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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화제] 대선후보도 출연 청탁, 유튜브 화제몰이 

주식·게임 소개하던 유튜버들 2022 대선 장터를 휩쓸다 

이민준 월간중앙 인턴기자
[삼프로TV], 질문 영역 좁히는 대신 깊게 파고드는 토론으로 대선후보 5명 출연 잭팟
유튜브 활약에 기존 레거시 미디어 위기, 진행 앞둔 TV토론회 개선 필요하다는 지적도


▎주요 대선후보 5명 모두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와 인터뷰를 했다. 이재명 후보는 1월 11일 기준 667만 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 사진:삼프로TV 캡처
"아이, 제가 이 방송 출연하려고 엄청나게 청탁을 했는데 몇 달을 안 들어주시더니, 드디어 만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25일 업로드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_경제의신과함께](삼프로TV)와 인터뷰를 시작하며 패널 측에 건넨 인사말이다. “왜 그랬느냐”며 “우리도 너무 힘들다”던 정영진 [삼프로TV] 공동대표의 볼멘소리가 무색하게, 대선후보 5인 인터뷰는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삼프로TV]는 금융 투자 전반을 다루는 경제 종합 채널인데, 지난해 3월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출연을 끝으로 정치권 인사의 출연을 자제해왔다. 정 전 총리 출연 당시 시청자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정영진 대표는 해당 영상 댓글을 통해 “대통령이나 대선후보들이라도 불러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들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철저하게 시청자 입장에서 질문할 예정이나, 시청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부르지 않겠다”고 공지했다.

9개월 뒤 [삼프로TV]는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초청해 1시간 30분 동안 경제 정책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청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재명 후보 편 조회수는 8일 만에 500만 회를 돌파했고, 같은 기간 윤석열 후보 편 조회수도 300만 회에 육박했다. 1월 2일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 편이, 1월 9일엔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 편까지 업로드되며 주요 대권주자 5명을 모두 출연시키는 섭외력을 과시했다.

좌판 열고 유권자 기다리던 시대는 옛말


▎[삼프로TV] 인터뷰 영상의 댓글 창에서는 시청자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삼프로TV]에 대한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 사진:삼프로TV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인터뷰 영상이 공유되자, 급기야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다”는 극찬까지 나왔다. 각 후보의 리스크를 조준한 네거티브 대신 각 후보의 정책과 아이디어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판단에 도움이 됐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삼프로TV]에 앞서 종합게임채널 [김성회의 G식백과](G식백과)에서 진행한 인터뷰도 함께 주목받았다. ‘게이머도 유권자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인터뷰엔 이재명, 안철수 두 후보만 참여했지만,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 게임 산업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을 높인 계기가 됐다. 방송에 참여하지 않은 윤 후보도 게임 규제 관련 이슈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확률형 아이템 정보 완전공개’를 공약으로 내놨다.

대선후보들이 출연한 [삼프로TV]와 [G식백과] 방송에 대한 반응은 많은 시청자를 거느린 유튜브 채널이 2022년 대선판을 흔드는 리딩 플랫폼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다. 과거 대선 때마다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 등장해 여론을 주도하곤 했다. 2012년과 2017년에는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각광을 받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정치인 팬덤이 등장한 2002년 대선에는 전국에 구축된 초고속 인터넷 망을 타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 사이트의 토론방이 여론을 주도했다.

과거에는 후보가 ‘온라인 좌판(SNS)’을 펴면 지지자들이 찾아와 단골로 등록하는 형태였다. 후보의 공식 SNS 팔로어 수가 세를 가늠하는 지표였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는 후보들이 느긋하게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여유를 부릴 처지가 아니다. 직접 좌판을 들고 대중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 떠도는 행상 신세다. 과거의 대선과 뚜렷하게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구독자가 많은 유튜브 채널을 찾아가고, 시청자 호감을 사기 위해 ‘망가지는’ 쇼맨십도 가리지 않는다. 유튜브 시청자에게 비치는 대선후보 이미지는 위엄 서린 예비 권력자라기보다 정치하는 예능인 ‘폴리테이너(politainer)’에 가깝다.

이처럼 대선후보들이 열 일 마다하고 인플루언서의 유튜브 채널로 달려드는 이유는 뭘까. 우선 압도적인 구독자 수와 패널의 전문성을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각 후보의 개인 채널보다 더 많은 유권자에게 자신을 노출시킬 수 있고,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전문가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검증된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유튜브 구독자 수와 조회수 등을 집계하는 해외 웹사이트 소셜블레이드에 따르면 [삼프로TV] 구독자 수는 1월 10일 기준 185만 명, [G식백과] 구독자 수는 76만 명으로, 대선후보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이재명 후보의 유튜브 채널(46만 2000명)을 뛰어넘는다.

전문성을 가진 패널도 후보들에겐 매력적이다. 오랜 시간 구독자를 모아오며 신뢰를 쌓아온 인플루언서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집단화돼 있는 구독자들의 관심사를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어서다. [삼프로TV]에 출연 중인 ‘김프로’ 김동환 대안금융경제연구소장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하나IB증권 이사로 재직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리딩투자증권 전무를 맡는 등 금융계에서 널리 실력을 인정받는 금융전문가다. [G식백과]를 운영하는 김성회 씨도 스마일게이트, 넷마블 등에서 개발자로 근무했다. 게임 관련 이슈를 쉽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쳐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온라인 캠페인’ 가속화


▎[삼프로TV]는 세 명의 프로가 모였다는 의미를 담은 채널명이다. 세 ‘프로’는 2018년 1월 첫 방송을 시작해 4년째 경제 관련 이슈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좌측부터 ‘김프로’ 김동환 대안금융경제연구소장, ‘정프로’ 정영진 공동대표, ‘이프로’ 이진우 공동대표. / 사진:삼프로TV 캡처
이들 인플루언서 채널에서 진행하는 인터뷰의 가장 큰 특징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 공세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패널이 질문을 던지고 후보가 답변하면, 답변에 대한 보충 설명을 요구하는 꼬리질문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TV나 라디오 등 방송 시간이 제한된 기존 미디어에서 볼 수 없는 심층 면접이다. 여기에 시청자 반응이 실시간으로 방송에 반영된다는 점도 몰입감을 더한다. 시청자로서는 대선후보와 직접 소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좋고, 후보로서는 자기 정책을 가감 없이 유권자에게 전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대선후보 인터뷰를 진행한 이진우 [삼프로TV] 대표는 “지상파와 달리 유튜브는 편성과 포맷이 정해져 있지 않아 콘텐트를 기획해 올리면 시청자들이 알아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제대로 된 토론을 하려면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답변이 나오면 그 답변에 대한 재질문, 재답변, 재재질문, 재재답변을 통해 끝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선후보들이 온라인 대선 캠페인에 집중하게끔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활동이 일상화하면서 각 후보 캠프는 위험 부담이 작고 투자시간 대비 홍보효과가 큰 온라인의 비중을 늘리는 분위기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해 12월과 1월 8일 선거운동 일정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확진자와 접촉해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기도 했다. 채광석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홍보소통본부 콘텐트그룹장은 “최근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에서 국민과 만나는 기회가 제한돼 유튜브를 더욱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개인 인플루언서 채널에 출연할 경우 가장 큰 기대효과는 해당 채널이 타깃으로 하는 집단을 그대로 조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선후보들이 출연한 [삼프로TV]의 경우 주식을 비롯한 재테크에 관심도가 높은 직장인을, [G식백과]는 게임을 즐기는 청년층과 게이머를 타깃으로 삼을 수 있었다. 심상정 후보는 [삼프로TV] 녹화에 앞서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하는 채널 [닷페이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김창인 정의당 선대위 대변인은 “남은 선거기간 동안 타 유튜브 채널 출연도 적극적으로 고려중”이라며 “뷰티·프로파일링 등 기존과는 성격이 다른 채널이 아이디어로 제안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각 후보의 개인 채널을 보는 사람이 적은 상황에서 이미 구독자가 갖춰진 인플루언서 채널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이어 “자신의 공약을 중심으로 여론을 이끄는 대신 유권자들의 관심사를 쫓는 모습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인플루언서 채널의 인터뷰가 화제로 떠오르자 지상파 TV 등 기존 레거시 미디어는 그간 뭐했냐는 시청자의 질책이 이어지고 있다. [삼프로TV]의 윤석열 후보 인터뷰 영상엔 “이 영상을 본 후 누구를 뽑을지 결정했다는 것은 언론환경이 정말 최악이라는 이야기”라는 비판성 댓글이 달렸다. 지상파 3사보다 100배 큰 역할을 했다는 댓글에는 ‘좋아요’가 5400여 개 달리기도 했다. 대학원생 김태훈(26)씨는 “기존 언론 보도를 보다 보면 특정 후보 쪽에 노골적으로 편향되는 모습이 거슬린다”며 “편향성의 정도가 악의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생 진현준(23)씨도 “언론에서 후보들의 공약을 깊게 다뤄주길 기대했으나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 리스크만 앞세우는 것 같아 아쉽다”고 전했다. 이완수 동서대 방송언론학과 교수는 “기존 언론이 한층 높아진 독자들의 저널리즘에 대한 요구를 그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비교대상 된 지상파엔 “개선 필요하다” 지적

기존 언론에서 진행해왔던 TV토론의 영향력은 여전히 높게 나타났지만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서 지난해 12월 25일부터 2일간 [에너지 경제신문] 의뢰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선후보 TV토론회가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답변이 63.4%로 나타났다. 이완수 교수는 “후보와 시청자 모두 제한된 시간 안에 정치적 공약과 철학을 최대한 잘 드러내는 것을 원하지만 지금처럼 논쟁 위주의 TV토론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언론사가 늘어난 만큼 기존의 백화점식 토론 대신 각 언론사마다 분야를 달리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형태의 심층토론이 진행돼야 유의미한 검증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진우 대표도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나열식 질의응답은 철학의 깊이가 있는 후보와 단기 공부한 후보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다”며 “형식적 질의응답 형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이민준 월간중앙 인턴기자 19g2970@naver.com

202202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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