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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포럼 명사 인터뷰] 동남아 전문가 고영경 교수가 말하는 ‘아세안 시장 가치’ 

미국·중국만 바라보지 말고 기술력 바탕으로 동남아 진출 모색할 때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아세안6(인도네시아·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필리핀) 주목해야
공격적 해외 진출 전략 필요… 바이오·헬스·환경 기술기업에 기회 열려 있어


▎고영경 선웨이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겸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다수 기업이 중국 시장에 집중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인도가 중국을 대체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머징마켓 중에 동남아만큼 성장률이 높고 인구가 많은 지역이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은 이제 더는 중국과 일본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전 세계를 평정한 한국 아이돌 그룹에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이 포함돼 있을 정도로 아세안은 우리와 가까워졌다.

고영경 선웨이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겸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동남아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동남아 각국에서 태동한 기업을 추적해온 전문가다. 한국의 카카오와 네이버에 버금가는 기업의 태동과 성장을 눈여겨봤으며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한국 기업의 기업가치를 훨씬 넘어선 동남아 기업의 발달 과정을 꼼꼼히 기록했다. 12월 1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사옥에서 고 교수와 만나 신흥시장으로서 동남아시아의 가치와 특징을 살펴봤다.

최근 동남아시아 기업에 주목하는 책을 냈는데.

“대학원 석사 과정 전공이 동남아 지역학이었다. 박사 과정은 Finance(금융·재무)로 밟았다. 그런 영향으로 주로 이머징마켓(emerging market·신흥시장)을 연구하고 있다. 교수 자격으로 9년간 말레이시아에 있었던 경험도 많은 도움이 됐다.”

동남아 시장의 강점이 뭘까?

“한국 기업을 포함해 전 세계 기업들이 성장의 수혜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시장의 영향이 컸다. 인구도 많고 성장률도 높았기 때문에 대다수 기업이 중국 시장에 집중해왔다. 다만 너무 한쪽에 집중하다 보니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도가 중국을 대체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머징마켓 중에 동남아만큼 성장률이 높고 인구가 많은 지역이 거의 없다.”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

“투자자와 기업들의 관심을 받는 터키만 해도 환율 변동이 심하다. 남미 국가도 여러 면에서 안정적이지 않다. 그리고 한국과 거리상 너무 멀다. 그렇다 보니 문화적인 이질감도 존재한다. 반면에 동남아 시장은 6억7000만 명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평균 경제 성장률을 4~10%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젊은 층 인구가 아주 많다. 싱가포르를 빼면 평균연령이 30세 이하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은 동남아 지역 10개국 연합체다.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로 구성된다. 아세안이 글로벌 경제에서 ‘하나의 시장’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12월 아세안경제공동체(ASEAN Economic Community)가 출범하면서부터다. 단일 시장으로는 전체 인구 6억7000만 명으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다. 아세안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은 3조80억 달러로 세계 5위 수준이다.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평균연령이 장점


▎말레이시아의 택시 앱에서 출발한 그랩 앱(Grab app)은 현재 1억3800만 대 이상의 모바일 기기에 다운로드된 세계 3대 차량 호출 앱으로 성장했다. 동남아시아 승차 공유 분야를 휩쓸고 있는 그랩은 그랩키친을 만들고 공유주방과 배달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평균연령이 낮다. 이유는 무엇인가?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았던 국가·사회가 출산율이 좀 높다. 중국도 경제 성장을 하면 할수록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 동남아시아도 출산율이 지금은 예전보다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태어난 많은 젊은 층이 계속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자연 발생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젊은 계층의 인구가 많다는 건 계속해서 소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문화·언어가 다른데 하나의 시장으로 볼 수 있는가.

“유럽은 유럽연합(EU)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문화 차이가 엄청나다. 하지만 각 나라가 사실상 가깝게 이어져 있으니 우리가 그 차이를 작게 인식한다. 동남아도 똑같이 국가별 차이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2015년에 아세안경제공동체가 발족하면서 역내에서 일어나는 무역과 거래 관련해 관세 장벽이 거의 없어졌다. 하나의 시장으로 점점 커가는 과정이다.”

고 교수는 특히 ‘아세안 6’(인도네시아·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필리핀)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2억7000만 명으로 인구가 제일 많은 인도네시아, 제일 잘 사는 싱가포르,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넘는 말레이시아를 포함해 태국, 베트남, 필리핀의 인구가 거의 6억에 가깝다”며 “6개국은 지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해당 국가 사람들은 이 안에서 움직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시장에서 성장한 기업의 특징은?

“이들 국가의 기업들은 인접 국가를 가깝게 여긴다. 실례로 싱가포르는 영어를 쓰고 말레이시아도 영어를 쓴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언어와 인도네시아 말이 70~80%가 비슷하다. 태국만 좀 언어가 다른데 태국은 또 캄보디아나 라오스하고 인접해 있는 국가다. 그러니까 이들 국가는 사업할 때부터 아세안 국가를 향한 해외 진출 자체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잘된 다음에 해외 시장을 나가봐야지’가 아니라 시작할 때부터 ‘여기서 일정 수준까지만 달성하면 바로 (인접 국가로) 나간다’는 생각과 전략의 차이가 있다.”

눈여겨본 기업을 소개한다면?

“그랩, 고젝, SEA, 라인 등 ‘슈퍼앱’을 만든 기업을 살펴보면 해외시장을 많이 가지고 있다. 동남아시아 한 국가에서만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이 기업 모두가 5~8개 국가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지금의 기업 규모가 된 것이다.”

‘슈퍼앱’이란 단어가 생소하다.

“슈퍼앱이라는 건 여러 서비스가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앱)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의 아이디로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연결된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택시 이용, 음식 배달, 쇼핑 등 각국의 생활과 소비 패턴에 맞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한국의 카카오와 네이버가 떠오른다.

“초창기 카카오와 네이버의 서비스는 슈퍼앱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메신저 따로, 쇼핑 따로, 택시 이용 따로였는데 현재는 카카오나 네이버도 슈퍼앱으로 부를 수 있다.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동남아의 슈퍼앱들이 지금의 네이버나 카카오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진화했다.”

빠른 사업 확장으로 ‘슈퍼앱’ 시대 열어


▎고영경 선웨이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겸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가진 기업이 아세안 시장에서 큰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며 “소비가 증가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음식물 처리, 재생용 플라스틱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조언했다.
네이버나 카카오의 ‘문어발’식 확장에 국내 비판 여론이 있고 국가의 규제 움직임도 있는데.

“현재 동남아시아는 해당 사업을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레이 에어리어’(grey area·애매모호한 영역)로 남겨준다든지 아니면 ‘규제 샌드박스’(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주는 제도)로 해서 ‘그래 해봐’ 하는 식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 국가의 제제나 관련 움직임은 없다.”

독점 시장에 대한 우려는 없는가.

“시장 독점이 문제가 되면 국가가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게 되는데, 현재 동남아 시장은 단일 시장으로 볼 수 있지만 여러 경쟁 업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랩이 여러 국가에서 선방하고 있지만, 경쟁자인 고젝도 있고 이커머스 업체도 다양하다. 여러 나라에서 생긴 기업들이 아세안 시장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다. 모노폴리(독점) 시장이 발생한다면 정부의 스탠스가 바뀌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아주 작다.”

슈퍼앱 기업들의 향후 움직임을 예측한다면?

“해당 기업들이 미국 등 해외 주식시장에 상장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수익성’ 문제가 대두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팬데믹으로 인한 이용자 증가가 전체 기업의 매출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됐다. 전체적으로 몸집은 커졌지만, 수익 창출은 숙제다. 그래서 ‘디지털 뱅킹’ 사업 시도가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음식을 시켜 먹는 사람도 늘어났고 이커머스 사용자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슈퍼앱에 포함된 음식 배달, 쇼핑, 서비스 이용은 ‘페이먼트’(payment·결제 시스템)로 이뤄진다. 해당 회사들은 소비자의 구매력, 판매 현황, 지불 방법 등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교수에 따르면 슈퍼앱의 대표 주자인 그랩은 디지털 뱅킹 라이선스를 싱가포르에서 받았다. 말레이시아에서도 관련 허가를 진행 중이다. 고 교수는 “슈퍼앱 기업들은 한국의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처럼 디지털 뱅킹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지금까지 축적된 데이터로 신용평가를 하고 대출 서비스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기업을 통해 배울 점은 무엇인가.

“하이퍼 로컬라이제이션(Hyper Localization)이다. 택시 호출에 앞서 일반 차량을 부르는 ‘라이드-헤일링’ 서비스의 경우 대중교통 수단과 상황이 좋지 않은 동남아 국가에서 공통으로 필요한 서비스였다. 하지만 이를 대체할 차량의 형태, 지불 방법, 언어는 제각각이었다. 그랩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할 개별 솔루션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랩은 메시지 및 현지어 번역서비스, 이동경로 추적, 전화 상담, 국가 교통현황을 반영해 오토바이나 삼륜차 호출서비스 등을 선보였다. 아울러 신용카드 결제만 가능했던 우버와 달리 현금 결제도 가능하게 했다. 싱가포르는 신용카드 보급률이 높지만, 베트남은 아주 낮다. 개별 국가의 현실 상황에 맞춘 전략이었다.”

한국 Deep-tech 산업, 아세안 공략할 기회

해외 진출에 대한 태도도 언급했다.

“Regional Expansion(지역·국가 확대) 전략도 본받을 점이다. 잠깐 언급했지만 동남아 기업은 꼭 한 국가에서 성공한 다음에 다른 국가로 진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업 초기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다. 동남아 시장에서 이커머스 사업 분야 1등인 SEA의 경우 이미 브라질 등 중남미에 진출했다. 현재는 유럽 시장을 겨냥해 기업 차원의 분석과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해외 확장을 쿠팡보다 훨씬 빨리 한다. 쿠팡은 한국 시장을 넘어 이제 싱가포르로 나가볼까 하는데 동남아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 속도는 훨씬 빠르다. 쉬운 말로 ‘해외 시장도 나가본 애들이 더 빨리, 잘한다’는 말이다. 이미 동남아 시장이라는 경험치가 이들에게는 있다.”

2021년 8월 기준 SEA의 시가총액은 1633억 달러(약 196조원)에 이른다. 지난 3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쿠팡의 경우 시가총액이 880억 달러(약 99조원)를 넘어서기도 했다.

한국 기업이 진출을 고려할 만한 분야가 있다면?

“이제 동남아시아에서도 웬만한 서비스는 개별 국가의 스타트업 회사가 뛰어들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 기업에 기회가 있는 분야는 Deep-Tech 분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보다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으며 전 세계 시장에 내놔도 뒤떨어지지 않는 바이오와 디지털 헬스케어, 로지스틱스 분야가 그 예다. 또 환경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가진 기업에도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식물 처리 기술의 경우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고 관련 규제가 많아지면서 우리나라 관련 기업은 계속 기술력을 높여가고 있다. 소비가 증가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음식물 처리, 재생용 플라스틱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국에서 느끼는 것보다 해외에서 보면 한국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 한류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미 글로벌화된 기업들도 있지만 이제 중국과 미국만 쳐다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진짜 글로벌 전략을 세우는 기업으로 성장할 모멘텀이 왔다. 100년 넘는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4대 전략 파트너가 된 아세안과 인도 등으로 눈을 돌리고 적극적으로 접근하면 좋겠다.”

J포럼 과정은 어땠나.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어서 좋았다. J포럼의 역사와 전통이 깊다고 들었는데, 오래되면 멤버 구성이 다소 단출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올 상반기에 제가 들은 과정은 개인적으로 만나보고 싶은 분도 있었고 또한 생각하지도 못했던 영역의 다양한 분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J포럼 이 외에 다른 단체에서 하는 프로그램도 참여했었는데 비율이 남성이 대다수였다. J포럼은 각계각층에 계신 여성분이 많이 참여해 더욱 활기찬 모임이 된 것 같다.”

※ 고 교수는 J포럼 24기로 지난 11월 수료했다.

※ J포럼은 - 2009년 국내 언론사 중 중앙일보가 최초로 시작한 최고경영자과정이다. 시사와 미디어·경제·경영·역사·예술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강좌와 역사탐방, 문화예술 체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로 14년째를 맞이한 J포럼은 매년 두 차례(봄·가을) 원우를 선발하여 진행된다. 그동안 졸업생 1100여 명을 배출해 국내 최고의 오피니언 리더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학습과 소통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문의·접수: J포럼 사무국(02-2031-1018), http://ceo.joongang.co.kr

- 글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cho.kyuhee@joongang.co.kr / 사진 정준희 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202201호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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