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글로벌 포커스]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직면한 베이징 동계올림픽 

오미크론 변이 빌미 삼아 ‘만리장성 속의 올림픽’으로 변질되나 

코로나19 방역 승리와 사회주의 우수성 전파 위해 올림픽 활용하려는 중국 정부
미국·EU 등 인권문제 이유로 외교적 보이콧 추진, 中은 ‘간소한 올림픽’으로 대응


▎중국 대학생 선수들이 베이징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경기장의 빙질을 살피고 있다. 선수들보다 더 많은 코로나19 방역 요원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 사진: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축구와 아이스하키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그동안 축구와 아이스하키를 정책적으로 적극 지원해왔다. 하지만 축구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에서 승점 5점(1승2무3패)으로 5위를 기록하면서 남은 경기와 관계없이 탈락이 확정됐다. 중국은 지금까지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한 것 이외에는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적이 없다.

중국 남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도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하지만, 망신만 당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12개 팀이 3개로 나뉘어 치르는 조별리그에서 세계 랭킹 1위인 캐나다를 비롯해 미국(4위), 독일(5위) 등 강팀과 같은 조에 편성됐다. 아이스하키 종목에서 세계 랭킹 32위인 중국의 수준은 사실상 최하위권이나 다름없다. 아이스하키는 ‘동계올림픽의 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스포츠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로선 안방 잔치에서 자국 대표팀이 경쟁국인 미국은 물론 사이가 나쁜 캐나다 대표팀에 참패할 경우, 정치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 주석은 중국의 동계올림픽 준비 상황 홍보영상에서 중국의 유소년 선수들에게 “중국은 동계올림픽에서 설상(雪上)보다는 빙상(氷上) 종목에서 더 잘한다”면서 아이스하키 종목의 선전을 기대했다. 시 주석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인터뷰에서도 “아이스하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종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중국 남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일방적인 패배는 미국을 제치고 중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시 주석의 야심 찬 ‘중국몽(中國夢)’의 예고편이 될 수도 있다.

역대 최악의 올림픽 조짐


▎2021년 11월 29일 중국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의 우월성을 홍보했다.
중국 정부가 대규모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각종 경기장과 인프라 시설을 준비해온 지구촌 최대 겨울 스포츠 축제인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자칫하면 각종 악재로 인해 최악의 대회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2022년 2월 4일부터 20일까지 세 지역에서 열린다.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선 개회식·폐막식과 스피드스케이팅, 컬링, 아이스하키 등 빙상 종목 경기가 진행된다. 베이징과 90㎞ 떨어져 있는 옌칭에선 알파인스키와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 등 썰매 종목 경기가 치러진다. 스키 종목 경기는 베이징에서 220㎞ 떨어진 허베이성 장자커우에서 열린다. 중국 정부는 각종 경기장을 완벽하게 마련해놨고,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및 국제공항까지 건설하는 등 모든 시설을 마무리했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는 자명하다. 시 주석의 공산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할 2022년 10월 제20차 공산당 당 대회 이전에 치러지는 초대형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2021년 11월 11일 제19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19기 6중전회)에서 40년 만에 3번째 ‘역사결의’를 채택함으로써 시 주석의 장기집권 길을 열었다. 중국 공산당 100년 역사에서 역사결의는 지금까지 1945년과 1981년 2번뿐이었다. 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과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은 모두 역사결의를 통해 숨을 거둘 때까지 집권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반열에 오른 시 주석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통해 국내외에서 중국 최고의 영도자임을 과시하기를 꿈꾼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2021년 7월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렀던 일본 도쿄 하계올림픽과 달리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전 세계 코로나19 극복의 상징적인 장으로 만들려는 야심도 숨기지 않는다. 베이징은 전 세계에서 하계(2008년)와 동계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첫 번째 도시가 된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자국의 사회주의 체제 우수성을 과시하는 선전장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중국 관영 언론매체들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공을 통해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실현하자”는 선전·선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베이징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수도”라면서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중국 사회주의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는 ‘제로(0) 코로나’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단 한 명의 코로나19 확진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방역 만리장성’을 더욱 높이 쌓아 올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 말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방문한 관람객 1명이 코로나19 확진자로 확인되자 중국 정부는 관람객 3만4000명 전원을 자정까지 놀이공원에 가둬둔 채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했다. 각국 언론은 “디즈니랜드 관람객 전원은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최대 5시간을 기다려야 했다”며 중국 정부의 방역 조치를 꼬집었다.

“코로나19를 막는 강철장성”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는 장가오리 전 중국 부총리에게 성폭행당했다고 폭로한 뒤 사라졌다. 이후 다시 나타났지만 국제 사회는 중국의 열악한 인권을 우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 정도 조치는 어떻게 보면 약과다. 랴오닝성 다롄시 정부는 2021년 11월 중순 좡허(庄河) 지역 대학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자 대학생 1만여 명을 학생회관과 호텔 등에 격리하는 조처를 내렸다. 다롄시 정부는 또 좡허 지역주민 40만여 명에 대해 14일간 자택에만 있도록 하는 등 외출금지령을 내리고 모두 8차례에 걸쳐 검사를 실시했다. 쓰촨성 성도인 청두시 정부는 2021년 11월 초 확진자 5명이 발생하자 주민 8만2000명에게 “당신은 시공동반자(時空伴隨者)이니 보건소에 신고하고 사흘 안에 최소 두 차례 검사를 받을 것”이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시공동반자는 확진자와 반경 800㎡ 내 같은 공간에서 10분 이상 동시에 머물렀거나 확진자가 발생한 고위험 지역에 14일 이내 30시간 머무른 사람을 말한다. 문자를 받은 이들은 무조건 검사를 받아야 하며,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간쑤성 성도인 란저우시 정부도 확진자 5명이 발생한 지역을 완전 봉쇄했다. 중국의 이런 방역 조치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 등 서방의 입장에서 볼 때, 전체주의적 통제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지상과제는 코로나19 방역 전쟁에서 승리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자국이 미국보다 코로나19 통제를 훨씬 잘하고 있는 것은 공산당의 통치 덕분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1년 11월 17일부터 수도 베이징에 대해 봉쇄와 다름없는 방역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타 지역에서 베이징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은 도착 전 48시간 이내에 실시한 핵산검사(PCR) 음성 증명서를 제출하고, 건강 코드 프로그램인 ‘베이징 젠캉바오(헬스키트)’가 정상(녹색)임이 확인돼야 한다. 베이징 인근 지역에서 베이징으로 출퇴근하는 통근자도 48시간 이내에 실시한 PCR 음성 증명서를 소지해야 한다. 지린성, 헤이룽장성, 네이멍구자치구, 윈난성, 광시좡족자치구 등 코로나19가 발생한 7개 성 51개 현 주민에 대해선 아예 베이징 출입을 금지했다. 해외와 타 지역에서 베이징으로 보내는 소포 등 택배도 제한하고 있다. 또 중·고위험지역발 베이징행 항공편을 당분간 취소시켰으며, 타 지역발 베이징행 항공편의 운항 횟수를 평소 대비 30%나 감축했다. 베이징에는 현재 3곳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봉쇄돼 있는데, 주민들은 코로나19 검사를 제외하고는 아파트 문밖으로 나올 수 없다. 해외 입국자는 3주간 호텔 등의 시설에서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3주 격리 이후 한 주는 모니터링 기간이라고 해서 거주지 사무소에 체온을 비롯한 건강 이상 유무를 하루 두 차례 보고해야 한다. 중국 국영 CCTV는 베이징시 보건당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정부의 방역 지침을 어기고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가 격리 시설 밖으로 돌아다닐 경우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에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까지 확산하자 중국 정부는 초비상 경계에 들어갔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중국 국내 거주자 가운데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충족하는 사람들에게만 경기 관람 표를 판매한다는 방침이다. 관중은 반드시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받아야 하고, 48시간 이내 실시한 PCR 음성확인서도 제출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12월 말까지 백신 접종 완료율 8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조직위는 오미크론의 확산 추이에 따라 관람 지침을 변경할 방침이다. 남자 아이스하키 경기가 예정된 베이징 국립 실내 경기장은 1만 8000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6000석만 개방할 계획이다. 조직위는 오미크론이 확산할 경우 개방되는 좌석 수가 훨씬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도쿄 하계올림픽처럼 무관중으로 치러질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오미크론은 이미 각종 국제 스포츠 행사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은 12월 11~21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1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취소했다. 국제하키연맹(FIH)은 12월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치러질 여자 하키 주니어 월드컵 대회를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중국은 지금 오미크론 등 코로나19를 막는 진정한 강철장성”이라면서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추가 조치는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대표적 감염병 전문가로 꼽히는 장원훙 푸단대 부속 화산병원 감염내과 주임은 “중국은 오미크론으로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중국의 신속한 대응과 역동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은 다양한 종류의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중국은 코로나를 통제한 경험이 있으며,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예정대로 성공적으로 치러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중국이 오미크론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


▎2018년 6월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우의훈장을 받았다. 푸틴의 러시아는 여전히 중국의 우방이다.
오히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보다 더 경계하는 것이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을 비롯해 서방 각국 정부가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Diplomatic Boycott)’ 카드를 꺼내 들자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12월 6일 정례브리핑에서 “바이든 정부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어떤 외교 또는 공식 대표단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준비해온 선수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올바른 조치가 아니라고 본다”며 선수단은 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적 보이콧이란 선수단은 올림픽에 참가하되 정부 공식 대표단은 개폐회식은 물론 각종 행사에 불참하는 것을 일컫는다. 사키 대변인은 “중국 정부의 신장위구르 지역에서의 인종에 대한 지속적인 집단 학살과 반인도주의적 범죄 및 인권 침해 때문”이라고 외교적 보이콧 이유를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말했듯이 인권 옹호는 미국인의 DNA에 있다”며 “우리는 중국과 그 너머에서의 인권 증진을 위해 계속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등 서방 각국의 외교적 보이콧에 따라 지구촌의 화합과 축제의 장이라는 올림픽 정신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올림픽 주최국의 국제적 위상은 물론 흥행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조치를 “중국에 대한 정치적인 모욕”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 정부는 그동안 위구르족 인권 문제를 놓고 공방전을 벌여왔다. 미국 정부는 지난 3월 중국의 인권 실태보고서에서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탄압 문제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100만 명 이상의 위구르족을 수용소에 강제 구금했고, 이 가운데 일부는 강제 노동과 고문, 강제 불임 시술과 낙태 시술을 강요당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 정부가 이와는 별도로 200만 명에 달하는 위구르족을 낮에만 운영되는 ‘재교육센터’에서 직업훈련을 시키고 있다면서 수용소는 지난해 더욱 확장됐고, 위구르족에 대한 학대와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집단학살(genocide)’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집단학살은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저지르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미국 정부는 EU·영국·캐나다 등 서방국가 정부들과 함께 위구르족 인권 탄압과 관련된 중국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 단체 및 기업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해왔다. 미국 정부가 이번에 외교적 보이콧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 든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서방 국가들이 위구르족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내정 개입이라는 입장이다. 왕이 외교부장은 “신장 위구르에선 민족, 종교, 인권이 문제가 아니라 테러와 분리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테니스 스타 펑솨이의 미투 폭로


▎2021년 12월 2일 서훈(왼쪽) 국가안보실장이 톈진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회담을 했다. 올림픽을 종전선언의 무대로 생각했던 문재인 정부에 미국의 보이콧은 뜻밖의 암초다. / 사진:베이징 특파원단 공동취재단
미국 정부의 외교적 보이콧에 영어권 정보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회원국인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이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외교적 보이콧 결정은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비롯해 호주가 그동안 중국에 제기했던 여러 문제에 대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을 비롯해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은 속속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미국 정부는 12월 9~10일 110개국 대표가 참여한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이 확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의 경우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유럽의 주요 국가 정상들은 러시아 정부의 동성애자 탄압 정책 등에 항의하면서 소치 올림픽 개·폐막식을 보이콧했다. 올림픽 자체를 거부한 경우도 있다. 1956년 멜버른 하계올림픽에는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하는 스페인·네덜란드·스위스가 참가를 거부했고, 1976년 몬트리올 하계올림픽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해 아프리카 28개국이 불참했다.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미국 등 66개국이 불참했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에는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소련 등 공산권 20개국이 불참했다. 동서 화해의 장으로 불렸던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에도 남북 공동개최 요구가 무산된 북한이 보이콧에 나섰고 쿠바, 에티오피아, 니카라과가 동참했다.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보이콧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는 또 다른 악재인 테니스 스타 펑솨이(彭師·35)의 미투 폭로사태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펑은 2021년 11월 2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장가오리 전 부총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펑이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추자 국제 테니스계는 펑의 실종설을 제기하며 성폭행 주장에 대한 조속한 조사를 촉구했다. 그러자 IOC는 11월 21일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펑과 영상 통화를 했으며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발표했다. 펑은 2013년 영국 윔블던과 2014년 프랑스오픈 여자 복식에서 우승했었다. 하지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IOC가 펑의 실종설을 해명한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바흐 위원장과 장 전 부총리의 친분을 지적했다. 장 전 부총리는 부총리 재임 시절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지원 업무를 이끌면서 바흐 위원장을 비롯한 IOC 인사들과 밀접하게 접촉했었다. 중국 정부는 바흐 위원장과 펑의 영상통화를 통해 실종설을 잠재우는 선에서 이 사건을 수습하려 했지만 파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세계여자테니스협회(WTA)는 12월 2일 중국에서 열려던 대회를 모두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스티브 사이먼 WTA 회장은 “앞으로 중국 본토와 홍콩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를 보류한다”며 “성폭행 의혹조차 제대로 밝힐 수 없게 압력을 행사하는 국가에서 경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WTA의 주요 후원국인 중국에선 매년 10여 개의 크고 작은 대회가 열린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는 “IOC가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올림픽을 진행하는 데만 절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하며 각국이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해줄 것을 촉구했다.

친중 국가 지도자들만 초청?

중국 정부는 서방의 외교적 보이콧을 저지하기 위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초청하는 외국 지도자들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각국 지도자들의 올림픽 참석은 주최국의 올림픽 위원회가 초청하는 것”이라면서 “올림픽의 성공 여부는 개별 국가 지도자들의 참석에 달려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도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대규모로 외빈을 초청할 계획이 없다”며 그 이유로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들었다. 서방의 외교적 보이콧에 ‘간소한 올림픽’ 카드를 꺼내 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역(逆) 보이콧’이다. 중국 정부의 의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소수의 친중 국가 지도자들만 참석한 가운데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의 초청을 받았다”면서 “기꺼이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최악의 대회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방역을 명분으로 내세워 ‘만리장성 속의 올림픽’을 치르려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201호 (2021.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