓰레기와 악취가 난무할 거다. 반대로 광장만 덩그러니 있다면 지렁이 한 마리도 살지 못한다. 광장을 넓히는 동시에 시장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광장과 시장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게 정책 설계의 핵심이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다. 환경운동가 출신 시장이 있는 곳이니 다른 지역보다 일회용품을 덜 사용하나?

“아직 종이컵 하나를 너무 쉽게 쓰고 버리는 직원들이 있긴 하다. 코로나 시기라 강제하기 어렵기도 하고. 내가 다 나서서 하려고 하면 공직사회의 자율성이 훼손된다. 내 생각을 강요하기보다 자율에 따라 문화가 형성되길 바란다.”

어느덧 약속했던 인터뷰 시간이 끝나갔다. 전 지구적 환경문제부터 지역 발전에 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인터뷰 내내 이 시장의 생각은 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었다. 중심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뚜렷했다. 바로 ‘생명’이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듯이, 이 시장에게는 여주 그 자체를 생명으로 보는 듯했다. 이 시장의 유연함에서 강가의 만질만질한 몽돌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내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할 것인지 물었다. 이 시장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선거는 결과다. 지금 고민하는 건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거다.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할 뿐이고, 평가는 시민이 할 거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2112호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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