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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와 인생’] ‘골프계 돈키호테’ 박노승 칼럼니스트의 골프 

골퍼는 야구 1번 타자, 롱게임 올인은 비효율 

KGA 회장 도전, 1표 얻고 5000만원 날려… 신념 지키는 원칙주의자
“스코어가 실력 기준, 60% 차지 퍼트·쇼트 게임이 중요” 정교함 추구


▎매경오픈에서 경기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노승씨. / 사진:박노승
골프 국제 심판이자 칼럼니스트인 박노승(67)씨는 지난 1월 대한골프협회(KGA) 회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5000만원을 날렸다. 15% 이하 득표자는 공탁금을 반환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는데 그는 166표 중 한 표를 받는데 그쳤다.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회장 선거 겨우 1표 받은 박노승 후보’라는 칼럼을 썼다. 투표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기득권층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딱 한 표만 받았기 때문에 마음의 빚 없이 가던 길을 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박 칼럼니스트는 대한골프협회와 껄끄럽다. 지난해 여자 한국오픈은 치르면서 (남자) 한국오픈을 열지 않은 KGA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사건 이후 대한골프협회 경기위원을 그만둬야 했다. 여러 사람이 공탁금을 날리게 된다고 말렸으나 박 칼럼니스트는 출마를 강행했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가 연상되기도 했다. 그는 “KGA 회장을 추대 형식으로 뽑다 처음으로 경선을 치렀으며 이로 인해 첫 공약이 나와 의미가 있다”라고 했다. 5000만원은 괜찮을까. 그는 “어차피 골프를 위해 쓸 돈이었다. 형편이 좋지 않은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주곤 했는데 대한골프협회로 갔으니 별 차이도 없다”고 했다.

박 씨는 독일에서 25년간 사업을 하다가 미국에서 스포츠 비즈니스 석사를 땄다. 골프 규칙과 역사에 조예가 깊다. 삼성경제연구소(SERI)에서 골프에 대한 강의도 한다.

가난한 집에서 자랐고 어릴 때 몸도 약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다 1년을 쉬기도 했다. 재수 시절엔 당구 400을 쳤는데 짧은 시간 공부해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당구장 주인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1980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목표 세 개를 잡았다. ‘첫째 집을 사자, 둘째 차를 사자. 셋째 골프를 하자’였다. 골프는 상징이었다. 골프채를 잡기는커녕 골프 중계를 본 적도없었지만, 부와 지위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라 그의 목표가 됐다.

언어 능력이 좋았다. 입사 후 외국인을 처음 만났을 때 상대가 “정말 영어를 쓰는 사람을 처음 만난 게 맞냐”면서 놀랐을 정도다. 파리 주재원이 되고 싶어 프랑스어를 배웠다. 세네갈 대통령이 국빈 방문해 삼성전자를 찾았을 때 박 씨가 통역을 했다. 그는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는데 금방 독일어를 배워 별문제가 안 됐다. 박노승 씨는 당시 유일하게 외국어 3개를 하는 삼성의 세일즈맨이었다.

대한골프협회 비판 뒤 경기위원 그만두게 돼


▎미국 대학에서 선수로 활동할 때 학내 잡지 표지에 소개된 박 씨의 아들 박남규 씨. 현재는 스위스은행 싱가포르 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 사진:박노승
꿈은 5년 만에 다 이뤘다. 독일 주재원으로 가게 되면서 현지 주택 지원을 받게 되어 여윳돈이 생겨 한국에 전세 끼고 아파트를 샀다. 독일에서 차가 필요해 BMW를 뽑았다. 또 골프채도 샀다.

삼성전자 독일 지사에 골프금지령은 없었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골프는 부장만 하는 것이었다. 새파란 주니어가 골프를 하자 선배들이 수군댔다. 그러나 말릴 명분이 없었고 박씨는 일을 잘했다. 모든 직원이 골프를 할 수 있게 됐다.

박 씨는 골프의 매력에 빠졌다. 5년 후 삼성 본사에서 귀임 발령이 났을 때 그는 회사를 그만뒀다. 아들을 프로선수로 키우기 위해 골프를 시켰는데 한국은 골프 환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일본 회사들의 전자제품을 동유럽에 팔았다.

사업이 잘됐다. 골프도 잘 됐다. 아들은 두각을 나타냈다. 여러 클럽의 최고수들이 나오는 헤센주 드레스너 방크대회에 아들과 함께 나가 2년 연속 우승하기도 했다.

그는 칼럼의 자신 소개 글 첫 문장에 ‘골프 대디’였다고 썼다.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아들은 미국 대학 골프팀으로 유학을 갔다. 박 칼럼니스트는 “어느 날 아들이 ‘재능이 부족한 것 같아 그만두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도 25년 독일 생활을 정리했다. 골프를 좋아했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면 자신이 골프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미국으로 가서 골프 공부를 하고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남들처럼 골프를 즐기면서 살 수 있다. 그런 그가 골프계에서 좌충우돌하는 이유는 골프 대디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고 싶어서인 듯하다. 그는 “골프든 뭐든 아이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박 칼럼니스트는 “골프 대디들이 자식을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향후 수익을 내는 기업처럼 생각하면 큰 문제다. 부모가 아이를 그렇게 교육시킬 권리가 없다. 한국에선 아버지가 강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 데 성공한다 해도 절대 오래 치지 못한다. 한국에서 골프 하면서 행복했다는 아이가 몇 명이나 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기업의 어드바이저처럼 몇몇 선수에게 조언을 해준다. 골프 대디들이 자식의 성적이 안 나와 그에게 부탁했다. 그는 KLPGA의 A선수에게 “연습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했다. 놀 것 다 놀고, 연습은 하고 싶을 때만 하라고 했다. “모든 시간을 올인해서 연습해 잘 치는 것은 요즘 시대와 맞지 않다. 몸만 혹사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A선수의 아버지는 물론, 선수도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여유 있게, 취미 생활도 하면서, 조바심을 내지 않자 성적이 올랐다.

그는 “아이에게 골프를 가르치는 건 좋다. 골프 잘하면 사회 활동에서도 유리하다. 그러나 아이를 프로 선수로 키우겠다고 결정했다면 책임은 부모가 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박 칼럼니스트는 또 “아이가 골프 천재일지도 모르지만, 그 가능성은 작으니 출구전략을 준비해 놔야 하며, 아이가 싫어하면 바로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박 씨는 “골프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고 마라톤”이라고 본다. 그의 경험칙은 이렇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낸다면 마라톤에서 초반 선두그룹에 나서는 것과 같다. 만약 어릴 때부터 학업을 전폐하고 올인해서 선두권에 올랐다면 마라톤을 단거리처럼 달린 것과 다름없다. 지쳐 기권할 가능성이 커진다. 아이는 언제나 일등이어야 한다는 짐을 지고 살게 된다. 만약 뒤에 있던 선수가 추월할 경우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몇몇 아이들이 먼저 치고 나가더라도 결국은 같은 수준에서 다시 만난다.

주입식 교육은 프로 선수 육성에 나쁜 영향


▎매경오픈에서 관중에게 선수를 소개하는 스타터를 맡아 김형성, 문경준(오른쪽부터)과 기념 촬영하는 박노승 경기위원. / 사진:박노승
프로 선수로 키우려면 주입식 교육은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박 칼럼니스트는 본다. 아이의 재능을 사라지게 할 가능성이 있다. 코치에게 그립이나 자세 등의 기본을 잘 가르치고 스윙은 손대지 않거나 아니면 천천히 가르쳐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아이는 다른 사람의 스윙을 흉내 내면서 천천히 자기만의 스윙을 갖게 될 것이다. 뛰어난 선수들은 자신만의 스윙을 가진 선수들이다. 처음부터 주입식 스윙을 가르쳤다면 엇비슷한 스윙을 하는 평범한 선수가 되고 만다.

그는 원래 원칙주의자 성향이 있었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 더 강해진 것 같다. 박 칼럼니스트는 “외국에서 살다 와 보니, 국내 스포츠계가 합리성, 효율성과 거리가 너무나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포츠계에서 터지는 각종 비리와 추문들을 보면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자들이 쌓은 성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다. 처음엔 피해를 보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 기득권자가 된다. 한국 스포츠계는 엄청나게 뒤처져 있다. 36년 전인 1985년 삼성전자 독일지사의 문화도 그렇지 않았는데 아직도 끊임없이 문제가 생기고 있다. 골프 몇몇 단체 경기위원회는 심판을 인맥으로 선출한다. 한국에 골프 규칙 시험 점수에 대한 규정이 있는 단체는 KLPGA 뿐이다. KLPGA가 KPGA나 대한골프협회보다 잘 되는데, 탄탄하고 공정한 경기위원회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라고 했다.

골프 규칙은 어렵다. 골프로 스트레스를 풀려는 주말 골퍼들에겐 룰이 너무 피곤한 것 아닌가. 원칙을 따지는 그에게서 예상과 달리 유연한 답이 나왔다. 박 칼럼니스트는 “아마추어가 프로와 똑같은 룰을 쓰는 것은 무리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같은 규칙을 썼지만 2019년 이후 규칙에는 OB가 났을 경우 공이 나간 자리 근처에서 칠 수 있게 했고, 홀마다 상한(上限) 타수를 둘 수 있다. 공식 대회에서는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아마추어에게 규칙은 점점 관대해져야 한다”라고 했다.

한국 골퍼들은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다. 벙커정리도 거의 안 한다. 그는 이런 한국 골프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여긴다. 박 칼럼니스트는 “여건이 되면서도 안 하는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시간에 쫓겨 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룰을 엄격히 지키기 때문에 한 라운드 3시간 50분은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은 골프장이 손님을 많이 받아 빨리 갈 수밖에 없다. 처음엔 이를 싫어했지만, 생각을 바꿨다. 전 세계적으로 골프는 플레이 시간이 늘어지는 게 가장 큰 골칫거리인데 한국이 솔루션이 될 수 있다. 시간 절약하고 즐거움 추구하는 한국 캐주얼 골프는 고루한 골프의 새로운 지평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칼럼니스트는 골프 역사에도 정통하다. 책도 여러 권 썼다. 요즘 그는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를 높이 평가한다. 해리 바든(1870-1937), 벤 호건(1912-1997), 잭 니클라우스(1940-), 타이거 우즈(1975-)와 더불어 골프의 혁신가로 꼽는다. 그는 “골프의 암호를 과학으로 풀어보려는 시도는 그가 처음이다”고 했다.

“우즈는 예술가, 디섐보는 과학자형”


▎지난 1월 대한골프협회장에 출마해 인터뷰하는 박노승 후보. / 사진:박노승
타이거 우즈는 데이터보다는 감각에 더 의존한다. 박 씨는 “우즈는 예술가이고 디섐보는과학자 형인데 데이터보다는 감이 중요한 듯하다. 역대 뛰어난 선수 중엔 감을 중시하는 선수가 더 많다. 재능 같아 보이기도 한다. 조던 스피스와 저스틴 토머스 등도 감을 중시하는 선수”라고 했다.

대부분의 골프 팬은 가장 재미있는 골프대회로 마스터스를 얘기한다. 박 칼럼니스트에게는 유럽과 미국의 대륙대항전 라이더컵이다. 그는 “스포츠는 경쟁이다. 스트로크 플레이는 안전하게 수비적으로 경기할 때도 많아 치열함이 덜 하다. 라이더컵의 매치 플레이는 도 아니면 모 식으로 공격적으로 경기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골프가 라이더컵에서 나온다. 디 오픈은 역사와 전통이 있다. US오픈도 그렇다. 마스터스는 마케팅 성공사례다. 우승자에게 평생 출전권을 주고, 바비 존스 등 사람 얘기가 남아 있다. 한 골프장에서 경기해 홀별 역사가 쌓인다. 그러나 똑같은 골프장에서 하기 때문에 다양성이 없고 재미는 덜하다”고 말했다.

박 칼럼니스트의 골프는 야구의 1번 타자 같다. 홈런은 없지만 정교하다. 티샷을 항상 페어웨이에 떨어뜨리고 두 번째 샷을 그린 주위에 보내고 쇼트 게임이 매우 정교해 파 혹은 보기를 한다. 공식 경기 기준으로, 이븐파가 그의 베스트 스코어다.

그는 주말 골퍼를 위한 팁으로 “골프 잘 치는 것의 개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박 칼럼니스트는 “골프 실력이 좋은 건 장타나 멋진 스윙 폼이 아니라 낮은 스코어다. 골프에 롱게임은 40%에 불과하고, 40%가 퍼트, 20%가 그린 주위 쇼트 게임이다. 롱게임에만 전념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골프를 3년 이상 치면 스윙이 굳는다. 어쩌면 그 스윙이 자신의 몸에 최적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스윙 개조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일반인들은 사실상 어렵다. 바꾸려면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원칙주의자로 살았다. ‘좋은 게 좋다’ 식으로 넘어가는 문화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스타일이다. 그는 “나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 삼성에 다닐 때 나를 좋아하는 과장과 싫어하는 상사가 있었다. 나를 믿어준 사람과 일할 때 성과가 좋았다. 일반적으로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편하고 지혜롭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끝없이 검증하고 배우고 바꿔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말했다.

원칙주의자는 적이 많다. 그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박 칼럼니스트는 “나는 철저히 약속을 지켰다. 비즈니스 원칙을 지켰다. 말로 한 약속이 문서에 사인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고 받은 만큼 돌려줘 신뢰를 얻었다”고 했다.

※ 성호준 골프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일보 사회부와 스포츠부를 거쳐 골프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중앙SUNDAY. 네이버에 ‘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골프 진품 명품’ 등의 칼럼을 연재했다. JTBC골프 채널에서 [JTBC골프 매거진] [LPGA 탐구생활] 등을 진행했다. 저서로 [타이거 우즈 시대를 사는 행복][맨발의 투혼에서 그랜드슬램까지] 등이 있다.

202112호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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