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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리포트] 임인년(壬寅年)을 맞이하는 김정은의 가상 독백 

‘권력 다지기’ 10년 지나 안정적 리더십 구축 원년으로 

2010년 등장 후 세대교체 성공하며 ‘최고 존엄’ 권력 공고화
집권 11년 차 맞아 무너진 경제 회복과 북·미 관계 개선 과제


▎12월 4~5일에 열린 북한 조선인민군 제8차 군사교육일꾼(간부)대회에서 연설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살이 빠져 전보다 수척해진 모습이다. / 사진:연합뉴스
연말연시가 되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설계한다. 평양도 예외가 아니다. 한 해 마무리는 부서별로 올해 결산 및 반성 결의와 함께 강점, 약점, 기회 및 위기를 주제로 새해 업무계획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사상 ‘총화’ 시기다. 평양도 코로나 방역으로 잔뜩 움츠려 있다. 2020년 1월 하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침체 분위기가 완연하다. 올겨울 평양에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것은 단순히 시베리아 북서풍 때문만은 아니다. 공화국은 2년 연속 북·중 국경은 물론 하늘길까지 봉쇄되면서 고립무원 신세다.

아무리 사회주의 통제사회라지만, 연말에 술 한 잔으로 한 해의 피로를 푸는 건 우리와 다를 바 없다. 특별한 오락이나 레저가 없는 사회라 예외적으로 술과 담배에는 관대하다. 이동이 제한되기 때문에 동료들과 집에서 삼삼오오 모여 통음으로 삶의 고단함을 달랜다. 특히 신정(1월 1일) 전야인 12월 말일에는 설날이 아니라 ‘술날’을 맞이한다고 할 정도로 과도한 음주로 시름을 잊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코로나로 통제가 심해져서 동료들과의 한잔 술도 어렵게 됐다.

연말 북한의 주석궁이나 내각에서 준비하는 핵심 업무 중 하나는 김정은 신년사 초안에 들어갈 내용을 정리해서 보고하는 것이다. 1946년 1월 1일 0시 평양종 타종식 이후 김일성이 ‘신년을 맞으면서 전국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한 것이 북한 신년사의 시작이었다. 이후 최고지도자는 신년을 맞이해 신년사나 [노동신문] 사설 발행 등을 통해한 해의 국정 방향을 예고해왔다. 이런 전통은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 시대에도 지속했다.

하지만 2021년에는 2020년에 이어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고 친필 연하장만 공개했다. 신년 연하장은 이전에 김정일이 작성한 이후로 26년 만에 처음이었다. 김정일은 1995년 김일성 사망 이듬해인 새해에 연하장을 보낸 적 있다. 2021년은 1월 초순에 8차 당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기 때문에 신년사를 생략하고 연하장으로 대체했다. 미리 김을 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2022년 초에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소집했지만, 통치 방향을 예고하는 메시지인 신년사는 예정대로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이 글을 쓴 시점에 초안 검토는 끝났을 것이다. 12월 하순은 김 위원장이 초고 문장을 보고 추가 지시를 하는 단계일 것이다. 원고지 수십 매 분량의 신년사는 총괄적인 지난해 정세 평가와 함께 새해의 분야별 구상을 담는다. 새해 북한의 정책 방향을 추론해본다는 차원에서 연초에 꼼꼼히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매년 대동소이하다. 다만 전원회의의 규모를 크게 하고 직접 대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효과적이라면 신년사를 연하장으로 대체할 수 있다. 매년 비슷한 공식적인 신년사를 분석하기보다는 김 위원장의 복심과 복안을 추정해보는 것이 역설적으로 임인년(壬寅年) 한반도 정세 파악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감히 문장으로 적어 본다. 김정은의 독백 형식을 빌렸다.

‘김정은 대역설’은 ‘김정일 대역설’의 데자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2월 1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정치국회의에서 “총체적으로 올해는 승리의 해”라고 선언했다. / 사진:연합뉴스
2021년은 집권 만 10년 되는 해였다. 하지만 10년 통치의 기념비적인 업적이나 성과를 내세우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 방역으로 외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한마디로 ‘내치’에 주력한 해였다. 모든 게 여의치 않아 그야말로 조용하게 숨죽인 한 해였다. 대외적으로 신나는 일도 없었다. 공장, 기업소 등 현지지도를 하려고 해도 코로나 변이바이러스 때문에 다닐 수가 없었다. 외부 공개 일정이 대폭 축소됐다.

6월에도 공식 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다가 7월에 의사들의 강권으로 20㎏ 가량 다이어트를 하고 나오니 팔뚝에 찬스위스제 고급시계 줄을 세 칸이나 줄였다는 등 억측이 빈발했다. 9월 9일 정권수립기념일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지난 5월에 쿠데타가 일어나 김여정이가 나를 살해했다는 등 별별 소리가 나왔다. 가을 들어 최장 35일 만에 모습을 보이니 그럴듯한 대역설까지 등장했다. 최근에는 동생 여정이 54일 간 안 보인다고 남조선 신문들이 지적하고 있다. 여동생은 여성으로 가정생활도 해야 하고 그동안 악역을 많이 맡아서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공개 활동을 쉬는 것뿐인데 쉬지도 못하게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유포한다.

지난 9월 정권수립 기념일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감량을 하다 보니 과거보다 홀쭉한 느낌을 준 것 같다. 일부 외신은 얼굴 옆모습과 헤어스타일이 달라졌다면서 대역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일본 [도쿄신문]은 과거 남한 국방부 북한분석관 주장을 인용해, 나를 경호하는 부대 소속 한 명이 대역으로 등장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역설은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데자뷔(DejaVu)일 뿐이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공개적인 활동을 축소하면 일본의 북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갑자기 언론에서 대역설을 주장했지만 반박할 필요조차 없었다.

시게무라 도시미츠(重村智計)라는 사람은 1980년대 초 [마이니치(每日) 신문] 서울 특파원을 거쳐 한반도 전문기자로 활동하다가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와세다대 교수로 활동하면서 북한 관련 소설을 집필했다고 보고를 받았다. 그가 2008년 여름 [김정일의 정체]란 책을 냈었다. 스스로 ‘30년 한반도 관찰의 결산’이라고 밝힌 이 책에서 그는 “김정일은 이미 죽었으며, 지금 김정일이라 불리는 사람은 ‘가게무샤’(影武者, 대역)”라고 주장했다.

“김정일은 2000년부터 당뇨병이 악화해 휠체어 생활을 했고, 2003년 가을 사망했다. 그 후 ‘가게무샤’가 공무를 소화하는 한편, 북한은 4인조에 의한 집단지도체제로 비밀리에 이행했다. 이 진실은 겨우 10명 정도의 최고 간부만 아는 것으로, 아직까지 봉인되어 있다.”

그는 이 주장의 주요한 근거로 성문(聲紋) 분석 결과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일본 언론매체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2002년 1차 방북 때와 2004년 2차 방북 때 회담에 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목소리를 비교 분석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도는 나와 우리 공화국을 흔들기 위한 일본인들의 중상모략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으니 공개적으로 반박할 필요도 없다. 책을 팔기 위한 영업 전략이다. 이런 소모적인 외부의 심리전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일본 당국의 치밀한 ‘흔들기 전략’에는 무대응이 상책이다. 내가 외부 일정을 대폭 줄인 것은 고도비만에 따른 건강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 타블로이드지 [글로브]와 일본 언론에서 대역설이 끊이지 않는 것은 나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증거이니 크게 괘념치 않는다.

“승리의 해” 선언했지만, 성과 없었던 2021년


▎김정일 사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위원장은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 2017년 2월 이복형 김정남을 차례로 제거하면서 1인 권력체제를 다졌다.
지금은 인민들이 먹고사는 일이 더 급하다. 코로나 위기에다 대북 제재로 공화국의 삶이 녹록지 않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는 일이 시급하다. 이런 때일수록 체제결속이 제일 중요하다. 인민들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일단 당원과 인민들을 질책하고 공포정치를 전개하기보다 어르고 달래는 통치술이 필요하다.

12월 1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올해는 승리의 해다. 내년은 올해 못지않게 대단히 방대한 투쟁을 전개해야 하는 중요한 해다. 농업, 건설 부문에서 큰 성과가 있었던 것을 비롯해 정치, 경제, 문화, 국방 부문 등 국가사업 전반적 분야에서 긍정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긍정 평가했다. 또한 “성과들은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계획된 전반 사업이 활기차게 전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우리식 사회주의의 새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안겨주고 있다. 총체적으로 올해는 승리의 해”라고 선언했다. “당 중앙위는 새 연도계획을 역동적, 전진적, 과학적, 세부적으로 잘 수립해 5개년 계획 수행 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원회의 준비 사업 관련 점검을 했으며, 정치국은 12월 하순 당 중앙위 8기 4차 전원회의 소집에 대한 결정서를 채택해 회의 준비를 지시했다.(12월 2일 자 [조선의 소리])

2021년을 승리의 해라고 선언은 했지만, 실제 성과는 신통치 않다. 농업과 건설 부문에서 큰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지만, 그저 평년작이다. 7월 초 가뭄이 있었지만, 가을로 넘어오면서 태풍이 소멸되고 기상 조건이 양호해 예년 수준을 겨우 유지했다. 집계된 작물 생산량은 대략 490만 톤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올해 필요한 곡물량은 약 595만 톤으로 여전히 부족한 100톤 이상은 수입이나 지원에 의존해야 한다. 코로나 상황에서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솔직히 여의치는 않다.

지난 9월 밀과 보리의 파종 면적을 2배 이상으로 확대하고 단위 면적당 수확고를 높이라고 지시를 내렸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화학비료를 투입해야 생산성이 상승하는데 원유 수입량과 전력이 부족해 생산이 어렵다. 건설 분야도 발전소와 살림집(아파트) 건설을 독려하고 있지만 예년 수준이다.

최고 권력 유지 위해 혈육도 제거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와 함께 오르는 주석단은 권력지형의 바로미터다. 김정은은 권력을 이어받은 뒤 이른바 ‘삼지연 8인방’으로 불리는 신진 세력을 통해 지도부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이 정도 성과라도 잘했다고 실무자들과 인민들을 격려해야지 질책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라서 노력 동원을 독려한다고 생산량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 독려하고 밀어붙이지 않으면 생산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항상 통제하고 감시하지 않으면 당 간부들은 금방 기강이 해이해져 바닥으로 추락한다.

사실 2021년은 만감이 교차하는 해였다. 내가 2011년 12월 30일 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지 10년이 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에 3대 세습 통치를 유지한다는 것은 호사가들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할아버지 김일성급 수령으로 셀프 등극했고, 주석 직함을 달고 ‘김정은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홀로서기에 성공했지만, 이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 처형과 2017년 2월 이복형 김정남 암살 등 두 차례의 혈육 간 골육상쟁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그들의 경거망동에도 원인이 크다.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일 수 없다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의 원칙을 무시하고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 것은 유일 수령 사상 체제에서 수명을 재촉하는 일이다. 그들은 조선왕조의 3대 임금인 태종이 자신이 집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처남 민씨 4형제를 단칼에 제거한 역사를 들여다보지도 않았단 말인가?

지난 10년간은 정신없이 달려왔다. 아버지가 2011년 동지섣달 심근경색으로 급서해 제왕학을 체계적으로 배울 틈도 없이 약관 28세에 권좌에 올랐다. 외부에서는 젊은 지도자가 얼마나 가겠느냐고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권좌에 올라보니 겉으로만 충성하는 체하는 양봉음위(陽奉陰違)의 고위층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중국만 바라보고 2인자 행세를 하는 고모부 장성택을 제거하지 않으면 권력의 영(令)이 서지 않아 칼을 휘둘렀지만, 솔직히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다. 고모부를 치면 내가 살고 고모부를 치지 못하면 내가 살 수 없었다. 마이웨이에는 피바람이 불가피했다. 당시 아직도 내가 10대 스위스에 유학하는 조카인 줄 알고 중국 측에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함부로 전하는 고모부의 행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국제전화는 철저하게 도·감청이 되는데도 주의하지 않아 아침이면 내 책상에 리얼한 전화 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올라왔다. 조선시대 양녕대군처럼 권력의 언저리에서 물러나 고모 김경희와 함께 유유자적하며 바싹 엎드려 있었으면 화는 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새로운 시대와 세상이 도래한 줄도 모르고 섭정 통치의 개념으로 나를 상대한 것은 죽음을 자초한 것이다.

이복형 김정남 역시 분수를 모르고 행동했다. 평양에서 수차례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는 위험한 행동을 자행했다. 마카오에서 우리 일꾼들이 24시간 감시하는데도 2012년 이후 버젓이 남한 정보당국을 만나 평양의 인사이드 스토리를 전달하고 금품을 받은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아무리 돈이 바닥나서 힘들었다지만, 남측 정보기관 금품을 받는 것은 금도를 어긴 것이다. 내가 몇 차례 경고를 보냈지만 경솔하게 행동했다. 특히 마지막에 유럽으로 전격 이주하려는 계획은 저지가 불가피했다. 지난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처럼 직접 우리 공작원들이 나서면 책임 소재 때문에 곤란해 말레이시아에서 동남아 여성을 시켜 살해한 것은 불가피했다.

선대 측근 축출하고 ‘삼지연 8인방’ 시대 열어


▎2021년 6월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만남으로써 김정은 체제에 대한 중국의 신뢰와 공고한 대미전선을 재확인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사회주의 수령체제에서 권력이 얼마나 가혹하고 냉정한 것인지 고모부와 이복형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최고 존엄 주변의 파리 떼들이 권력의 곁가지들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워 신임을 받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전개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들은 없는 죄도 만들어 정적을 제거하고 냉혹한 권력의 정글에서 생존하는 데 달인들이었다. 물론 이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파리 떼들에게 숙청당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2011년 11월 28일 선친 김정일 운구행렬을 호위했던 7인방을 초기에 전격 진압한 이유는 면종복배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나를 포함해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우동측 보위부 제1부부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이영호 인민군 참모장, 김기남 당비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 이들 7명의 세력은 형식적으로 갓 30세가 된 젊은 나를 옹위해 권력승계 과정을 그런대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들은, 선대 권력은 CEO가 바뀌면 용퇴해야 새로운 태양이 화려하게 떠올 수 있다는 권력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3년 만에 5명의 권력이 전면에서 사라지게 했다.

1단계로 2013년 11월 장성택을 치기 위한 거사에 동참한 백두산 삼지연 8인방을 중심으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양건 당비서이자 통일전선부장, 한광상 노동당 재정경리부장, 박태성 중앙위 부부장, 국가안전보위부를 수족으로 부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는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홍영칠 기계공업부 부부장, 마원춘 중앙위 부부장 등이다. 이들 역시 주기적으로 자리 이동과 숙청 등을 통해서 확실한 충성체제를 구축했다.

군과 당의 노회한 권력층을 회전문 인사로 흔들고 숙청으로 위상을 보이니 나에 대한 태도들이 상당히 달라진 것 같았다. 감히 총참모장(이영호)이라는 자가 최고 존엄이 참석하는 1호 행사에 권총을 차고 의전을 하는 불경죄가 재연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허점을 보이면 벌 떼처럼 달려들 테니 주기적으로 사상단속을 해야 한다.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해도 녹록지 않은 한 해가 될 것 같다. 우선 1월에 열리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는 집권 10년 성과에 대한 부각과 내년 대외 전략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선전선동부를 통해 지난 10년 성과를 내세우는 심리전 대책에 대한 특별 지시를 해야겠다. 2018~2019년 동안에 두 차례의 김정은-트럼프 북·미정상회담, 시진핑-김정은 북·중정상회담 및 문재인-김정은 남북정상회담 등은 선대 지도자들도 해내지 못한 초유의 외교적 성과다. 하지만 대북제재를 해제하지 못했으니 싱가포르와 하노이 정상회담, 판문점 회동 등은 모두가 흘러간 추억이 됐다.

물론 제재 해제 등 실속은 없었지만, 홍보 효과만큼은 대박이었다. 전 세계의 매스컴이 나와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을 때는 꿈인지 생시인지 솔직히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남한의 홍보 대행사에서는 1조원의 PR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로 인해 푸틴, 아베 총리를 비롯해 전 세계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이 나와의 회담을 제의하는 등 세계 정상급 지도자의 반열에 올라섰으니 그런대로 남는 장사였다.

중국과 관계 강화로 대미 전선 구축


▎북한의 대외홍보용 화보 월간 [조선] 12월 호에 수록된 북한 어린이(박의성 군)가 그린 ‘심판’. 중국에서 열린 ‘제7차 아시아 어린이 그림 전시회’에 출품됐다. 코로나와 국제 제재 등 북한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보다도 더 결정적인 사건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네 차례 정상회담이었다. 지난 2012년 집권이래 지속적으로 방중을 모색했으나 묵묵부답이었던 베이징이 미·중 갈등 심화로 평양과 다시 손을 잡기로 한 것은 북한 외교의 쾌거라고 평가하고 싶다. 미국과의 협상이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니 항상 불안정하지만 북·중 관계는 다르다. 북한 외교의 기본은 평양과 베이징 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내가 미국과 대등하게 밀당을 할 수 있는 것도 시 주석의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일성, 김정일 선대 지도자들도 등극한 후에 베이징에서 책봉 스타일의 환대를 받고 나서야 위상이 올라갔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중국 방문은 미국과의 회담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였다. 시 주석과의 만남으로 평양 최고지도자로서의 위상이 공고해진 느낌이라 잠자리가 한결 편안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대만 문제로 정신이 없고 가끔 원론적인 입장 표명으로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워싱턴이 동북아 외교 1순위로 우리 평양을 밀어내고 대만을 중시하니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것이다. 상반기에 남한 대선이 있으니 단계적으로 도발 강도를 올려야 할 것 같다. 미국이 ‘실용외교’니 ‘조정된 외교’니 하나마나한 용어로 공화국을 관리하는데 인내심을 언제까지 발휘해야 할지 고심 중이다.

2021년에는 연초부터 탄도미사일(1.21, 3.21, 3.25), 장거리순항미사일(9.11~12), 열차탄도미사일(9.15),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9.28), 신형 반항공미사일(9.30) 및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10.19) 등을 연속 발사하며 미국의 반응을 떠봤다. 바이든 행정부 첫해라 로우키(lowkey) 전략을 고수하느라 발사현장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았다. 특히 내가 1년 7개월째 미사일 발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한 유화적인 제스처다. 집권 초기에는 미사일 발사 현장의 단골이었으나 도발적인 지도자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박정천 당비서(전 총참모장), 유진 노동당 군수공업부장을 현장에 보냈다. 내가 인민경제 개선을 강조하면서 경제현장에는 김덕훈 내각총리를 보내는 방식이다.

나는 트럼프와 시진핑 등 G2 지도자와 수차례 정상회담을 하는 등 글로벌 리더인 만큼 중요 핵심사안만 챙기고 나머지는 위임통치를 하는 모습을 보이겠다. 2월 4일 베이징올림픽은 참석에 실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남측에서는 내가 나와서 자연스럽게 정상회담 그림을 그리지만 내가 나갈 자리는 아닌 것 같다. 최룡해나 김여정 등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청와대에서 남측 대선 때문인지 지속적으로 정상회담을 요구하고 있다. 나도 고민이다. 거부하려니 박빙 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낙선할 시나리오를 상상하라고 조르고 있다. 벌써 몇 차례나 문재인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며 나와 최소한 ‘화상 정상회담’이라도 하자고 압박하는데 거의 스토커 수준이다. 12월 들어서는 청와대 안보실 관계자들이 베이징에 와서 우리 정보당국자에게 다양한 시나리오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얻어낼 것이 많지 않아 고민이다. 남측에서 임기 말에 아무리 움직여도 종전선언은 미국과의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국도 베이징 올림픽 외에는 종전선언에 큰 관심이 없다. 대북제재가 변함없는데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은 문재인 정부의 명분만 살려주는 안건이라 솔직히 나도 관심은 없다. 특히 아무리 서울에서 합의 문안이 완성됐다고 허풍을 쳐도 워싱턴에서 호락호락하게 들어줄 리 없는 것은 나도 잘 안다.

문재인 정부와 세 차례 정상회담으로 대규모 지원을 약속한 판문점 선언과 9·19 공동선언에 합의했지만, 손익계산서를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 남측 비무장지대 초소를 철거한 것은 유사시 대남 침투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성과다. 가장 큰 선물은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하는 대북전단방지법을 제정해 더는 나를 비난하는 전단이 날아오지 않는 것이다. 남측의 BTS니 [오징어게임]이니 하는 한류가 몰려오지 않게 차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사상·기술·문화 ‘3대 혁명’으로 내치 강화

남측의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재창출 여론보다 높으니 문재인 정부와 마지막까지 거래하는 것은 다소 리스크가 있다. 다만 지금 청와대를 도와주지 않아 정권이 야당으로 교체되면 대북전단방지법이니 9·19 합의니 모두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라 고민은 있다. 남한에 민족주의 감성으로 투표하는 비율이 최소 3%는 된다고 하니 나도 법적인 투표권은 없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작지 않다. 하여튼 2012년 집권하고 벌써 남한 대선을 3번째 경험하는데 선거 때마다 남측의 평양 줄 대기가 만만치 않다. 역시 선거는 평양이 100% 투표에 100% 찬성으로 서울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남한의 민주주의라는 것은 역시 이해하기 힘든 시스템이다.

임인년 새해는 집권 11년 차다. 검은 호랑이해는 새로운 10년을 기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고 나도 3년 후에는 40대가 된다. 나만의 고유 브랜드를 가져야 할 때가 됐다. 지나고 보니 10년 동안 정상회담 몇 번 한 것 외에 성과는 역시 핵무기 개발이었다. 핵심 치적으로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의 대외선전용 화보 [조선] 12월 호는 12월 7일 ‘국방력 발전의 최전성기를 펼치시여’란 제목의 ‘기념편집’에서 집권 10년을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위대한 혁명영도의 10년”으로 칭하며 첨단무기 개발을 성과로 내세우도록 했다.

내치(內治)는 애민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켜야겠다. 이미 고모부와 이복형 처형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자애로운 모습을 인민에게 선보이도록 이미 선전선동부에 지시했다. 특히 11월 특별 서한에서 사상·기술·문화 등 ‘3대 혁명’을 언급하며 당에 대한 충성과 경제발전을 강조했다. 민심잡기 전략은 할아버지 따라 하기가 효과적이다. 김일성 주석이 환생한 듯한 기시감(旣視感)을 주는 것은 3대 세습에 필수적이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돼야 하는데 앞이 안 보이니 걱정이다. 스위스에서 스키 타고 승마하던 조기유학 시절이 그립다. 지난해 40일 동안 원산에서 수상스키 타고 몸 관리하느라 두문불출(杜門不出)했더니 남측에서 유언비어가 만연했다. 올해는 건강을 생각해서 프랑스 보르도산 와인과 스위스산 에 멘탈 치즈를 좀 줄여야 할 것 같다. 과거 선대 지도자들도 연말연시에 나와 같은 고민을 했는지 궁금하다. 검은 호랑이띠 해에도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느라 불철주야 움직여야 할 것 같다.

-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201호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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