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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와 인생’] 골퍼 손목 보호 밴드 개발한 이상진 서울본브릿지병원 원장 

“왼발 열고 몸통 스윙해야 다칠 위험 줄어” 

교통사고 후유증 겪은 정형외과 의사, 부상 방지에 관심
“골반·상체 함께 돌려야 좋아, 연습장 질긴 매트도 문제”


▎2021년 뉴코리아 골프장에서 포즈를 취한 이상진 원장. 큰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1언더파를 3번 기록한 골프 고수다. / 사진:이상진
이상진(54) 서울본브릿지병원 원장은 2002년 5월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했다. 스무살 초보운전자가 뒤에서 들이받았다. 정차해 있는 차로 돌진하는 뒤차를 백미러로 보고 있다가 더 크게 다쳤다. 이 원장의 목 디스크 두 개가 터졌다.

이 원장은 2002년 2월 정형외과 전문의를 땄다. 잠도 못자고 공부한 10여년 고생이 끝나고 행복한 순간이 왔나 했는데 3개월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목에 쇠를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이 원장은 거절했다. 그는 “본가에 부도가 나 어려운 상황인데 위험한 수술이 잘 안 돼 나마저 잘못된다면 집안 전체가 무너질 수 있어 버텨보기로 했다”고 기억했다.

괴로운 재활을 거쳤다. 다행히 부상이 악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걸로는 부족했다. 정형외과 의사는 목수라고도 한다. 망치를 두드리는 것 같은 몸을 쓰는 일이 많다. 다니던 병원에서 해고됐다.

이 원장은 “이런 사고를 당하면 성격이 예민해진다”고 했다. 술만 늘었다. 정형외과 전문의가 정형외과 치료를 받으니 더 괴로웠다. 술에 취해 3번이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 했다고 한다. 그러다 오기가 생겼다. 죽으려고 마음도 먹는데 무얼 못하겠느냐 생각했다. 죽고 살기로 해보자 했다.

몸이 온전치 않으니 수술을 하지 않는 정형내과 의사를 하려고 했다. 다행히 목과 어깨 등의 기능이 조금씩 좋아졌다. 이 원장은 “아직도 목을 잘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쓸 만한 정도”라고 했다.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상진 원장은 관절경 수술에 집중했다. 관절경은 수술 부위에 카메라를 넣고 모니터를 보면서 하는 수술이다. 수술 부위를 보려고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다른 정형외과 의사들에게 관절경은 일부지만 이 원장에겐 전부였다. 그는 “나는 이것 밖에 할 게 없으니까 최선을 다했다”고 기억했다.

이 원장은 서울고와 경상대 의대를 졸업했다. 비주류 의대를 졸업한 이 원장이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 그가 일하던 진주 병원이 관절경 병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 원장은 한때 비록 공식적으로 기록된 건 아니지만 횟수로 한국 1위였다고 자랑했다. 서울 의사들이 진주로 그의 수술을 배우러 오기도 했다. 이 원장은 서울에 바른병원을 세웠다.

교통사고로 병원서 해고, 술 먹고 극단적인 생각만 3번


▎호주 교포 선수인 이민지와 함께 포즈를 취한 이상진 원장. / 사진:이상진
이 원장은 “내 차를 들이받은 초보운전자인 스무살 청년에게 고맙다는 생각도 한다. 이후 내가 최선을 다해서 산다. 몸은 아직 제한적이지만 성격도 좋아졌다. 지방대학 나온 내가 정형외과 홍보이사와 정책이사를 했다. 병원도 잘 됐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했다.

이 원장은 1995년 군의관 때 골프를 배웠다. 그는 “처음 골프장에 가서 97타를 쳤다. 우쭐했는데 상관이 드라이버를 못 치게 해서 OB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다음 날 150타를 쳤다. 레지던트 기간에는 골프를 못 하다가가 2002년 전문의를 딴 후 열심히 배우다가 사고가 났다”고 했다.

아직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핸디캡이 있다. 목이 잘 안 돌아가서 보조기를 차고 연습할 때가 많았다. 백스윙 때 고개가 따라 돌아간다. 그래서 백스윙할 때 뒤에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평소에는 상관없는 데 중요한 경기를 할 때는 뒤에 있는 사람에게 비켜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2015년 대한골프의학연구회 창립을 주도했다. 골프 실력도 좋다. “1언더파를 세 번 쳤다”고 했다. 정형외과학회에는 어깨 전문 의사와 무릎 전문 의사들이 라이더컵 비슷한 매치플레이 대회를 한다. 이 원장이 지난해 2오버파로 메달리스트를 하기도 했다. 그는 “16번 홀까지 언더파로 가다가 17번 홀 보기를 했다. 드라이버가 상대적으로 약해 마지막 홀에서 수비적으로 친 3번 아이언 티샷이 토핑이 나는 바람에 더블보기를 했다. 이후 드라이버를 두 개 가지고 다닌다. 공격용 드라이버와 샤프트가 짧은 수비용 드라이버다. 이 원장은 겨울엔 골프를 거의 안 하고 캠핑을 한다. 10월 대회를 목표로 연습하기 때문에 골프 실력은 봄에 자라고 가을에 꽃핀다고 했다.

그는 손목보호대 피코(FICOR)밴드를 개발했다. ‘FIX’와 ‘CORE’를 묶은 이름이다. 사고 후유증이 있는 데다가 2004년 실내연습장에서 손목을 다친 게 계기다. 한때 손목에 테이핑하고 4홀이 지나면 풀고 새로 감고를 반복했다. 이 원장은 “테이핑으로 손목을 감는 건 마약 비슷하다. 피가 안통해 세포가 죽으면 이후엔 더 세게 조여야 감이 유지된다. 테이핑 자체는 효과가 있지만, 어딘가를 감아 피가 안 통하게 하는 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만든 피코밴드는 원리가 간단하다. 손목시계처럼 생겼는데 혈관 쪽엔 공간이 있어 피가 통할 수 있게 했다. 이 원장은 손목 전문이 아니다. 전공은 어깨다. 그는 “이렇게 쉬운 아이디어를 그동안 손목 전문 정형외과 의사들이 왜 만들지 않았는지 이상하다. 테이핑이나 아대를 하면 손목 전체를 압박하기 때문에 세포가 죽거나 가렵고 다른 근육에 통증이 생길 수 있는데 이를 없앴다”고 말했다. 혼자 제품을 만들어 착용해보고 지인들에게 나눠줬다가 상품성이 있다는 반응에 상용화했다고 한다.

경희대에서 의공학을 연구하는 김윤혁 교수가 피코밴드 관련 SCI 논문을 의공학 저널(JMST)에 냈다. “의료기기라면 시덥지 않은 논문이라도 쓰고 물건을 팔라”는 한 의사의 비판 글을 보고 이 원장이 의뢰했다. 김윤혁 교수는 “컴퓨터 실험 결과 피코밴드를 착용한 모델이 그렇지 않은 모델보다 생체역학적으로 손목의 요골과 척골의 움직임이 덜 하다. 피코밴드를 착용하면 손목 부상이 진전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과학적으로 입증된 모델을 통해 나온 결과지만 컴퓨터 시뮬레이션이고,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밴드로 모든 치료가 가능한 건 아니며 의학적 치료를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정식 제품은 2018년 6월 출시됐다. 이 원장은 “2021년 매출은 3억 원 정도지만 미국에서는 의료기기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피코밴드의 가치를 높게 본다. 12월 초 미국에 피코 헬스 INC라는 법인을 냈고, 실리콘 밸리 링크스라는 공익적 투자 자문사의 추천으로 몇몇 벤처캐피탈과 투자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 시계 형태의 밴드를 차는 것이 골프 규칙상 불법이라는 논란도 있었다. 경기에 도움을 주는 일종의 도핑이라는 주장이다. 이 원장은 “만약 피코밴드가 손목 각도를 고정해주는 기능이 있다면 문제가 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골프 규제 기관에 확인했다. 만약 이 밴드가 문제라면 신발과 골프장갑도 다 벗어야 한다”고 말했다.

“발목 아프면 손으로 스윙, 손목 다칠 수도 있어”


▎천룡골프장에서 KLPGA 투어 조아연과 함께 한 이 원장. 조아연은 2년간 피코밴드의 모델로 활동했다. / 사진:이상진
이상진 원장은 또 “김새로미, 전예성 등 KLPGA 선수들, 이동하 등 KPGA 선수들도 찬다. 특히 여자 선수들은 대부분 피코밴드를 가지고 있다. 효과를 알려주지 않기 위해 몰래 차는 것 같다”며 웃었다. 골프는 물론, 격투기, 테니스, 배드민턴 등 손목을 많이 쓰는 스포츠인들도 고객이다. 다른 손목 노동,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을 푸는 배스킨라빈스 등의 직원들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이 원장은 생각한다.

이 원장은 골프 스윙으로 생기는 부상은 인체의 각 부분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낚싯대는 중간 중간에 걸이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줄이 처지고 엉키며 고기가 물어도 낚시꾼에게 느낌도 오지 않는다. 같은 원리로 걸이 역할을 하는 손목이 불완전하면 손과 팔꿈치 등 다른 곳이 다칠 수 있다”고 했다.

어깨-손 신드롬이 있다. 어깨가 아플 때 손목을 잘 치료하면 어깨 통증이 없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손목이 아픈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고관절이나 허리일 수도 있다. 허리가 안 돌면 스윙할 때 손을 과도하게 쓰다가 손목을 다친다. KLPGA 투어의 한 유명 선수는 손목을 칭칭 감고 있는데 원인은 발목이었다. 발목이 아파 몸을 잘 못 쓰게 되니까 손으로 스윙하면서 손목을 다친 것”이라고 했다.


▎KPGA 투어에서 올 시즌 2승을 한 서요섭의 발목 강화 운동을 돕고 있는 이상진 원장. / 사진:이상진
이 원장은 “이런 원리를 모르면 건물이 흔들리는데 깨진 유리창만 갈고 있는 것과 같다. 튼튼한 유리와 창틀을 갖다 놓으면 상대적으로 오래 버티겠지만, 건물이 흔들리기 때문에 결국에는 또 깨진다. 근본 원인을 잡아야 한다. 퍼즐도 해본 사람은 금방 푼다. 골프를 하다 관절에 문제가 생기면 골프를 하는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 게 좋다”고 했다.

골프 전문 잡지에 부상 방지 칼럼을 쓰는 그는 “내가 다쳐봐서 잘 안다”며 “몸의 관절은 본래의 역할을 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목의 기능은 돌리는 것이고 허리는 숙이는 거다. 그게 잘 되어야 퇴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골프에서는 목은 숙이고 허리는 돌린다. 그러니까 문제가 생긴다. 이를 치료하려면 기본적으로 본래의 역할, 즉 목은 돌리는 운동, 허리는 숙이는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이를 충분히 한 후에 다른 운동을 해야 한다.

바람을 넣어 목을 올려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목 스트레칭기를 이용하면 좋다고 그는 충고했다. 한국은 산악지역에 골프장이 많아 족저근막염, 아킬레스건염이 많이 생기는데 족욕을 하라고 권했다. 관절이 건강하려면 혈류가 잘 돌아야 한다. 이 원장은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김연아는 해외에 나갈 때도 소형 충격파 치료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매일 치료했다. 골프 선수들도 수입이 일정 정도 이상 된다면 이런 치료기를 사서 가지고 다니면 선수 생명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마추어는 프로 선수의 스윙을 신경 쓰지 말고 아마추어답게 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굳이 참고하려면 프레드 커플스와 어니 엘스의 스윙 정도. 역동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부드러운 스윙이다.

그는 “교습가들은 상·하체의 회전 각도 차이가 커야 거리가 많이 나간다고 하는데 그러면 부상 위험도 함께 커진다. 상·하체를 분리하지 말고 골반과 상체를 함께 돌리는 것이 좋다. 쉽게 말하면 우향우, 좌향좌 형태다. 또 중요한 것은 왼발을 여는 것이다. 왼발을 스퀘어 형태로 두는 사람들이 많이 다친다”고 했다.

프로 따라하기 보다 아마추어답게 스윙해야


▎이 원장은 진주 바른병원과 서울 바른병원을 설립했다가 매각하고 현재는 피코밴드의 대주주, 서울본브릿지병원에서 봉직의로 재직하고 있다. / 사진:이상진
거리 욕심을 줄이고, 왼발을 열고 몸통 스윙을 하면 방향이 약간 오른쪽으로 휘기도 한다. 이 원장은 “그래도 이런 스윙을 기본으로 조금씩 교정하는 것이 좋다. 선수들은 공을 멀리 쳐야 하고 있는 신경을 다 집중해야 하지만 아마추어는 즐겁게 치는 게 목적이니 무리할 필요가 없다. 코스 매니지먼트를 잘하면 스코어 내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권했다.

골프 부상 중 큰 원인 중 하나는 연습장의 매트라고 이 원장은 본다. 그는 “요즘 매트는 오래 써도 홈이 파이기는커녕 색깔도 바뀌지 않는다. 얼마나 질긴지를 알 수 있다. 이런 매트에서 오래 치면 다칠 수밖에 없다. 천연 잔디에서 연습하기 어려우니 매트는 가장 부드러운 것을 써야 한다. 연습을 많이 하는 선수나 주말 골퍼라도 손목, 팔꿈치 등이 아프다면 부드러운 매트를 사서 가지고 다닐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코로나 때문에 남자 선수들이 여자 선수들보다 몸이 상대적으로 더 나빠졌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선수 부상 방지용 마사지 시설이 있는 차량이 코로나 때문에 대회장에 못 들어가게 됐다. 남자 대회에선 이 서비스가 완전히 사라졌다. 여자 대회장 근처엔 사설 마사지 시설 트럭이 있다. 그래서 여자 선수들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부상이 별반 다르지 않은데 남자 선수들은 큰 부상이 많다. 여자 선수들은 대회 상금이 크니까 건강을 유지하고, 남자들은 그렇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서울 도곡동의 서울본브릿지병원에서 진료한다. 일반 환자는 거의 받지 않는다.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한 시간씩 진료할 때가 많다. 일종의 서비스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선수들의 인성도 따진다고 했다.

이 원장은 “요즘 주니어 골퍼들이 안쓰럽다. 골프장 가격이 다 올랐고 학생들도 성인 요금을 받는다. 예전에는 일몰 직전 할인 요금이 있었고, 마지막 조 뒤로 선수를 지망하는 아이들이 따라 돌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다. 돈을 벌면 그런 아이들을 돕고, 골프 의학의 초석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 성호준 골프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일보 사회부와 스포츠부를 거쳐 골프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중앙SUNDAY. 네이버에 ‘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골프 진품 명품’ 등의 칼럼을 연재했다. JTBC골프 채널에서 [JTBC골프 매거진] [LPGA 탐구생활] 등을 진행했다. 저서로 [타이거 우즈 시대를 사는 행복][맨발의 투혼에서 그랜드슬램까지] 등이 있다.

202201호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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