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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가시박, 토종 말려 죽이는 식물계 황소개구리 

 

햇빛 막는 덩굴, 강한 번식력 통해 넓은 면적 뒤덮어
뿌리만 있어도 생존, 퇴치 작업해도 전국으로 확산세


▎2021년 9월 8일 낙동강 수변 일대 잠식한 생태계 교란 식물 가시박. / 사진:낙동강유역환경청
" '식물계 황소개구리’ 가시박 퇴치 골머리, 토종 식물 죽이고 산책로 덮어”란 제목으로 한 일간지에 나온 기사다.

“지난 22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인근의 한강 변 산책로. 천호대교부터 잠실철교까지 이어지는 1.5㎞ 구간의 강변을 초록색 덩굴식물이 온통 뒤덮고 있었다. 호박잎과 비슷한 모양에 줄기엔 가시 같은 억센 털이 나 있는 식물로, 일대 낮은 수풀을 모두 덮었고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에까지 뻗어 나온 상태였다. 버드나무는 줄기를 휘감고 타오른 이 식물 때문에 광합성을 못 해 잎이 누렇게 변한 모습이었다. 달맞이꽃, 부들 등 기존에 있던 식물은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근 주민 김모(58) 씨는 “멀리서 얼핏 보고는 참 생기 있다고 느꼈는데, 가까이서 온갖 곳을 뒤덮은 모습을 보니 기괴해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주민 최모(53) 씨는 “최근 산책을 나올 때마다 점점 (저 식물에) 점령당하는 범위가 넓어진다”며 “예쁜 강변의 경관을 망치는 것 같다”고 했다.

한강 변뿐 아니라 전국에 빠르게 번지고 있는 이 식물은 ‘가시박’이다. 북미(北美)가 원산지로 1980년대 건너왔다. 강한 번식력을 바탕으로, 국내 곳곳의 토종 식물을 고사시켜 ‘식물계의 황소개구리’라 불린다. 환경부는 2009년부터 가시박을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관리해오고 있지만, 매년 6~9월이면 전국 각지에서 다시 번진다.

환경부 관계자는 “가시박이 매년 어디서, 어떻게 퍼지는지는 파악이 어렵다”며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퇴치 작업을 벌여왔고 작년부터는 국비(國費)를 지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전국 100여 곳에서 가시박 등 생태계 교란 생물을 퇴치하는 데 55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한강 변은 상수도 보호 구역이라 약을 칠 수 없어 사람이 일일이 제거 작업을 하다 보니 속도가 더디다”라고 설명했다.

제거 작업을 해도, 가시박의 빠른 성장 속도엔 역부족이다. 야생생물관리협회 이지선 부장은 “가시박은 한 뿌리에서 나온 줄기가 20㎏이 넘을 만큼 크게 자라기 때문에 완전히 자라기 전에 뿌리째 뽑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천 변에서 자라는 가시박은 줄기가 굵고 튼실해 더 제거가 어렵다”고 말했다.

먹을 수 있지만 맛 없고 천적 동물도 없어

자 그럼, 가시박은 어떤 식물인지 더 알아보도록 하자. 가시박(Sicyos angulatus )은 북미 원산인 박과의 한해살이풀로, 1980년대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래식물(귀화식물, 歸化植物)이다.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력이 좋아 오이, 호박 등 채소의 접붙이용으로 수입되었던 식물로 접붙이기에 실패해 버려진 것이 전국에 퍼지고 말았다.

가시박은 끈질긴 것이 생장, 번식력이 좋아 넓은 면적을 뒤덮으며 자란다. 주변의 푸나무(풀과 나무)는 물론이고 호숫가 주변의 들판이나 비탈진 강변에서 수십 미터 높이의 큰 나무까지 뒤덮으며 퍼져서 다른 식물이 햇빛을 받을 수 없어 말라 죽게 한다. 또한 가시박 자체에서 다른 식물을 고사(枯死)시키는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를 타감물질(allelopathic mterial, 他感物質)이라 하며, 주변의 다른 식물들이 살 수 없게 만든다. 사실 식물치고 타감 물질을 분비하지 않는 것은 없다. 식물들이 풍기는 풀냄새도 하나의 그 물질이다.

가시박(starcucumber)은 암수한그루(자웅동주)로 충매화이다. 수꽃은 연녹색으로 꽃잎은 5장이며, 여름인 6월에서 9월에 꽃이 핀다. 긴 꽃대에 꽃자루가 있는 여러 개의 꽃이 피는 총상화서(總狀花序)로 달린다. 암꽃은 수꽃과 달리 꽃이 머리 모양을 하는 두상화서(頭狀花序, 두상꽃차례)로 달리며 1개의 암술이 있다.

줄기는 길게 4~8m로 뻗는데, 줄기 마디마디에서 나오는 덩굴손(tendril)으로 주변의 다른 물체를 감고 뻗는다. 줄기에서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얕게 갈라진 손바닥 모양(오각형)으로 5~7갈래로 갈라지는데, 호박이나 박잎과 흡사하다. 8월에 핀 꽃이 지고 나서 달리는 열매는 덩어리로 뭉쳐서 자라는데 흰색의 뻣뻣한 가시털로 덮여 있다. 다시 말해서 가을이 되면 흰 가시로 뒤덮인 별사탕 모양의 길이 1㎝ 정도쯤 되는 열매가 열리는데, 이 모양을 두고 가시박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그리고 가시박은 동물이 식물 종자를 널리 퍼뜨리는 동물산포(動物散布)를 한다. 또한 번식력이 뛰어나 한 그루에 씨가 무려 2만 5000 개 이상 달리기도 한다.

가시박은 뿌리만 남으면 계속 올라오는 등 번식력이 좋은데, 아직 가시박의 번식을 효율적으로 억제하는 방안이 없다. 잎을 쪄서 호박잎처럼 쌈을 싸 먹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지만 맛이나 식감이 별로 좋은 편이 아니라서 일부러 캐서 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아직 천적 동물이 없어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이 겨우 야금야금 갉아먹는 정도라 한다.

꽃과 꿀이 많은 밀원(蜜源)식물이므로 양봉 농가는 고마운 식물이다. 한국에선 몹쓸 생물로 여기고, 실제로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도 크지만, 원산지인 북미에서는 과거 원주민 이러쿼이(Iroquois) 인디언들은 가시박 줄기를 달여서 성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이용했고, 암소의 새끼 출산을 돕도록 식물체를 사료에 섞어 먹였다고 한다.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물이 있을까.

한때는 돼지풀과 미국자리공도 그랬지만, 자연(自然)이 살아도 좋다고 받아들였으니 별수 없지 않았던가. 귀화식물(naturalized plant)이란 이미 이 땅에서 토착화된 것이며, 더욱이 이미 생활사를 완성한 귀화식물이라면 완전히 제거하고자 함은 사람의 욕심일 뿐, 쉽게 그리되지 않는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 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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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호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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