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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저개발국 위해 헌신한 '팩트풀니스' 저자 로슬링 자서전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팩트’를 발견하다 

한경환 기자
의사로 열악한 현장 누비며 정량적 ‘사실’의 중요성 체득
도움 필요한 지역의 심각한 상황, 수치·도표 통해 보여줘


팩트(사실)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정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팩폭(팩트 폭격)’은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상대방을 공격한다는 한국형 신조어다. 사실을 함부로 말했다간 의도치 않게 당사자나 자신이나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더욱 팩트의 힘이 느껴진다.

‘팩트풀니스(factfullness)’는 ‘사실충실성’이라 번역된다. 팩트에 근거해 세계를 객관적, 정량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습관을 말한다. 스웨덴 출신 의사로 아프리카 모잠비크·콩고와 카리브해 쿠바 등 열악한 지역에서 의료봉사와 보건연구를 하며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평생을 헌신한 한스 로슬링이 만들어 낸 개념이다. [팩트풀니스를 찾아서]는 베스트셀러 [팩트풀니스]를 쓴 로슬링의 자서전이다. 로슬링 사후에 언론인 파니 헤르게스탐이 완성했다.

이처럼 팩트는 남을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 특히 곤경에 처한 세계인의 처지를 정확하게 알려 이들을 돕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로슬링처럼 후자를 제대로 구사한 사람은 드물다. 그가 찾아낸 팩트는 생과 사가 너무나 쉽게 넘나드는 의료현장에서 최대한 체계적으로 수집한 것들이다. 이런 저개발 지역에서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곳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더 정확하고 계량적으로 알아내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로슬링은 체득했다.

로슬링은 의료현황을 통계화하면서 높은 사망률의 원인이 기초 단계의 질병에 대한 진료가 이루어지지 않은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이 깊어진 다음에야 진료소를 찾아오는 사례가 많아 생명을 구할 기회가 그만큼 줄었던 것이다. 그래서 로슬링은 예방접종과 기초적인 의료를 제공하도록 해당 지역사회의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스웨덴으로 돌아와 수습 의사와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저개발국의 보건 시스템에 강의하면서 그들에 대한 정확한 수치와 도표를 보여 줬다. 그의 전매 특허인 ‘물방울 도표’는 이 과정에서 나왔다. 그래프 위에 각 나라를 표현하는 물방울을 그리고 인구수, 소득, 기대 수명 등을 물방울 크기와 위치로 표시하는 입체적인 도표였다. 로슬링이 만든 도표는 비영리 갭마인더 재단과 아들 올라, 며느리 안나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로슬링의 물방울 도표 강연과 연설은 스웨덴 웁살라대학과 스톡홀름 카롤린스카연구소의 학생을 넘어 스웨덴 각계 지도자가 모이는 포럼, 예테보리 도서박람회, 덴마크 코펜하겐,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보건기구로 확장됐다. ‘에듀테이너’라는 별명이 붙은 그의 매혹적인 여정은 테드(TED) 강연을 거쳐 다보스 세계경제포럼까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를 만나 움직이는 물방울의 소스코드를 구글에 팔게 됐고 빌 게이츠 재단의 관심과 지원을 받게 됐다. 저개발국들의 질병과 가난을 없애려는 로슬링의 노력은 그의 사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이 책은 팩트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202201호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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